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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그냥’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냥 잠이 안 와서’라고 말할 수 있었다. 꽤 오래전부터 그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몸은 무겁고, 눈꺼풀도 무거운데, 잠이라는 녀석은 그에게 찾아오지 않는 모양인지, 그는 늘 쉬이 잠에 들 수 없었다. 자고 싶은 욕구와 반대로 찾아오지 않는 잠 때문에 그는 늘 스트레스였다. 항상 아침 해가 뜰 때쯤이 돼서야 겨우 잠에 들 수 있었는데, 그것도 아주 잠시였다. 어느 순간부터 그런 순간도 찾아오지 않게 되었다. 하루 종일 그는 늘 깨어 있는 상태였고, 그것이 못내 괴로웠다. 그래서 그는 어차피 잠을 잘 수 없다면, 잘 수 없는 그 시간에 하릴없이 눈만 감고 있는 것 말고 다른 일을 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모두가 잠든 시간에 동네를 산책하는 일이었다. 동네 개들이 왈왈 울어대는 소리 외엔 그가 사는 동네는 고요했다. 그는 처음엔 그 고요함을 즐겼다. 하지만 그 고요함은 외로움을 동반했다. 다들 자는 그 시간에, 홀로 산책하는 일은 남들과 다름을 의미했고, 남들과 다름은 어른에겐 외롭고 무서운 일이었다. 아무도 그를 지켜보고 있지 않고, 잠든 시간이었지만 혹여나 누군가 늦은 밤 산책하는 자신을 볼까 무서웠다. 불면증은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었는데, 그것은 그를 겁쟁이로 만들었다.

 

 

늦은 밤 산책에서 그는 책을 읽기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집에서 읽다가, 또 다시 그는 밖으로 나돌기 시작했다. 24시간동안 문을 여는 카페에 들어가 책을 읽었는데, 그 곳에는 다행히 그 말고도 다른 누군가가 있었다. 다르지 않음을 느낀 그는 묘한 안정감을 느껴, 하루가 멀다 하고 그 카페를 찾아갔다.

 

 

그러나 그는 잠이 오지 않을 뿐이지, 피곤하고 졸린 것은 마찬가지였는데, 그래서 그는 자신이 밖으로 나가는 것도 스스로의 의지가 아닐 거란 상상도 해보았다. 꼭 그것이 몽유병 증상 같이 느껴졌다. 몽유병이 아님을 알았지만, 그는 바로 카페에 가서 책을 읽는 일을 그만두었다. 그냥 그 일이 점차 질려가던 차였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는 글을 쓰고 싶단 생각을 했었다. 예전부터 그는 이야기꾼의 기질을 타고난 자였다. 그것은 그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도 그에게 그리 말했었다. 그는 자신의 기질을 사용하기로 했다. 정말 자신이 타고난 이야기꾼인지를 확인해보고 싶기도 했다. 잘만 한다면 멋진 소설가가 되지 않을까? 하는 과한 기대도 품어봤다.

 

 

가벼이 시작한 것과 다르게 그는 꽤 열중했다. 그 이유는 만일 자신이 이야기꾼의 기질을 타고난 것이 아니라면 그저 한낱 거짓말쟁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셈이기 때문이었다. 그 누구도 자신이 한낱 거짓말쟁이임을 확인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그에게도 해당한 말이었다. 그는 밤에만 쓰던 이야기를 어느새 낮에도 쓰고 있었다. 하루 종일 쓰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쓰지 않는 날이 있을 때도 있었다. 그렇게 글만 쓴 지 몇 해가 지났을 때, 그는 과로사로 쓰러지고야 말았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결말이었다.

 

 

혼자 사는 그는 친구도 없는 외로운 자였는데, 그를 발견한 이는 바로 데면데면한 사이였던 이웃주민이 쓰러진 그를 발견했다. 그것은 며칠 전부터 옆집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 때문이었는데, 몇 날 며칠을 그의 집 문을 두드려 봐도 대답이 없었다. 이웃주민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119에 신고를 했고, 119 구급대원과 함께 이웃주민은 집으로 들어갔다. 집 안 가득 썩는 냄새에 모두들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 냄새를 따라 방에 들어가 보니, 컴퓨터 의자 밑에 쓰러진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미 부패가 많이 진행된 상태라 그가 맞는지 조차 확인하기 힘들었지만, 그의 집에 있는 자이니 그임이 틀림없었다. 그 당시 컴퓨터 화면이 시간이 지나면서 까맣게 변해 있었지만, 마우스를 조금만 움직였더라면 이웃주민과 119 구급대원은 그가 몇 년 동안 매진해 온 이야기를 확인하는 시초의 발견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확인하지 못했고, 그의 이야기도 세상에 공개되지 못했다. 세상에 공개되어 놀라움을 일으킬 대단한 이야기인지, 아니면 이도저도 아닌 시시한 이야기인지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그저 프린트 된 그의 이야기 몇 장만이 세상에 떠돌 뿐이었는데, 그 떠도는 이야기마저 알고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다만, 그 이야기를 들은 몇 안 되는 사람들은 그 다음이야기가 궁금해, 그 이야기의 저자를 찾아가 다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애원하고 싶을 정도로 흥미진진한 얘기라고 했다.

 

 

 

세상에 정처 없이 떠돌고 있는 그 이야기를, 훌륭한 이야기꾼이 될 수 있었던 자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수현/현우] No_Title

w.푸우(pooh)

 

 

 

 

 

 

 

이 이야기는 저 멀리, 아주 멀리 있는 작은 지역의 아주 작은 동네에까지 찾아가야만 한다. 아주 작은 동네는 농촌이었다. 광활하지 않지만, 적당히 큰 밭이 빼곡한, 그런 농촌이었다. 그런 농촌에는 늘 그렇듯 노인들이 대부분이었는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은 노인들 대부분이 남성이라는 점이었다. 그 마을에 액운이 낀 모양인지, 그 마을로 시집을 온 여인들은 모두 남편보다 먼저 세상과 안녕을 고하곤 했다. 아직 목숨이 이승에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늙은 여인들은 방 안에 누워 오늘, 내일 하는 운명들이었다. 또 한 가지 요상한 점은 그런 노인들 사이에서 소년 하나가 있었다. 그 소년의 이름은 현우였는데, 성도 없고 출신도 불분명한 자였다. 어찌 보면 그 노인들의 손자쯤 돼보였는데, 그것도 아닌 것이 현우는 주인 없는 허름한 빈 집 마구간에서 생활했다. 그 집은 집이라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제 구실을 하지 못하는 집이었다. 오히려 현우가 먹고, 자고하는 마구간이 집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나을 정도였다.

 

 

현우가 사는 빈집은 아주 오래 전 그 일가가 돌연 사고사로 세상을 하직한 뒤로 그 누구도 그 집을 찾아오지도, 돌보지도 않았다. 그저 주인 없는 빈 집이 되었는데, 마을 사람들 누구도 그 집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현우가 그 집에 자리를 만들게 된 것이, 현우의 집이 되어버렸다.

 

 

 

 

현우가 처음 마을에 들어왔을 때 누가 봐도 거지의 행색을 하고 있었다. 허름한 옷차림에 짝 잃은 신발을 신은 현우는 반 맨발로도 잘만 다녔다. 맨 처음, 현우가 마을에 들어왔을 때, 마을 사람들 눈엔 그저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면서 구걸이나 하는 그런 거지같아 보였다. 행색이 그러했으니, 처음엔 그렇게들 생각하고 말았다. 또한 그것은 사실이기도 했다.

 

 

다른 농촌 마을과 다르게 이 동네 사람들은 서로에게 데면데면했는데, 금방 나갈 거지 소년에게 관심 한 톨이라도 주는 이가 없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현우가 마을에 온 지 이튿날, 세 번째로 들린 집의 노인이 그 현우의 진가를 알아보게 되었다. 그 누구도 현우가 제 아무리 문을 두드려 봐도, 대답도 해주지 않고,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이 태반이었는데, 이튿날 들린 세 번째 집 주인이 우연히도 나가서 일을 보고 들어오는 길에 집 대문을 두드리는 현우와 마주하게 된 것이었다. 그 노인은 몸 전체는 말랐는데, 배만 불룩하니 나온 배불뚝이 노인이었다. 처음엔 배불뚝이 노인도 현우를 무시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 때 노인의 코끝을 스치는 낯선 향에 노인은 현우를 내쫓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늘 거름 냄새만 진동하는, 이 마을에 달콤하면서도 시큼한 냄새는 매우 낯선 것이었다. 배불뚝이 노인은 그 냄새의 근원지를 찾고자 했다. 근처에서 나는 그 냄새는 묘하게 사내의 무언가를 자극하는 냄새였다. 나이를 먹어, 주름이 가득한 노인이지만 사내는 사내였다. 영문도 모른 채 현우는 코를 벌렁거리며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노인을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노인은 계속 킁킁 거리며 냄새를 따라 고개를 움직였고, 노인의 그러한 행동은 현우의 목덜미 근처에 도달해서야 멈추었다. 퀴퀴한 냄새가 날 것 같은 더러운 목덜미에서는 요상하게도 방금 전 배불뚝이 노인의 마음 속 깊이 숨어있던 무언가를 자극하는 냄새가 나고 있었다. 오히려 방금 전 맡았던 냄새보다 더 진하게 나고 있었다. 현우는 왠지 모를 불쾌감에 목을 반대편으로 내뺐다. 그러자 잠시 움직였을 뿐인데, 약간의 바람을 탄 냄새가 배불뚝이 노인의 코끝을 다시 한 번 옅게 간질였다. 배불뚝이 노인은 동그란 눈을 깜박이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현우를 한참동안이나 쳐다봤다. 노인은 아무래도 마을에 요상한 물건이 들어 온 것이 틀림없었다고 생각했다.

 

 

 

 

“…배고픈데 밥 좀 주시겠어요?”

 

 

 

 

현우는 이미 혀끝에 익숙해진 그 말들을 입 밖으로 내보내며 손에 들고 있던 작은 표주박 바가지를 배불뚝이 노인의 앞으로 내밀었다. 노인은 그 모습을 잠자코 보고 있다, 이내 현우의 바가지를 받았다. 요상한 물건인 것은 확실했으나, 나쁠 건 없었다. 이미 현우의 냄새는 다 늙은 노인의 더러운 욕망을 건들인 셈이었다.

 

 

 

 

 

 

“들어오렴. 집에 들어가서 씻고, 나와 함께 밥을 먹지 않으련?”

 

 

 

 

 

배불뚝이 노인은 익숙하지 않은 친절한 말들을 내뱉었다. 그것이 꼭 기계가 말하는 음성과 흡사했지만, 현우는 밥을 준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노인의 친절이 거짓임을 눈치 채지 못했다. 오늘 하루는 배를 채울 수 있다는 생각에 현우는 흥이 났다. 현우는 해맑게 웃으며 노인의 손을 잡고, 노인을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배불뚝이 노인을 따라 집안으로 들어온 현우는 무엇이 그리 신기한지 고개를 쉴 새 없이 두리번거렸다. 그에 노인은 도대체 무어가 신기해서 그리 쳐다보니 물으니, 현우는 “저는 집이 없어서, 집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어요.”하고 대답했다. 노인은 현우의 말에 아주 오랜만에 ‘동정심’이라는 감정이 노인의 가슴 속에서 요동쳤지만, 노인은 애써 그 감정을 무시했다. 노인은 그리 너그럽고 인정 많은 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노인이었기에, 노인은 나약한 감정들을 모른 체 하는 것에 능한 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겐 ‘동정심’이라는 감정을 모른 척한다고 일말의 죄책감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뿐이었다.

 

 

 

“기다리렴. 내가 먹을 걸 가져오마.”

 

 

 

노인은 현우를 마루에 앉으라며 마루를 두어 번 손으로 두드렸다. 그에 현우는 조심히 노인이 두드린 그 자리에 엉덩이를 붙여 앉았다. 여전히 현우의 고개와 눈은 마당을 살피느라 정신 없어보였다.

 

노인은 부엌에 들어가 낮에 삶은 감자 몇 개를 소쿠리에 담았다. 습관처럼 찬장에서 소금을 꺼내려던 노인은 이내 그 손을 거두었다. 어차피 소년은 이 감자 한 알도 제대로 먹을 수 없을 것이었다. 노인은 그 생각을 마치자마자 소쿠리에 감자 두 알을 다시 밖으로 꺼낸 뒤, 감자 3알만 들어 있는 소쿠리를 들고 부엌에서 나왔다.

 

현우는 노인의 마당을 다 구경한 모양인지 마루에 앉아 발장구를 치며 노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노인은 현우의 옆에 앉았다. 소년은 노인이 들고 온 감자에 눈을 반짝이며 침을 꼴깍 삼켰다. 현우가 개울가의 물로만 배를 채운 것이 벌써 닷새가 훌쩍 넘었기 때문이었다.

 

 

 

“먹으렴. 이것 밖에 없구나.”

 

 

 

고슬고슬한 쌀밥과 아침에 미리 해 둔 소고기 무국도 있었지만 노인은 부러 거짓말을 쳤다. 어차피 저 현우는 이 집에 무엇이 있든, 자신에게 건네주는 것이 먹을 수만 있는 것이라면 개의치 않을 것이었다.

 

현우는 노인이 건네준 감자 한 알을 껍데기도 제대로 까지 않은 상태로 먹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마치 걸신이라도 들린 사람마냥 마구잡이로 먹는 모양새로, 흡사 짐승 같기도 했다.

현우는 이번엔 먹느라 정신이 없어보였다. 노인은 그 모습을 잠자코 보고 있다가, 현우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먹느라 정신이 없는 것이 맞는지, 현우의 제 어깨에 노인의 손이 올라와 있는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노인은 천천히 현우의 어깨에서 등으로, 등에서 허리로 손을 옮겨갔다. 마침내 현우의 옷 안으로 노인의 쭈글쭈글한 손이 들어서자, 현우는 먹는 것을 멈추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노인과 얼굴을 마주했다. 크진 않지만 맑은 눈이 두어 번 깜박이더니 이내 다시 감자를 먹기 시작했다. 현우는 노인이 제게 무엇을 할지 잘 알고 있었다. 길거리를 떠돌다보면 이런 일이 부지기수였다. 이상하게 현우에겐 남자들이 잘 붙었다. 보통 남자에게 남자가 붙는 일은 동냥하거나 앵벌이해서 얻은 음식이나, 벌은 돈들을 뺏는 목적으로 접근하는데, 현우에겐 그들은 모두 현우의 몸을 탐하려 접근했었다. 처음엔 너무나 아프고, 알 수 없는 두려움에 무작정 반항했지만, 그것이 수차례 반복되다보니 이젠 너무 익숙한 것이 되었다.

 

 

 

“하나 더 먹어도 되요?”

 

 

 

이젠 현우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노인은 현우의 말에 그러라며 대답을 해주었다. 여전히 노인의 손은 현우의 옷 안에서 뱀처럼 기어가고 있었고, 노인의 얇은 입술은 현우의 살 위에서 쪽쪽, 거렸다. 게걸스럽게 감자를 먹고 있는 현우처럼, 노인도 현우의 살을 게걸스럽게 핥았다. 가끔은 현우의 피부가 먹음직스러운 사과를 먹는 것 마냥 아프게 깨물기도 했다. 씻지 못한 지 꽤 오래 되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현우의 피부에서는 달콤 시큼한 냄새가 진하게 나고 있었다. 그 냄새가 정말 잘 익은 사과 같았다. 노인은 현우의 가슴에 달린 작은 유두를 아프지 않게 꼬집었다. 그러자 현우는 노인의 손길에, 간헐적으로 얕게 신음소리를 간간히 터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우의 손에선 감자가 떨어질 줄 몰랐다.

 

 

 

“얘야, 옷 좀 벗어보렴.”

“…….”

“이 일이 끝난다면, 너에게 밥을 주마.”

“밥이요?”

“그래. 쌀 밥. 고슬고슬하게 아주 잘되었단다.”

 

 

 

현우는 노인의 말에 천천히 자신의 옷가지들을 하나 둘씩 벗었다. 마침내 현우가 입고 있던 팬티마저 내리자 노인은 좀처럼 보이기 힘든 재빠른 움직임으로 현우의 몸 위로 올라탔다. 현우는 노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라 손에 쥐고 있는 감자를 떨어트렸다. 마루를 벗어난 감자는 마당 위에서 흙더미와 함께 끝없이 굴러갔다. 그것을 망연자실하게 쳐다보고 있던 현우는, 돌연 고개를 팽-하니 돌려 노인을 노려봤다. 노인은 현우의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징그러운 숨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현우는 그저 감자를 놓치게 한 노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화가 났다. 그래서 노인의 어깨를 밀어냈다. 하지만 며칠 밥을 먹지 못한 현우가 노인을 밀치기엔 턱없이 부족한 힘이었다. 노인을 밀치면서도 현우는 자신도 모르게 계속해서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현우는 그것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노인은 소년의 가랑이 사이에 자리 잡은 현우의 양물을 움켜쥐었다. 으응-. 현우는 노인의 어깨를 밀던 손에서 힘을 빼더니 이내 제법 계집애 같은 신음성을 짧게 터트렸다.

 

현우는 앞으로 일어날 일을 너무나도 잘 알았고, 그냥 빨리 끝냈으면 했다. 현우는 포기가 빠른 편이었다. 반복되는 패턴은 현우를 지치게 하고, 포기하게 만들었다. 현우는 익숙하다는 듯이 노인에게 다리를 벌렸고, 노인은 그 사이를 파고들었다. 한 가지 다행인 일은 노인은 많이 노쇠해졌고, 아직 팔팔한 성욕에 비해 노인의 정력은 팔팔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현우가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노인은 현우의 안에 파정을 하고 그 자리에서 바닥에 누워 가파른 숨을 내쉬더니 이내 까무룩 잠이 들고야 말았다. 현우는 단 한 번도 이런 경우가 없어 당황하다, 이내 엉금엉금 소쿠리 쪽으로 기어갔다. 이제 한 알 밖에 남지 않는 감자를 허겁지겁 먹어치웠다. 조금 전 먹은 감자로 대충 배가 채워졌으나, 짧은 시간이어도 노인과의 정사는 감자로 채운 배를 금방 꺼지게 했다.

 

현우에겐 낯선 이와의 잠자리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제 아무리 치욕스럽더라도, 배고픔 앞에선 아무 것도 아니었다. 굶주림이 계속되면 자존심도, 수치심도 모두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었다. 그냥 놓으면 되었다. 그렇게 해서 허기짐이 포만감으로 변하게 된다면 그 어떤 것이라도 못 놓으랴. 그것은 이 세상의 법칙이었고, 현우는 이미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 지 오래였다.

 

 

 

 

 

 

* * *

 

 

 

 

 

 

 

현우에 대한 소문은 마을 내에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퍼져나갔다. 배불뚝이 노인의 집에서 빠져나와 마을의 빈 집에서 몸을 뉘어 자고 있을 무렵, 또 다른 노인이 배불뚝이 노인의 말을 듣고 현우를 찾아왔더랬다. 자고 있는 현우를 깨우고, 현우에게 고구마나 감자 같은 걸 한 아름 안겨준 뒤 배불뚝이 노인처럼 현우와 잠자리를 가졌다. 현우는 받은 게 있으니 자신도 무언가를 줘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익숙하게 두 번째로 찾아온 노인에게 다리를 벌려주었다. 그렇게 한 명 두 명씩 찾아오던 것이, 그 마을의 사내란 사내는 현우의 집―정확히 말하면 빈 집의 마구간―으로 찾아왔다. 현우는 이곳에서의 생활이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불만족스럽지도 않았다. 그냥 그랬다. 굶주림 없이 먹을 것을 챙겨주기 때문에 현우는 이 마을을 벗어나지 않았다. 현우는 먹을 것을 주니 벗어날 이유도 없었고, 벗어나고픈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것은 마을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마을사람들도 현우가 영원히 이 마을에서 지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우는 그 마을에서 지낸지 3년 만에 마을을 벗어나게 되었다. 어찌 보면 야반도주 같은 것이었다. 그건 현우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절대로 이 마을을 벗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현우가 이 마을 벗어나게 된 이유는 한 달에 한 번 마을을 찾아오는 만물장수 때문이었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얻은 진귀한 물건들을 실은 트럭이 마을에 도착을 하면 마을사람들 모두가 버선발로 그 트럭을 환영해준다. 이 작고, 구석진 마을에서 유일한 즐거움이었고, 새로움이었다. 현우는 이 마을에서 지내는 3년 동안 그 만물장수를 보지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멀리서 지켜만 볼 뿐, 가까이서 본 적은 없었다. 그 이유는 그냥 궁금하지 않았다. 마을의 노인들이 만물장수에게 사온 물건 중 몇 개를 현우에게 쥐어주곤 했는데, 현우는 그다지 신기해하지도 않았고, 즐거워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먹을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현우가 한 번은 한 노인에게 “그 만물장수는 모두 이런 것들만 가져오나요?” 하고 물으니 그 노인은 “그럼. 아주 진귀하고, 신기한 물건들이지.” 하고 대답했더랬다. 그 이후로 현우는 만물장수가 와도 멀리서 지켜보지도 않았다. 가끔 무료해질 때, 만물장수가 찾아오면 그냥 멀리서 구경만 할 뿐이었다. 그런 현우가 만물장수의 트럭을 타고 이 마을을 벗어난 것은 모순이었다.

 

 

현우가 만물장수를 따라가게 된 계기는 마을의 한 노인 탓이었다. 그 노인은 만물장수의 트럭에서 난생 처음 본 음식을 보게 되었고, 그것을 사 현우에게 건네주었다. 생김새는 떡과 흡사한데, 시커먼 것이 꼭 탄 떡 같기도 했다. 그러나 따뜻한 떡과 달리 촉촉하고, 차가우면서도 부드러운 그 식감이 신기했다. 현우도 난생처음 본 음식에 놀라우면서도 신기했다. 그 음식의 맛이 궁금했으나, 어떤 맛일지 두렵기도 했다. 현우는 조심스레 그 음식에 입을 대었고, 곧 현우는 그 음식의 맛에 감탄하였다. 노인은 맛있게 먹는 현우를 보자 어깨가 으쓱댔다. 만물장수에게 산 그 무엇도 현우를 즐겁게 하지 못하였는데, 자신이 처음으로 만물장수에게 산 것으로 현우를 즐겁게 했다는 사실에 괜히 어깨가 으쓱거렸다. 내일 바로 마을 사람들에게 자랑할 생각으로 들떠 있던 노인은 쉴 새 없이 그 음식에 대해 말했다.

 

 

 

“그 음식이 케이크라는 것이다. 아주 달달하고, 촉촉한 것이 미군들이 먹는 것이란다. 맛도 그것 말고도 아주 다양한데, 하나 같이 입 안에서 살살 녹고, 아주 달달 하단다.”

“아저씨는 그것들 다 먹어봤어요?”

“그럼. 다 먹어봤지.”

 

 

 

노인은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현우는 그것을 믿는 듯 보였다.

 

 

 

 

“어디서 구했나요?”

“만물장수에게서 구했지.”

 

 

 

 

현우는 노인의 말에 다음번에 만물장수가 오면 한 번 구경하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준 케이크 때문에 현우가 마을을 떠날 것이란 생각은 하지 못한 노인은 그저 현우를 즐겁게 한 것이 저라는 사실에 기뻐할 뿐이었다.

 

 

케이크의 맛을 느낀 현우는 계속해서 케이크가 먹고 싶었다. 그러나 만물장수는 한 달에 한 번 찾아오기 때문에 현우는 매일같이 만물장수만을 기다렸다. 그 전엔 만물장수가 오는 기간이 짧게만 느껴졌는데, 이렇게 기다리니 하루가 백 년 같이 느껴졌다. 현우는 마구간 벽에다가 매일 같이 하루를 세는 작대기를 그리며 그렇게 만물장수를 기다렸다.

 

마침내 현우가 벽에 그린 작대기가 30개 하고도 3개가 더 그려진 날 만물장수의 트럭이 마을 입구 어귀에서 보이기 시작했다. 한 달 조금 넘어서 도착한 만물장수의 도착소식은 작은 마을에 순식간에 퍼졌다. 현우도 그 날은 다른 날과 다르게 버선발로 나가는 다른 노인들처럼,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만물장수에게 찾아갔다.

 

마을 사람들이 복작거리며 모인 그 틈에서 현우도 기웃기웃 만물장수의 트럭을 살펴보았다. 정말 진귀한 물건들이 가득한 트럭이었는데, 현우는 그 어떤 물건에도 시선 한 번 주지 않았다. 현우는 한 달 전에 먹은 그 케이크만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마을사람들 때문에 트럭에 있는 물건들이 제대로 보일 리가 만무했다. 그냥 마을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가길 기다리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한 현우는 트럭 근처에 주저앉아 마을사람들이 빠져나가길 기다렸다.

 

 

마을사람들은 모두들 한 손에 하나 씩 물건을 쥐고 돌아갔다. 어떤 노인은 아무것도 사지 않고 돌아가는 이도 있었다. 그렇게 한 명씩 제 집으로 돌아가니, 이젠 어느 정도 트럭 근처가 한산해졌다. 현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제대로 털지 않고 트럭으로 달려갔다. 만물장수는 한산해진 터라 이젠 트럭을 끌고 마을을 벗어나려던 참이었다.

 

 

 

 

 

 

 

“잠깐만요!”

 

 

 

 

현우는 트럭을 정리하던 만물장수에게 소리를 쳤다. 그 소리에 만물장수는 고개를 배꼼 내밀더니 이내 “어서 오십쇼!” 하고 대답해줬다.

 

현우와 만물장수 사이의 거리가 제법 가까워졌을 때, 만물장수는 이 마을에서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 마을에서 소년을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것이 신기해 현우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만물장수를 현우는 무시하고 트럭으로 몸을 돌렸다. 만물장수를 지나칠 때, 현우의 움직임 때문에 일어난 약한 바람은 현우의 달콤하면서도 시큼한 냄새를 만물장수의 코끝까지 실었다. 만물장수는 그 묘한 냄새에 현우를 돌아봤지만, 현우는 케이크를 찾느라 정신없어 보였다.

 

 

 

“아저씨, 케이크 없어요?”

 

 

 

현우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케이크에 결국 만물장수를 불렀다. 만물장수는 멍하니 현우를 바라보다, 현우의 말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현우의 옆에 섰다. 가까이 서니, 그 향이 더욱 짙어져 만물장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케이크, 말이냐?”

 

 

 

만물장수는 겨우 정신을 부여잡으며, 띄엄띄엄 말했다. 현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만물장수는 음식은 저에게 말해야만 보여주는 것이라 트럭에선 보이지 않는다고 대답하려다 이내 “이런, 오늘은 없는데.” 하고 퍽 안타까운 얼굴로 대답했다. 그러자 현우는 제법 실망한 눈을 하며 어깨를 추욱 늘어트렸다. 그 모습이 마치 비 맞은 강아지 같아 제법 귀여워 보였다.

 

 

 

 

 

“그건 우리 집에 있지.”

 

 

 

케이크는 사실 트럭 구석에 있는 상자 안에 있지만, 부러 거짓말을 했다. 그것은 만물장수도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간 거짓말이어서 만물장수 스스로도 놀랬지만, 그 거짓말은 본능적인 것이었다.

 

 

현우는 만물장수의 말에 한 번 더 실망하고 말았다. 만물장수의 집에 있다는 것은 다음 달 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말과 같았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에 가면 내가 케이크를 공짜로 주마.”

 

 

 

만물장수는 실망한 현우에게 그리 말했다. 그러자 현우는 눈을 커다랗게 뜨며 정말요? 하고 되묻자, 만물장수는 그럼. 하고 대답했다. 만물장수는 현우를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려는 자신의 행동이 좀처럼 이해되지 않았지만, 현우의 체향은 만물장수의 본능을 건드리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저 만물장수의 본능이 이끄는 대로 행동한 것일 뿐이었다.

 

 

 

그리고 그 날 현우는 만물장수를 따라 트럭에 올라탔고, 그렇게 현우는 아무런 말도 없이 그 말을 떠났다. 떠나는 현우를 유일하게 목격한 노인은 애석하게도 현우에게 케이크를 준 그 노인이었는데 바닥에 주저앉아 어린아이처럼 펑펑 울었다고 한다. 이것은 그저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떠도는 얘기이지만, 마을의 일부 노인은 현우에게 몸 말고 마음을 원하는 노인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그것은 그저 사람들의 입소문이지만.

 

 

 

 

 

 

* * *

 

 

 

 

 

 

 

현우는 만물장수의 트럭을 타고 산을 넘고, 넘어 한참을 달린 뒤에야 만물장수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만물장수는 꽤나 큰 동네에서 살았지만, 그 동네에서 가장 허름한 집에서 살았다. 현우는 만물장수를 따라 트럭에서 내려, 칠이 다 벗겨진 초록색 대문이 있는 집으로 들어갔다. 마당은 작았지만, 그래도 제법 적당한 크기여서 현우는 마음에 들었다. 현우에겐 처음 본 집이 배불뚝이 노인의 마당 있는 집이어서 집은 자고로 마당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덥지? 물이라도 마실래?”

 

 

 

부엌에 밖에 있어 부엌으로 들어간 만물장수의 말이 마당까지 또렷하게 들려왔다. 현우는 네, 하고 대답한 뒤 마루에 걸터앉아 만물장수를 기다렸다. 언제쯤 케이크를 먹게 해줄까? 현우의 머릿속엔 케이크 생각뿐이었다.

 

만물장수는 부엌에서 물을 컵에 따른 뒤 현우에게 전해줬다. 현우는 케이크를 먹고 싶었지만, 마침 목이 말랐던 차였기 때문에 별 말 없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그 때 초록색 대문이 괴상한 울음소리를 내며 열렸다. 현우는 물 마시는 것을 그만두고, 열린 대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 집엔 만물장수만 살 줄 알았던 현우의 예상과 달리, 제 또래로 보이는 남자가 서있었다. 목까지 채운 하얀 셔츠와 검은색 바지가 그가 꽤 번듯한 직장을 다니는 사내임을 현우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또한 짙은 눈썹과 동그랗고 큰 눈과 다르게 굳게 닫힌 입술은 그가 꽤 고집스러운 성정을 가진 사내임을 보여주었다. 현우는 사내의 외향을 보고 여태 본 사내들 중에서 가장 멋있다고 생각했다.

 

현우는 그 남자의 등장에 퍽 당황했더랬다. 그 이유는 현우가 있었던 그 마을에서는 제 또래의 남자와 같이 ‘가족’으로 지내는 집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마을이 현우에겐 집의 생김새를 처음으로 알려주었듯이, 가족이라는 것도 마을사람들처럼 지냈을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그냥 늙은 노부부 단 둘이서만 사는 것이 ‘가족’이라고 생각한 현우에겐 제 또래의 남자의 등장은 퍽 낯선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남자도 현우만큼이나 낯선 이의 등장에 당황한 눈치였다.

 

 

 

“내 아들이야. 이름은 김수현”

 

 

 

 

만물장수는 현우에게 자신의 아들이라며 집에 들어 온 남자, 수현을 소개해주었다.

 

 

 

 

“여기는, 음…….”

 

 

 

 

만물장수는 현우를 소개해주려다, 아직 현우에게 이름을 묻지 않은 것이 생각났다. 그제야 만물장수는 현우에게 이름을 물었는데, 현우는 아주 잠깐 동안 그 물음에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름 모를 누군가가 저에게 지어준 이름은 있었지만, 마을사람들 중 그 누구도 현우에게 이름을 물어본 적도 없었거니와, 이름이 생긴 이래로 그 누구도 현우에게 이름을 묻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현우요.”

 

 

현우는 제 이름이지만 퍽 어색한 그 이름을 말했다. 마치 낯선 이의 이름을 말하는 것 같아 현우는 기분이 묘했다.

 

 

 

“이 얜, 내가 돌아다니는 마을의 아인데 내가 가여워 거두기로 했어.”

 

 

 

 

만물장수의 말에 수현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부족하진 않지만, 넉넉하지도 않은 살림에 입 하나 는 것은 그리 달가운 것이 아니었다. 만물장수의 대답이 거짓이리라곤 수현은 생각지도 못했겠지만.

 

 

 

 

* * *

 

 

 

 

수현은 바빠 보였다. 신문사에서 일하는 수현은 늘 바빴는데, 현우는 신문사라고 들어도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그냥 바쁜 일을 한다고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수현이 집에 들어오는 일이 많지 않았고, 집에 들어와도 늘 해가 지고, 달이 뜨는 컴컴한 밤에 들어오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때문에 만물장수는 현우의 아래를 탐하는 것에 스스럼없었다. 하나뿐인 아들이 집에 잘 오지 않으니, 만물장수는 거침없었다.

 

만물장수와 잠자리를 가질 때에도 현우는 이상하게 수현이 생각이 났다. 너무 오랜만에 제 또래를 봐서 일까? 현우는 알 수 없었지만, 초록색 대문을 열고 들어선 수현의 얼굴이 잊히지 않았다. 만물장수의 아래에서 흔들리면서 현우는 불현듯 그냥 수현이 보고 싶다고만 생각했다.

 

 

그런 현우를 아는지, 모르는지 수현은 현우를 무시했다. 현우가 수현과 대화라도 나누려고 말을 걸면 수현은 그 말에 단 한 번도 대답해 본 적이 없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현우가 가까이 다가올라치면 금방 눈치를 채고 그 자리를 잽싸게 피했다. 세상 이치를 알면서도, 배운 게 없어 무지한 현우라도 수현이 저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수현은 제 아비인 만물장수에게 현우를 왜 데려왔냐며 따져봤지만, 만물장수는 수현의 말을 모두 무시했다. 수현은 좀처럼 보기 힘든 제 아비의 고집에 입을 다물었다. 제 아비가 무슨 이유로 현우를 데려왔는지는 몰라도, 수현은 현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단순히 입 하나 더 는 것 때문은 아니었다. 수현이 좀 더 벌고, 제 아비가 좀 더 많은 마을을 돌면 되는 것이었다. 만물장수의 수입은 의외로 쏠쏠했고, 신문사에서 밤낮 구분 없이 일을 한 탓에 수현의 월급도 제법 괜찮은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우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바쁜 만물장수의 일 때문에 수현의 어린 시절은 늘 혼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늘 아비의 정이 그리운 아들이었는데, 수현의 눈엔 만물장수가 현우를 챙겨주는 것이 고깝게만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저 단순한 아들의 투기였다. 그래서 예전보다 더 많은 일을 했고, 더 집에 들어가지 않으려 했다.

 

 

 

 

 

 

* * *

 

 

 

 

 

 

하앗! 아, 아, 앗!

 

 

 

 

수현은 방 안에서 나는 소리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아버지가 동네 사창가에서 여자라도 데려왔나 싶었지만, 여자의 교성치고는 목소리가 제법 굵었다. 남자치곤 굵은 편은 아니었지만, 누가 들어도 사내의 목소리였다. 수현은 제 귀를 의심해 봐도, 그 교성소리는 분명 사내의 목소리였다. 수현은 그 자리에 발이 묶인 것 마냥 움직일 수 없었다. 그냥 잠자코 원하지도 않은 그 신음소리를 듣고 있는데, 아무리 들어도 낯이 익은 목소리라 수현은 더 당황했다. 제 아무리 가까이 하지 않는 자였다지만, 목소리는 종종 원하지 않아도 들어왔기 때문에 분명했다. 그것은 얼마 전 제 아비가 데려 온 현우였다.

 

수현은 현우를 떠올리자마자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너무 놀라 소리라도 튀어나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수현은 입을 막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겨우겨우 움직이며 집에서 뛰쳐나왔다. 수현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몰랐다.

 

 

 

 

“더러운 화냥년 같은 놈.”

 

 

 

 

수현은 골목 어귀에 달음박질을 멈춘 뒤, 한참 있다 이를 으드득 갈았다. 짓이겨 내뱉듯이 말한 그 말은 수현의 화가 얼마나 났는지 알 수 있었다. 분명 현우라는 놈이 제 아비를 꼬여낸 거라고, 수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 * *

 

 

 

 

 

 

만물장수는 오랜만에 짐을 챙겼다. 현우의 냄새에 취해 한 동안 트럭을 끌고 돌아다니지 않은 탓이었다. 한 몇 개월은 돌아오지 못한다는 생각에 만물장수는 괜히 아쉬워 입맛만 다셨다. 방 한 구석에 앉아 짐을 챙기는 만물장수를 잠자코 지켜보던 현우는 ‘어디가세요?’ 하고 물었다.

 

 

 

 

“이제 다시 물건들을 팔고, 얻으러 다녀야지.”

“……그럼 저도 다시 그 마을로 데려가나요?”

 

 

 

 

 

 

현우는 만물장수가 떠나는 그 날 자신도 본래 있던 마을로 데려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노인들보다 더 정정한 만물장수와의 잠자리는 현우를 하루 종일 힘들게 했지만, 그 마을로 돌아가는 것은 싫었다. 돌아가도 그만, 안 돌아가도 그만일 것이라고 생각 되었는데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현우 스스로도 잘 몰랐다.

 

 

 

 

“아니야. 넌 여기에 있을 거야.”

 

 

 

 

만물장수는 마음 같아선 현우와 함께 가고 싶었지만, 현우와 함께 동행을 한다면 분명 일은 미루고, 현우와 여관방에서 뒹굴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케이크 많이 사오세요.”

 

 

 

현우는 떠나는 만물장수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만물장수는 흔쾌히 그러마. 하고 대답한 뒤 먼지바람을 잔뜩 일으키며 트럭을 끌고 동네를 벗어났다. 파란색 트럭이 사라지자 집 안으로 들어갔다.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집이 꼭 그 전 말에서 지내던 마구간 같은 느낌이었다. 마구간보다 넓고 깨끗했지만, 아무도 남아 있지 않은 그 고요함은 현우를 외롭게 만들었다. 마을에서 지낸 이후로 단 한 번도 사람과 떨어져 있어 본 적이 없어 현우는 이렇게 혼자 있게 되면 낯선 외로움이 현우를 잠식해갔다.

 
 
 
 
 
 
/
 
1.
블로그에 있던 글을 옮겼어요.
 
2.
음. 불마크를 달아야할까 말아야할까.
 
3.
달기엔 내가 너무 떡고자라 처음 써보는 나름대로 씬 묘사인데,
너무 서툴고 어색해서 불마크를 달기 애매함.
 
4.
그래서 안 달았는데, 달아야할거 같다면
말 해주세요. 바로 수정 들어갈게요 :)
 
5.
조각치곤 좀 길다..
 
6.
인스티즈에 처음 올린 글입니다. 잘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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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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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우와...........ㅇㅣ런 담담한 문체 짱짱 좋아하는데ㅠㅠㅠㅠㅠ 제취향 저격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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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신알신 하겠습니다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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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신알신이요ㅠㅠㅠㅠㅠㅠㅠ이런 문체 짱짱이에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ㅇ,어으으어아아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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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
작가님 블로그주소좀....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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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5
아차 신알신하고가요ㅜ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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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6
헐 진짜 쩐다...신알신하고갈게요 다음편 빨리 보고싶어요ㅠㅜㅜ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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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7
헐헐헐 쩔어여 다음편ㄱㄱㄱㄱㄱ ㅠㅠㅠㅠㅜ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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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8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취향저격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신알신 하고가요ㅠㅠ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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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9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ㄷㅐ박 헐 다음편없ㅅ나요?! 너무 재밌어요ㅠ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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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0
신알신하고 갈게요 !ㅠ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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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1
작가님ㅠㅠㅠㅠㅠㅠㅠㅠ 신알신하고 갈께요ㅠㅠㅠㅠㅠㅠㅠ헐 진짜 금글이네요 작가님 대박ㅠㅠㅠㅠㅠㅠ 다음편이 궁금해지네요ㅠ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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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2
흡 이런 금글을 늦게보다니ㅠㅠㅠㅠ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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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3
흑.. 진짜 너무 재밌어요ㅠㅠㅠㅠ.. 정말 문학작품 보는 기분이었어요ㅠㅠㅠ.. 다음편은 없는걸까요.. ㅠㅠㅠ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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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4
5개월째기다리는즁..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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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oh
세상에....이거조각이라후속편이없을예정이었는데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제가혹시글에다가안적었나요ㅠㅠㅠㅠㅠ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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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oh
세상에 안 남겼네요.ㅠㅠㅠ 당시에 그냥 삘 꽂힌데로 쓴 글이라서 그 뒤를 감히 못 이어가겠더라구요. 일단 이어가더라도 너무 긴 얘기가 나올 거 같아서 당시엔 그냥 그만 둔 조각이었는데ㅠㅠ본의아니게 기다리게 했네요ㅠㅠㅠ 죄송합니다.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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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5
호곡.답답글 기대조차안했는데 영광스럽숩니당.. 8ㅅ8
그만 둔 조각이라니..너무너무 아쉽네여ㅠㅠ생각날때마다 찾아보곤 했었느ㅡ대../눈물샤워/

11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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