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 진짜 재수없어."
청천벽력이다.
광저우에서부터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했는지는 말할 것도 없는데.
" 웃어? 웃음이 나와?"
그냥 자조적으로 웃음이 흘러나왔지 싶다.
태환,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거야?
" 아하. 한국어 못 알아 듣냐? get out !!"
슬프잖아. 나한테 왜 이러는거야.
盲目 (맹목)
나는 태환이 좋았다.
그저 우상. 바라보기만 하던 선수.
한국이 수영을 잘 한다고는 전혀 느끼지 못했을 때, 목표가 무엇인지 모르고 그저 물을 헤집을 때,
TV브라운관 속에 비춰진 건 멋지다 못해 아름다운,
물살을 가르고 헤치는 그가 금빛 레이스를 마쳤을 때 입이 쩍 벌어지고야 말았다.
"장린. 저 사람 누구야?"
"아, 박태환? 한국 사람이래. 갑자기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뭐다 하는데, 신경쓸 거 있나. 뭐, 연습이나 열심히 해. 쑨양."
"키가 작은가 보네."
"너보다야 작겠지. 쑨양. 넌 네 키가 큰 걸 자각하고 있기는 해? 태환이 금메달을 따고, 네가 은메달을 딴다 해도 머리가 똑같은 위치에 올라와 있을 거야."
"아…. 그런가."
장린과 얘기할 때에도 눈은 오직 태환에게 고정되어있었다.
그 때 이후, 나는 태환만을 바라봤다.
태환, 너는 언제쯤 내 옆에서 물살을 가를 날이 올까.
그리 생각한 지 얼마 안 돼 태환은 내게로 왔다.꿈만 같았던 광저우 아시안 게임.
그렇게 마주한 태환과의 첫 만남은, 즐길 수 없을 정도로 눈코뜰 새 없이 바빴다.
그리고,
200m에서, 그리고 400m에서
나는, 그에게 졌다.
"태환과 저는 그 능력과 경험에서 많은 차이가 있었습니다."
터지는 플래쉬, 그 앞에서 나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할 수 밖에는 없었다.
"그 차이를 따라잡으려면, 엄청난 노력을 해야 될 것입니다."
그 후, 나는, 1500m 눈물의 금메달을 따냈다.
그리고 2년 후, 기적처럼 태환과 재회할 날이 다가왔다.
태환은 중국어를 잘 하지 못한다 해, 영어와 함께 한국어를 짬짬이 배웠고,
경기전 듣는 헤드폰을 수소문해 같은 제품을 구입했다.
하다못해 꽃무늬 수영복까지. 그와 모든 것을 공유하고 싶었다.
"코치님, 오늘 식단 뭐에요?"
"음? 평소랑 같지. 갑자기 왜 물어봐?"
"이제 태환 만나러 가잖아요. 매운 거 먹어요. 한국 식당 가서."
"다른 애들이 좋아하려는지 모르겠다. 거기다 너 매운 음식 잘 못먹는거 아니었어?"
"맛있어요. 좋아요. 코치님 제발요."
"하하, 알았다 그럼. 북경에 한국 음식점 많은 곳이 있다니까. 한번 가 보자."
그리고 태환과의 두 번째 만남, 설렜다
설레고, 설레고 또 설렜다.
그리고 200m, 예선
태환은 실격당했다.
어째서? 왜?
왜 태환이 실격이야?
한국 방송사가 어이없이 허탈한 표정을 짓는 태환에게 마이크를 들이미는 게 보인다.
왜 저러는 거야?
모두가, 태환에게 왜 이러는 거야?
결국, 몰래 빠져나와 태환이 머무는 숙소까지 와 버렸다.
지금 태환은 혼자 쉬고 있다고 했으니.
내가 먼저 이렇게 가까이 다가온 적은 없었는데..
설레는 마음 반, 걱정스런 마음 반.
똑똑, 그리고 두번의 노크.
"태환. 안에 있어?"
정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없는 걸까.
조심스레 문고리를 돌리자, 의외로 방문은 열려 있었다.
"태환?"
방은 조용했다.
남의 방이니, 조용히 발소리를 죽이며 태환을 찾았다.
침실에도 없고, 부엌에도 없고…
그냥 문이 열려 있었나 고개를 갸웃하고 나가려던 즈음,
철벅,
물소리가 들렸다.
욕실이다.
당연히 잠겨있을 거라 생각한 문은 열려 있었고,
태환은 눈을 감은 채, 욕조 물 안에 잠겨 있었다.
물 안에 손을 담가 보니, 언제 받아놓은 물인지 한여름의 날씨임에도 차디찼다.
"태환, 일어나. 눈 좀 떠봐. 태환."
태환을 위해 억지로라도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 엉터리로 말하는 일이 부지기수였지만,
너무 급해서 중국어만 거듭 뇌까리고, 태환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태환, 태환. 태환!! 일어나!'
힘없이 매달려 있던 태환이 이내 정신을 차렸나 싶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리다 내 얼굴을 쳐다보고 발버둥을 쳤다.
"놔, 이거 놔!"
날 보고 당황했던 것 같다.
억지로 잡고 놓지 않으려 했지만, 태환은 힘이 셌다.
미끄러져 뒤로 넘어질 뻔 했고, 가까스로 세면대를 붙잡았다.
"태환, 왜 그래요?"
어눌한 한국어.
" 너 진짜 재수없어."
청천벽력이다.
광저우에서부터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했는지는 말할 것도 없는데.
" 웃어? 웃음이 나와?"
그냥 자조적으로 웃음이 흘러나왔지 싶다.
태환, 왜 그렇게 화를 내는 거야?
" 아하. 한국어 못 알아 듣냐? get out !!"
슬프잖아. 나한테 왜 이러는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한국어를 배우지 말 걸 그랬다.
태환의 상황이 안 좋은 것은 알지만, 다 알지만. 그래도 가슴이 아릿하다.
태환, 태환. 내 우상. 태환.
"알았어. 나 갈게. 태환, 갈게. 소리지르지 마. 안돼, 목 아프면."
수영, 물 속에 들어가는 스포츠이기에
기도가 붓거나 하면 큰 일이 난다. 호흡이 가빠지고, 숨을 제대로 못 쉬게 될 수도 있어 경기에 차질을 빚는다.
"그런데 태환. 우는 것, 하지마."
쓸쓸히 욕실을 나서고, 숙소까지 돌아오는 동안 생각했다.
태환, 너는 가만히 있어. 내가 갈게.
싫으면 지금처럼 밀어내. 그래도 옆에서 널 바라볼게.
너와 같이 먹는 비빔밥이 제일 맛있고, 너의 옆 레인에서 수영하는것이 제일 좋아.
태환, 울지 마.
여기 눈 먼 내가, 너만 보고 있으니까..
맹목적이라 해도 좋아.
태환, 네가 좋아. 이유는 나도 모르겠지만,
그저 네가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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