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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로맨스
w.챼리




“김여주. 시험 잘 봐.”




앞에서 부터 시험지가 넘어오기 시작했고, 중간 한 칸을 띄우고 옆에 앉은 김태형이 내 자리로 abc 초콜릿을 툭 던지며 말했다. 나는 고맙단 말도 없이 초콜릿을 까서 냉큼 입에다 넣고 내게로 넘어온 시험지를 뒤로 돌렸다. 옆에서 김태형이 작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개강한 지 얼마나 됐다고 시간은 속절 없이 흘러 벌써 중간고사 기간이 되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날씨가 꽤 쌀쌀했던 것 같은데 날이 제법 더워진 게 느껴졌다. 대부분이 반팔을 입고 다녔고 이 강의실에선 환절기에 감기를 달고 사는 나 혼자만 가디건 차림이었다. 김태형이 몇 개 더 던져준 초콜릿을 하나 더 까서 입에 넣으며 가디건을 꽁꽁 여몄다. 에어컨 바람이 차가웠다.




김태형과 나는, 다시 친구가 되기로 했다. 사실 우린 처음 만난 날 사귀었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친구였던 적은 단 하루도 없었다. 그러니 만난지 7년만에 처음으로 친구가 된 것이었다. 첫 만남에 대뜸 사귀자며 이마를 긁적거리던 김태형과 그 앞에 서서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던 나는 둘 다 많이 자라고 변해서, 이젠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친구로 잘 지낼 정도는 되었다.




“30분 남았다. 제출 할 사람은 제출하고 나가면 돼.”




이미 답안지를 빼곡하게 채워 작성한 나는 기지개를 한 번 쭉 펴곤 짐을 챙겨 일어났다. 시험지를 제출하고 인자하게 웃고 계신 교수님께 살짝 목례를 하고 강의실을 나오는데 부리나케 짐을 챙겨 앞으로 걸어 나오는 김태형이 보였다. 내 답안지 위에 제 것을 올린 김태형은 마찬가지로 교수님께 목례를 꾸벅 했다. 나는 문을 잡고 잠시 김태형을 기다렸다.




“너 답 다 적긴 적었어?”
“그럼.”




눈을 피하는 꼴을 보니 애초에 공부를 한 과목이 아닌 모양이었다. 나는 혀를 한 번 쯧 차고는 가방을 고쳐 맸다. 김태형은 머쓱한 표정으로 진짠데. 쉽던데. 라고 몇 마디를 더 중얼거렸다. 시험이 끝나니 급격하게 피곤이 몰려오는 게 머리까지 지끈지끈 했다. 얼른 집에 가서 잠이나 자야겠다는 생각으로 걸음을 떼려던 나는 복도 끝에서부터 투우사를 발견한 소 마냥 달려오는 정국이를 보았다.

언젠가 정국이가 저렇게 달려오다가 강의실에서 나오던 사람과 부딪힌 적이 있었는데, 정말 과장이 아니고 부딪힘을 당한 사람이 퉁 하고 튕겨져 반대편 강의실로 들어가 버렸다. 그 날 이후로 우린 정국이를 퉁국이라고 놀렸지만, 지금 저렇게 지구 끝까지 달려갈 기세로 복도를 달리고 있는 정국이는 그 별명엔 전혀 연연하지 않는 듯 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엔 아무와도 부딪히지 않은 정국이가 내 앞에 멈춰 무릎을 집고 몸을 숙인 채로 잠시 헥헥거리더니 말했다.




“누나 우리 오늘 클럽 가여.”
“클럽?”




클럽이라는 말이 너무 생소해서 순간 헬스 클럽? 이라고 말할 뻔 했다. 정국이는 그 어느 때 보다 들뜬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내가 눈을 찡그리자 어디서 또 갑자기 나타난 건지 모를 박지민이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정국이랑 나랑 오늘 떠나기로 이미 약속했어.”




친화력 갑 박지민은 어느새 김태형과 전정국과 거진 불알친구가 되어 있었다. 어떻게 하면 한 달 사이에 저렇게들 돈독해질 수 있나 했는데, 시험기간 일 이주를 제외하곤 매일 밤 피시방에서 함께 밤을 새웠단 얘길 듣고 수긍할 수 있었다.




“원래는 남자들끼리만 가려고 했는데, 김여주 너는 친구 없으니까 우리가 데려가 줄게.”
“누가 간대? 나도 가기 싫어.”
“아 누나~ 또 튕긴다. 태형이형, 형도 갈거지?”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너네랑 클럽을 가. 단호하게 거절하며 뒤를 도니 김태형이 쭈뼛대며 서서는 볼을 긁적이고 있었다. 나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김태형에게 물었다.




“너도 싫지?”




김태형은 시끄러운 장소라면 질색 팔색을 하는 애라 클럽은 고사하고 놀이동산 같은 데도 잘 안가는 사람이었다. 그런 애가, 이 시끄러운 것들이랑 시끄러운 클럽에 갈리가, 없는데. 분명 그럴리가 없는데, 이 수줍은 표정은 대체 뭐지?




“나 한 번도 가본 적 없긴 한데….”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 쳤다. 김태형까지 가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이상 내게 빠져나갈 구멍은 없었다. 정국이는 우리 네 사람이 꼭 도원결의를 한 의남매처럼 굴었다. 4-1=0 이라는 말도 안 되는 식을 들이밀며 우리는 하나다를 외치는 애였다. 그러니, 아마 내가 끝까지 가지 않겠다고 한다면, 일단 박지민이 인터넷에서 최고 빠른 배송으로 미러볼을 시킬 것이다. 그 다음엔 내 좁은 자취방이 클럽 대용이 될 것이고, 몇 주 뒤 나는 이웃 주민 보기 창피해서 방을 빼게 될 것이다. 이거 완전 안 봐도 넷플릭스.




“…나 그럼 집에 가서 준비 좀 하고 나올게.”




아싸 소리를 지른 정국이는 누나는 이대로 가도 프리패스라며 입에 발린 소리를 해댔다. 내가 물론 클럽에 가 본 적은 없지만 위 아래 트레이닝복 세트에 모자 차림으론 들어갈 수 없다는 것 쯤은 알고 있다고. 심지어 난 오늘 머리도 안 감았다.

남자 셋은 내가 준비를 끝낼 때 까지 게임이나 하면서 기다리겠다면서 또 피시방엘 갔다. 혼자 집으로 돌아온 나는 잠시 침대에 앉아서 이대로 자버렸다고 할까 생각했다. 하지만 집에 멋대로 쳐들어와 나를 깨워서라도 데리고 갈 놈들인 걸 알았기 때문에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김태형에게 문자가 한 통 와있었다.




- 밤이라 쌀쌀하니까 웬만하면 바지 입어




또 시작이네 이거. 김태형은 확실히 그 날 이후로 나를 정말 친구처럼 대하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종종 애매하게 선을 넘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내가 빽 화를 내는 건 아니었다. 이제는 나도 이 정도 쯤은 웃고 넘어갈 정도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 문자도 딱 그 정도. 걱정 좀 할 수도 있지. 근데 그거랑은 별개로 명령조는 좀 기분이 나빴다. 바지 입는 게 어때? 라고만 했어도 괜찮았을텐데 입어는 좀 아니지 않나. 이상한 부분에서 기분이 나빠진 나는 괜히 그 명령에 순순히 따라주기가 싫어지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평소엔 잘 입지도 않는 가죽 치마를 옷장 구석에서 꺼내 입었다.




[방탄소년단/김태형] 어쩌다 로맨스 04 | 인스티즈


어쩌다 로맨스
w.챼리




“헉… 누나 너무 예뻐서 누나 아닌 줄 알았어여”




자기 캐릭터는 이미 죽었는지 옆에 앉은 김태형에게 훈수를 두고 있던 정국이가 제일 먼저 나를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예쁘다고 지겹도록 조잘거릴 땐 언제고 오늘은 예뻐서 아닌 줄 알았대. 도끼눈을 뜨고 전정국을 쏘아보는데 옆에서 게임을 하던 김태형이 갑자기 시발! 하고 소리를 꽥 지르더니 키보드에다 샷건을 치는 것이었다. 나는 그 소리에 진짜 심장이 떨어진 것처럼 깜짝 놀라서 딸꾹질을 했다. 옆의 정국이는 익숙하다는 듯이 허허 웃었다. 헤드폰을 벗어 던지듯이 내려놓은 김태형은 뭐라고 중얼거리다가 (욕이었던 것 같다) 정국이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아마도 입을 헤 벌리고 놀란 표정을 하고 있을 나와 눈을 마주친 김태형은 저도 따라서 놀란 표정을 하더니 나를 천천히 위아래로 훑었다.




“야 너…”




민망할 정도로 나를 빤히 쳐다보던 김태형은 갑자기 신경질적으로 이마를 벅벅 긁더니 고개를 돌리고 다시 헤드폰을 썼다. 우씨 야 왜 그렇게 쳐다봐 하면서 어깨를 툭 쳤더니 나를 무시하고 갑자기 힐 달라고!! 하면서 성질을 내는 것이었다. 이게 지금 게임한테 화 내는 거야? 아님 나한테 화 내는 거야?




“끝나려면 오래 걸려?”
“아녀 아녀. 막라예여. 금방 끝나여. 옆에 잠깐 앉아여, 누나.”




정국이의 옆에 앉아 게임하는 걸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데 김태형이 또 키보드에 샷건을 쳤다. 야 야. 부숴지겠다. 내가 말하는데도 못들은 척 하는 건지 아니면 헤드셋 때문에 정말 들리지 않는 건지 반응이 없었다. 슬쩍 본 김태형의 컴퓨터 화면에는 '약오르지에게 죽음' 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그러니까 김태형을 죽인 상대편 이름이 약오르지 인거지? 자존심 빼면 시체인 김태형 성격에 왜 저렇게 극대노 하는 지 알 것도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그 순간 내 다리로 뭔가 날라와 툭 하고 떨어졌다. 김태형이 입고 있었던 셔츠였다. 




“말 진짜 안 들어.”




들릴 듯 말 듯 하게 중얼거린 김태형은 다시 세모눈을 하고 게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김태형의 셔츠에서 김태형의 냄새가 났다. 김태형 옷에서 김태형 냄새가 나는 건 당연한 건데 왜인지 기분이 이상했다.

이게 롤이라는 게임이야? 내가 물으니 정국이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녀. 이건 오버워치여. 누나 진짜 암것도 모르는구나. 내 마음도 모르구. 장난스러운 정국이의 말에 김태형이 옆에서 집중 좀 하라며 신경질을 냈다. 김태형은 아까부터 뭘 자꾸 달라고 했는데, 주로 힐을 달라고 했고 이번에는 뽕을 달라고 했다. 도대체 무슨 게임이길래 뽕을 달라는 걸까…? 게임에 집중하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긴 미안해서 혼자라도 이해를 해 보려 컴퓨터 화면에 집중했지만 어떤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아, 하나 알 수 있는 건 정국이의 화면으로 보이는 김태형의 캐릭터가 굉장히 정신 없이 날라다니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박지민은 왜 아무 말도 없나 하고 슬쩍 고개를 빼서 보니 1초에 한 번씩 마우스를 클릭하며 온 신경을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공부를 저렇게 했으면 과수석은 무조건 박지민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결국 승리라는 글자가 화면에 떴고, 아 이번 판 졸라 재밌었다 하며 의자에 기대던 박지민이 날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가 온 줄도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와… 나 김여주 이렇게 꾸민 거 처음 봐.”
“뭘 또 처음 봐. 오바 하지 마라.”
“진심.”




손가락으로 사진기를 만들어 나를 위아래로 훑은 박지민은 오~ 하면서 박수를 몇 번 쳤다.




“솔직히 객관적으로 김여주가 예쁘긴 해. 사실 나한테 번호 물어보는 애들도 진짜 많아.”
“엥? 그래?”




왜 그걸 너한테 물어보지? 내가 궁금해하자 박지민은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 하면서.




“누나 동아리에서도 엄청 유명해여.”
“내가? 왜?”
“말만 걸어도 째려보고, 자꾸 도망치고. 테니스도 석진이형이랑만 한담서여?”




내가 그랬나? 라고 대답했지만, 째려본 건 솔직히 기억도 안나고 누가 말 걸 때마다 도망 친 건 나도 인정하는 바였다. 아 그리고 석진오빠랑만 테니스 하는 것도 인정. 근데 누가 말 거는 게 싫은 걸 어쩌냐는 말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한테 관심 받는 것을 끔찍히도 싫어했다. 어느 무리에서든지 있는 듯 없는 듯 살아왔고 그 흔한 장기자랑도 한 번 해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지금이야 머리가 좀 크니 주변 사람들을 너무 쳐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 특히나 학창시절의 나는 유독 그런 특성이 심했다.

그런 내가 일탈 수준으로 내 성격과 정반대의 행동을 한 것이 한 번 있는데, 그건 바로 저기 뚱한 표정으로 서 있는 김태형과 사귄 일이었다.




2014. xx.xx




“너 진짜 김태형이랑 사귀어?”




어이 없는 질문에 내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자, 정말이지 지구가 둥글다는 것 보다도 믿기지가 않는다는 표정을 하고 반을 나간 여자애는 아마도 내가 김태형과 진짜로 사귄다는 걸 알면서도 굳이 나에게 확인을 받으러 온 것일 터였다. 심지어 그 때 김태형과 나는 사귄 지 1년이 막 지났을 때였다.

나는 정말로 김태형이 그렇게 유명한 지 알지 못했다. 첫만남에 했던 말(나 모르는 애 없을 줄 알았는데)는 김태형이 심각한 나르시시즘 환자라서 했던 말이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사실이었다. 적어도 학교 안에서 김태형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다니던 고등학교와 조금 거리가 있는 중학교를 나왔고, 사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내가 김태형을 알 길은 없었다. 나는 늘 혼자 다니는 걸 좋아했고, 친구들도 나와 성향이 비슷한 친구만 사귀었던 탓에 우린 그 흔한 단톡방 같은 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단 한 번 중학생 때 김태형을 만날 기회가 있긴 했는데, 그게 바로 첫만남 때 김태형이 언급했던 제일 학원에서 였다. 고등학교에 올라가기 전에 선행 학습을 조금은 해 놔야 한다는 엄마의 극성에 큰맘 먹고 다른 동네에 크게 하는 학원에 등록을 했다. 그런데 혼자 조용히 공부 하던 나에게 60명이 한 강의실에 들어가 공부하는 건 정말이지 호러무비가 따로 없었다. 학교도 한 반에 많아야 30명인데 60명이 뭐야. 나는 등원한 지 일주일 째가 되었을 때 눈물 콧물 다 흘리면서 엄마한테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학원 다니기 싫어어어엉.

때문에 내가 그 날 김태형을 처음 볼 수 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정말로 처음. 학원에 다녔던 일주일 동안 마주쳤을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 그 환경에 적응하기에도 벅찼던 터라 봤어도 기억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아니, 그래도 김태형은 한 번 봤다면 잊을 수 없는 외모니까 그보단 보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게 정확했다.




“여주야. 기분 안 좋은 일 있었어?”
“너 성형수술 할래?”




김태형은 그 때 내 말에 놀란 표정을 지으며 제 얼굴을 매만졌다.




“왜? 어디 맘에 안 들어?”
“아니… 맘에 안 들리가 있겠냐….”




너무 잘생겨서 그르지…. 기어들어가는 내 대답에 태형이는 함박 웃음을 지었다. 그런 태형이를 바라보는 나 역시, 아마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뭐가 그렇게 좋았을까. 나는. 우리는.




[방탄소년단/김태형] 어쩌다 로맨스 04 | 인스티즈


어쩌다 로맨스
w.챼리





“진짜 이렇게까지 해야 돼?”
“너 지금 들어가서 바로 춤 출수 있어?”
“나 춤 안 출건데?”
“아이 씨. 클럽 와서 춤 안 추려면 왜 왔냐.”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아 있는 우리의 앞에는 각자 소주가 한 병씩 놓여있었다. 우리 중에서 유일하게 클럽 경험이 있던 박지민은 클럽에 도착하자마자 안으로 들어가려는 우리를 붙잡아 편의점으로 끌고 왔다. 그러고선 잠시 기다리라더니 소주 네 병을 사서 나오는 것이었다. 들어가기 전에 이미 취해있어야 한단다.




“그냥 들어가서 마시면 안돼?”
“야. 비싼 술 몇 잔 홀짝거린다고 취할 거 같냐? 안에서 소주는 팔지도 않는단 말야. 아, 토 달지 말고 빨리 마셔. 이래야 열 배는 더 재밌어.”




생각만 해도 속이 아파서 멀뚱히 앉아 고민하고 있는데 옆에서 가즈아!!! 하고 소릴 지른 박지민이 병 주둥이를 물고 꿀꺽 꿀꺽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중간에 말릴 새도 없이 소주 한 병을 순삭시킨 박지민이 턱으로 흐르는 소주를 아무렇게나 닦아냈다. 그러자 눈치를 보던 김태형과 정국이가 차례대로 술병을 입에 꽂았다.




“넌 못 먹겠으면 먹지 마.”




금새 소주 한 병을 깨끗하게 비운 김태형이 방금보다 조금 나른해진 얼굴을 하곤 내 소주병을 잡았다. 나는 일단은 소주를 다시 빼앗아 오며 중얼거렸다. 아 누가 못 먹겠대…. 물론 소주 한 병 원 샷이 처음은 아니었다. 술부심이 하늘을 찌르는 박지민과 술을 마시다 보면 종종 거의 한 병을 한 번에 비우게 될 때가 있었다. 그리고 그런 날이면 나는 꼭 필름이 끊기고는 했다.




“마신다.”




내가 고개를 쳐 들고 소주를 입에 들이붓기 시작하자 옆에 앉아있던 김태형이 자리에서 급하게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또 내 소주를 뺏어가려나 해서 목을 홱 꺾은 상태에서도 한 손을 휘적거렸는데 김태형은 잡히지 않고 편의점 문에 달린 종이 딸랑 하는 소리가 들렸다.

결국 다른 세명 처럼 한 병을 깔끔하게 비운 내가 소주병을 거꾸로 들고 머리 위로 흔들자 정국이가 누나 존멋 하면서 내 목을 끌어안았다. 이 새끼는 벌써 취했네. 내가 목을 뒤로 빼자 정국인 조금 더 힘을 줘서 나를 안았지만 곧 김태형의 손에 의해 떨어져 나갔다. 김태형은 방금 편의점에서 사온 듯한 사탕을 하나 까서 내밀었다. 나는 으웩. 진짜 땡큐. 하면서 사탕을 받아먹었다.

그럼 가볼까요오옹! 하고 간드러지게 소릴 지른 정국이는 박지민의 목을 옆구리에 끼고 뛰기 시작했다. 나는 빠르게 멀어져 가는 둘을 바라보며 저 근육질 팔에 낀 게 내 목이 아닌 게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도 갈까? 김태형이 낮은 목소리로 말하며 일어섰다. 따라 일어서려는데 순간 피가 머리로 확 몰리면서 몸이 휘청 했다. 설마 이대로 넘어지려나 했는데 순식간에 김태형의 단단한 팔이 내 허리를 끌어당겼다.




“너는 어떻게 마신지 1분만에 취해?”
“취한 거 아니고 삐끗 한 거 거든.”




방금 넘어질 뻔 한 게 민망해서 빠른걸음으로 앞서 걸어가니 김태형이 치마를 입었으면 평소보다 조심해야 하는 거 아니냐 잔소리를 하며 따라왔다.




처음으로 방문한 클럽은, 정말 너무 진짜 미친듯이 시끄러웠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자 노래가 고막을 때리는데, 귓속에 누가 펀치기계를 넣어놓은 줄 알았다. 귀가 얼얼할 정도였다. 박지민과 정국이는 이미 꽤 안까지 들어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고개를 돌리니 귀를 틀어막고 있는 김태형이 보였다. 춤추는 사람들 사이에 그러고 서 있는게 못견디게 웃겨서 깔깔거리며 웃었지만 웃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음악 소리가 컸다. 

김태형과 나는 스테이지에서 멀리 떨어져있는 작은 바에 붙어서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취기가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지만 그렇다고 박지민의 말대로 내 내면에 있는 댄싱 머신이 튀어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 김여주가 술 마신다고 김댄싱이 될 리가 없지. 옆에 있는 김태형 역시 사람들이 광란의 댄스파티를 벌이고 있는 스테이지 쪽을 쳐다보고 있었지만 자기도 거기에 낄 생각은 추호도 없어 보였다.




“몇 살이에요?”




그 순간 언제부터 내 뒤에 서 있었는 지는 모르겠지만, 춤을 추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춤을 안 추는 것도 아니고 일단은 고개를 좀 까딱거리면서 우물쭈물 서 있는 내 어깨를 잡아 자기쪽으로 돌린 남자가 얼굴을 내 귀에다 바짝 갖다대고 물었다. 주변이 시끄러워 그러는 거라는 걸 알았지만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불쾌함에 몸에 소름이 돋았다.




“저랑 같이 놀래요?”




와 클럽은 진짜 이렇게 말하는구나. 와중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같이 놀 생각이 단 1퍼센트도 없었기 때문에 그를 무시하기 위해 자리를 옮기려 어깨를 비틀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어깨를 더 세게 잡는 것 이었다. 이 미친놈이 싫다는데 왜 이래. 내가 고개를 쳐들고 남자를 째려보자 한 쪽 입꼬리를 올려 웃은 남자가 어깨를 잡은 손을 올려 머리를 만지작 거렸다. 그 손을 쳐내려 내가 손을 올리자 별안간 옆에서 불쑥 튀어나온 다른 손이 남자의 손을 잡아 내렸다.




“가세요. 얘 저랑 같이 왔어요.”
“…남자친구?”
“네.”
“이 분 남자친구 맞아요?”
“맞아. 그니까 가라고.”




내가 뭐라고 대답 하기도 전에 내 앞을 막아선 김태형은 남자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남자는 김태형의 등 뒤에 있는 나를 한 번 쳐다보고는 아쉬운 표정으로 뒤를 돌아 갔다. 남자가 멀어지는 걸 확인한 김태형이 몸을 확 돌려 나를 마주보고 섰다. 졸지에 김태형의 가슴팍에 폭 안겨버린 내가 몸을 뒤로 빼며 말했다.




“야… 너 내가 그런거 하지 말랬지.”
“그럼 그냥 보고만 있어?”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김태형은 무지 화가 나 보였다. 이렇게까지 열을 낼 건 또 뭐냐고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조금 전에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므로 입을 닫았다. 앞머리를 쓸어 올리고 이마를 벅벅 긁은 김태형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며 내 귀에다 대고 말했다.




“너 그냥 집에 가라.”
“그럴까. 생각보다 재미 없다.”




실은 안 그래도 그러려던 참이었다. 내 내면의 댄싱 머신은 나올 기미도 보이지 않고, 방금 전의 일로 불쾌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기 때문이었다. 너도 같이 갈래? 내가 묻자 김태형은 조금 고민하더니 택시는 잡아줄게 했다. 조금 의외였다. 아마도 클럽에 온 게 싫지만은 않았던 모양이었다. 내가 간 뒤에 김태형이 다른 사람들처럼 미친듯이 춤을 상상을 하니 조금 웃겨서 피식피식 하면서 내 손을 잡고 앞서 걷는 김태형을 따라 걷는데 누군가 내 뒤에서 내 손목을 잡아챘다.




“여주야?”




또 좀 전과 같은 상황인 줄 알고 반사적으로 손을 빼낸 내 눈 앞에 보이는 건 다름 아닌,




“선배?!”




윤기 선배였다. 

김태형 박지민 전정국이 처음에 그랬듯이 나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은 선배는 너무 깜깜하고 시끄러우니 나가서 얘기 하자며 먼저 밖으로 나갔다. 김태형은 여전히 내 한 쪽 손을 잡은 채였고 불퉁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니 밝은 곳에 선 선배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뚫어질 듯 쳐다봤다. 나는 괜히 볼을 긁적였다. 선배의 시선이 내 옆에 서 있는 김태형에게로 옮겨갔다. 윤기 선배는 나 한 번, 다시 김태형 한 번, 그리고 우리의 사이를 쳐다봤다. 그제야 내가 아직도 김태형과 손을 잡고 있다는 걸 깨닫고 파드닥거리며 손을 놓았다.




“둘이 온 거야?”
“아뇨, 친구들이랑. 선배는요?”
“나도 친구들이랑. 애들이 하도 가자고 졸라서…”
“김여주. 안 가? 할증 붙어.”




선배의 말을 끊은 김태형이 다소 삐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조합으로 마주치는 건 두번째였지만 어쩐지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한 건 여전했다.




“잠깐만, 나 선배 되게 오랜만에 본단말이야.”
“아, 지금 나가려던 참이었구나…. 그러면, 나랑 술이나 한 잔 더 할래? 나는 재미도 없고 그래서, 그냥 먼저 가려고 했거든. 오랜만에 술 사줄게. 마침 만나서 하려던 말도 있고.”
“그래요? 그럼,”
“저도 가도 돼요?”




김태형이 내 대답을 또 싹둑 잘라먹고 말했다. 너 다시 들어가서 논다며. 내가 눈을 부라리며 말하자 김태형이 언제 자기가 그런 말을 했냐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윤기 선배에게 그러는 것이었다.




“저도 경영학관데.”
“……”
“저도 술 사주세요… 선배.”




나는 어쩐지 불꽃이 튀는 듯한 사이에 서서 둘을 번갈아 쳐다보고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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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잘 읽고있어요ㅠㅠ 저 혼자 댓글 몇번씩 읽으면서 웃고있답니당 감사해요오오옹 하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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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뭐야아아아~~너무 재밌쟈나쟈나ㅠㅜㅜㅠㅜㅜ질투하는 거 왜이렇게 좋죠ㅠ
4년 전
독자3
으라아아아아아아ㅏ가ㅠㅠㅠㅠㅠㅠ 너무 설레자나요ㅠㅠㅠ자까님 ㅠㅠㅠㅠㅠ
4년 전
비회원127.146
너무 재밌어서 숨이 안쉬어져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4년 전
독자4
흐어엉 불꽃튀는 삼각전쟁의 서막인가요옷 ! 태형이 너 이럴려고 친구하자 그런가냐 여주 졸졸 따라다닐려고! 때찌 때찌 너무 설레잖아 ⁽⁽٩(๑˃ᗨ˂)۶⁾⁾ 퉁국이 너무 웃겨요 작가님ㅋㅋㅋㅋㅋㅋㅋㅋ 운동선수인거 엄청 티내고 다니넹 긔엽게 희희 다음화 얼른 보고싶당 윤기선배랑 태형이랑 질투질투 하는거 보고싶다 여주는 사이에서 어쩔 도리가 없어서 당황스럽겠지만 끼야앙 작가님 잘 보고 있어요오
4년 전
독자5
ㅋㅋㅋ아 작가님 이야기 너무 재미있어요 ㅋㅋㅋㅋ정국이 근육질 팔에 끼인 지민이 머리 생각하니까 왜 이렇게 웃긴 거죠 대롱대롱ㅋㅋㅋㅋㅋㅋㅋㅋㅋ귀여워 정국 지민..ㅠㅠㅠㅠㅠ 진짜 이 이야기에서 지민이가 참 개그 캐릭터인 것 같은 것은 저만의 착각인가요 너무 웃겨 진짜ㅠㅠㅠ 정국이 역시 솔직해 직진 남!!! 아 그리고 태형이 왜 이렇게 멋있어요.. 하앙♥ 진짜 여주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자기가 붙어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에 여주랑 친구 하자고 그런 건가요 으엉 우리 아기 호랑이.. ᅲᅲ 너무 설레... 꺄아 어딜 가든 빠지지 않는 인소재질남 민윤기 납셨다..ㅠㅠㅠ 태태랑 여주 윤기 삼각 갈등 구도 너무 좋아요.. 진짜 진짜 좋아... 다음 화도 얼른얼른 보고 싶어요!! 작가님 다음 이야기도 얼른 들고 와주쎄여 움쬭♥
4년 전
독자6
아악 재밌어 재밌어ㅜㅜㅜㅜ (작가님 저번부터 댓글 여러번 본다고 그러고 혼자 웃는다 그러고 너무 귀여워용)
4년 전
독자7
딱 봐도 친구로 못지내. 게다가 윤기도 있잖아??ㅎㅎㅎㅎ
4년 전
독자8
허어어ㅓ어어ㅓ어어ㅠㅠㅠㅠ빨리 다음화 보러가야징
3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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