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사이우유중독03 ( 부제: 내 맘이호시기호시기해) by 도토리탄.
*****
"네가 내 옛 친구랑 너무 닮아서 착각했나봐."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는 그다.
"아, 아냐, 아냐. 내가 누구 닮았다는 말 많이 듣거든! 좀 흔하게 생긴 얼굴이라..."
무안해 할까봐 듣지도 않은 말들을 지어내고는 손을 저으며 대답했다. 그나저나 여기서 알바했구나. 그래서 어제 학교 앞에서 나를...... 어제의 기억이 떠올라 얼굴이 빨개졌다.
"흔한 얼굴이라..."
순간 얕게 입꼬리를 올리는 김태형의 얼굴이 조금은 씁쓸해 보였다. 무슨 사정이 있는 걸까. 잠시 김태형이 부르던 김탄소라는 사람이 부러워졌다. 부럽다. 보면 바로 저렇게 이름을 부르며 안아줄 사람이 있어서...
잠시 뒤 '띠링'하고 다시 카페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왔다.
"어, 형. 웬일이야."
김태형이 손을 들어 들어온 사람에게 인사한다.
"김태형, 별일 없었지? 오늘 새로운 알바 온다고..."
알바 이야기에 고개가 자동으로 돌아가 그 사람을 봤다.
"카페 주인 형이야. 인사해."
김태형이 뒤에서 속삭이 듯 살며시 말을 해준다. 괜히 간지러워 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안녕하세요. 어제 연락드렸던 전우유입니다."
저 멀리서 날 찾던 주인이 아무 말 없이 멈춰있다. 너무 소개가 짧았나...? 인사말을 더 하려던 찰나 그가 갑자기 성큼성큼 내 앞으로 다가오더니 엄지를 척 올린다.
"아따, 네가 전우유구만. 캬- 내가 보는 눈뿐만 아니라 듣는 귀도 엄청나잉. 전화로 목소리를 들을 때부터 난 딱 아 이 친구 우리 카페에서 일 할 운명이구나 이런 생각을 했지. 우리 카페의 매상을 올려줄 얼굴이란 걸 난 바로 직감했지. 후훗. 야, 김태형, 이 형 쩔지 않냐?"
뭐지? 이 상황은? 나는 당황해 김태형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냈다.
"형. 오버 그만해. 첫 날 부터 알바 놀래서 도망가겠다."
김태형은 피식 웃으며 못말린단 듯이 고개를 젓는다.
"어메. 그럼 안돼징. 지금 우유 때문에 내 맘이 호시기호시기혀. 이러다 우리 카페 대박나는 거 아녀? 김태형에 전우유에.... 남녀손님을 다 사로잡는거야. 크흐흐흐. 아 소개가 늦어부렸네. 내 이름은 정호석이고 이 카페 주인이여. 사장님 말고 오빠라고 불러. "
오빠...? 내 기억에 의하면 오빠라는 단어를 해 본 적이 없다. 내가 우물쭈물 거리자 정호석, 아니 사장님은 날 한 쪽 방으로 밀으며 말한다.
"낯을 너무 가리네. 사람 많이 만나 본 적 없으면 곤란한데... 참 맘이 호식이호식이 하는구만. 뭐, 어쨋든 어여 방에 들어가서 유니폼 갈아입고 천천히 나오라~"
정호석이라는 사장님은 정말 밝고 희망넘치는 분 같았다. 방에 들어가니 예쁜 유니폼 하나가 걸려있었다. 조심스럽게 입어보니 뭔가 드라마에서 본 것 같은 모습이였다. 우와...신기해...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방에서 나오니 사장님은 보이지 않고 김태형 혼자 카페 테이블을 치우고 있었다. 살며시 옆으로 가 비워진 접시를 두 개 들었다.
"저기... 정호석 오,,오..사장님은 어디있어?"
오빠란 소리는 아직 무리였다. 그런 내 물음에 김태형이 날 흘끗 보더니 다시 테이블을 정리하며 말했다.
"호석이 형. 무서운 사람도 나쁜 사람도 아냐. 너무 낯가리지마... 나보고 너 잘 챙겨달라고 하고 갔어. 원래 카페 잘 안오거든. 아무래도 너 보려고 왔던 거 같아."
아까도 느꼈지만 김태형의 목소린 뭔가 그립고 다정한 느낌이 든다. 듣기 좋다.
"그런데 호시기호시해가 뭐야?"
아까 사장님 말이 궁금해져서 내가 물어봤다. 그런 내 물음에 김태형이 푸하하하고 웃는다.
"ㅋㅋㅋㅋㅋ 호식이형 찾더니 그게 궁금했던 거야? 그거. 좋은 말이야. 네가 맘에 들었나봐. 음.. 나도 잘 모르지만 맘이 간질간질 기분이 좋다는 건가?"
김태형의 대답에 괜시리 기분이 좋아졌다. 나도 맘이 간질간질 한 것 같다.
김태형에게 이것저것 배우면서 조금은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익숙하게 주문을 받는 나다. 그래도 첫 알바라 그런지 힘들 수 밖에 없는 것 같았다. 손님이 조금 빠져 테이블에 가서 엎드려 있는 내 앞에 김태형이 앉는다.
"커피 마실래?"
김태형도 쉬려는 건지 커피를 권한다. 아... 나 커피 안마시는데...
"미안... 내가 커피를 안 마셔서... 음.. 우유는 없어?"
"커피 못 마시는 것도 똑같네..."
이내 알 수 없는 소리를 중얼거리다 따뜻한 우유를 가져다 준다.
김태형을 힐끔힐끔 바라보며 우유를 마셨다. 따뜻하니 기분이 좋다.
"아까... 보니까 손님들이 말 걸면 좀 당황하던데 낯을 많이 가리나봐?"
김태형이 날 걱정하며 물었다. 아... 너무 티났나.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답했다.
"음, 사실 내가 사고를 당해서 17살 이전 기억이 좀.. 아니 전혀 안나... 그래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밖에 잘 안나오고 그랬어. 좀 무서웠거든. 사실 내가 기억 못하는 세상이 있다는 게 싫기도 하구....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기억 잃기 전 친구들은 왜 나를 찾지 않는 걸까. 내가 무슨 잘못을 많이 한걸까...내가 미워서 날 찾지 않는걸까... 아 내가 왜 이런 말을 하지. 미안. 나 웃기지."
우유 잔 속을 바라보며 말하다가 내가 왜 이런 이야기까지 하지하는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미워하지 않았을거야... 너라면 분명 좋은 친구가 있었을 거깉은데?"
귓가에 김태형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전정국에게도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없는데 막상 내 이야기를 들은 누군가가 대답해주니 밑에 담아두었던 덩어리가 녹는 기분이였다. 나는 금방이라도 울 듯한 기분이였다.
"그 좋은 친구, 너를 찾고 있을 거야."
내 손을 감싸는 김태형의 커다란 손이 따뜻했다. 그 아이의 목소리에, 나만큼 아파하는 얼굴에 가슴 어딘가가 찌릿찌릿한 느낌이 들었다.
김태형이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큰 바구니를 하나 가져온다.
"우유야, 이거 한 번 해봐."
웃으며 건네는 바구니에는 포춘쿠키가 가득 차 있었다. 김태형이 바구니를 안고 아이처럼 웃으며 말했다.
"21살 전우유, 새로운 세상에 나온 기념! 이런 거 한 번 하는 것도 좋은 기회일 거야. 하나 뽑으면 그 안에 너를 위한 말이 써 있을거야. 우리 카페 작은 이벤트인데 가끔 잘 맞는거 같아.ㅋㅋ"
포춘 쿠키? 나는 바구니에 손을 넣어 하나를 뽑았다. 쿠키를 조심스럽게 열어봤다.
쿠키 안 작은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있었다.
'- 새로운 인연과 기억들이 생길 듯 합니다. 더불어 잃어버렸던 소중한 것도 찾을 듯 하네요.-'
새로운 인연...? 순간 나는 어제 만난 박지민과, 오늘 만난 정호석 사장님, 그리고 김태형을 떠올렸다. 하나같이 밝고 친절한 사람들... 나는 피식 웃으며 주머니에 쪽지를 넣었다. 그런 나를 보고 김태형도 따라 웃는다.
"어때. 맞는 것 같아?"
응. 맞는 것 같아. 아주 많이.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고마워"
김태형은 나를 보고 웃고 있고 나는 그 웃음에 계속 눈이 간다. 김태형이라는 아이와 조금은 더 가까워 지고 싶다.
나랑 김태형은 그렇게 '띠링'하고 카페 문으로 손님이 들어올 때까지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
카페 알바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아까부터 계속 김태형의 얼굴이 아른거려 죽겠다. 할아버지랑 아는 사이인가? 어디서 봤지? 17살 전에 본건가...? 아니면 진짜 잘생겨서 이러나? 으아..몰라...
혼자 머리를 쥐어 뜯으며 고민하는데 뒤에서 누가 날 잡고 돌린다.
휙-
"전우유 맞네. 어디 갔다 오냐?"
헐. 전정국이다. 학교 끝나고 오는 길인가 보다. 나는 알바하고 오는 길이라고 대답하려나 당분간 비밀로 하기로 한 걸 기억하고는 눈을 굴려 변명거리를 이리저리 찾았다.
"어..저기 나는..그러니까, 아! 너랑 한강가고 싶어서!!!"
나도 모르겠다. 저 뒤에 한강자전거라는 간판이 보이길래 아무렇게나 대답하고 전정국 손을 덥썩 잡고는 한강으로 끌었다.
"하하하 한강가자. 한강."
"갑자기 무슨 한강이야. 귀찮게."
정말 귀찮아 하는 얼굴이지만 내가 잡은 손은 그대로 잡은 채 한강으로 가는 정국이다.
한강 잔디에 정국이와 앉아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는 걸 보고 있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이 시원하다. 갑작스럽게 온 거였지만 오길 잘한 것 같다. 전정국도 같은 생각인지 갑자기 내 허벅지를 베고는 눕는다.
"아 머리에 돌이 들었나 참 무겁네."
나는 정국이의 머리를 가지고 놀며 장난으로 말했다. 그러자 전정국이 눈을 감고는 짧게 웃는다.
"머리에 든 게 많으면 이렇게 된다. 누구는 다리에 살이 많아 너무 푹신하네."
"야, 내려와. 내려와. 에휴, 이걸 때릴 수도 없고... "
내 말에 입꼬리만 올릴 뿐 아무 미동도 없는 전정국이다.
...
이씨..진짜! 이긴 적이 없어요.
그러다 갑자기 전정국이 벌떡 일어나 앉아 두 손으로 내 얼굴을 잡는다.
"오늘 뭔 일 있었냐? 기분 좋아 보인다."
으어으어으 난 붕어입이 된 채 이거 빨리 놓으라고 손으로 가리켰다.
"푸하- 아 뭐야 갑자기. 그거 하지마. 못생겨진단 말야."
나는 입을 삐죽 내밀고는 전정국의 등을 때렸다.
"뭐래. 원래 못생겼어."
다시 한 번 내 얼굴을 잡아 늘리는 전정국이다. 진짜 못됐어!
"요즘 좋은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되는 것 같아서... 그래서 기분이 좋아."
내가 잠시 뜸을 들이다 정국이를 보며 대답했다.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 헤헤 웃었다. 갑자기 전정국이 잠시 나를 바라보다가 땅콩을 날린다.
"이제 떨어져. 못생김 옮을 거 같아."
그러면서 바지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
"그 사람들도 참 불쌍하다. 너를 알게 되다니...ㅋㅋㅋ"
나를 놓고 혼자 걸어가는 전정국.
정국이가 때린 땅콩은 언제 맞아도 아프다. 나도 전정국의 등을 한번 더 때려주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도 좋아보니까 예전보단 얼굴이 낫네. 보기 좋다."
뒤이어 들려오는 목소리에 자리에 잠시 멈춰 섰다.
"뭐해. 안와?"
내가 오지 않자 전정국이 뒤돌아 다시 걸어온다. 밤별빛인지 가로등 불빛인지 이 도시의 네온사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정국이 눈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삼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 전정국. 박지민. 정호석. 김태형. 좋은 사람들... 아 전정국은 뺄까...?ㅋㅋ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터벅터벅 걸어오는 전정국을 향해 말했다.
"전정국. 지금 내 마음이 호시기호시기 한 것 같아."
[안녕하세요. 도토리탄입니다. 또 왔습니다! ㅎㅎㅎ 재밌게 봐주시는 분들이 있음에 감사합니다. 아 그런데 제목이 음마가 껴서 보인다는 의견이 있더라구요..ㅋㅋㅋ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는데... 여러분 음마는 모두 자기 마음 속에 있는 겁니다! 글을 빨리 쓰다 보니 내용 전개가 좀 이상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하고 다음 편은 조금 더 다듬은 뒤 가져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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