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나는 너를 그리워하다가 잠이 들겠지. 지금 생각 하니까 너 되게 나쁘다.
날 보고 싶지도 않나봐? 꿈에 한번 안 나와주고. 오늘은 꿈에 나와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나, 너한테 할 말이 너무 많아. 너 없는 동안 나한테 많은 일이 있었어.
편지로도 쓰지 못하잖아 이건. 그러니까 오늘은 내게와서 내 이야기를 들어줘.
네가 내 옆에 앉아서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던 때가 언제였는지 기억도 안 나.
기분 좋은 표정을 하고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네가 너무 좋았었는데.
오랜만에 옛날 생각이나 해 볼까.
처음 내가 널 본건 봄이었어.
싱그러운 꽃 향기가 가득했고, 알록달록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있었지.
여기는 나만 알고 있는 곳인데 네가 앉아 있으니까 묘한 기분이더라. 나만의 보금자리를 빼앗긴 기분.
그 생각도 얼마 뒤에 없어졌어. 하얀 원피스를 입고 가만히 들 위에 누워있는 네가 너무 예뻤으니까.
생각을 할 틈이 없었어. 그저 한참동안 너를 멍하니 바라봤어.
사실, 정신을 차리면 네가 없어질까봐 두렵기도 했어. 이렇게 예쁜 사람은 처음 봤거든.
네 옆에 가서 누운 것은 참 잘한 것 같아. 마치 너는 내가 원래 옆에 있었다는 듯이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더라.
그때 네 얼굴 위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줬을 때 너에게는 꽃향기가 났어.
달달한 향이였어. 사탕처럼 달달한.
내가 너한테 눈 좀 떠달라고 했을 때 넌 무덤덤하게 앞이 안 보인다고 말 했지.
그 때는 그저 당황스럽기만 했는데 너는 얼마나 아팠을까.
그래도 해맑게 웃으면서 말 해줘서 고마웠어. 아무 표정이 없는 얼굴이었더라면, 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 지도 몰라.
너에게 풍기는 분위기와는 다르게 넌 어른스러운 사람이더라. 그에 비해 난 철도 들지 않은 철부지 남자아이였지.
어른스러운 네가 좋았어. 나를 보듬어 주는 너도 좋았고, 나에게 좋은 충고를 해 주는 너도 좋았어.
그냥, 네가 많이 좋았어 나는. 왜 그때는 몰랐을까.
그때 알았더라면 나는 지금쯤 네 옆에 누워서 네가 불러주는 노래를 듣고 있겠지.
너는 나를 좋아했니. 아니면 내가 너를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어? 그냥 나를 친한 친구로 생각 했을 수도 있겠다.
내가 들에 갔을 때 너는 책을 읽고 있었어. 보이지 않는 네가 책을 읽는다니. 상상도 할 수 없었어 그 때는.
너는 내게 책은 눈으로 보지 않아도 마음으로 느낄 수 있다고 했잖아.
그 때는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어. 너는 너무 어른스러웠고, 난 그저 철 없는 남자아이였을 뿐이니까.
같이 꽃을 꺾어서 서로 왕관을 만들어 주고, 반지도 만들어 주고 하면서 나는 진짜 행복했어.
너도 행복했었을까?
네가 웃는 모습이 좋아서 나는 더더욱 열심히 너를 웃게 해주려고 노력했어.
그 노력을 너도 아는지 많이 웃어 주더라. 정말 고마웠어.
어느날, 네가 나한테 말했지 너무 외롭다고. 함께 있어도 항상 외롭다고. 그 말을 듣고 그냥 너를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말만 했었어.
내가 조금 더 어른스러웠더라면, 아니 그냥 내가 조금 더 너에게 관심이 있었으면 네가 안 갔을 지도 모르지.
그 때는 내 행복이 더 중요했어. 너는 내 행복을 위해서 필요한 사람이었고
네가 없어진다는 생각은 해 보지도 않았어. 그냥 여기에 오면 너는 앉아서 나를 기다렸으니까.
그 기다림은 길고, 만남은 짧다는 걸 그때의 나는 왜 몰랐을까.
너는 나에게 짐을 짊어주는 걸 싫어해서 네가 모든 짐들을 이고 갔지.
그 짐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 그 짐을 짊어지기에 너는 얼마나 연약한 아이인지 지금 깨달아서 미안해.
만약에, 아주 만약에 말이야.
지금의 나와, 과거에 네가 만난다면 우리는 잘 어울리는 한 쌍의 커플일지도 몰라.
다른 평범한 커플들처럼 손을 잡고 설레는 마음으로 벚꽃길 사이를 걷고 있겠지.
너는 지금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나는 이 세상 사람이야.
처음 너를 봤을 때도 너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처럼 아름다웠어.
나는 네 옆에 있어야만 빛을 발하는 사람이더라. 이제야 깨달은 것도 많고, 아직까지 잘 모르겠는 것들도 많아.
다시 내가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너를 만난다면
꼭 사랑한다는 말을 해 줄게. 나는 네가 없으면 안 된다는 말도 함께말이야.
여기는 라일락 향이 많이 나. 꽃이 벌써 피었나봐.
밖에 나갔는데 라일락이 너와 너무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너네 집에 꽃아놨어.
나 잘 했지. 라일락 꽃말이 궁금해서 찾아봤는데 첫사랑이더라.
조금 일찍 열어준 라일락은 네가 열어준 라일락이구나.
한동안 오지 않는 너를 향해 원망해서 미안해. 네가 없다는게 믿기지가 않았어.
다음 생에는 우리 꼭 만나자. 그 때는 내가 더 어른스럽고, 네가 철부지 소녀였으면 좋겠어. 절대 너를 외롭게 하지 않을 거야.
우리가 다시 만날 그 때에는 내가 너보다 먼저 조금 늦게 핀 라일락 나무 밑에서 네가 올 때까지 너를 기다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