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몰아가는 분위기를 담보로 일을 저지른 다음날, 그 다음날, 그 다음다음날까지도 호원의 얼굴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물론 오늘도 예외는 아니였다. 교실문을 거세게 열어젖힌 인국이 호원의 자리를 응시했다. 역시나 빈 자리. 인국이 천천히 숨을 몰아쉬었다.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왜그런지는 모른다. 말다툼을 해서? 아님, 키스해서? 요 며칠새에 인국은 머릿속이 터질 것 같아 죽을 맛이었다. 더 짜증나는건 그 이유조차 모른다는 것. 답답해 미칠것 같은 속을 누구에게 가서 풀어야 할지도 몰라 혼자 끙끙 앓았다. 이제는 화가 치밀었다. 왜 코빼기도 안비추는건지 내 전화는 왜 씹는건지. 그대로 뒤를 돌아 학교를 빠져나가 호원의 집으로 향했다. 맴, 매앰 하고 발정난 듯 시끄럽게 울어제끼는 매미에 머릿속이 더 난잡해지는 것 같았다.“야…! 이호원!!”인국이 주머니에 손을 꼽고 사탕을 반대쪽 볼로 옮겨무며 굳게 닫혀있는 대문을 발로 차며 호원의 이름을 외쳤다. 이호원…! 얼마 가지 않아 열린 문틈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어, 인국이형…. 병원에 있을때와 별 다를게 없어보이는 수척한 성종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욕부터 내뱉으려던 인국이 어색하게 입을 오므리며 웃었다. 안녕. 호원이는? 인국의 말에 성종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형, 학교 안갔어요? 인국이 당황한 표정으로 성종에게 물었다. 집엔, 들어왔어? 고개를 끄덕이던 성종이 집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 아침에 학교간다고 교복에 가방까지 매고 나갔는데…. 따라 들어갈 생각을 못하고 멍하니 서있던 인국이 뒤돌아 대문을 빠져나가며 성종의 뒷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나 먼저 가봐야겠다, 갈게! 어엇, 형! 대문 밖으로 삐죽 나온 성종의 얼굴에 인사를 하며 뒤로 걷던 인국이 빙글 몸을 돌려 정면을 바라보았다. 뭐야, 대체…! 절로 욕이 나왔다.“어? 오빠!”“…….”“인국이 오빠!”교복치마를 입은건지 똥꼬치마를 입은건지 모를 여자애가 다가와 친한척을 해댔다. 뭐 씹은 표정으로 밀어낸 인국을 또랑한 눈으로 쳐다보던 여자가 베시시 웃었다. 아까 호원오빠 만났는데. 그냥 씹고 제 갈길을 가려던 인국이 멈칫하고는 뒤를 돌았다. 뭐라고? 이호원 봤다고? 어디서? 언제? 쏟아지는 인국의 물음에 당황한 여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골똘히 생각했다. 아까 북단사거리 쪽에서 바이크 타고 가는거 봤어. 마침 신호걸려서 인사했더니 씹고 그냥 가는거 있지! 여자가 투덜대던 말던 인국은 호원의 행방을 알기위해 두뇌를 풀가동시켰다. 북단대로 사거리라면 제 동네에서 제법 떨어진 곳이었다. 호원이 그 곳까지 갈 필요가 있을만한 일이 뭐가 있을까. 오빠? 내 말 듣고있어? 조잘대던 여자가 인국의 팔을 붙잡고 흔들었다. 오빠! 일단 가볼만한 데를 다 뒤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인국은 재빨리 택시를 잡았다. 아씨, 오빠 어디가! 여자의 신경질적인 말에 대꾸도 안한 인국이 택시문을 닫으며 말했다. 북단대로 사거리요.“…하아.”인국이 짜증이 오른 얼굴로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녔지만 호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손바닥으로 제 허벅지를 짚고 연신 가쁜 숨을 토해내던 인국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배에선 배고프다고 아우성을 쳐대고 시간은 부질없이 흘러 벌써 두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주머니를 뒤적거려봤자 나오는건 단돈 이천원. 하필 이럴 때 지갑을 안들고 나오다니. 그나마 가지고 있던 돈도 택시비로 다 써버렸다. 할 수없이 주위를 두리번 거리며 편의점을 찾아 걸음을 옮겼다. 햇볕이 쨍쨍 내려쬐는 바깥과는 달리 시원한 에어컨바람이 솔솔 불어나오는 편의점은 쾌적하기 그지없었다. 성큼성큼 걸어가 삼각김밥 하나와 커피를 골라 계산대에 올려놓자 사천사백원입니다. 하는 그지깽깽이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터무니없이 올라간 가격에 인국이 따지려 고개를 들자 손에 디스한갑을 쥐고 딸랑이며 방싯방싯 웃고있는 우현의 얼굴이 보였다. 뭐냐, 너.“알바 대타 뛰어주러.”“할 일 없냐?”“그럼 어떡해. 아는 형이 꼭 좀 부탁한다는데. 그건 그렇고 디스 한갑은 부잣집 도련님이신 인국님께서 내시는걸로.”“꺼져. 돈없어.”씁-! 나보다 없으실까. 우현이 실실 웃으며 담배각에 바코드를 찍고는 그대로 담배포장지를 뜯어냈다. 미친 새끼. 잦게 웃음을 터뜨린 인국이 계산대 안으로 들어가 우현의 옆자리에 앉으며 커피빨대를 꽂았다. 진짜 없는데. 작게 중얼거리는 인국의 말에 코웃음을 친 우현이 척, 하고 손을 내밀었다. 아 빨리 돈 내놔. 사천사백원입니다, 손님. 그런 우현의 손에 달랑 이천원을 건넨 인국은 난 모르는 일이오. 하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였다. 장난 하지 말고. 그지새끼냐, 꼴랑 이천원 갖고 다니게. 하루마다 용돈타서 쓰는 초딩도 아니고. 인국이 코웃음을 치며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켰다. 아 진짜 안줄꺼야? 나도 돈 없단말야. 이거 정산 안맞으면 성규형한테 나 죽어. 딱 들어보니 우현에게 대리알바를 맡긴 그 대책없는 형이신가 보다. 부탁해도 믿을만한 놈한테 하셔야지 왜 하필 이런놈한테…. 해가되면 해가 됐지 득이되는 일은 없을텐데.“아, 까고 진짜 없다고. 뒤져볼래?”“…진짜? 진짜 없어?”진지한 표정으로 어. 하고 짧게 덧붙이는 인국을 보며 잦게 욕을 중얼거린 우현이 제 주머니속에서 꼬깃꼬깃한 천원짜리 지폐 세장을 꺼냈다. 뭐야, 아깐 나보고 용돈 타쓰는 초딩이냐매. 사돈 남말하고 있네. 내가 언제, 그냥 말이 그렇단 거지. 우현은 계산대에 제 지폐를 집어넣고 육백원을 꺼내 조심스레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아 집에 꿍쳐둔거 몇갑 있는데, 괜히 포장지는 뜯어가지고. 억울한 듯 우현이 자꾸만 울쌍을 지었다. 삼각김밥 하나를 통째로 입에 쑤셔넣은 인국이 우걱우걱대는걸 지켜보던 우현이 쩌리 남은거 줄까? 하며 몸을 일으켰다. 너 학교는 어쩌고? 인국은 제가 한말에 저가 웃겨 웃음을 터뜨렸다. 하긴, 내가 남걱정 해줄 때는 아니지. 그런 생각이 들기 무섭게 우현이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인국을 향해 외쳤다. 푸하하, 니가 할말은 좀 아닌듯. 너는 왜 학교 땡까고 여깄는데. 나? 이호원 찾으러. 이호원? 어. 이후로 말이 끊겼다. 쩌리 가지러 간다더니 만들어서 오나 싶어 고개를 쭉 빼 우현의 모습을 찾자 한켠에서 멍청히 서있는 우현이 보였다. 야, 뭐해!!제 앞에 들이밀어진 까만 봉투들. 안을 열어보니 유통기한이 오늘까지인 삼각김밥들과 샌드위치였다. 고맙다? 인국의 말에 우현이 씩 웃어보이며 손을 뻗어 하나를 꺼내 껍질을 깠다. 고마울게 뭐있냐. 내 돈내고 산것도 아닌데. 그말을 끝으로 둘 다 먹는것에 집중한 탓인지 정적이 흘렀다. 포장지가 에어컨바람에 의해 사부작거리는 소리가 거슬려 휴지통에 껍질을 쑤셔넣은 우현이 아까 들고온 바나나우유를 쪼록쪼록 마시며 다시 말문을 꺼냈다.“지난번에, 왕게임 때….”“…왜.”“미안하다.”뭐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인국을 바라보던 우현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나 사실 알아.”“뭘?”“니가 이호원 좋아하는 거.”순간 먹던것이 코로 올라올 뻔 했다. 사레가 들려 잇따라 자꾸 기침을 하는 인국의 등을 쓸어내려주며 우현이 묵묵히 말을 이었다. 난 너의 취향을 이해한다, 친구야. 별 거지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우현을 세게 밀어낸 인국이 허겁지겁 빨대를 찾아 물었다. 헉,헉 숨을 몰아내쉰 인국이 얼굴을 찡그리며 외쳤다. 그런거 아냐, 새끼야. 그런 인국의 말에 우현은 잉? 하는 표정으로 인국을 바라보았다. 진짜? 아, 그래. 너는 뭔 말같지도 않은 말을…. 아리송한 표정으로 인국을 향해 몸을 돌린 우현이 잘 생각해봐. 하며 인국의 눈을 응시했다. 내 눈 똑바로 봐. 그리고 따라해. 나는 지금부터 진실만을 답할것을 맹세합니다. 야, 장난하냐? 오글거리게 뭐냐. 아 빨리! 따라해.“나는 지금부터 진실만을 답할것을 맹세합니다!”“…나는, 지금부터, 진실만을 답할것을 맹세합니다.”“첫번째 질문. 이호원을 좋아합니까?”아 진짜 내가 꼬꼬마 유딩이냐? 새끼 존나 유치하게 노네. 가서 엄마 젖이나 더 빨고 와. 혀를 차며 질색하는 인국을 붙잡은 우현이 짐짓 엄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되물었다. 이호원을 좋아합니까? 결국 우현에게 두 손, 두 발 다 든 인국이 힘없이 대답했다. 아니요, 안좋아 합니다. 그럼 다른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근데 진짜 이호원 안좋아합니까? 아, 안좋아한다고! 갑작스레 다시 떠오르는 며칠전의 기억에 인국은 인상을 찌푸렸다.‘또 한번 그딴 소리 짓껄여보라고 해. 그땐….’‘…….’‘가만 안 놔둬.’미묘한 인국의 표정변화를 캐치해낸 우현이 잽싸게 물었다. 방금 무슨 생각했어? 어? 암것도. 아 뻥치지 말고, 지금 이호원 생각했지, 너. 귀신같은 새끼다라고 생각했지만 인국은 끝까지 발뺌할 작정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라고. 아 진짜 진실만을 말할것을 맹세한다며. 마치 네살짜리 조카와 놀아주는 기분에 인국이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말 안해주면 대답 해줄때까지 쫓아올 녀석이라는게 떠올라 인국은 툭 내뱉듯이 대답했다. 알았어. 그래. 이호원 생각했어. 됐지? 다음. 근데 이거 언제까지 물어볼꺼냐? 인국의 말은 안중에도 없는 듯 우현은 또다른 질문을 내놓았다. 방금 이호원 생각했을때 니 표정이 갑자기 굳었어. 그건 왜일까? 우현의 말에 인국은 곰곰히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그랬다고?“그러고 보니까 그때 윤제 오뎅 안 온 이유가 너한테 얻어터져서라며.”“…….”“이호원 때문, 아냐?”“…….”머릿속이 복잡해진 인국이 고개를 숙였다. 그런 인국의 모습을 바라보던 우현이 이제 순환 좀 할까 싶어 다른 얘기를 끄집어냈다. 중간에 이호원이 끼어들어서 화분 깨부셨다며. 오우, 그럼 진짜 화난거 아냐? 니랑 그렇게 엮이는게 어지간히 싫었나 보다. 우현이 인국의 앞에서 대놓고 깐죽이며 까불거렸다. 좋게 말할 때 입 닫아. 아구, 우리 인국이 상처받았네. 우쭈쭈, 이리와. 형아가 호원이형아랑 이어줄게. 걱정 마. 우쭈쭈쭈쭈. 아 진짜 뒤지는 수가 있다. 왕게임 때, 솔직히 말해봐. 좋았지? 뭘 좋아, 새꺄. 호원이 입술은 어떻디? 아 씨발, 진짜! 그렇게 한참 투닥이는데 갑자기 우현이 웃음기를 거둔 채 진지하게 물었다. 마지막으로 묻는거다, 이 멍청아.“사내새끼들끼리 말장난 할 수 있는건데 오바해서 애를 패질 않나, 사내새끼랑 혀까지 섞으며 입술박치기를 하질 않나, 한낱 친구새끼 찾는다고 학교땡까고 하루종일 돌아다니질 않나.”“…….”“내가 보기엔 내 직감이 틀림없다고 믿거든. 너, 진짜 이호원 안좋아해?”“…….”“…안 좋아해.”인국이 벌떡 몸을 일으켰다. 나 간다. 붙잡을 새도 없이 가게를 빠져나간 인국에 사라진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우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 멍청한 개새. 지가 지맘도 몰라요. 아까 결국 제돈으로 산 디스각을 꺼내 한개피를 입에 문 우현이 계산대 옆에 놓인 라이터 하나를 들어 불을 붙였다. 치,치익. 하고 타들어가는 담배소리와 함께 무심코 잊고있던 CCTV가 생각나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아니나 다를까 렌즈에 저를 담고있는 카메라가 보였다. 에이, 씨발. 점장이 녹화본을 본다면 분명 성규에게로 불똥이 튈것이 뻔했다. 그럼 덩달아 저도 지옥행…. 다급히 욕을 내뱉은 우현이 입에 물고있던 담배를 빼내고 편의점을 나섰다. 문 앞에 서서 재를 털던 우현이 씁쓸한 표정을 짓던 인국의 얼굴을 다시금 떠올리며 깊게 한모금을 빨아들였다. 스치는 더운 오후공기에 나뭇잎이 싸락이는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정처없이 흔들리는 나뭇잎들이 마치 아까전의 인국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우현은 참지못하고 잦은 웃음을 터뜨렸다. 끈질긴 질문끝에 돌아온건 안좋아한다는 심심한 대답뿐이었지만 오히려 오늘을 계기로 제 짐작을 확신한 우현이었다.이건 뭐, 대놓고 알려줘도 몰라요. 병신새끼.* * *
촉새머신 이호원이 아닌 촉새머신 남우현이네요 ㅋㅋㅋㅋ
그나저나 성규는 우현이한테 알바맡기고 어디로 튄걸까요 ~.~
인국이랑 호원이는 언제쯤 진심을 깨우칠지...;.... 두분 다 눈치 좀 키우실게요...ㅎㅎ... ㅋㅋㅋㅋㅋㅋㅋ
빨리 들고 오고싶은맘에 수정도 안하고 급히 가져왔어요 ㅠ.ㅠ 틀린부분이나 수정할 부분이 있을지도 모릅니당...
그리고 계절이 바뀌면 은 중편으로 확정이 났네요 으핳핳 ^.^ 대충 구성 다 짜긴했는데..
원래 단편으로 기획했던건데 예상보다 오래갈 것 같네요 ㅋㅋㅋ 독자분들 평생 같이가자↗
댓글이 줄어들어 슬퍼요 ㅜ.ㅜ! 우리 끝까지 함께 갑시다 s2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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