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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쓰 전체글ll조회 589


 

 

겨울 소년과 여름 소년의 만남.

 

제 1장.

 

 

 

 

나는 지금 한 시골마을에 사시는 외할머니댁에서 엄마와 같이 생활하고 있다. 아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생활하려고 한다. 서울에서 잘 살지는 않지만 또 그렇다고 부족하게 살지도 않았던 우리 가정이 내려갈 곳도 없을 정도로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아버지는 꽤 알아주는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다가 어느 한 지인 분의 소개로 사업을 시작하셨다. 대기업보다는 아니지만 그래도 들어가기 힘들다던 그 좋은 회사를 그만 두고 받은 퇴직금과 적금을 깨 사업을 하셨다. 며칠 정도는 괜찮게 가는 것 같다가도 몇 달 뒤에는 아무런 반응도 없고, 가게에는 파리만 날라다녔다. 그로 인해 빚은 산더미처럼 쌓여만 가고 누구에게 들었는지 우리 집이 쫄딱 망했다는 소문이 전교에 퍼지고 말았다. 급식비도 못 내 밥도 못 먹고 수학여행도 못 갈 판이었다. 담임도 느꼈는지 나를 조용히 교무실로 불러 이야기를 하셨다. 백현아, 계속 이렇게 돈 안 내면 우리 학교 측에서도 곤란해. 저번 달까지는 선생님 사비로 급식비 냈는데... 밥 먹었니? 급식비 내준 사실도 모르고 있었는데 먹긴 무슨. 같이 먹을 친구도 없었다. 평생 갈 거라고 그렇게 우정, 의리 하던 친구들도 다 떨어져 나갔다. 그나마 남은 놈은... 김종인. 아기 때부터 친구였던 놈이다. 이 놈이 없었더라면 나는 벌써 목을 매달아 죽거나 옥상에서 떨어져 죽어 집값을 떨어트리고 말았을 거다.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누구에게 도움 받는 것을 원치 않았다. 엄마가 날 이렇게 키우기도 했고 내 성격상 그런 건 절대 용납 못 했다. 내 성격을 아는 종인 역시 부잣집 도련님이면서 도와준다는 말을 절대 하지 않았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나의 성격을 아니까. 옆에서 위로를 해 주고 같이 다녀주고 같이 웃어주고 울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겨우 종인이에게 기대 살아가고 있는데 사업이 망함으로써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이 되셨다. 틈만 나면 술을 사와서는 안주도 없이 그저 병나발만 불어댔다. 엄마와 내가 알바를 해 벌어오는 돈은 모두 아버지의 술로 빠져나갔다. 그걸 알면서도 엄마는 나와 동생을 먹여 살리려고 꿋꿋이 참고 일을 했다. 엄마의 허리 상태가 안 좋은 것은 나도 알았다. 동생 놈은 어려서 뭘 알기나 할런지. 종인이와 같이 하교를 하다가 약국 좀 들리자고 해 약국 문을 조심히 열고 들어갔다. 붙이는 파스는 얼마냐고 물으니 3000원이라고 한다. 주머니를 보니 초록색 지폐가 꼬깃꼬깃하게 있는 게 보였지만 쉽사리 사지 못 했다. 이 돈으로 동생, 엄마, 나의 저녁을 해결해야 하니까. 그래도 오늘 급식에 나온 빵이랑 우유를 안 먹고 챙겨둔 게 화근이었다. 어차피 빵과 우유는 내가 먹는 거였으니까... 하며 만원을 내려는데 갑자기 테이블 위에 카드가 올려지더니 감기약과 파스, 해열제 등등 온갖 약을 시키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목소리여서 고개를 돌리니 밖에서 기다리던 종인이었다. 아랫입술을 꾹 깨물고 카드를 종인이의 손에 쥐어주었다.

 

 

"됐어. 파스만 사면 돼."

"아, 그리고 비타민이랑 철분제도 좀 주세요. 너희 어머님 요즘 빈혈 있으시다며."'

"김종인."

"동생 입 심심하지 말라고 비타민이나 사 줘야겠다."

"……"

 

 

그렇게 약이 가득 들어있는 봉지를 제 팔목에 걸어두고 같이 나오는 종인이었다. 제 옆에 서서 휘파람을 불며 걷는 종인을 보고는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아랫입술을 꾹 깨물다가 앞에 보이는 편의점에 들어가 먹을 걸 둘러보고는 미안하지만 가장 싼  450원짜리복숭아맛 쥬스를 하나 골라 계산을 하고 종인의 손에 쥐어주었다. 뭐하는 거냐는 식으로 쳐다보는 종인의 시선에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자, 이건 내 답례야. 네가 사 준 약보다는 훨씬 싸겠지만 맛은 내가 보장한다. 존나게 싸지만 존나게 맛있어. 봉지를 꽉 붙들고 제 집 쪽으로 걸어가다가 걸음을 우뚝 서서는 뒤를 돌아 너를 쳐다보며 말했다.

 

 

"그거 싸다고 불량식품 아니니까 걱정 말고 마셔라. 알겠냐?"

"……"

 

 

 

 

 

역시 오늘도 나는 종인이의 도움을 받았다.

 

 

 

집에 들어갔지만 저를 반겨주는 이 하나 없었다. 중학교 2학년인 제 남동생 백훈이도 보이지 않아 그 작은 집에서 백훈이를 찾았다. 뭔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 작은 방에 들어가 봤더니 백훈이가 구석에 쭈그려 앉아서는 서럽게 울고 있었다. 놀라서 다가가 얼굴을 들어올렸더니 누구에게 맞았는지 입술이 다 터지고 눈가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있었다. 저도 모르게 속상해 백훈이에게 소리를 질러버렸다.

 

 


"…이거 누가 했어."

"혀, 형아… 끅, 그게, 흐으…"

"누가 그랬냐고 형이 물었지."

"끅, 아, 아버지가…"

"…뭐?"

 

 

정말 설마 설마 했다. 설마 아버지가 이래놨을까, 했지만 설마가 역시나. 백훈이를 품에 껴안고 울음을 그칠 때까지 등을 토닥여주었다. 위로를 한다고 해서 백훈이의 상처가 낫는 것도 아니다. 나의 마음이 괜찮아 지는 것도 아니다. 그냥, 그냥… 나아지는 기분이라도 느껴보려고. 여태껏 나아진 적이 없으니까. 나아진 척이라도 해 보려고. 척, 척이라도. 진정이 됐는지 품에서 나가는 백훈이를 보고 눈꼬리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눈물을 엄지로 슥 닦아주었다. 뜸을 들이다가 말을 하기 시작하는 백훈이를 진지하게 쳐다보았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버지는 또 돈을 술에 다 쏟아부었는지 돈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백훈이에게 돈을 달라고 했지만 주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백훈이도 엄마의 허리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는지 파스를 사려고 내가 주는 용돈을 꾸준히 모았다고 한다. 그 돈이 주머니에 있었지만 엄마 파스 사러 나가려고 가방을 놓고 현관으로 갔는데 그때 마침 아버지가 들어와서 돈을 달라고 협박을 했던 거랜다. 그 이야기를 듣고 화가 나 주먹이 꽉 쥐어지는 걸 겨우 참아냈다. 후… 깊게 숨을 내뱉고는 백훈이를 다시 쳐다보았다.

 

 

"형이 엄마 파스 사왔어. 백훈이 비타민도 사왔으니까 걱정 마."

"…진, 짜?"

"응. 그렇고 말고. 형이 거짓말 친 거 본 적 있어?"

 

 

백훈이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그걸 보고는 백훈이가 귀여워 보여 나는 옅게 미소를 지었다. 미소를 짓는다고 해서 다 행복한 게 아니다. 내 웃음은, 백훈이의 엄마의 웃음은, 겉모습만 행복했다. 속은 힘들고 괴로워서 썩어 문드러지고 말았다. 파이고 파이고 파인 상처에 또 파일 곳이 없을 정도로 상처의 깊이는 더 심해져가고. 나는 결심했다. 집의 기둥으로써, 우리 가정을 지켜낼 거라고.

 

 

 

 

 

 

"…종인아."

"어."

"……"

"야, 왜. 불렀으면 말을 해야지."

 

 

처음으로 종인이에게 도움을 청한다.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어제 화장실 거울을 보며 연습을 했다. 나는 종인이의 으리으리한 저택에 놀러왔다. 학교 끝나고 종인이의 모습이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해, 괜히 애써 웃으며 종인이에게 말했다. 야, 오랜만에 너네 집 놀러가도 되냐. 나 오늘 알바 쉬는 날이거든. 게임 한 판 콜? 종인이는 웬일이냐. 하면서 나를 집으로 데려갔다. 내 옆에서 게임기 가지고 노는 종인이의 모습을 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계속 말을 하지 않고 있다가 캐릭터가 죽었는지 TV에서는 GAME OVER라는 문구가 떴다. 나의 인생 게임은 언제 끝날까. 언제 오버될까. 내 게임이 오버되면 백훈이는, 어떻게 살아갈까. 아버지가 과연 찾아올까. 게임기를 내려놓고는 저를 쳐다보는 종인이의 시선에 움찔거리며 정신을 차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아, 저 그게…"

"아, 뭐. 빨리 말해."

"나, 돈 좀… 빌려줘"

"아, 뭐야. 겨우 그거냐. 알겠, 뭐?"

 

 

사탕 하나라도 얻어먹기 싫어했던 내가 종인이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니 놀란만 하다. 에상했던 반응이라 딱히 놀라지도 않았다. 애써 담담하게 옅게 웃으며 종인이에게 말했다. 근데 나 많이 필요해. 한 100만원 정도. 종인이라면 충분히 그 정도 돈을 빌려줄 수 있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두렵다. 종인이가 날 진정한 친구라고 생각하고 그 많은 돈을 빌려줄까. 아니면 미쳤다고 쫓아낼까. 종인이가 빌려준다고 쳐도 그 뒤엔? 종인이를 못 본다. 못 봐. 못, 봐.

 

 

"…야, 뭐하는데 그 정도나 필요해."

"그냥… 백훈이 맛있는 것도 좀 먹이고 엄마 병원도 데려가고 싶어서."

"아, 그런 거냐. 어머님 많이 안 좋아?"

"많이는 아니고, 그냥 좀 불편하다네. 빌려줄 수 있냐."

 

 

야, 우리 사이가 좀 좋냐. 이따가 이체해 줄게. 어머님 편찮으신 거 너무 신경 쓰지 마라. 어머님이 더 속상해 하셔. 백훈이 배고프다고 하면 우리 집 데려와. 눈치 보지 말고. 우리 엄마도 너 예뻐 하니까. 게임기를 다시 톡톡 만지더니 게임을 시작하고서는 TV에 시선을 고정하며 하는 종인이의 말에 감동을 받아 눈시울이 붉어졌다. 눈물을 참으려고 했지만 결국 울음이 터져 종인이의 품에 안겨서는 펑펑 울어버렸다. 게임하다 말고 놀란 종인이가 움찔하더니 나를 안아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이 따뜻한 손길이 얼마만이었는지. 그렇게 나는 종인이의 품에 안겨 잠이 들었다

 

 

 

 

 

 

 

 

 

여름 소년은 이미지가 밝아야 하는데 밝지가 않아서 좀 걱정이네요. 나중에 뒤로 갈수록 밝아질 거예요.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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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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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재밌어요 다음편이 궁금하네여ㅠㅠㅠㅠㅠㅠ신알신 하구 갈게여~~~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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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쓰
댓글과 신알신 감사합니다. :)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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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좋아요ㅠ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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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쓰
댓글 감사합니다. :)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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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재밋어요ㅠㅠㅠㅠ으아ㅠㅠㅠㅠ겨울소년은 경수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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