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디 전력에 '방송국' 주제로 참여했던 글입니다.
“아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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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인은 복도 끝에 있는 창문에서 몇 분째 서성이고 있었다.
주차장 저끝에 겨우 보이는 자신의 세단 앞좌석에서 작은 핸드폰 불빛이 반짝거렸다.
“아, 제발…”
벌써 세시간째 이러고 있다. 금방 끝난다던 촬영이 벌써 몇 번째 딜레이되고있는지 모른다. 종인의 뒤에 있던 세훈은 이미 모든 것을 포기한 듯,스타일리스트를 시켜 오늘 밤 덮고 잘 담요라도 한 장 구해오라고 했다.
하지만 종인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내 무슨일이 있어도 너에게 가리라.
‘한 씬만 하고 오면 돼. 여기서조금만 기다려. 응?’
‘….빨리 와.’
종인은 자신의 차에서 세시간 동안 짜게 식고 있을 자신만의 연인을 생각하니 다시 한 번 굳은 다짐을 하게되었다.
“씨이..발…..”
잠깐이라도 밖에 나갔다 오고 싶었지만 자신을 언제 부를지 모르는 또라이 같은 감독새끼 때문에 종인은 더더욱 미칠지경이었다. 아까도 쉬는 시간에 잠시 차에 다녀오려 했으나,
“종인씨, 금방 촬영들어가니까대기해-“
라는 말만 툭던져놓고 1시간째 소식이 없다.
“아, 몰라! 나 밑에 내려가 있을꺼니까 정감독이 부르면 전화해. 나 간다.”
종인은 세훈에게 일침을 가하고 엘리베이터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세훈은안절부절했지만 더 이상 종인을 막아 세운다면 그가 정말 무슨 일을 저질러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저 그 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종인은 엘리베이터가 5라는 숫자에 가까워질수록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연인이 가까워지는 것만 같아 짜증스러웠던 표정이 풀리기 시작했다.
띵-
결국 입꼬리를 귀에 걸고만 종인이 열리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발을 딛으려 한 순간이었다.
“어? 이게 누구야. 종인군 아니야?”
“..아..오세욱 선배님.”
좆됐다. 후배만 보면 30분으로기본으로 덕담을 늘어놓는다고 소문이 난 선배 배우다.
덕담의 대상이 되는 후배가 인기가 많으면 많을수록 조언(이라고 쓰고잔소리라고 부른다)을 더 많이 늘어놓는다는 바로 그 선배.
종인은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인상이 팍하고 구겨졌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영업용 미소를 지었다.
“그래그래! 요즘 촬영은어때? 힘든건없고?”
“네, 다 선배님께서 살펴주신 덕분입니다. 하하.”
“그래. 내가 애 좀 썼지! 힘든거 있으면 나한테 다 말해~”
내가 지금 제일 힘든건 너 새끼다, 씨발.
이 구역의 허세킹은 지가 다 해먹는지 오세욱이라는 선배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종인에게 도움을 준 적이 없는데도불구하고 종인에게 온갖 친한 척을 해댔다. 어깨를 감아오는 친숙한(친숙해보이는) 손길에 종인의 미간이 좀 더 구겨졌지만, 이 바닥은 성공=친목이라는 공식이 존재했기에 다시 한 번 이를 앙다물고 표정관리를 했다.
“예, 선배님! 살펴가세요!!”
“그래그래~다음에 보면또 얘기하자~”
좆같다. 한시간동안이나 저 새끼랑 영양가없는 대화를 한시간동안이나했단말이다. 만약 저 새끼를 안만나고 주차장에 내려갔더라면, 사랑하는그를 한시간씩이나 물고, 빨고, 핥고, 맛보고, 즐길수 있는 시간이었다.
“근데 왜 하필……!”
종인은 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벽에 크게 한번 발길질-그래놓고 엘리베이터가덜컹하니 손잡이를 붙잡는 종인이었지만-을 해댔다. 하…그래도 이제라도 그에게 가는 것이 어디냐며 종인은 1층에 가까워질수록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띵-
이제 진짜 그에게 간다. 그에게 가자마자 뒷목을 낚아채 입을 맞출것이다. 조금 화가 나있을 그를 살살 달래며 그의 손을 잡고 뒷좌석으로 갈것이다. 그래서…그래서….!
“어머, 여러분! 지금 톱배우 김종인씨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계십니다!”
종인은 엘리베이터 앞에 진을 치고 있는 카메라 무리를 보곤 다시 뒤로 돌아 엘리베이터를 타고싶어졌다. 요즘 섹션티비에서 줄기차게 밀고 있는 코너인 ‘엘리베이터 안에서’였다. MDC 로비의 1층에서대기를 타고 있다가, 내려오는 연예인들을 붙잡고는 이것저것 물어보는 시덥잖은 코너였다. 요즘 근황은 어떤지, 이상형은 뭔지, 술버릇은 뭔지, 마지막으로 시청자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말은 없는지뭐 그런.
“하하..안녕하세요, 슬기씨.”
“어머어어머어!!!!제이름을 종인씨가 어떻게 아세요?”
“저번에 백상에서 인터뷰 하셨잖아요.하하. 정말 재밌어서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어머~정말 감동이에요! 그럼 이 기세를 몰아서 첫번째 질문!드리겠습니다.”
종인은 끌어오르는 살해욕구를 참지 못할것같았다. 당장이라도 이 여자리포터를 엘리베이터에 태워서 옥상으로 보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집중된 5대의 카메라 때문에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종인은 다시 한번 영업용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럼 마지막으로 시청자 여러분께 인사 한 말씀! 부탁드려요!”
“네, 이렇게 엘리베이터에서내려서 인터뷰를 하는게 참 신선하고 좆네요. 하하.”
“네?”
“아, 아닙니다! 하하. 아..요즘 날씨가더워서 에어컨도 많이 트시고, 차가운 것도 많이 드시는데, 그것때문에 아프시면 안되니까, 몸 건강 관리 잘하시고 또 항상 행복한 일만 가득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종인 파이팅! 섹션티비 파이팅!”
오케이 싸인이 뜨고, 테이프를 갈기위해 감독들이 분주하게 움직이자마자종인이 표정은 급격하게 굳었다. 자신에게 싸인을 해달라고 다가오는 작가들을 철저하게 무시하고 발걸음을재촉해 현관으로 달려갔다.
좀만 기다려…좀만 기다리면 이번에는 진짜….!
지잉-
유리문을 부술 기세로 달려가던 종인은 손에 쥐고있던 핸드폰을 바라봤다.
설마
[이번엔 진짜다. 올라와–세훈]
“씨발!!!!”
종인은 주변의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걸 인식조차 하지 못한채 주차장 저 끝에 세워진 자신의 차를 바라봤다. 왜….왜…!!!!! 종인은세훈의 문자를 무시하고 당장 자동차로 달려가고 싶었으나 자신에게 딸려있는 객식구들을 생각하니 그러지 못했다. 그만은스타일리스트..매니저…씨큐…..
“하…좆같다…좆같아…씨발!!!!”
결국 종인은 눈물을 머금고 다시 뒤로 돌았다.
방송국
w.디오트
촬영은 생각보다 금방 끝났다. 원래대로였다면 세시간을 훌쩍 넘겼을촬영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온 신경세포를 각성한 종인은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해 단 두시간만에 모든 촬영을 끝냈다. 물론 두시간 후에 촬영이 하나 더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잠시라도종인은 자신의 차에 내려가 있으려 했다. 종인은 왁스로 세워진 머리를 푸를 생각도 하지 않고 스튜디오를빠져나왔다. 엘리베이터도 타지않고 5층을 계단으로 내려왔다. 로비를 빠져나와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사람들이 저를 보며 웅성이는 것이 보였지만, 종인은 어둠속에서 자신의 차만 바라보고, 그것을 향해 달리기만 했다.
종인은 자신의 차 앞에서 한 번 숨을 골랐다. 이제 저 문을 열기만하면 된다. 그러면 이제는 정말로 자신의 사랑하는 연인의 손을 잡을수 있다. 더한것은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그의 손을 잡고, 막힌 숨을 토해내기만 하면 된다. 그의 어깨에 기대어 한 손은 그의손에, 다른 한손은 그의 얼굴에 닿아있기만 하면 된다. 정말종인의 소원은 그렇게나 소박한것이었다.
그런데 왜.
“…..형…?”
차에 있어야 할 그가 보이지 않는걸까.
종인은 스튜디오B의 건축자재가 보관된 창고로 들어가 사람이 오지 않는곳에 주저앉았다. 온몸에 힘이 빠진다. 주인을 잃은 조수석을본 순간, 종인은 눈물이 왈칵 쏟아져나올뻔했다. 서운한 마음마저들었다. 내가….내가 누구 때문에 세시간짜리 촬영을 두시간으로줄였는데…내가 왜 그 싫어하는 상대 여배우를 온감정을 다해 끌어안았는데…왜..!
종인은 부자재 뒤에서 홀로 주저앉아 흐를 듯 흐르지 않는 눈물을 훔쳐냈다. 말이라도해주고 가던가..아무런 소식도 오지 않은 핸드폰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눈을 감고 부자재에 머리를 기댔다.
“찾았다.”
익숙한 목소리에 떠질것같지 않았던 종인의 눈이 확-하고 떠졌다.
“어디갔었어? 나 지금까지너 대기실에서 세훈이랑 있었는데.”
종인은 천천히 소리가 조근조근 들려오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아까 너 촬영하는것도 봤었다? 나너 연기하는 거 처음봤어. 조금 오글거렸는데, 그래도 많이늘었더라.”
자신이 그렇게나 기다리던 사람, 도경수가 한 손엔 커피를, 한 손엔 서포트로 들어온 도시락을 들고 서있었다.
“어디간다면 간다고 말이라도 하지.커피 사다놨는데 다 식었….아…!”
종인은 경수의 손에 커피와 도시락이 들려있다는 것을 인식조차 하지 못한 모양인지, 그저 앉은자리에서 경수의 손을 잡아채 자신쪽으로 끌어당길 뿐이었다. 중심을잃은 경수는 커피와 도시락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그대로 종인의 품에 넘어지듯 안겼다. 무릎을 바닥에 부딪힐뻔 했지만 종인이 빠르게 제 다리를 오므리는 바람에 경수는 온전히 그의 몸 위로 넘어졌다.
“너 왜 그래, 무슨 일있었어?”
형때문이잖아.
원망이 잔뜩 섞인 종인의 목소리에 경수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이내 저의 품안으로 안겨오는 종인의 머리통을 살살 쓰다듬었다. 종인은 자신을 머리카락을 간질이는 손이느껴지자 더 깊게 경수의 품안으로 파고들었다. 경수는 자신의 허리를 더욱 꽉- 끌어안는 종인을 느끼며 살풋 웃었다.
“늦게끝나서 미안해.”
“너가 그러고싶어서 그러는것도 아닌데, 뭐. 그리고 나 하나도 안심심했어.방송국 구경도 하고.”
종인은 괜찮은듯 말해오는 경수를 보며 더 미안함을 느꼈다. 그래서한쪽 손을 허리에서 때어내 경수와 눈을 맞추며 뒷목을 살살 쓸었다.
“다음엔 야예 대기실에 있어.”
“응. 안그래도 그럴려구.”
“말도 없이 돌아다니지 말고.”
“응응. 알았어.”
종인은 자신의 품속을 파고드는 경수를 다시 한번 온몸으로 끌어안으며 두시간 뒤에 있을 촬영을 아예 머릿속에서지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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