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이 뜨겁게 내리 쬐는 여름. 말 그대로 '억수로' 더운 8월의 어느 날.
승부욕에 불타는 뜨거운 농구 청춘 윤윤제는 32대 5로 승제를 이기고 나서야 만족한다는 듯이 수돗가에서 시원하게 등목을 했다. 툴툴거리며 자신에게 욕을 하는 승제를 집으로 보내고 옷을 갈아입으러 교실에 들어간 윤제는, 시험기간이라 모두 집에 돌아가고 텅 빈 교실에 혼자 앉아있는 준희를 발견한다.
"안 가고 뭐하노?"
"아, 왔나. 농구는?"
"점마 이기는게 뭐 일이라고. 시시하다. 근데 니는 안 가고 뭐하는데?"
"내는 뭐, …좀 생각할게 있어서."
"사내자식이…."
피식, 실소를 날린 윤제는 땀으로 젖은 체육복을 성큼성큼 벗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문득, 뚫어져라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낀건지 준희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마, 몸 뚫어지겠다. 뭘 그렇게 보는데."
"아이다. 니 몸 좋네."
"짜슥, 싱겁게."
하고는 사물함 위에 올려둔 교복을 집으려다 날카롭게 튀어나온 사물함 모서리 나무조각에 손을 찔리고 만다.
"아…뭐꼬? 이런게 있으면 진작에 좀 없애놓지. 하여튼 사내새끼들만 있어서…."
궁시렁대며 다시 옷을 입으려는 윤제의 손을, 준희가 다급하게 잡는다.
"너 피난다. 깊게 찔렸나보네. 괜찮나? 소독부터 하자."
"……."
"빨간약 있나? 양호 선생님도 집에 갔을텐데, 우야노."
"……."
"봐라, 이 피 나는 것좀 봐라. 안 되겠다. 내가 빨아줄까?"
윤제의 대답은 들을 틈도 없이 피가 흐르는 검지 손가락을 망설임 없이 입에 집어 넣는 준희. 그리고 그런 준희를 말없이 바라보는 윤제. 둘 사이엔 알 수 없는 오묘한 침묵과 윤제의 손가락을 빠는 준희의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쪼옥 소리까지 내며 입으로 지혈을 한 준희는 손가락에 피가 멈춘 것에 안도하며
"됐다. 이제 멈췄다. 반창고라도 줄까? 내 챙겨가지고 다니는거 있다."
라며 제 가방을 찾으러 책상으로 가려는 순간, 강한 손길에 의해 저지당한다. 무표정으로 준희의 팔목을 잡은 윤제는 준희를 사물함 옆 벽으로 몰아간다. 두 팔로 준희를 가둔 덕택에, 그 속에 갇힌 준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윤제를 바라본다.
"야, 왜이러는데…."
"강준희."
"……."
"너는 생긴 건 사내놈인데 하는짓은 와 기집아 같은데?"
"……."
"일부러 그러는 기가? 기집아들한테 잘 보이고 싶어서?"
"……."
말 없이 고개를 젓는 준희. 그런 준희를 내려다보며 말을 잇는 윤제.
"니가 자꾸 그러면 착각한다."
"……?"
"니가 자꾸 그러면, 내는 니가 나를 좋아한다고 착각한다고."
"……."
"그러니까 그러지 마라."
"……."
"나는, 착한 놈이 아니다."
준희와 눈을 맞추고 한숨을 푹 내뱉은 윤제는 준희를 가뒀던 팔을 떨구고 뒤돌아서 미처 잠그지 못한 와이셔츠의 단추를 잠근다. 둘 사이에는 정적만이 흐르고, 준희는 뒤돌아서 교복을 입는 윤제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간다. 빨리 들어가라."
어느 틈에 교복을 다 입고 가방을 든 윤제는 한마디를 툭 던지고 교실 앞문을 연다. 그런 윤제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준희는, 결심이라도 했다는 듯 나즈막한 목소리로 윤제를 부른다.
"윤윤제."
"……?"
"니가 생각하는게 맞다."
"뭐라고?"
"니가 생각하는게 맞다고."
"그게 뭔데."
잠시 망설이던 준희는 땀이 촉촉히 배인 손바닥을 교복 바지에 스윽 닦고는 윤제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한다.
"내가, 너를, 좋아한다고."
"……."
"내가 너를 좋아해서 그렇게 행동한 거라고."
"……."
"이 문디야, 너는 참 둔하다."
놀리듯이 마지막 말을 뱉은 준희는, 재빨리 가방을 들고 뒷문으로 달려 나간다. 잠시 얼이 빠져있던 윤제는, 그제서야 말 뜻을 깨닫고 씨익 웃으며 준희를 뒤쫓아 달려간다.
15년 후, 8월의 어느 금요일 밤
제 38회 부산 광안고 동창회가 열리는 날. 간만에 모인 동창들이 서로 지나간 추억들을 풀어놓느라 정신이 없다.
"야, 너는 그 원숭이 아직도 좋아하냐?"
"내가 나이가 몇인데… 그냥 옛 사랑일 뿐이지. 아, 우리 토니오빠!"
"아이고, 아이고, 대단한 열녀 나셨습니다. 요즘은 누가 뭐래도 인피니트가 대세지. 어디 마트에 안 파나?"
"너는 또 갈아탔냐? 어휴, 징하다 오유정."
"젝스키스로 갈아탔다고 6년 단짝이랑 2주동안 말 한마디 안 한 너보단 낫거든, 성시원?"
추억과 술이 오가는 자리. 다들 즐겁게 옛 이야기들을 풀어놓으며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동창회가 열리는 술집 문이 열리더니 검은색 수트를 입은 두 남자가 들어온다.
"어, 윤윤제! 강준희!"
동창들의 시선이 모두 둘에게 쏠리고 둘은 여유롭게 테이블을 향해 걸어온다. 약속시간에 한 시간이나 늦은 두 사람이 얄미운지 시원이가 두 눈을 흘기며 볼멘소리를 한다.
"아무튼 시간 맞춰서 나타나는 걸 본 적이 없어요. 뭐 하다가 이제와, 둘이?"
약속이라도 한 듯 씨익 웃으며 서로를 바라본 두 사람은, 깍지 낀 두 손을 높이 들고 시원이와 동창들을 향해 입을 연다.
"우리, 결혼해."
| 응답하라 1997 |
열심히 응칠이를 보다가 떠오른 쓸 데 없는 망상 of 망상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윤제x준희의 커플링과 쓰는 내가 민망할 정도의 어색한 사투리가 함정이지만ㅠㅠ (부산피릿분들아.. 너그럽게 이해좀 해주실게요..!) 저는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윤x희 커플을 밀겁니다^^! 윤희 행쇼s2.. 힝 내일 일어나서 이 글을 봤을때 나의 또다른 흑역사가 되지 않기를..ㅁ7ㅁ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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