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은 내게 조금씩 걸어왔다. 젖어버린 옷 뒤로 서늘한 바람이 일렁거렸다. 건조한 김종인의 입술이 갈라져보였다. 한걸음, 한걸음 다가오는 모습은
마치 위태로워보였다. 뒷걸음질을 멈추고 김종인을 올려다보았다.
“ 어디 갔었어, 한참 찾았잖아. 2015년 5월 25일. 한국시간으로 오후 8시 32분. 너를 다시 찾았다.”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던 김종인이 내 앞으로 완전히 다가섰다. 조금 어지러운 게 아마 현기증이 오려는가보다. 익숙하게 김종인은 내 허리를 끌어당겼다.김종인의 눈이 불안했다. 여전하게 건들거리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나쁘지 않은 그런 건들거림이라서 내 자신도 굳어버린 채 김종인을 올려다보는 게 전부였다.
김종인은 말수가 없지만 성인이 되면서 오히려 더 없어진 모양인지 한참동안 나를 지켜보았다. 김종인은 잠시 자신의 자리를 비운 뒤에 얼마 지나지 않아 쇼핑백을내게 건네었다. 놀란 눈으로 쳐다보자 선물한 사람 앞에서 입는 것이다. 라고 말을 해왔다. 덕분에 감기는 걸리지 않았지만 김종인은 여전하게 나를 관찰하기 급급했다.
사실 남모르게 김종인을 관찰해왔던 건 사실이었다. 고등학교 첫 입학식때 본 김종인은 말수가 없었지만 편안해보였다. 까만 머리에 자신의 짙은 쌍커플을 가릴 용도였는지 눌러쓰는 뿔테까지 겸비했음에도 김종인의 존재감은 컸다. 그런 김종인에게 이끌리기 시작한 건 앞서 이야기 해준 그 날보다 더 오래전일이였다. 오늘처럼 나는 비에 젖은 교복을 말리지도 못 하고 교실에 들어섰다. 주번이었던 김종인은 아침 일찍부터 나와 교실을 청소하고 있었다. 피할 수 없었던 봄비로 인해 몸이 조금 으슬거렸다.
김종인은 성큼성큼 내게 다가왔다. 놀란 나머지 소리를 지를 뻔 했지만 김종인은 내게 뜻밖의 용품을 내밀었다. 체육복. 젖은 교복보다 더 젖어있는 그런 아련함에 내밀었던 체육복을 받아 갈아입었다. 슬피 풍기는 김종인 특유의 외로움이 덕지덕지 묻은 듯 했다. 김종인은 그 날 체육시간에 나를 대신하여 정강이를 다섯대 맞았다.
그럼에도 김종인은 내게 단 한 번의 화도 내지 않았고 감기는 걸리지 않았냐며 오히려 나를 향해 역걱정을 해왔다. 그래, 김종인은 보기보다 다정했다. 그래서 내가 더 다가가려고 노력을 했고 김종인은 또 그만큼 마음을 열어준것이 이었다. 연인도 친구 사이 같지도 않은 그런 사이를 유지하는 동안 전공이 나누면서 김종인은 댄스과로 빠졌고 나는 보컬과로 빠지면서 서로 헤어지게 되었다.
그래서 더 어색했을지도 몰랐다. 이따금씩 김종인이 내게 질문을 해오던 날이 생각났다. 마음을 열어줘서 고맙다는 그 말이 뼈저리게 다가왔다. 옅은 바람이 불었다.
.
.
“… 너, 뭐야.”
김종인의 집에서 나는 잤다. 그러니까 그 잤다가 아닌 그냥 잤다. 순수하게 잤다. 김종인은 자신의 집으로 나를 데려가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그저 필요한 말도 하지 않고 무뚝뚝하게 나를 대했고 눈길은 항상 따뜻했다. 어깨 쪽에 남은 화상의 흉터의 자근이 화끈거리는 듯 했다. 한참을 자고 일어나 거실로 나가자 김종인은 불안한 듯 다리를 떨고 있었다. 그에 다리를 잡으며 왜 그러고 있냐고 묻자 돌아온 답이 너 뭐야였다.
“ 네가 어제 데리고 왔잖아. 그리고 오늘은 머리 내렸네. 내리니까 훨씬 낫다. 너 고등학교 때 보는 것 같다.”
김종인은 답이 없었다. 그 대신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 고개를 저어보였다.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그 표정을 한 채 김종인은 나를 계속해서 쳐다보았다. 김종인의 눈은 어젯밤 그 붉던 충혈 되었던 눈과는 확연하게 달라져 있었다. 굳이 표현을 빌리자면 먹이를 사수하려는 늑대의 모습에서 자신의 죽음이 언제 다가올 줄 모르는 늑대의 모습이 어울린다고 생각이 들었다.
“ …김종인, 너 어제 기억 못 하는 거야? ”
김종인은 다리를 떨다말고 나를 향해 다시 시선을 가져당겼다. 아무것도 담겨 있지않아 읽기가 무척이나 어려웠다. 그럼에도 김종인은 내 물음에 답을 하지 않았다.
차분하게 내려온 머리와 뽈테안경은 역시나 어제와 달라져 있었다. 김종인은 인기척 없이 소파에서 일어나 내 뒤로 지나갔다. 뭐 먹을래. 그 상투적인 말에 조금 웃음이 터져 버린 건 사실이었다. 저도 모르게 웃음을 짓자 김종인의 미간은 조금 구겨졌다.
“ 너 요리 잘 해?”
“……응.”
“나 기대해도 되는 거지?”
“……어.”
“너 근데 어제일 기억 안 나?”
“……응.”
술에 너무 취했었다. 김종인은 대답은 그게 전부였다. 부산스럽게도 아닌 그저 정적이게도 아닌 김종인은 자연스럽게 부엌에서 자유대로 배회하며 음식을 금방 만들어냈다. 깜빡 잠이 들어 다시 눈을 떴을 땐 이국적인 냄새가 아닌 한국적인 음식의 냄새가 풍겼다. 냉큼 달려가자 내 눈앞에는 조금 놀란 광경이 벌어졌다.
“이거 다 김종인 네가 차린 거야?”
분명 한국식 밥상이었다. 입을 떡 벌리고 바라보자 김종인은 고개를 망설이다 끄덕거렸다. 김종인이 조금 들떠보였던것은 착각 이였을까. 밥을 먹는 내내 김종인은 내게 살뜰하게 챙겨주었다. 내 고작 그 한마디에 김종인은 기분이 좋아지는 듯 연신 내게 반찬을 올려주었다. 김종인은 나를 향해 할 말이 있어 보이는 듯 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지만 어쩐지 저릿한 기분에 젓가락을 내려놓으려 했다.
“ … 아, 미안해. 그럴 의도는 아니었는데 얼른 먹어.”
심장이 저릿할 정도로 차분하게 말을 하는 김종인은 결국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게 만들었다. 자신의 품을 내어주며 김종인은 밥을 먹다말고 울음을 짓는 나를 몇 번이나 토닥거렸다. 김종인은 김종인인게 맞는데, 왜 이리도 저릿저릿하고 왜 이리도 사람이 변하는 것일까. 이미 식어버린 밥을 넘기지 못 하자 김종인은 또 다시 한번 자신의 머리를 감싸 돌았다. 그에 놀라 김종인을 붙잡았다. 김종인은 꿈을 꾸는 듯 했지만 숨은 아주 미약했다. 그 숨이 정말 미약해서 이대로 가버리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들로 인해 머리가 복잡했다. 그랬다.
다음날까지도 김종인이 일어나지 않을 일정에 한참동안이나 김종인을 지켜보다 잠이 들기를 여러번. 초 저녁때가 되어서야 김종인은 일어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조금 덜 뜬 두 눈에서 절절한 무언의 갈망이 보였다. 김종인은 대체 무엇일까, 학창시절 말 섞어봐야 몇 마디 섞었다고 김종인에게 마음이 가버리는 내가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는 일들로 가득찼다. 머리가 오히려 제가 더 지끈거릴 정도였다.
눈을 뜬 김종인이 나를 바라보았다. 처음부터 알 수 없었다. 김종인은 자신의 머리를 감싸고 그 후에는 쓰러져버린다. 그리고 그 후에는 마치 다른 사람 이냥 행동했다. 축 쳐진 김종인의 이마를 옆에 두었던 수건을 이용해 닦아낼 때였다. 김종인이 상체를 일으켰다. 또 눈빛은 달라져있었다. 그 눈빛에 움츠러들지도 못 하고 두려움에 살짝 몸이 뒤로 빠졌다. 그리고 그 단 발마에 김종인의 입술이 내 입술을 파고들었다. 급하고 급하여서 내가 당장 밀어낼 수도 없었다. 아니, 그 입맞춤이 어쩐지 눈물겨워 나는 김종인에게 내 감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내어줄 수 있었다.
나를 밀어내지마. 은은한 김종인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내 심장을 찢어댔다. 그 심장이 너무나도 아파서 나는 한참동안 김종인의 입술에서 놀음을 주었다. 흐느끼는 소리가 겨우 귓가에 들어섰을 때야 나는 김종인과의 입맞춤을 끝낼 수 있었다. 애정이 없지만 애정이 담긴 그 입맞춤에 왼쪽 어깨의 흉터가 찌르르 당겨왔다. 이미 오래 전 친오빠 변백현의 실수로 인해 엎질렀던 주전자의 사고와는 상관없는 김종인이였지만 김종인의 두 눈을 들여다보면 왼쪽 어깨의 흉터는 마치 찢어지듯이 당기고 아팠다.
김종인은 김종인일뿐이라고 02 (부제: 왼쪽 어깨의 흉터)
길게 쓴다고 썼는데 짧, 겠, 죠? T_T;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암호닉은 항상 받아요! 5편쯤 필명 달 예정입니다. 예정은 예정일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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