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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엠이어요.
죽은 사람들을 볼 수 있는 내가, 그들과 산 사람을 구분 짓는 유일한 방법은 그림자였다. 죽은 사람은 그림자가 없다.
그리고,
11년만에 나타난 김민석도
그림자가 없다.
죽은 자의 도시 02
: 갑작스러운 봄처럼 넌
D- 30.
한 달 31일의 하루가 지났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 일없이, 그냥 평범하게.
나는 달력에 빨간 동그라미를 그리기 시작했다. 3월의 달력에 31개의 동그라미가 그려지면 너는 사라지려나. 어디로? 네가 있다는 외국으로? 그게 아니라면...,
한달보다 더 길 수도, 혹은 더욱 짧은 수도 있는 시한부적인 계산이었다. 나는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랬기에 펜을 잡은 손이 덜덜 떨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가차없이 동그라미를 그렸다. 이건 현실이니까. 부정하려 애를 써도 소용이 없는 걸 아니까. 그리곤 빨갛게 동그라미를 그은 달력을 책상 서랍 깊숙이 숨겼다. 민석이가 이것을 보고 물어본다면 난 뭐라 답을 해야 할지 모를테니.
"...김민석"
곤히 잠들어 있는 민석이를 나지막히 불렀다. 깨지 않을 정도로 아주 조용히, 속삭이듯이.
민석인 편안한 얼굴로 잠이 들어있었다. 가까이 다가서자 옅지만 작게 숨소리도 들려왔다.
꿈만 같다는 말, 식상하고 진부한 걸 알지만 지금 내 감정을 표현하기에 꿈만 같다라는 말만한 것이 없었다.
굳이 비좁은 내 침대를 파고 들었었다. 잠이 오지 않는다는 핑계로, 어젯밤 내 옆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던 너.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도 다 옛말이었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나와 함께 자겠다-,떼를 쓰는 너를 과감히 밀어내지 못 했다. 그건 나도 싫지 않아서 였겠지. 하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너와 함께 잠자리에 들었지만, 나는 그 순간 누구보다 행복했다. 심장이 두근거렸고, 그 두근거림에 뜬 눈으로 밤을 지새다 겨우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내 옆에 누군가의 온기가 있다는 것. 눈을 떴을 때, 차갑고 딱딱한 천장이 아니라 온전한 사람을 마주하며 잠을 깰 수 있다는 것. 그것은 너무도 행복한 일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라면 더욱이.
-민석아, 나 학교 다녀올게. 식탁에 반찬 꺼내놨으니까 일어나면 챙겨먹어. 설거지는 안 해도 되니까 놔둬-
그렇게 포스트 잇에 써서 민석이가 잘 볼 수 있도록 방 문 앞에 붙여두었다. 내키진 않았지만 나는 수업을 들으러 가야했다. 자체 휴강을 할까 잠깐 고민을 했지만 오늘은 중요한 전공 수업이 있는 날이라 어쩔 수 없이 집을 나섰다. 어김없이 봄햇살이 눈이 부셨다. 걸어가는 길에 보았던 벚나무의 꽃들이 하늘하늘히 바람에 흔들렸고, 나는 민석이와 벚꽃 구경을 가야겠다- 생각을 하며 학교에 도착했다.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그리고 고등학교까지 통틀어 대학교가 좋은 점은 굳이 친구가 없어도 내 생활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어릴 땐 같이 밥을 먹을 친구가 필요했고 방과 후 집으로 같이 갈 친구도 필요했으며, 놀이터에서 놀며 흙장난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 또한 필요했다. 하지만 대학교는 딱히 그렇지 않았다. 용건이 있지 않는 이상 서로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였고.
흔히들 말하는 아싸, 나는 그거였다. 아니, 정정하자면 다들 그랬다. 어쩌면 자발적인, 또 어쩌면 강제적인. 사실 굳이 친구를 사겨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 한 까닭도 있었다. 5살 이후로 쭉 그래왔고, 이제는 혼자가 더 편하고 익숙했으니까. 같진 않겠지만 다들 나와 비슷한 이유로 가까이 하지 않는 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별 과제같이 함께 과제를 해야 할 때에만 말을 섞을 뿐, 그 외의 시간엔 다들 어디론가 바삐 가버린다. 고등학교 친구를 만나러 간다던가, 동네 친구를 만나러 간다던가. 그 와중에 나는 편하게 만날 고등학교 친구, 동네 친구가 없다는 사실에 씁쓸했지만.
하지만 그 어디든지 예외란 있는 법이었다. 대학교에 진학하고 나는 경수라는 아이와 친해졌다. 민석이가 떠난 뒤, 나는 다시는 친구를 사귀지 못 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래서 미리 마음의 문도 굳게 닫아 놓았었고. 그런 나에게 꼭 민석이 같은 아이가 다가와 문을 두드렸었다. 안녕-, 하고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아,안녕...'
'입학식 되게 정신없다. 그치?'
얼핏 보면 민석이처럼 느껴질 정도로 비슷한 체격에 동글동글한 인상. 개구쟁이처럼 웃는 것도 꼭 닮았었다.
게다가 내 눈을 피하지 않고 말을 걸어오는 것도.
'같은 과니까 자주 보겠네. 우리 친하게 지내자'
'...응'
민석이는 내게 특별한 사람이었다. 그 특별한 사람을 누구에게 함부로 빗대어 말하긴 쉽지 않았지만, 적어도 민석이가 없던 지난 날엔 그랬었다. 어쩌면 민석이의 빈 자리를 채워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나는 학교에서 경수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들이 다반사였다. 물론 내가 먼저 나서서 밥을 먹자던가, 어디를 놀러가자-, 그런적은 없었다. 그럴 생각을 할 틈도 없이 경수는 내게 자주 연락을 했었고, 얼굴을 비추었고 매번 친절히 굴었다. 처음엔 과한 친절에 의구심이 들었었다. 얘가 나한테 왜 이러는 걸까, 바라는 것이라도 있는걸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한결같은 경수의 모습에 내가 한심해졌다. 먼저 다가오는 사람에게 조차도 마음의 문을 굳게 닫은 채 의심을 하니, 혼자일 수 밖에 없다고.
그렇게 경수는 내가 마음의 문을 열어 준 두번째 친구였다.
"왔어?"
"어..,응"
"되게 피곤해 보인다, 너. 잠 못 잤어?"
"조금 설쳤어"
강의실에 들어가니 경수가 미리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반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고, 나는 피곤한 몸을 이끌어 경수의 옆자리에 가방을 내려놓았다. 어제 민석이 때문에 잠을 설친 탓인지 눈 주위가 무거웠다. 관자놀이를 꾹꾹 눌러보아도 쉽게 깨지지 않는 피로감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자 경수가 가방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낸다. 그리곤 내 책상에 놓았다. 비타민 음료다.
"마셔."
"고마워, 경수야. 잘 마실게."
음료를 반 쯤 마시고 있을 때, 교수님이 강의실로 들어오셨다. 출석을 잠깐 부른 뒤 시작 된 수업은 3시간 동안 이어졌고, 나는 몽롱해져가는 정신을 간신히 붙잡은 채 강의를 들었다. 나중에 보니 전공책 여기저기 삐뚤빼뚤한 필기들이 가득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깜빡 졸았던 건가. 도통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는 글씨들이 곡선 모양으로 쭉 뻗어있었다. 그리고 그런 내 전공책을 본 경수가 말없이 제 필기 노트를 내어주었다.
"너 아까 조금씩 졸더니, 결국 필기 제대로 못 했네."
"아, 내가 졸았어?"
"어. 내 공책 빌려줄테니까 집 가서 다시 옮겨 적어"
또 다시 고맙다는 말을 했다. 경수는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시간을 확인 하니 점심 시간이었다. 경수가 오늘 메뉴로 짜장면이 어떻겠냐며 물어오길래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강의실 근처 휴게실로 향했다. 경수가 자리를 잡고 중국집에 음식을 주문했고 나는 가만히 의자에 앉아있다 문득 민석이가 궁금해졌다.
지금쯤 일어났겠지? 밥은 잘 챙겨먹었으려나.
손에 쥔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그러고 보니 민석이의 번호를 모른다. 하긴, 각자 휴대폰을 가지기도 전에 헤어졌으니까 모르는 게 당연한건가. 아니면 죽은 사람에게 당연히 휴대폰이 없는게 맞는 건가. 그거까진 나도 잘 모르겠다. 죽은 사람의 얼굴을 보고 말 한적은 있어도 휴대폰으로 문자를 주고 받거나 통화를 한 적은 없었으니까.
집에 가면 살짝이 물어봐야지-, 하고 휴대폰을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곧 문자가 하나 도착했다.
'밥 잘 먹었어. 맛있더라'
모르는 번호였다. 하지만 누가봐도 이건 민석이였다. 밥 챙겨 먹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놓일 때쯤 멈칫했다.
내 번호를 어떻게 안 거지. 알려준 적 없는데.
무엇보다 내가 지금 자기 생각하고 있다는 건 또 어떻게 안 걸까. 정말 귀신같다.
아,참 진짜 귀신인가.
그렇게 민석이의 생각으로 짜장면이 입으로 들어가는 지 코로 들어가는 지도 모르게 먹었다. 대충 점심을 먹고 난 뒤엔 남은 강의를 들으러 강의실로 향했는데, 수업 내내 나는 온통 민석이 생각 뿐이었다. 지금은 뭘 하고 있을까, 티비를 보고 있을까, 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 설거지를 하고 있을까. 아까 문자를 받은 번호로 연락을 해볼까 고민도 했다. 그리고 학교를 마친 뒤엔 민석이가 입을 만한 옷을 사가야겠다 생각했다. 민석이가 쓸 만한 세면 도구나 칫솔 같은 것들도 몽땅.
결국 강의는 제대로 듣지 못 한 채 끝이 났다. 수업 내내 멍 때리던 내 모습을 본 경수가 어디 아픈데 있냐며 걱정스레 물어왔고, 나는 그저 고개를 저으며 피곤하니 먼저 가겠다는 말만 하고 혼자 학교를 벗어났다. 오는 길에 민석이에게 필요한 생필품들을 사는 것은 잊지 않고.
집으로 돌아오니 민석이가 소파에 앉아 티비를 보고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내 앞으로 다가 온 민석이 대뜸 나를 껴안았다. 민석이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나는 당황한 채 눈만 멀뚱히 뜨고 있었고 민석인 심심했다며 아이처럼 찡얼거렸다.
"얘가 왜이래, 애처럼"
"너무 심심했어"
"밖이라도 나갔다 오지. 내내 집에 있었어?"
"응. 너 내일부터 그냥 학교 안 가면 안 되냐?"
"안 가면 뭐하게?"
"그냥, 이렇게 안고있게"
어릴 때도 민석인 표현이 확실했다. 좋으면 좋다-, 싫으면 싫다- 말 할 줄 아는 확고한 성격이었고 동시에 애정표현도 서슴치 않는 면이 있었다. 지금처럼 말이다.
그러는 반면에 나는 애정표현에 서툴렀다.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민석이의 살가움이 어색했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 지 몰랐고, 무슨 말을 해야 할 지도 몰라 그냥 웃었다. 그리곤 자연스레 민석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근데,
"왜?"
"..어?"
"표정이 왜 그래?"
"아,아니야. 아무것도"
만져진다. 민석이가.
그럴리가 없는데, 만져질리가 없는데..
민석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순간 아차 싶었다. 어차피 민석인 죽은 사람이었으니 만져지지 않을게 뻔했다. 그걸 알면서도 자연스레 올라간 내 손이 미워지려는 찰나, 손 끝에 닿은 선명한 촉감에 놀랐다. 티를 내지 않으려 했지만 나도 모르게 놀란 표정이 드러나자 민석이가 왜 그러냐며 물어왔다. 대충 얼버무리곤 이번엔 내가 다시 한번 민석이를 껴안았다. 표현이 서툰 내가 대뜸 그러자 민석이 '네가 웬 일이냐-' 그런다.
두번째 껴안았을 때에도 확실하게 느껴졌다. 민석이의 몸이.
손에 닿은 촉감이 따듯했고 온기가 있었다. 나는 믿을 수가 없어 고개를 도리질했다. 이게 아닌데..., 죽은 사람의 영혼이 만져질리가 없는데..
나는 더 확인하고 싶어졌다.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민석이를 데리고 햇빛이 내리쬐고 있는 창가로 향했다. 민석인 내 행동을 이해하지 못 하는 듯,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창가 앞에 섰다.
봄 햇살이 민석이의 위로 쏟아져내렸다. 따듯하게, 강렬하게.
그리고,
민석이의 그림자가 보인다.
.
.
.
.
.
"이것도 입어봐"
"많이도 샀네, 정말"
"아, 빨리! 얼른!"
"알겠어. 갈아입고 나올게"
민석이의 그림자를 확인 한 뒤엔 확실해졌다. 민석이는 살아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봐온 것들은 뭘까. 처음 만나던 날, 보이지 않던 그림자와 아무리 먹어도 사라지지 않던 음식들.
나는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으니까.
갈수록 혼란스러움만 가증되자 나는 또 다시 확인 할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사진이었다.
죽은 사람들은 카메라에 모습이 담기지 않는다. 그래서 아무리 사진을 찍어도 결과물 속엔 텅 빈 공간만 꽉 채워져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민석이를 찍어보기로 했다. 집에 오는 길에 사온 옷들을 싹 다 입어보라는 핑계를 대면서.
"자자, 김민석! 김치!"
"또 찍어?"
"빨리빨리! 김치!"
"김치-"
그렇게 거의 열 몇장 가량을 찍은 것 같다. 민석이도 꽤 지쳐보이고 이쯤이면 되겠지 싶어 그만하자, 그랬다. 그리고 나는 화장실로 갔다. 손에 휴대폰을 꼭 쥔 채로.
민석이의 그림자, 그리고 손에 닿는 촉감. 그렇게 두어번 정도 확인하긴 했지만 그래도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거울을 보며 크게 심호흡을 내쉬었다. 후하- 후하-.
"...제발"
두 손에 꼭 쥔 휴대폰을 선뜻 펼치지 못 한 채 그렇게 중얼거렸다. 제발...., 제발, 민석이가 사진 속에 오롯이 있었으면.
그리곤 다시 한번 크게 숨을 내쉬고 갤러리를 눌렀다.
".....하,이게 뭐야"
내가 걱정했던 바와 달리 민석인 너무도 선명하게 사진 속에 남아있었다. 개구지게 웃는 모습. 어설프게 김치- 하고 이를 드러내는 모습. 야무지게 두 손을 얼굴 옆에 맞댄 채 브이 하는 모습. 나는 여럿의 사진들을 수십번을 확인하고 넘기고 확인하고 넘기고를 반복했다. 휴대폰이 뜨거워질 때까지, 계속.
그리고 밖에서 민석이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리자,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나는 급하게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화장실을 나왔다. 민석인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어디가게? 하고 묻자 씩, 웃으며 그랬다.
"벚꽃 보러가자"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잘도 찾아 얘기한다 싶었다. 벚꽃 보러 가자는 말, 오늘 아침부터 나도 하고 싶었는데..
나는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고 나갈 채비를 했다. 들뜬 마음으로, 샐쭉이 나오는 웃음을 감추지 못 한채. 민석이가 무슨 좋은 일이 있냐며 물어왔다. 나는 그저 웃었다.
하루가 다르게 매일매일 천국과 지옥을 넘나드는 기분이었다. 오늘은 천국이다. 그렇다면 내일은 지옥일까?
하지만 무섭지 않았다. 맞잡은 민석이의 손이 따뜻했으니까. 그게 나에게 무엇보다 강력한 방공호다.
*****
신이 났다. 좋아하는 벚꽃 놀이를 온 것도, 민석이와 손을 잡고 있는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
"저기, 죄송한데 저희 사진 좀..."
"아, 네! 찍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민석아, 빨리 이리와!!"
사람들의 눈에 민석이가 보이는게 확실하다는 것도. 우리의 사진을 부탁해도 거리낌없는 표정들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비로소 믿을 수 있었다.
민석이는 살아있다. 죽은게 아니야. 그래, 내가 착각을 했던게 분명하다. 무언가를 잘못 본 게 틀림없어.
"자, 찍습니다! 하나, 둘, 셋!"
"김치-"
나는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환하게 웃었다. 곧 찰칵- 하는 셔터 소리가 들렸고 다시 카메라를 건내받았다. 그리고 바로 사진을 확인했다. 역시나 민석인 내 옆에서 함께 브이를 하고 있었다. 그 사실에 또 한번 짜릿했다.
"오늘 사진만 도대체 몇 번째야"
"왜에-, 좋잖아"
"좋아?"
"응."
"그럼 나도 좋아"
저렇게 예쁜 말만 골라서하니 안 좋아하고 배기겠어?
이번엔 내가 먼저 민석이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팔짱을 꼈다. 표현이 서투른 내가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었는데, 민석인 이제 놀랍지 않은 듯한 얼굴이었다. 그냥 다정하게 웃으며 오늘따라 예쁜 짓 많이 하네-,하며 내 머리를 두어번 쓰다듬었다.
그러다 문득 든 생각이었는데, 올해는 봄이 유독 빨리 온 듯 했다. 아직 3월 초인데 서울에 벚꽃이 만개하다니.. 아무리 온난화가 심해졌다해도 이정도까진 아닐텐데 말이다. 일주일 전까지만 해도 쌀쌀한 날씨가 여전히 겨울이었는데, 민석이가 나타난 그 날부터 봄이었다. 신기하게도.
하지만 딱히 나쁠 건 없다는 생각에 그러려니 넘겼다. 그리곤 민석이와 팔짱을 낀 채로 만개한 벚꽃 나무 길을 한참 걸었다. 여느 커플들과 마찬가지로.
근데 잠깐만, 우리 사귀는 사이..인건가?
"저기..민석아"
포옹도 했고 팔짱도 꼈다. 손도 잡았었고, 무엇보다 한 지붕 아래 같은 침대에서 잠이 들고 깼다. 이 정도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대놓고 커플이었다. 물론 나도 알고 있었고. 오히려 우린 평범한 커플을 넘어서 결혼 직전의 동거하는 커플 정도의 사이같다 싶었는데, 그래도 나는 확인하고 싶었다. 나도 여자였으니까. 확인하고 확신 받고 싶었다.우리 사귀자, 우리 만나자, 이런 진부하고 뻔한 말들 나도 듣고 싶었다.
"응, 왜?"
"우리 무슨 사이야..?"
"무슨 사이?"
"응, 그러니까 나는 너한테 뭐야..?"
걸음을 멈추고 그렇게 물었다. 그냥 확인하고 싶어 물어 본 말이었는데 막상 얘기하고 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는 너한테 뭐냐니,너무 유치한 질문인가..
민석인 내 물음에 바로 답하지 않았다. 꽤 오래 생각을 하는 듯 했는데, 그럴수록 나는 괜한 걸 물었나 싶어 가슴이 콩닥콩닥 거렸다.
그러다 민석이가 할 말이 생각난 듯, 아! 하며 나를 쳐다봤다.
"내 색시,"
"...."
"가 될 사람?"
"그 물음은 뭐야? 색시면 색시지"
"물론 나는 니가 내 색시가 되었으면 좋겠지만,"
"..."
"넌 그렇지 않을 수도 있잖아"
그러곤 멋쩍게 웃는 민석이를 보며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그냥"
"그냥?"
"나보다 좋은 남자는 많으니까.."
아니야, 민석아. 멋있고 좋은 남자들은 많지만 너만큼 좋은 남자는 없어.
차마 말 하지 못 하고 입안에서만 맴돌았다.
민석인 그렇게 말 끝을 흐리더니 잠깐 입을 다물었다. 답지않게 기가 죽은 민석이의 모습이 어색했다. 이럴 때 난 뭐라고 해야할까. 민석이에게 위로를 받기만 했지 준 적이 없어 고민하고 있는데, 민석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도 난 너한테 장가갈 거다"
"그게 뭐야.."
"변함없이 네가 좋을거라는 말이야. 그러니까 우리가 무슨 사인지, 니가 나한테 어떤 사람인지 같은 쓸데없는 고민 하지마"
"..응"
"그리고 사실, 나 지금 되게 고집부리고 싶어"
"...."
"너도 나한테 시집오라고. 그러면 안되겠냐고."
"..."
"손에 물 한방울 안 묻히게 살게 하겠다, 뭐 그런 말들도 하면서 너한테 매일매일 고백하고싶은데.."
"..."
"일부로 안 하는거야"
"..왜?"
"언제든지 도망가라고"
"..."
"너한테 매달리는 건 나만 할테니까, 넌 편하게 내 옆에 있다가 내가 싫증나면 언제든지 도망가버리라고. 그래서."
그리고 민석인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럴리 없다고, 나도 너한테 꼭 시집을 갈거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 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야, 김민석.
그렇게 우린 말 없이 다시 걷기 시작했다.
.
.
.
.
.
한참 벚꽃을 구경하다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었다. 오래 걸은 탓에 다리도 아프고 마침 저녁 시간이라 근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기로했다. 민석이가 파스타가 먹고 싶다길래 파스타 집을 찾아 들어갔다. 평일이었지만 다들 우리처럼 짬내서 나들이를 나온 건지, 식당 안에 사람들이 꽤 있었다.
"난 봉골레. 민석이 넌?"
"난 크림소스 먹을래"
"그렇게 주세요"
주문을 마치고 기다리는 동안 할 짓이 없어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갤러리를 눌러 오늘 찍은 사진들도 보고, 괜히 민석이의 발을 툭툭 건들면서 장난도 치고.
그렇게 이야기 꼬리를 늘려가고 있는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서 뭐해?"
"어, 경수야!"
우리 테이블 옆을 지나치던 남자가 다시 돌아오더니 그랬다. 올려다보니 경수였고. 민석인 누구냐는 듯 눈치를 주었다. 나는 과 친구- 라고 답하곤 경수와 말을 이었다.
"놀러 온거야?"
"응. 벚꽃 보러. 너도?"
"아니, 난 그냥 친구들이랑 파스타 먹으러. 근데, 누구..?"
"아, 인사해! 김민석이라고 내 친ㄱ..,"
경수가 곁눈질로 민석이를 가르키자 나서서 소개를 했다. 그러다 자연스레 튀어나온 친구소리에 잠깐 멈칫했다가 다시 답했다.
"내 남자..친구야"
"진짜?!"
"어..응..."
남자친구라고 소개를 하긴 했는데, 그 남자친구라는 단어를 내뱉고 나니 뭔가 간질간질한게 닭살이 돋았다.
원래 그런가, 남자친구라는 말이..
누구한테 소개를 해 본적이 있어야 말이지.
그렇게 소개를 하고 민석이를 흘낏 쳐다보니 큭큭 대며 웃고있었다. 겨우 남자친구라는 말 한번하고 쑥쓰러워 하는 내 모습이 우스웠을까.
나는 괜히 민망해서 재빨리 화제를 바꿔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경수는 여전히 민석이에게 관심있는 표정이었다.
"친구랑 같이 왔다며? 어딨어?"
"아직 도착 전. 저..,안녕하세요. 도경수라고해요."
"예,안녕하세요. 김민석입니다"
"남자친구가 있는지 몰랐어요. 말은 안 해서"
"아..,네. 과 친구 분이시라고.."
"네. 제일 친해요"
"친해요?"
"네. 같이 놀러도 자주 다니고 그랬었는데, 얘기 못 들으셨나봐요"
"...제가 외국에 쭉 살다가 한국에 들어온 지 얼마 안되서요."
민석이는 붙임성이 꽤 좋은 편이었다. 그래서 낯선 사람들과도 줄곧 대화를 잘 트곤 했는데, 지금은 영 다른 사람 같았다.
불편한 표정에 어색한 웃음. 보고 있는 내가 다 민망해질 정도였다.
"섭섭하다, 너. 나한테 말도 안 해주고"
어느새 내 어깨에 손을 올린 경수가 그랬다. 난 그저 말없이 웃음으로 답했고 민석인 그런 우리를 가만히 쳐다보고있었다.
"주문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딱히 할 말도 없고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끝맺어야 하나- 하고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주문했던 파스타가 나왔다. 그렇게 대화는 일단락됐다.
경수완 나중에 연락을 하겠다- 그러고 헤어졌다. 그렇게 다시 나와 민석이, 둘이 남았는데 민석인 말없이 파스타를 먹고 있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괜히 눈치가 보여 나도 조용히 포크를 집어들었다. 그리고 적당히 파스타를 감아올려 입에 딱 넣으니 민석이가 그랬다.
"남자친구 없다며"
"내 남자친구 너 잖아"
"당연히 니 남자친구는 나고, 난 남자인 친구까지 포함해서 그때 물어본거야"
"..너 설마 질투해?"
"그건 아니야"
그러고 민석인 다시 파스타를 먹기 시작했따. 입 안에 우겨넣듯이 와구와구.
질투하는 거 맞네,뭐.
사실 나는 이런 민석이의 모습이 처음이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게, 생각해보면 나는 여지껏 민석이가 질투를 할 만한 여지를 준 적이 없었다. 언제나 민석이와 함께였고 얘기를 할 때에도, 근처 가까운 곳에 잠시 놀러갈 때에도 그랬었다. 친구가 민석이뿐이었으니까. 그런데 대뜸 나랑 제일 친하다며, 자주 놀러 다녔다, 심지어 자연스레 스킨쉽까지 해대는 남자애가 나타나니 당황스러운게 당연한건가.
"민석아, 경수 그냥 친구야"
"알아, 니가 친구라고 소개했잖아"
"근데 너 표정이 왜 그래"
"내 표정이 뭐"
"이거봐. 말투도 틱틱대고. 솔직히 너 질투하는거지?"
"..파스타나 먹어"
감정표현에 솔직한 애가 제 감정을 숨기니 저런 표정이 나오나보다. 불퉁한 얼굴에 삐죽한 입술. 나는 혼자서 큭큭 대다가 째려보는 민석이를 보고 조용히 파스타를 먹었다.
집으로 가는 내내 민석이는 경수 이야기를 했다. 대체 둘이서 어딜 놀러다닌 거냐며, 학교에서 만나면 뭘 하고, 집 가서 연락할거냐-, 뭐 그런 자잘한 이야기들.
그러다보니 금세 집에 도착했다. 민석이는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갔고 나는 편한 옷으로 갈아입기 위해 방으로 왔다.
"아, 피곤해.."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걸터앉자 피곤이 몰려왔다. 그대로 뻗어 자고 싶었지만 민석이도 있는데 그럴 수는 없지- 싶어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생각 난 달력. 아침에 책상서랍에 넣어두었던 달력이 생각이나 꺼냈다.
"동그라미 안 쳐도 되려나.."
애초에 민석이가 죽은 사람이라 생각하고 그렸던 동그라미였다. 길면 한달 쯤 한국에 있을거 같다 그래서 펜을 들었던거고.
뭐,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아 그럴 필요가 없어지긴했지만.
결국 다시 달력을 서랍에 집어 넣었다. 그리고 방을 나오니 민석이가 막 씻고나와 머리를 털고있었다.
"민석아"
"응?"
"너 외국 어디에 살고 있는거야?"
"미국"
"멀리도 갔네"
"그래도 바다 건너 내가 이렇게 왔잖아"
어깨를 으쓱하며 민석이가 그랬다.
"언제 돌아갈건데?"
"글쎄.."
"한 달뒤에?"
"어제까진 그랬는데 조금 앞당겨 질 수도 있을거같아"
"왜!?"
"오빠 간다니까 섭섭해?"
"오빠는 무슨.."
그러면서 민석이의 손이 내 머리를 헤집어놓았다.
"얼른 씻어. 피곤할텐데"
그러고 민석인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 왜인지는 끝까지 말해주지 않은 채.
그래서 나도 그냥 씻으러 화장실로 들어갔다. 일찍 갈 수도 있다는 말이 두고두고 섭섭해 씻는 내내 그 생각이었다. 김민석은 아쉽지도 않은가..
씻고 방으로 들어오니 민석이는 책상 앞에 앉아 뭔갈 쓰고있었다. 내가 뭐냐고 물어보자 '일기' 하고 답했다.
"너 일기도 써?"
"응"
"일기장 되게 오래된 거 같은데.. 언제부터 쓴 거야?"
"미국에 있을 때부터. 처음 갔을 때, 말이 안 통하니까 답답하더라고. 그래서 일기 쓰기 시작했는데 습관이 되서 지금까지 쓰고있어"
"나 봐도 돼?"
"당연히 안돼"
"왜에- 궁금하단말이야. 너 미국가서 어떻게 지냈는지 그런거."
"이거 다 쓰고 얘기해줄게"
"알겠어"
그리고 포기하는 척 돌아서다 민석이의 일기장으로 손을 뻗었다. 하지만 예상했다는 듯 민석이가 재빨리 일기장을 들어올렸고 결국 난 책상에 손바닥만 세게 내려치는 꼴이 됐다.
"넌 참 뻔해"
"궁금하단말이야!"
"알겠어, 가자. 얘기해줄게"
하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민석이가 일기장을 덮었다. 그리고 내 허리에 손을 두른 채 침대로 향했다. 나는 꼭 자기 전에 엄마가 동화책을 읽어 주겠다는 소리에 솔깃한 아이처럼 민석이의 옆에 누웠다. 그렇게 민석이와의 두번째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 마무리 이상?? 갈수록 내용 똥망??? 분량도 개망?? 망테크????????????
저 좀 일찍 왔어요ㅋㅋ 왜냐면,
"그냥."(밍소기 따라하기)
그리고 브금 계속 안 바뀌고 있는데, 제가 생각하는 이 글의 분위기에 어울리는게 저거 밖에 없어요ㅠㅠㅠㅠ(사실, 음악 잘 몰ㄹ.....쉿(찡긋-★))
근데 여러분, 민석이 죽었나요? 안 죽었나요?
그건 며느리도 몰러.
*암호닉*(이렇게 계속 쓰는거 맞쬬?!!!! 사실 글잡 처음이라 잘 몰라용. 다른 작가님들 글 보다가 암호닉이 뭔지 알았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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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잘 읽고 있어용~ 사랑합니다 여러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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