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cm - 애상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땐 이렇게 대처하세요
W. 뽀베
솔직히, 그땐 김태형을 보자마자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지금 얘가 장난치는건가 싶기도 하고. 그러니까, 때는 저번 내 생일날이었다. 평소같았다면 열두시 정각이 되자마자 긴 카톡을 보냈을 김태형인데, 웬일인지 짧은 카톡도 보내지 않는 김태형이었다. 분명 어제까지는 잘만 하던 카톡이었는데, 핸드폰이 고장 났다고 말한 적도 없고. 꾸준히 알람이 뜨는 페이스북에 혹여 글을 남겼을까 확인해봐도 김태형의 글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또 페이스북은 접속 중이고. 답답함에 먼저 카톡을 보내볼까 했지만 어쩌면 김태형이 이벤트를 준비하느라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그냥 핸드폰을 침대 위로 던져버렸다. 그래도 그렇지, 생일 축하한다고 카톡 한 줄 남겨주면 어디가 덧나나. 입술을 삐죽 내밀고 김태형의 생각을 하다 이불을 뒤집어썼다. 내일 아침에는 와 있겠지.
다음날 아침에도 김태형에게선 연락이 없었다. 이젠 슬슬 걱정이 되기도 했다. 어디 다친 건 아닐까. 바쁘게 등교할 준비를 하며 자꾸만 핸드폰을 확인해봤으나 그 흔한 문자도 오지 않는 김태형이었다. 있다가 학교에 가면 김태형부터 찾아가야겠다. 하필이면 반은 또 갈려서. 시무룩해진 표정으로 집을 나섰다. 작년 생일에는 집 앞까지 찾아와서 같이 갔었는데. 서운함이 물밀듯이 몰려왔다.
"야, 김태형!"
등교를 늦게 하는 김태형이기에 부러 1교시가 끝난 후에 김태형을 찾아갔다. 쩌렁쩌렁 김태형의 이름을 부르며 김태형네 반 교실 문을 열자 제 자리에서 여자아이들과 떠들며 웃고 있는 김태형이 보였다. 혹시 돌았나, 저게. 내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아주 멀쩡한 모습으로 여자아이들에게 둘러싸인 김태형에 인상을 팍 찌푸렸다. 제 이름을 부르는 나를 쳐다보는 김태형의 표정은 해맑기만 했다. 나랑 반 떨어지고나서 요새 아주 살맛났지, 김태형.
"김태형."
"어, 우리 자기 왔어?"
"누가 네 자기야."
"아, 왜 그래. 자기, 뭐 화난 거 있어?"
"너 오늘 무슨 날이야."
"오늘?"
"... 진짜 모르냐?"
"무슨 날이야, 오늘?"
"내 생일이잖아, 개새끼야."
서운함이 폭발해 결국엔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울먹거리며 내 생일이라 말하자 안 그래도 큰 김태형의 눈이 더욱 커졌다. 아, 맞다. 당황한 듯 나를 쳐다보는 김태형이다. 설마했는데, 설마가 진짜가 되다니. 괜한 자존심에 김태형 앞에서 눈물을 흘리기는 싫어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페이스북에 알림도 떴을 텐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끅끅거리며 복도를 걸어가자 김태형이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것이 들려왔다. 다급히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내 어깨를 잡는 김태형에 손을 뿌리치고 뒤를 돌았다. 이거 뭐 막장 드라마도 아니고. 복도 한복판에서 이러는 것도 짜증났지만 더욱 짜증나는 것은 김태형이었다.
"진짜,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응?"
"아, 됐다고. 필요 없어."
"미안해, 정말."
"됐어, 그냥 헤어져."
"뭐?"
김태형의 표정이 무섭게 굳어졌다. 이런 적이 한두번이야? 그냥 헤어지자고. 내 말에 김태형이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김태형 앞에서는 진짜 울고 싶지 않은데. 눈물이 자꾸 흘러나와 신경질적으로 눈물을 훔쳐냈다. 그와중에 내가 우는 것이 걱정이 되었는지 김태형은 손을 뻗어 내 눈물을 닦아냈다. 하지마. 김태형의 손을 내쳤다. 헤어지자니까, 이제 와서 왜 그래. 담담한 척 김태형을 노려보자 김태형이 한숨을 폭 내뱉으며 제 머리를 쓸었다.
"... 진짜야?"
"뭐가."
"헤어져도 괜찮을 것 같아?"
"넌 괜찮겠지. 여자애들이 주위에 넘쳐나니까."
"너, 진짜,"
"헤어져, 필요 없으니까."
그대로 뒤를 돌아 당차게 걸어갔다. 찌질하게 눈물은 왜 나오냐고. 애써 괜찮은 척 했지만 어깨가 조금씩 들썩거렸다. 복도에 있던 아이들이 김태형과 나를 보며 수군대기 시작했다. 김태형이 뭘 보냐며 아이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런 김태형을 무시하고 반으로 되돌아가 자리에 엎드려 하염없이 울었더란다. 아마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생일이었던 것 같다. 여기까지가 김태형과 내가 헤어지게 된 과정이다.
헤어진 지도 벌써 몇개월이나 지났다. 처음엔 정말 헤어진 것이냐며 호들갑을 떨던 친구들도 이제는 가끔 내게 김태형의 소식을 전해줄 뿐이었다. 말 안 해줘도 아는데, 지지배들. 페이스북이랑 카톡이 괜히 있겠냐. 쓸데없이 눈물 겨운 우정이었다. 아직도 난 김태형을 보면 괜스레 마음 한 구석이 찌릿거리는 것 같아 김태형을 피해다녔다. 이런 나와 달리 김태형은 엄청 잘 사는 것 같았고. 하긴, 김태형은 잘났으니까. 지루한 수업시간, 고개를 돌려 운동장을 내려다보자 보이는 김태형의 웃는 모습이 나를 더욱 씁쓸하게 만들었다. 헤어지자고 한 건 난데, 왜 찌질한 구여친 역할은 나인건지.
김태형과 헤어진 후로는 카톡 프사를 내 사진으로 해놓은 적이 없었다. 그에 비해 김태형은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카톡 프사를 제 사진으로 해놓았다. 오늘도 김태형의 카톡 프사를 몰래 염탐하는 내가 한심하기만 했다. 사귈 때는 나랑 찍었던 사진도 많이 해놨었는데. 나랑 헤어지고난 후 아직 여자친구를 사귀지 않은 김태형이지만 언젠가 프사를 제 여자친구와 찍은 사진으로 해놓는다면 그대로 울음을 터뜨릴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야, 마음 약해지면 안돼. 내가 김태형을 찬 거니까. 김태형처럼 당당해지고 싶어 급히 카톡 프사로 올릴 내 사진을 찾아보았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진짜."
결국 그나마 잘 나온 사진으로 바꿔놓은 내 프사를 내려다보다 헛웃음이 나와 핸드폰을 저 멀리 던져버렸다. 정말 찌질하다, 나. 찌질한 구여친의 표본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떨어진 핸드폰을 주섬주섬 들고와 홀드키를 딸깍거렸다. 김태형도 내 프사를 볼까. 김태형이라면 왠지 보지 않을 것 같았다. 가끔 가다 나와 마주칠 때면 냉정하게 나를 무시하고 지나갔던 김태형이니까. 사실 김태형 같은 벤츠남도 내 인생에 다시 존재하기도 힘들텐데. 괜히 헤어졌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진짜 이러면 안되는데.
감흥 없이 페이스북을 훑어보다 상단바에 뜬 카톡 알람에 카톡을 확인하려 들어갔다. 정호석이었다. 새벽이 되었는데도 활발하기만 한 정호석의 카톡을 보자 문득 웃음이 터졌다. 김태형 프사 바꿨던데. 잘만 카톡을 하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정호석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걸 나한테 왜 알려주는데. 그러면서도 어느새 내 손은 김태형의 카톡 프로필을 확인하고 있었다. 어, 뭐지. 김태형의 상메도 바뀌어 있었다. 웬만하면 상메를 잘 바꾸지 않는 김태형인데. 너무 짧다. 김태형의 상메에 심장이 쿵쾅거렸다. 방금 내가 바꿔놓은 프사가 교복을 입고 찍은 사진이었는데. 설마, 김태형이.
머릿 속이 혼란스러웠다. 김태형이 정말 나한테 한 말일까. 아니다, 그냥 다른 사람한테 한 말인데 괜히 내가 이러는 거면 어떡해. 입을 벙긋거리다 결국 나도 상메를 바꾸었다. 뭐가. 상메를 바꿔놓은 후 김태형의 상메도 바뀌기를 바랬지만 좀처럼 바뀌지 않는 김태형의 상메였다. 역시나. 실망스러움을 애써 감추고 핸드폰 홀드키를 눌렀다. 혹시 김태형이 내 상메를 아직 못 본 걸 수도 있으니까. 머릿 속 한 구석에서는 조그만 희망이 생기기도 했다. 다시 상메를 바꿔놓을까 하다가 그냥 놔두었다. 혹시, 혹시 모르니까.
"야, 뭘 그렇게 열심히 보냐."
"어, 어? 아니야."
며칠째 김태형의 상메는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면 그렇지. 책상에 엎어져 김태형의 프로필을 하염없이 바라보다 내 등을 철썩 치며 말을 거는 정호석에 화들짝 놀라 핸드폰을 황급히 주머니 속으로 넣었다. 뭐야, 수상해.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쳐다보는 정호석에게 아니라며 변명을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매점에서 뭐 사주기로 했잖아. 얼른 가자. 정호석의 팔을 붙잡고 교실 밖으로 나갔다. 정호석과 떠들며 복도로 나오자마자 눈 앞에 보이는 김태형이다. 대체 왜 이렇게 싱숭생숭 할 때만 김태형을 맞닥뜨리는 건지. 김태형이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김태형이 너 쳐다보는데. 정호석이 조그맣게 속삭였다. 됐어, 신경 꺼. 정호석에게 그렇게 대답을 하긴 했으나 신경이 쓰이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애써 김태형을 무시하며 매점으로 향했다. 사람이 붐비는 매점을 보자 입이 절로 떡 벌어졌다. 저걸 어떻게 뚫냐며 칭얼대는 정호석을 강제로 사람들 사이로 밀어넣은 뒤 뒤로 빠져 벤치에 털썩 앉았다. 할 것 없이 정호석을 기다리고 있으니 또다시 호기심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김태형의 상메가 바뀌었을까.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다시 한 번 김태형의 프로필을 확인했다. 아직도 바뀌지 않았다. 나 혼자 뭔 난리를 친 거야. 한숨을 폭 내쉬며 상메를 지우려는 순간,
"... 어!"
치마. 짤막하게 김태형의 상메가 바뀌었다.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거, 이거 나한테 한 거 맞지. 입술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아 혀로 입술을 한 번 훑었다. 그린라이트인가. 아니, 그린라이트라는 말은 좀 웃긴데. 당황스럽긴 했지만 왠지 기분이 좋았다. 어느새 나도 모르게 올라간 입꼬리에 재빨리 표정을 굳혔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나는 아직도 김태형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진짜, 주책이지. 주책이긴 한데, 좋다.
"뭐가 그렇게 좋아서 실실대냐."
"뭐, 아니거든?"
"지나가던 개새끼가 웃겠네."
"아니라니까. 과자는 사왔냐?"
"어, 여기. 하여간, 돼지. 진짜."
"이렇게 예쁜 돼지가 어딨어."
"내 인생에서 사라져 줬으면 좋겠다."
"나 사라질까? 사라져?"
기분이 좋아져 정호석의 앞에서 깝죽대며 걸어가자 또다시 마주친 김태형이다. 나 오늘 진짜 뭐 있나. 평소처럼 나를 무시하지도 않은 채 내 앞에서 나를 빤히 내려다보는 김태형에 눈을 도르륵 굴리기만 했다. 이거 뭐 어떻게 해야하지. 정호석도 당황한 듯 어버버거리며 나와 김태형을 번갈아보기만 한다. 김태형과 나랑 둘 다 친한 정호석이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던 정호석은 그냥 먼저 가버렸다. 당황스럽긴 나도 마찬가지인데, 먼저 가버리면 어떡하자는거야. 울상을 지으며 정호석을 따라가려고 하자 김태형이 내 어깨를 잡는다. 진짜, 얘가 왜 이런대.
"봤어?"
"... 뭘."
제 상메를 말하는 것 같긴 한데. 모른 척하며 시치미를 떼며 말하자 김태형은 제 손가락으로 내 치마를 가리켰다. 짧다고. 솔직히 어이가 없기는 했다. 내가 김태형에게 말했던 것처럼, 김태형과 나는 헤어졌는데. 씁쓸하긴 했지만 이게 현실이었다. 내 치마가 짧은데 어쩌라고. 퉁명스럽게 김태형에게 말하자 김태형이 제법 엄한 표정을 짓는다. 마치 애를 다루듯 나를 대하는 김태형에 웃음이 터질 것 같았다. 아, 안돼. 차가움이 내 컨셉이야. 웃음을 참으려 인상을 찌푸리자 김태형은 내 미간을 직접 손가락으로 펴주기까지 했다.
"왜 이래, 너."
"오해한거야."
"뭘 오해해. 내 생일 잊어버린 건 너였으면서."
"아니야! 몰카하려고 했었단 말이야."
"그럼 그때 몰카라고 말했으면 됐잖아."
"당황해서 말이 안 나왔어."
"허, 웃기시네. 그냥 잊어버린 거 맞다고 말해."
"진짜야, 다른 애들한테 물어봐도 돼."
"그럼 그 여자애들하고는 왜 떠들고 있었는데."
"그것도 몰카."
"그래도 카톡 한 줄이라도 보내주면 어디가 덧나?"
"완벽하게 하려고 했지."
"말이 안 통한다, 너."
헤어졌던 그날처럼, 김태형과 나는 또다시 복도 한복판에서 말싸움을 하고 있었다. 분명 시작은 좋았는데, 김태형의 말을 듣다보니 갈수록 어이가 없어졌다. 아니다, 그냥 헤어지길 잘한 것 같다. 김태형을 밀어내고 가려하자 김태형이 내 손목을 잡아챘다. 대체 나랑 김태형은 애들 앞에서 드라마만 몇번째 찍는 건지 모르겠다. 뭐하는거야, 놔. 손목을 붕붕 흔들었지만 김태형은 쉽게 내 손목을 놔주지 않았다. 힘은 더럽게 세서. 그냥 포기하고 김태형을 바라보았다.
"미안해."
"미안해 할 게 뭐가 있어. 헤어졌는데."
"잘못했어."
"제발, 좀."
"다시 사귀자."
"뭐라는거야."
"내가 더 잘할게."
"싫어."
"내가 너 진짜 좋아하는 거 알잖아."
"모르는데?"
"사랑해."
정말이지, 김태형은 말이 통하질 않았다. 그런 김태형을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어서라도 웃음이 픽 터져나왔다. 내 눈치를 보던 김태형은 내 웃음에 금방 표정이 환해졌다. 이런 김태형을 제가 어쩌면 좋을까요. 알겠어. 해탈한 채 말하자 김태형이 정말이냐며 함박 웃음을 짓는다. 내가 김태형을 어떻게 이기겠어. 고개를 끄덕거리자 김태형은 신난 듯 방방 뛰더니 나를 들쳐멨다. 아니, 잠깐. 김태형, 뭐하는거야. 치마는 계속 신경이 쓰였는지 내 치마를 꽉 잡은 채 복도를 질주하는 김태형이다. 이게 무슨! 김태형의 등을 쳐대자 김태형이 크게 소리를 지른다.
"행복하게 살게요!"
"야!"
"결혼하자!"
그래서, 결론은 내가 김태형한테 졌다고. 못 말린다,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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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여 여러분... 예... 사실 시리즈임. 나름 시리즈에여ㅠㅠㅠㅠㅠㅠㅠ 달달한 해피엔딩이 이번 시리즈입니다.. 근데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죠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도 잘 알아요ㅎ.. 하...태태야 미안해 독자님들도 미안해여ㅠㅠㅠㅠㅠㅠ 그럼 오늘도 망글 놓고 갈게여..... 다음 주자는 정국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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