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도 사람인데, 넌 아냐.
너는 그냥 또라이야! ☞ 1
w. 사생아님
왕따를 당할 땐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굳이 따지자면 나는, 이 말에 동의하는 편이다. 그런 나도 왕따를 겪은 적이 있다. 그래서 나에게 왕따가 된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대답한다. 나는 변백현의 부랄친구였기 때문에 왕따가 되었다고.
변백현의 잔망은 태생부터 타고난 것이었다. 불과 13살짜리 초등학생이 중학생을 후려 사귈 정도였으면 말 다했지. 사실 변백현은 1학년 때부터 유명했다. 특유의 잔망과 애교어린 행동으로 선생님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같은 반 여자 아이들 사이의 인기를 싹쓸이하더니, 3학년 쯤엔 학교 대표 잔망덩어리로 전학년에 유명해지고, 5학년 말에는 어디서 중학생들과 친해졌는지, 소위 일진이 되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척이나 부끄러운 상황들이 연출됐었지만 인소가 유행타던 그 때에는 변백현이 우리학교 별이었다. 그래서인지 전교를 넘어 동네 중학교에까지 소문이 탄 변백현을 보러오는 언니오빠들이 꽤 많았다.
나는 그런 변백현과 어렸을 때부터 거의 같이 자라온 남매나 다름없는 사이였다. 옆집에, 나의 아빠와 변백현의 엄마는 우리와 같은 부랄친구. 남녀사이에 친구란 있을 수 없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어렸을 때부터 그 말을 반박하는 산증인들을 보고 큰 우리 둘의 사이에는 부모님들처럼 친구라는 공식이 성립되었다. 부모님을 보면서 우리들은 항상 다짐하곤 했다. 우리도 커서 꼭 저런 사이가 되자고. 내 자식도 서슴없이 맡길 수 있는 그런 아주 편하고 오래된 이성사람친구.
그러다보니 나와 변백현이 붙어있는 시간이 많을 수 밖에 없었고, 특히 변백현은 나와의 등교와 하교에 유독 집착했었다.
덕분에 자연스레 나까지 유명세를 타게 되었는데, 입학한 날부터 매일 학교스타 변백현과 등, 하교를 함께하고 집에 가서도 옆집이었기에 거의 24시간을 붙어 지내는 여자아이. 변백현의 마수에 걸려 헤어나오지 못하는 학교 아이들이나 언니들에게 나는 눈엣가시였고, 분리수거 대상 1호였다. 그래서인지 나중에는 나를 보러 학교를 찾아오는 언니들도 꽤 많았었다. 변백현 앞에서는 혀짧은 소리를 내던 가시나들이 내 앞에 오면 칼날을 씹어먹는 패기를 선보이기도 했다.
내가 초등학교 입학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기까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있다.
"이 여우같은 기집애! 백현이 옆에서 떨어져!"
때에 따라서 앞에 붙은 나를 꾸미는 형용사나 비유는 존나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험악해지기도 한다.
물론 저 말을 들을 때면 나는 항상 당당하게 반박했었지. 내가 변백현 옆에 붙어있는 것이 절대 아니라 변백현이 나한테 붙어 떨어지지 않는 거라고.
그럼 그 뒤에 내게 돌아오는 건 찰지게 내 뺨을 스치는 손바닥과 그 순간 내 주위로 아득히 떠오르는 별들이었다.
솔직히 스스로를 일진이라고 지껄이며 그들이 하는 개념없는 행동들을 봐오면서, 일진은 하찮은 인간들이 만들어낸 쓰레기집단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그 앞에서 조금도 주눅들지 않았었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내게 오는 협박이란 그냥 옆에서 떨어지라는 말 뿐이었고, 변백현이 내 옆에 있으면 그마저도 하지 못하고 변백현에게 잘보이고 싶어 착한 척 하기 바빠했으니까.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겼다.
하지만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판세가 뒤집혔다.
뺑뺑이로 갈리는 중학교 배정에서 나는 여중, 변백현은 조금 떨어진 남녀공학으로 정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실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게 얼마나 큰 문제였는지 심각성을 느끼지 못했다. 어차피 옆집이니까 변백현 못 볼 걱정도 없었다.
변백현은 등, 하교는 나와 함께. 라는 철칙을 지우지 못한 채 우리 학교 앞을 밥먹듯이 찾아왔다.
나를 대하는 아이들의 태도가 달라진 건 그 때부터였다.
어떻게든 변백현을 소개 받고 싶어 안달난 아이들과 아예 대놓고 나를 보고 여우라고 까대며 무시하는 아이들이었다.
변백현에 관해선 단호하게 거절을 했었기 때문에 내 옆에 붙어있던 것들도 금세 떠나갔고, 심지어 변백현 학교에서 찾아온 여자아이들이 나를 못살게 구는데 안달이 났다.
나는 그렇게 혼자가 되었다.
한 번은 치마를 타이트하게 줄이고 딱봐도 나 좀 양아치 시켜주세요, 지랄발광하는 안쓰러운 모습으로 나타난 고딩언니가 있었다. 언니라는 말도 아까우니 이하 생략한다. 그 고딩은 모처럼 수업이 일찍 끝나 변백현을 버리고 집에 가려던 나에게 찾아와 따라오라더니, 암흑진 곳에 데려가 대뜸 무릎을 꿀렸다. 쉽게 당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곳에 먼저 포진하고 있던 무리들이 합동으로 제압하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야, 우리 백현이 옆에서 안 떨어져?"
"..."
"존나 못생긴게 어디서 백현이한테 꼬리를 쳐?"
"..."
"백현이도 너 존나 귀찮아할 거니까 좋은 말로 할 때 알아서 떨어져라."
"..."
"씨발, 썅년아. 대답 안 해?"
기가 찬다. 기가 차. 존나 대꾸할 가치를 느끼지 못해서 입을 꾹 다물고 있으면 내 머리를 톡톡 밀어내는 두툼한 손가락이다. 아, 이 돼지같은 게. 내 두배만한 몸으로 나보고 못생겼다고 변백현에게서 떨어지라는 둥, 침을 쫙쫙 뱉어내는 행동은 소름돋게 역겨운 모습이었다.
내가 사람 함부로 비하하고 막 그러는 사람이 아닌데, 넌 사람이 아니다. 외모도, 멘탈도 모두 쓰레기네.
"진짜 웃겨서 말이 안나오네. 도대체 변백현이 뭐가 잘났다고."
"뭐?"
"아니, 모두 다 눈이 삐었나? 변백현이 뭐가 잘생기고, 뭐가 귀여워서 다들 나한테 이러는데?"
"하, 너 미쳤니?"
"미친건 당신들이지. 변백현이랑 사귀고 싶으면 걔 앞에 가서 꼬셔서 사귀든가. 왜 자꾸 내 앞에 나타나서 지랄이야? 내가 걔랑 사귄대? 걔는 한 트럭으로 던져줘도 안가ㅈ..윽."
아, 씨발. 인내심이 폭발해서 할 말 좀 하겠다는데 억센 손으로 머리채를 쥐어오는 고딩때문에 하던 말을 멈추고 인상을 찡그렸다. 안그래도 못생긴 얼굴이 너때문에 두피까지 못생겨지면 네가 책임질거야? 너는 나보다 못생겨서 책임 못지니까 이 손 좀 얼른 놓지...? 하지만 고딩의 악력은 점점 더 세져만 갔고, 뒤에 있던 다른 고딩도 내 말을 듣다가 열이 뻗쳤는지 발로 내 등을 세게 까버려 쿨럭, 기침이 터져나왔다. 아씨, 돼지가 머리채를 잡고 있었기에 순간 머리카락이 다 뜯기는 줄 알았다.
"이게 보자보자하니까? 감히 우리 백현이를 욕 해?"
"아... 진짜..."
"씨발년아. 다시 한 번 말해봐. 지랄? 누가 미쳐? 존나 어린게 어디서 반말이야?"
"지들은 존나 어린거한테 질투하는 주제에."
"이 미친년아! 진짜 죽ㄱ... 꺄아악!!"
고딩이 사이코같은 눈으로 날 정말 죽일 생각을 하는 건지 살벌하게 노려보며 다른 손을 번쩍 높이 들었다. 하지만 고딩은 아까의 나처럼 말을 다 끝내지 못한 채 비명을 내질렀고, 그 비명과 함께 고딩의 손이 스르륵 내 머리를 놔주었다. 어라? 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내 앞에 벌러덩 넘어져있는 고딩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뒤에서 다시 한 번 비명소리가 들려왔고 곧 익숙한 목소리가 이어 들려왔다.
"누나들, 여기서 뭐해?"
변백현이었다.
"배,백현아..."
"내가 묻잖아. 여기서 뭐하냐고. 왜 누나가 얘 머리채를 잡고 있었을까?"
"..."
"야, 변백현."
"잠깐만. 기다려 봐. 나 저 누나한테 대답 들어야 해."
"... 백현아... 나는..."
"나 기다리고 있는데 대답, 얼른 해야지. 누나."
차게 식어버린 눈동자로 고딩을 쏘아보던 변백현은 고딩 앞에 쭈그려 앉아 그 얼굴을 강하게 쥐었다. 꽤 아픈지 눈을 질끈 감는 모습에 변백현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대답 안하면, 내가 니년 머리채 쥐어 잡는 수가 있어."
누나라고 부르던 변백현의 입에서 욕이 튀어나오자 고딩의 얼굴은 새하얗게 질렸고, 나는 작게 한숨을 쉬며 고딩의 얼굴을 쥔 팔에 손을 올리며 말려야만 했다. 마음같아서는 그대로 좀 까줬으면 싶었지만 아직 고작 중딩인데 사람 패고 다니게 하고 싶진 않았다. 게다가 쟤 태권도 배워서 좀 쎄단 말이야. 유단자는 함부로 사람 때리는 거 아니랬어, 우리 아빠가.
"변백현, 그만 가자."
"나 아직 못 들었는데."
"내가 해주면 되잖아."
"난 이 돼지한테 물어봤어."
"... 너 나한테도 돼지라며. 저 돼지말고 이 돼지한테 들으면 되겠네."
"야, 그건."
내 말에 반박할 말이 없는게 분했는지 발끈하며 날 쏘아보더니 분위기 파악 좀 하라는 말하는 변백현의 뒷통수를 쎄게 갈겨버렸다. 아! 하고 뒷통수를 부여잡은 변백현은 자연스레 돼지... 아니 고딩을 잡았던 손을 풀었고, 나는 그대로 변백현을 끌고 골목을 빠져나왔다. 변백현이 이렇게 가면 어떡하냐고 발악을 하긴 했으나 그렇다고 내 손을 세게 뿌리치지 않는 변백현이었다. 변백현을 끌고나와 집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아무 말 없이 앉아있었더니 변백현은 한 대도 때려주지 못하고 온 게 아쉬웠는지 계속 중얼거리며 투덜거리다 나를 보며 물었다.
"그래서 아까 왜 당하고 있었는데?"
"못 들었어?"
"뭘."
"못 들었으면 됐어. 그냥 넘어가. 한두번도 아니고."
"... 한두번이 아니라고? 너 여태 맞고 살았어?!"
"미친, 나 아까 안맞았거든?!"
"씨발. 그게 문제야?! 아무튼 개쪽 당하고 있었잖아!"
"그래, 나 개쪽 당했다! 그래도 안맞았다고!!!"
침까지 튀어가며 안맞았음을 주장하는 나를 한심하게 쳐다보던 변백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존나 그러니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변백현의 그 말에 나는 더욱 울컥해서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리고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그게 왜 나 때문인데."
"너 이제 우리학교에 찾아오지마. 학교 갈 때도 집에 갈 때도 나 혼자 갈거야!!!"
"... 야."
말했듯이 변백현은 등, 하교에 예민했다. 내가 등, 하교를 혼자 하겠다고 소리치자마자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얼굴을 굳힌 변백현은 나를 노려보았다. 그건 안 돼. 존나 단호하네. 또 한 번 그런 얘기하면 죽여버리겠다는 눈빛으로 나를 보는 변백현이었지만 나도 더이상을 못참겠다 이거야. 너로 인해서 내 인생이 너무 피곤해.
"나도 안 돼. 네 말대로 너 때문에 여자들한테 개쪽 당하는 거 이번으로 충분해."
"그러니까 그게 왜 나 때문이냐고."
"그 년들이 다 너 좋다고, 나보고 너한테서 떨어지라고 지랄하는 거잖아!"
"..."
"그러니까 난 너한테서 떨어지겠다는 말이야."
"씨발."
내 말에 작지 않은 충격을 받았는지 잠시 멍하게 나를 바라보다가 찰지게 욕을 내뱉는 입이다. 정말 내가 그렇게 까인 이유가 자기때문일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는지 여전히 못 믿겠다는 듯이 진짜냐? 라고 되묻는 그에게 나는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동안의 일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그의 표정이 조금 더 어지러워졌다.
"..."
"... 야, 변백현."
"..."
"내가 한 말 모두 진짜야. 너때문에 내가 학교에서 왕따당하는 것도, 내일부터... 등교도, 하교도 따로 하자고 했던 것도."
"..."
"그러니까, 이제 우리 학교 앞에 찾아오지마. 아침엔 내가 먼저 출발할게. 우리 조금 멀어지자. 당분간 얼굴도 마주치지 말고."
"..."
내 말에 변백현은 끝까지 대답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그의 대답을 바라고 있던 것도 아니었다. 이건 일방적인 내 쪽에서의 차단이었다. 그가 그렇게 못하겠다고 해도, 나는 이미 그를 밀어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말이 없는 변백현을 뒤로 한 채 먼저 일어나 집으로 돌아왔고, 그 다음날까지 변백현에게서 연락은 오지 않았다. 나는 그게 수긍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 평소보다 30분 일찍 나온 나는 대문을 열자마자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었다.
"..."
"내가 혼자 가겠다고 한 거 벌써 잊었어?"
"..."
"그럼 나 먼저 간다."
"잠깐만."
우리 집 대문 앞에 서있던 변백현을 보자마자 인상을 구긴 나는 그를 무시하고 학교에 가려고 했다. 하지만 언제부터 서있었는지 차가워진 손이 지나치는 순간 내 손목을 세게 쥐어왔고, 나는 고개를 돌려 다시 그를 마주했다. 이거 놔. 변백현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내 손목만 꽉 쥐고 있을 뿐이었다.
"변백현."
"난 정말 몰랐어..."
"..."
"너 왕따 당하는 것도, 그런 일을 자주 당했단 것도..."
"..."
"잘못했다. 그래, 이번엔 내가 물러설게. 그러니까 멀어지잔 말은 하지마."
"..."
"얼굴보는 것까지 막지 마. 난 등, 하교만 양보한거야."
"... 후, 백현아."
"그리고 다신 그런 일 없도록 할게."
그 말을 끝으로 변백현은 획 돌아섰다. 내가 무슨 말을 할 지 뻔히 알고 있겠지. 그러니까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돌아선 것을 나는 알고있다. 나나 변백현이나 괜히 몇년동안 붙어있던 사이가 아니었다. 내가 너무 심했나... 어깨가 축 쳐진 변백현의 뒷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나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나도 그만큼 지쳤었기 때문에.
확실히 그 이후부터 학교에서 변백현의 얼굴은 전혀 볼 수가 없었다. 내 곁을 떠났던 애들이 뻔뻔하게 내 앞에 찾아와 요새는 왜 변백현 안오냐고 물을 정도로 그것은 큰 사건처럼 보였다. 나는 어이없어 피식 웃으며 변백현이 나한테 질렸나보지, 하고 대답해주었다. 싸가지 없다는 뒷말이 들려왔지만 나를 싸가지 없게 만든 건 너희들이다.
다신 그런 일이 없게 하겠다던 변백현의 말은 그냥 한 말이 아니었는지, 그 이후로는 나를 건드리려고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다.
변백현이 뜸하니 그동안 눈치때문에 다가오지 못했던 아이들도 한명씩 다가오기 시작했다.
내 삶이 그렇게 평화로워지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학교에서 보지 못했던 변백현의 얼굴은 우리 집에서 질리도록 봐야만 했다. 처음에는 찾아와 벨을 누르더니 내가 열어주지 않자 우리 엄마를 꼬셔 열쇠를 챙겨 무작정 밀고 들어왔다. 변백현은 학교가 끝나자마자 우리 집에 발을 들여놓고 새벽 2-3시가 되도록 버티고 있다가 결국 백현이네 아주머니 손에 두드려 맞고 끌려가기 일쑤였다. 하지만 변백현은 그 짓을 결코 멈추지 않았다.
우리가 중학교 졸업을 할 때까지.
중학교 졸업식 날, 우리 부모님이 부르셨단 핑계로 우리 학교에 찾아온 변백현은 나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중학교에서의 마지막 날 다시 등장한 변백현으로 인해 학교는 떠들썩했다. 내가 다시 꼬셔냈다는 허무맹랑한 소문이 퍼지려고 할 때마다 귀신같이 귀도 밝은 녀석이 그 근원을 찾아 강렬한 눈빛을 쏘아댔다. 그 때마다 신기하게 다물어지는 입을 보며 피식 웃음을 흘리며 졸업장을 받고 내려오는데, 부모님 대신 꽃다발을 건네주는 변백현이었다.
"안 받고 뭐해?"
"받으면 존나 후회할 것 같아서."
"뭐?"
"이거 받기 전에 확실하게 말해두는데 등, 하교 얘기는 고등학교 때까지 유효야."
"글쎄, 그건 두고 봐야지."
"... 장난아니야."
"나도 장난 아니야."
떨떠름한 표정으로 나는 결국 변백현의 꽃을 받지 않은 채로 단상에서 내려왔다. 부모님이 백현이 무안하게 뭐하는 짓이냐며 얼른 받으라고 난리였지만, 그래도 난 절대 받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 찝찝한 기분. 도대체 뭐지?
"야, 변백현. 너 도대체 무슨 꿍꿍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 시치미 떼지마. 아까 그 얘기는 뭔데."
"아. 글쎄?"
졸업식엔 역시 짜장면이지, 라고 외치는 아빠를 따라 열심히 짜장면을 먹다가도 변백현에게 물어보면 또 다시 의미심장한 얼굴을 비춘다.
그래, 바로 저 얼굴. 불안해.
아, 불안하다고.
그렇지만 고민한다고 해서 저 능구렁이 같은 생각을 읽을 수는 없었다. 딱히 그 후에도 별 다른 일이 없어서 내 기우였나보다 생각하고 잊혀져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무의미하게 시간들이 흘러가고.
고등학교 입학식 날.
"미친."
"왜 이렇게 늦게 나와?"
"너, 그 교복..."
"동문이여, 오늘부터 다시 같이 등교 해볼까?"
"... 나는 고등학교도 혼자 다니겠다고 했어."
"안 돼."
새 교복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대문을 나선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변백현이 나와 같은 고등학교의 교복을 입고 서있었기 떄문이다.
학교에서 배정된 고등학교를 알려준 날, 변백현은 바로 연락을 해서 물었다. 어디 고등학교로 가냐고.
어차피 다 알게 될 일이었기에 나는 별 생각없이 말해줬는데,
[너는?]
[비밀~]
정작 변백현은 내게 자신의 학교를 절대 알려주지 않았다. 끈질기게 물어봤지만 변백현도 끈질기게 버티는 바람에 끝내 나는 듣지 못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래서 안알려준건가. 수소문을 통해 알아낼 수는 있었지만 귀찮아서 그러지 않았다. 그 때 그냥 알아볼 걸 그랬다. 이제야 변백현의 의미심장했던 얼굴과 행동들이 이해가 갔다. 지금 뭐하자는건지, 못마땅하게 쳐다보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변백현."
"중학교 때는 같은 학교가 아니라서 양보했어. 내가 바로 옆에서 지켜줄 수가 없으니까."
"..."
"하지만 이번엔 달라. 같은 학교니까, 내가 너 옆에 딱 붙어서 지켜줄 수 있어."
"..."
"그러니까 오늘부터 다시 나랑 등교하고 하교도 해."
존나 이런 말 하면 내가, 존나 감동할 줄 알았나 봐. 존나 어이없네, 겨우 이런 거에... 감동해버린 내가.
"... 똥개새끼야."
"뭐?"
"넌 이제부터 똥개야."
"그게 뭐냐? 그렇게 부르지 마."
"변은 똥. 그리고 넌 개같이 생겼으니까 이제부터 널 똥개라고 부를래."
"아, 하지말라고."
"똥개야."
"..."
"똥개야, 우쭈쭈."
똥개라고 놀리며 개처럼 턱을 쓰다듬자 나를 쏘아보던 변백현이지만 피식 웃으면서 손, 하고 내민 내 손에 지 손을 덥썩 올렸다. 그리곤 깍지를 껴 단단히 붙잡아 내가 먼저 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게 뿌듯했는지 나를 향해 씨익 웃어보인 변백현이 가자, 라고 말을 하기에 나는 못이기는 척 그를 따라 나섰지만, 분명 내 입가에도 깊게 파인 호선이 그려져 있었다.
고등학교 입학 첫 날, 변백현의 등, 하교는 나와 함께란 철칙이 다시 부활했다.
"똥개야. 실내에선 마스크 좀 벗지?"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했을텐데."
"응. 똥개야."
범죄자 마냥 검은 마스크, 검은 선글라스, 검은 후드로 얼굴을 꽁꽁 숨기고 등장한 변백현. 누가 악의 축 아니랄까봐, 온 몸으로 광고하고 다니니? 거부감이 들 정도로 거무튀튀한 모습에 몇년간 사랑 듬뿍 담아온 별명을 부르며 마스크 좀 벗으라고 하니, 그 때마다 퉁명스러웠던 목소리가 여전히 들려온다. 전혀 먹히지 않는 투정을 부리더니 한숨을 내쉰 그는 유리잔에 꽂힌 빨대로 장난치는 나를 짜증섞인 목소리로 부른다.
"야, 너는."
"뭐?"
딸각. 유리 잔에 청명한 마찰음이 울려퍼진다. 아, 내 첫사랑 청명오빠. 잘 사시나요? 체리는 샤오랑이랑 꽁냥질이던데...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팍팍 티를 내며 빨대로 음료를 휘휘 젓고 있으면 마스크를 벗으며 앉은 그가 나를 향해 존나 답 없는 년. 이라고 까내리며 아니꼽게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보고 있을 것이다. 그의 눈은 아직도 선글라스에 가려진 채였으니까. 마스크 벗으란다고 마스크만 벗는 센스없는 놈.
그런데 뭐라고, 시발? 내가 누구 때문에 이 카페에서 음료를 3잔이나 마셨는데. 테이블 위에는 지금 잡고 있는 레몬 에이드 한 잔, 그리고 몇시간 전에 아이스 바닐라라떼와 플레인 요거트가 담겨있었던 두 잔의 유리컵이 깔끔하게 비워져 있다.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에, 그것도 일방적인 통보로 예정에도 없던 음료 3잔으로 지금 방광이 터질 것 같고, 화를 내야 하는 것은 나여야 함이 엄연한 사실이거늘.
얘가 지금 뭐라고 씨부리는 거니?
"노답인건 너고. 지금이 도대체 몇 시냐?"
"아, 그건 내가 늦는다고 연락했잖아."
"... 약속시간 10분 전에 2시간이나 미루는건 어느 나라 예의인데?"
그래도 반성은 커녕 오히려 당당하게 씨부리는 입이다.
"나 엑소야."
아직도 선글라스를 끼고 있던 터라 눈이 보이지 않았기에 그 의중을 파악할 수 없으니 저 말에 내가 어떻게 반응을 해줘야 할 지 모르겠다.
단순히 장난이라면 어머, 저 팬이에요. 싸인 좀 해주실래요? 하면서 맞장구라도 치겠는데, 진지하게 꺼낸 말이라면...
그래서 뭐 어쩌라고.
그거야 이미 이 세상 사람들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고, 나는 그에 대해 한번도 부정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굳이, 왜 하필 지금 그 사실을 들먹이는 지 나는 1도 모르겠다는 거다. 그래서 가만히 앉아 레몬에이드를 쭉 빨아들이며 목을 축이는데, 그 태도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신경질적으로 선글라스를 벗어제끼자 보이는 눈은 진짜 한심하다는 듯이 나를 보고 있었다.
빨대 꽂아 빨아먹기 전에 눈빛 좀 고쳤으면...
"내가, 이 변백현이 바로 엑소라고. 이 시대를 대표하는 슈퍼스타."
"... 자기 입으로 그런 말 하면 안 창피해?"
"넌 내가 창피해?"
"응. 매우."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단호박 잔뜩 먹은 대답을 꺼내놓으면 기가 차다는 듯이 혀를 차더니 제 머리를 거칠게 쓸어넘기는 그다. 그리고 대뜸 내 손에서 에이드를 빼앗아 벌컥벌컥 들이킨다. 아, 내껀데. 방광이 터질 것 같으면서도 그의 입으로 줄어드는 에이드가 무지 아까워 입맛을 다시고 있으면 그는 얼음까지 입에 물고 아그작 씹어먹으며 나를 살벌하게 노려본다.
"뭘 봐?"
"내가 집으로 오라고 했지."
"나는 싫다고 했지."
"그래서 정한게 여기냐? 너 이렇게 꾀부리다가 골로 갈 수 있어."
"난 꾀부린 적 없는데?"
"그럼 더 미치겠네."
"뭐?"
사실 변백현은 약속을 잡을 때 나보고 자신의 집으로 오라며 강하게 어필했다. 그런데 이유를 물으면 나가기 귀찮다. 라는 대답을 늘어놓는 게 짜증이나서 나는 한사코 그것은 싫다고 거부를 했다. 더군다나 숙소생활을 하는 놈이 대뜸 자신의 집으로 오라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던 부분이다. 사실 마땅한 이유만 댔더라면 나는 집에서 만나줄 의향이 있었다. 변백현이 연습생이 된 이후로는 아주머니를 뵌지도 꽤 오래됐었으니까. 하다못해 요새 스케쥴이 너무 바빠서 너무 피곤하다고만 했어도 아주머니께 인사도 할 겸 군말없이 오케이 해주려고 했는데, 아무 이유 없이 '귀찮다' 라고 일관하는 변백현이 존나 얄미웠다.
나는 변백현 하나 좋자고 먼 길을 감수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고집을 부렸고 결국 내가 잡은 약속 장소는 명동 한복판에 자리한 카페였으며, 이 과정에서 변백현 한 번 엿 먹어봐라, 라는 유치한 감정은 전혀 없지 않다. 존나게 많다. 슈퍼스타가 명동 한복판에 등장했다? 팬들이 변백현의 등장을 인식하는 순간, 순식간에 팬들에게 휩싸여 곤란을 겪을 것이고 나는 뒤에서 그 모습을 유유히 지켜볼 생각이었다. 꾀 부린적 없다고 했지만 약속을 잡은 순간부터 꾀를 냈음이 분명하다.
역시나 변백현이 마스크를 벗을 때는 수근대던 사람들이 선글라스를 벗어제낀 순간 그들의 입에서 변백현이란 이름이 들려왔고 이제 곧 식은땀을 뻘뻘 흘려가며 팬들을 상대할 변백현을 상상하면서 존나 실실 웃고 있을 때였다.
씨발, 이라는 음성이 변백현의 입에서 아주 작게, 나에게만 들릴 만큼 터져나왔고, 나는 당황했다.
너 이제 공인인데 아직도 그런 말을 써?
그래도 되는거야?
하지만 내가 묻기도 전에 다시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착용한 변백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 손목을 강하게 끌어당겨 일으켜 세우더니 그대로 카페를 벗어났다.
갑작스러운 달음질에 또 한 번 당황했지만 운동신경이 영 꽝은 아니었기에 한참을 쫓아 달린 나는 한적한 골목에서 멈춘 변백현에게 화를 내려던 찰나,
나는 이번에도 변백현에게 화 낼 타이밍을 빼앗기고 말았다.
"몇 년이 지났는데 넌 왜 아직도 멍청하냐?"
나와 변백현은 오늘 4년 만에 다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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