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xx년도 5월 16일
오늘은 중간고사 성적표가 나온 날이야.
이렇게 잘 나온 적은 처음이라서 너무너무 기뻐!
시험 볼 때 풀 줄 아는 문제가 있다는 게 진짜 기쁘더라구.
"정국아 이거봐봐!!!"
내가 전정국한테 쪼르르 달려가서 바로 내 성적표를 보여줬지.
"하..이거가지고 나한테 자랑하러 온거야?"
"아니...그냥...전보다 좋은 성적이라서..."
"ㅋㅋㅋ잘했어"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는데 왠지 심쿵했어.ㅎㅎㅎ
근데 어딘가 전정국의 표정이 안좋아보였어.
그리고...
"이번에 전교1등이 바뀌었어????"
"그렇다니까~ 맨날 민윤기가 1등이었는데 이번엔 그 전학생 여자애가 1등이래!!!"
"대박대박! 민윤기가 어떻게 1등을 못할 수가 있지?"
우리학교에 거의 초등학교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1등을 놓치지 않던 도련님이 있었는데...민윤기도련님이라고 계셔.
TH그룹의 후계자이신데, 정말 운동도 잘 하시는데 피부도 정말 하얗고, 심지어 공부도 정말 잘하시잖아 완전 엄친아야.
가끔 전정국한테 민윤기도련님 얘기를 하는데 걘 도련님들이랑 별로 안친한가봐 뭘 물어봐도 하나도 모르더라구.
심지어 계속 전교1등이라는 사실도 내가 말해줘서 알았어.
이런 세상물정 모르는 놈.
"이번에 전교1등이 바뀐 거 알고 있어?"
"...누군데"
"이번에 전학 온 아가씨가 1등이래! 진짜 신기하다 어떻게 1등을....아 참 너는 이번에 몇 등 했어?"
"비밀이야"
"아 뭐야~알려줘!!"
"너보다 잘 봤어."
"흥..."
"나 청소하러 가야돼. 간다"
"알겠어 조심히 가~"
"그래"
그렇게 전정국이랑 헤어졌어.
보통 우리들은 두 날에 굉장히 바쁜데, 하나는 시험이 끝난 후 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같이 성적표가 나온 날이야.
아가씨들이 성적에 굉장히 민감하셔서 등급이나 등수가 떨어지면 우울해지시고 심지어 울기도 하셔서 위로해드려야해가지고 여기저기 많이 왔다갔다하거든.
그래서 난 오늘 한 열다섯명정도의 아가씨들을 달래드리고 오느라고 굉장히 피곤하니까 여기까지만 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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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xx년 5월 17일.
이렇게 빨리 일기를 쓰는 이유는 정말 놀랄 일이 있었기 때문이야,
"....전정국!!!"
"가서 일해."
"너...얼굴이 왜 그래?"
전정국의 얼굴에 두세군데쯤 보랏빛으로 멍이 들어있었어.
손을 뻗으니까 내 손을 쳐내버렸어.
"너 왜 그래.."
"신경쓰지말고, 가서 일 빨리 끝내고 와. 공부해야지"
"지금 너 얼굴이 말이 아닌데 무슨 공부를."
"우리가 지금 때를 가릴 처지가 아니잖아. 이거 넘어져서 다친거니까 신경쓰고 일하러 가 빨리"
아무리 봐도 넘어져서 생긴 멍은 아닌데..내가 저번에 전학 온 아가씨께 뺨을 맞고 멍들어봐서 아는데 저건 필시 맞아서 생긴 멍이란 말이야.
근데 나를 피하는 것 같고, 나도 일이 밀렸기 때문에 더 생각할 겨를 없이 일하러 갔어.
그리고 일을 다 마친 후에 전정국의 마지막 청소코스인 체육관으로 갔지.
근데...
전정국이 긴 마대걸레로 체육관 바닥을 닦으면서 한 두발짝 걷다 주저앉아서 울고, 또 일어나서 몇걸음 더 걷다가 풀썩 쓰러지기도 하는 장면을 봤어.
전정국이 우는 건 한번도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고민했어.
여기서 전정국에게 달려가서 도와줘야 하나 아니면 여기서 보고있어야 하나...
그러다가...
쾅-
마대걸레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전정국이 쓰러진채로 다시 일어나지 않아서 깜짝 놀라가지고 체육관 안으로 들어갔어.
"정국아!!!"
몸을 흔들어도 으윽..하는 신음 뿐 정신을 잃어서 의식이 없는 것 같았어.
일단 체육관 창고 안에 매트가 있으니 그 안으로 낑낑대면서 전정국을 끌어왔어.
온 몸에 땀이 뻘뻘 나고 있더라구.
교복 와이셔츠가 땀에 젖어있어서 일단 벗기는데....
"....!"
온 몸에 멍이 들어있었어.
이건 정말 누구한테 맞은 것이 분명했어.
뼈가 부러진 곳이 없나 싶을 정도로 심한 상처들이 가득했어.
마음같아서는 병원, 아니 교내 의무실이라도 데려가고 싶었지만, 사환은 치료를 안해주기 때문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어.
일단 내가 가진 손수건을 화장실에 가서 물을 적신 후에 전정국 몸을 닦았어.
그냥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거든....
마이를 덮어준 다음에 나는 체육관 청소를 마치기 위해서 전정국 대신 마대걸레를 들어 청소를 다 마쳤어.
체육관이 되게 크고, 학생분들이 많이 사용하셔서 치울 게 많더라구.
다 끝내고 나니까 진짜 온 몸이 녹초가 되고 쑤셨어.
이렇게 힘든 걸 어떻게 매일 할 수 있는지 참..
청소가 끝나니까 한 한시간 쯤 지난 것 같아.
다시 창고로 가보니까 잠든 것 같더라구.
근데도 자꾸 눈에서 눈물을 흘리는게 마음이 아팠어.
밤이라 쌀쌀해서 나는 전정국이 감기라도 걸릴까봐 들키지 않게 우리 숙소에 가서 내 이불이랑 배게를 가지고 와서 전정국을 덮어주고,
다행히 전정국이 더이상 열도 안나고 땀도 안나서 와이셔츠를 빨아 밤바람 잘 부는 곳에 걸어놨어.
그리고 의도치 않게 밤새 간호를 했지.
아침이 됐는데 괜히 마주치면 사이가 어색해질 것 같아서 숙소로 도망갔어.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점심시간에 도서관으로 갔지.
"전정국~"
"너 언제 왔다갔냐"
"응? 뭐가?"
"어제 체육관. 다 알거든."
"그..그거 나 아닐걸?"
어설프게 둘러대다가 다 들켰어...
"어디가서 말하지마"
"??뭐를?"
"내 몸 본 거"
나를 무슨 변태로 아나 싶었다가 곧 온갖 멍투성이었던 전정국의 몸을 떠올리곤 아아 하면서 수긍했어.
"어제 못했던거 오늘 더 해줄테니까 일 다 끝나자마자 체육관으로 공부할 거 가지고 와."
"알겠어. 너도 조심해서 일해"
늘 그렇듯 평범한 말로 대화를 마무리하고 나왔어.
그리고 나머지는 그냥 평범한 하루였어.
근데 오늘 이렇게 일기를 쓰고 싶을 만큼 나는 마음 한쪽이 무거웠어.
전정국은 누구에게 맞은걸까...? 왜 맞은걸까...? 그 때 왜 그렇게 울고 있었을까...?
고민이 가시질 않는다...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