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흔한 로맨스 Prolog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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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서로의 시선이 얽히고 그 작은 눈이 하얗게 촉촉한 것까지 선명하게 보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헉헉 소리를 내며 오만 인상을 다 쓰고 있던 내 얼굴이 멍하니 멈췄다. 수풀 사이에 비스듬히 앉아서 여러 가지 잡초들과 함께 날 올려다보는 그 멍한 눈의 그가 미치도록 신비로웠다.
공기가 멈추고 그 못생긴 얼굴에 시선이 갔다. 평평한 가슴에 나보다도 커 보이는 신체가 분명히 사내임에도 불구하고 시선이 갔다.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하소연을 하던 나도 없다. 콧물이며 눈물이 뒤섞여 이제는 만신창이가 되어 구겨진 내 얼굴에서 또 눈물이 쏟아졌다. 나는 그 쭉 찢어진 눈에서, 하얗고 빨간 그에게서 찾고야 만 것이다.
*
나는 처음 보는 그에게서 왜 이 험난한 산에 혼자 앉아 있었냐고 묻지 않았다. 왜 신발도 신지 않았으며 쌀쌀한 여름밤에 색이 같은 반팔과 반바지만 입고 있었냐고도 묻지 않았다. 그를 따라서 시간이 멈추고 우리를 감싸고 공기가 도는 것처럼 우리만 보였다. 반딧불이가 천천히 수직으로 올라가고 그 다리 사이사이 잡초들이 살랑거렸다. 그리고 그가 날 보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다가가서 손을 잡아 올렸다. 꽁꽁 싸맨 나와 달리 아무것도 입지 않고 신지 않은 그를 위해 무얼 해주지도 않았다. 그도 일어섰다. 우악스럽게 팔을 잡아 산에서 내려왔다.
내가 그때 그에게서 보았던 것을 그도 본 것은 아니다. 그는 사실 울고 있었다. 다 구겨진 나와는 달리 구김살 없는 그의 얼굴에서 눈물은 툭툭 떨어졌다. 나와의 눈 맞춤에도 빨갛게 코가 부어올라 귀여운 얼굴인 그가 표독스럽게 나를 째려봤다. 그런 그가 나를 순순히 따라온 이유도 사실은 나도 모르겠다. 당연하다는 듯이 내 보폭에 맞추어 그는 종종 나를 따라 내려왔다.
내게는 위로가 필요했다. 산에서 내려가는 내내 눈물이 흘러내렸다. 남은 팔로 콧물을 대충 닦아내고 소리를 죽이며 울었다. 그도 함께 끅끅거렸다. 산에서 다 내려와 숙소로 돌아왔을 때는 둘 다 어린아이처럼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그게 그렇게 위로가 될 수가 없었다.
숙소 문을 열었을 때 눈물을 머금고 있는 성열이의 얼굴이 보였다. 곧이어 화가 잔뜩 나 보이는 성종이가 보였다. 하나같이 걱정과 한숨을 담고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 뒤따라 들어오는 처음 보는 사내를 당황스럽게 쳐다봤다. 그러나 이름 모를 사내를 화장실로 밀어 넣을 때까지 아무도 제지하지 않았다.
근처에 있었는지 성열이의 연락을 받고 나머지 애들이 하나둘씩 돌아왔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창피해서 가슴이 울렁거렸다. 지금 말하면 목이 잠겨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나올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혼자서 감당할 수 없는 그 공기 속에서 나지막이 싸구려 나무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렸다.
“나 씻겨줘.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흠뻑 젖은 그가 짜증이 잔뜩 섞인 목소리로 나를 끌어당겼다. 화장실에선 고삐 풀린 샤워기가 여기저기 물을 뿌려대고 있었다. 나도 얼떨결에 따라 들어가면서 씨, 씻기고 아니 씻고 나올게. 조금 경쾌한 목소리가 났다. 그에게 맞닿아있는 내가 평온하다. 피식 웃음이 나고 그 짜증이 난 얼굴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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