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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그냥 윤희 데리고 롤러코스터 한번만 타줘요. 네?"

 아까부터 이런저런 이유를 설명해주면서 안된다고 해도 아내가 자꾸 나에게 부탁했다.
"고소공포증 있어서 안된다니까."
 내 손을 잡고 칭얼대던 윤희가 결국 마음이 상했는지 뒤돌아섰다. 미안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아빠는 겁쟁이."
"그래. 아빠는 겁쟁이야."
 사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놀이기구를 좋아했고 롤러코스터를 무서워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자꾸 피하게 되는 이유는 아마 김한빈 때문이 아닐까. 나는 지금 김한빈 때문에 고소공포증도 생겼고 예전에는 대인기피증까지 있었다. 롤러코스터에 타는 것이 싫은 이유는 가장 높은 지점에서 떨어질 때의 그 느낌이 싫어서이다. 작년 이맘때즈음에 옥상에서 뛰어내린 그 때의 느낌이 생각날까봐여서이다.

[모서리]
 
 고등학교 입학식에 참석하기 위해 깔끔하게 머리를 정리하고 교복을 입고 집에서 나섰다. 대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기사님의 차에 탔다. 학교는 코 앞이었는데 굳이 차를 타야하는 이유는 아버지때문이었다. 나를 굳이 강남의 유명한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시킨 것도 아버지 때문이었고 지금 이 모든 것은 아버지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간단했다. 상속자 엘리트코스라나 뭐라나. 어쨌든 나는 아버지와의 마찰을 원하지 않아서, 그리고 나도 현재로서는 딱히 목표가 없어서 그저 주위에서 하라는대로 따를 뿐이다.

 "아침 식사는 하셨어요?"

 기사님이 나에게 항상 묻는 질문은 총 두 가지가 있다. 식사는 했는지, 그리고 잠을 잘 잤는지. 아버지보다 열 살은 더 많아 보이는데 저렇게 부담스러운 존댓말로 물어오면 나는 항상 멋쩍게 웃으면서 대답해드린다.

 "네. 기사님도 드셨어요?"

 "허허."

 내 질문에는 웃으면서 대답을 안 할때가 대부분이다. 아마 본인은 상관없다는 뜻이지 않을까 싶다. 기사님과 나는 항상 예의 상하는 질문들 몇 마디 밖에 얘기하지 않는다. 대화가 끊어지고 창 밖을 봤더니 어느새 학교에 도착해 있었다. 차문을 열고 기사님께 인사드리고 교문을 통과했다.


 내가 입학한 학교의 학생들은 중상층 이상의 자녀들이 대부분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상류층이 절반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중상층이었다. 그런데 지금 내 눈 앞에서 걷고 있는 녀석은 달랐다. 다른 학생들은 모두 부를 뽐내기 위해 명품 책가방, 명품 구두, 명품 시계 등등 온갖 멋이라는 멋은 다 부렸는데 이 녀석은 백화점 세일 코너에서 집어와 몇 년째 쓰고 있는 듯한 때 탄 책가방에 형에게 물려 받은 것 같은 축구화를 신고 씩씩하게 걷고 있었다. '이 속에서도 나는 꿀리지 않는다'라는 메시지를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뒷통수를 바라보면서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앞에서 선배들이 나타나더니 그 중 한 명이 녀석의 머리통에 초코우유를 던졌다. 녀석은 걸음을 멈췄고 따라가고 있던 나도 멈춰 섰다.

 "맛있게 먹어라~"

 선배들은 키득키득 웃으면서 뒤돌아 학교로 걸어 갔다. 나는 녀석이 어떻게 반응할까 뒤에서 보고만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녀석이 초코우유를 줍더니 나를 향해 뒤돌았다.

 "마실래?"

 예상하지 못했던 대화가 시작되었고 나는 대답을 해야 했지만 뻥져서 초코우유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녀석의 명찰을 봤다.

 김한빈. 명찰은 푸른 색이었다. 2학년이라는 뜻이다. 나보다 한참은 작은 체구여서 나는 당연히 나랑 같은 학년인줄 알았는데 나보다 한 살 더 든 선배였다.

 "싫어?"

 내 답을 기다리다가 말고 혼잣말하듯이 싫으냐고 묻더니 우유곽에 붙어있던 빨대를 꽂고 마셨다. 쪽쪽 빨면서 나를 계속 쳐다봤다. 왜인지 우유를 마시는 모습이 병아리 같아서 웃음이 입술을 비집고 새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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