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걸음에 맞춰 걷는 어떤 한 남자. 겨우겨우 집으로 들어가 한숨을 돌리고있으면 전화 한통이 온다.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받아보면 다정한 목소리로 나에게 묻는다.
"오늘은 꽤 빨리 들어갔네? 잘했어."
"....제발 그만 좀 해....."
두려움에 떨리는 목소리를 차마 가다듬지 못한채 겨우겨우 말하니 상대방은 대답이 없다. 아무 소리가 없으니 불안한 심정에 애타게 불러보지만 대답대신 들려온건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
"그딴 소리 하지마."
언제부터 이렇게 된걸까. 이젠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장난삼아 게이카페에 글을 올렸을 때부터일까. 아니면 그 후 박찬열을 만났을 때부터일까. 순식간에 복잡해진 마음에 말 없이 전화를 끊은 후 깨진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한 남자를 멍하니 응시했다. 불꺼진 가로등 밑으로 나의 시선을 느꼈는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본다. 씨익 웃는 그의 얼굴에 침이라도 뱉고, 온갖 욕이란 욕은 그에게 해봤지만 돌아오는건 평소랑 같은 스토커짓.
"하아..."
토 할 것 같은 기분에 그에게서 시선을 떼고는 유리조각을 하나 하나 줍기 시작한다. 조심스럽게 잡지 않아 이리저리 상처가 나고 피가 나지만 그건 개의치 않다는 듯 유리조각을 줍는다. 어느정도 큰 유리조각을 치우고 버릇처럼 그가 있던 그 자리를 바라보지만 여전히 있는 그. 이젠 정말 포기한 듯 다시 유리조각을 치우는데 열중한다. 얼마나 치웠을까 작은 가루만 남겨놓고 거의 다 치웠을 즈음 그동안 잠잠하던 핸드폰이 울린다.
[다치지마.]
기가막힌다. 기가막혀서 소름이 돋는다. 어쩜 사람이 저렇게 태연하게 말 할 수가 있을까. 문자를 무시하고는 거실에 있는 청소기를 가지러 나간다. 등 뒤로 다시 한번 들려오는 문자음에 발걸음을 멈추지만 확인을 해 봤자 쓸데없는 짓이라는 생각에 발걸음을 옮긴다. 박찬열. 이젠 그 이름 조차 지긋지긋하다. 게이카페에 올려져있는 내 사진을 보고 연락하던 박찬열은 어디가고 더럽고 추악한 박찬열만 남았을까. 별의 별 생각은 다 해보지만 답은 나오지않았다. 아니 모르겠다. 어느 순간 전화 하던 횟수도 늘면서 조금씩 조금씩 나의 삶을 옥죄어왔다. 그때 헤어졌어야했는데. 전혀 눈치 채지못했다. 먹잇감을 노리는 뱀처럼 살며시 아주 조심스럽게 나의 삶을 조여왔으니깐 모를리가 만무하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을 들지 못하고 시계를 보니 11시 27분...아직 이거밖에 안됐나...라며 고개를 돌리다 낯설지 않은 숫자에 곰곰히 생각해보다 헛웃음만 나왔다. 박찬열 생일이네. 연애 기간이 길었던 만큼 아직까지나 박찬열에 대한 습관이 있다. 생년월일이라던지 박찬열의 생활 습관이라던지. 갑자기 씁쓸해져오는 기분에 가만히 눈을 감았다.
아. 공부하기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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