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가지 없지만 괜찮아
w.1억
"내가 오늘 그리씨한테 뽀뽀 받았다고 자랑하고 다닐 거예요."
"…네? 왜요... 그러지 말지.."
"이걸 저만 알면 얼마나 억울해요? 예? 그리씨가 나 좋아하는 거 세상 사람들이 다 알아야 된단 말이에요. 다른 남자들이 그리씨 좋다고 하면 어떡하라구. 이렇게 예쁜데!"
"…효섭씨만 알면 되죠. 저희 추억은 저희만 알고 싶은데.. 그리고 저 어디 안 가요."
"…아니 무슨."
"……."
"말도 그렇게 예쁘고 아련하게 해요? 진짜?"
효섭씨가 내 손을 덥썩 잡았고, 나는 그런 효섭씨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사람이 왜 이렇게 착하고 멋진 걸까. 나만 보면 웃음을 그칠 줄을 모르는데. 내가 이렇게 사랑을 받고, 사랑을 해도 되는 게 맞는 걸까.
"근데 그리씨 내가 첫남친이에요?"
"…어, 네."
"왜?"
"그냥?"
"이 얼굴로 왜 여태 아무도 안 사귄 거지?"
"제가 아프니까. 누굴 좋아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진짜! 누가 우리 그리씨 그런 생각 들게 했나 몰라. 아니! 그럼 감기 걸린 사람도 감기 걸린 동안에는 누굴 좋아하면 안 되나?"
"ㅎㅎ."
[출근했겠네요??? 저도 방금 막 카페 도착했어용 ㅎㅎ 좀 추운 것 같은데 겉옷 챙겼죠??
감기 예방합시다!!! (이모티콘)]
효섭씨에게 받은 카톡을 보며 앉아있는데 부장님이 창고 정리 좀 하라고 했고, 나는 대답을 하고선 창고로 향했다.
뭐가 이렇게 방금 이사 다 마친 집 같은지.. 엄청 지저분한 좁은 창고에 겨우 들어가 물건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근데 갑자기 저 멀리서 부스럭 소리가 들려서 놀라 고갤 돌려보면...
"뭘 또 그렇게 놀래냐."
"……."
"이번엔 네가 들어 온 거다. 내가 먼저 있었다."
"…왜 여기 있어?"
"원래 창고 정리는 팀에서 막내들이 하는 거야."
"…아."
"내가 할테니까 넌 가서 쉬어."
"아냐. 나도 해야지."
저 끝에서 정리를 하던 이재욱을 보았다. 너는 고등학생 때와 많이 달라졌다.
뭐랄까...말로는 설명 하기는 힘들고..
"워크샵 같이 간다던데 들었냐."
"…우리 워크샵 가??"
"니네 부장님이 그런 것도 말 안 해주냐. 금요일에 간다던데."
"아.. 끝나고 말씀해주시려나.. 아직 얘기 없었는데. 워크샵 재밌겠다..."
"별로야."
"별로야? 너 가봤어?"
"작년에 인턴일 때 가봤지."
"가면 막.. 서로 친해지기도 하고.. 게임 같은 것도 하고 그런가?"
"무슨 엠티냐."
"그래도 드라마 보면 그런 얘기 나오잖아.."
"엠티랑 비슷한 거 하나 있다."
"…응?"
"술 먹고 다 뻗는 거. 거기 가서 잘못 걸리면 아침까지 마셔야 돼."
"아아.. 근데 너는 술 잘 마시지 않아?"
"내가?"
"…응."
"…그냥 그럭저럭."
"그럴 것 같았어. 근데 뭔가 느낌 이상하다."
"……"
"벌써 우리 스물네살이네."
물건을 깔끔하게 정리하면서 말을 했는데. 이재욱은 나를 바라보았다.
왜? 하고 이재욱을 보면.. 이재욱이 다시 물건을 정리하며 말한다.
"근데 넌 왜 5년이 지나도 그대로냐."
"…다른데."
"똑같아. 한눈에 알아 볼 정도로."
"…그래?"
"목소리도, 말투도."
"…아, 혹시 이건 어디다 놔야 할까?"
프린터기가 바닥에 그냥 있기에 프린터기를 가리키면, 이재욱이 '내가 할게'하며 내 옆으로 다가온다.
키가 훨씬 큰 너를 올려다보면, 네가 나를 바라보며 말한다.
"앉아있어 그냥. 거슬려."
"…아, 미안."
여기서 미안..이라니. 나도 화낼 줄 아는데.. 나도 모르게 5년 전에 네가 익숙해서 미안하다고 해버렸다.
그 이후로 우리는 대화가 없었다. 어색할 정도로 말이다.
어제의 너와는 달랐다. 내게 계속해서 말을 걸던 너와는 말이다.
발꿈치를 들고서 맨 위에 있는 물건을 잡으려고 하자, 이재욱이 내 뒤에 서서 물건을 집어 내 손에 쥐어준다.
고맙다고 해야 하는데 말도 없이 자신의 할 일을 하는 이재욱에 나는 입을 꾹 닫았다.
"야 재욱아 근데 넌 왜 연애를 안 하냐? 한참 막 연애하고 돌아다닐 때잖아?"
"형이나 해요. 작년부터 자꾸 외롭다고 하면서."
"난 저어기 인턴이 요즘 마음에 든다."
"……?"
"왜 그렇게 보냐."
"쟤는 형 싫어할 걸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쟤 취향은 절대 형이 아니야."
"어떻게 아는데!"
"알아요."
"어떻게 ㅡㅡ."
"암튼 알아. 형은 절대 아냐."
"야 나도 싫어. 난 연상 만날 거야이씨."
"만나라?"
"만날 거다!!!!"
"…그 친구 애인 되게 잘생겼던데."
"남자친구 있어요????????"
"지나가다가 몇 번 봤어. 키도 크고 잘생겼더라. 잘 어울리고."
"왜요?"
"뭘 왜야? 연상 좋다며."
"……."
도현이 아니.. 그냥 아련해서요.. 하고 우는 척을 하면, 신팀장이 '먼저 퇴근한다'하며 가버렸고, 재욱은 잠시 무슨 생각을 하는 듯 허공을 보며 한숨을 내쉰다.
퇴근을 하고 엘레베이터에 타려던 그리는 처음 보는 여직원과 부딪히면서 여자의 핸드폰이 떨어졌고, 그리가 죄송하다고 하자
그 여직원이 그리를 위아래로 훑으며 말한다.
"죄송하면 허리를 숙여야지, 왜 고개를 숙이니?"
"……."
"주워. 뭘 그렇게 쳐다봐? 난 아무것도 몰라요~ 하고 쳐다보네?"
그 말에 그리가 네? 하고 여직원을 보자, 갑자기 뿅 하고 나타난 강준이 그리의 옆에 서서 말한다.
"아니이 그쪽이 주워요! 보니까 같이 와서 부딪혔구만 뭘 주우래? 웃기는 아줌마네."
"뭐요? 아줌마? 그쪽은 뭔데!"
"나 얘랑 같은팀인데요?"
"같은팀이면 그냥 가던 길 가! 참견이야."
"그럼 얘랑 가던 길 가도 되죠? 에?"
"뭐?"
"야 인턴 가자.아주 별 꼴이야? 퉤퉤."
가자며 그리의 손목을 잡고 질질 끄는 그리는 그냥 말 그대로 질질 자기의 의지 없이 끌려가는 모습이었다.
다른 엘레베이터 앞에 선 강준이 엘레베이터 버튼을 눌러주자, 그리가 갑자기 눈물이 고인 채로 강준을 올려다보았고.
강준이 당황한 듯 손을 마구 휘저으며 말한다.
"야야야 왜 울어?? 저 아줌마 때문에? 내가 다시 전화해서 저걸 확!"
"아니요. 고마워서요.."
"에?"
"감사합니다.."
"…야. 아니 고마운데 왜 울어? 그럼 나 때문에 운다는 거잖아. 이거?"
"……"
"야... 울지 마. 남들이 보면 내가 너한테 한 소리 한 줄 알겠다."
갑자기 사무실에서 나온 옆팀에 있는 하늘이 나와서 '히익!!'하자, 강준이 말한다.
"어유 진짜 이상한 소리 하지 마요! 사람들한테!"
"어! 알았어.. 네가 인턴을 울렸다는 소리는 안 할게.."
"아니..씨..."
"……."
마침 사무실에서 나온 재욱도 그리를 보았고.. 그리가 울고있자. 놀란 듯 멈춰섰다.
그리가 엘레베이터에 타서도 감사합니다아.. 하고 웃으면 강준이 어색하게 손을 흔든다.
한 번도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데... 항상 꾹 참았었는데. 무슨 일로 우는 거지.
이젠 너를 아프게 하는 사람이, 울리는 사람이.
"……."
"…뭐냐 이재욱 왜 날 저렇게 쳐다보면서 가?"
미워지기 시작했다.
"우리 막내 눈빛 원래 저래."
"아니야. 쟤 방금 나 째려봤잖아!"
"원래 그래 ^^. 부장님도 째려보는 애야. 당돌한 막내지?"
"ㄱ-.."
재욱은 회사에서 방금 막 나간 그리를 보고선 급히 뛰었다. 그리를 놓칠까봐 뛰어 회사에서 나온 재욱이 그리의 손목을 잡았다.
흠칫 놀라 뒤를 돌아 본 그리가 재욱을 올려다본다.
"왜 우는데. 아까 그 새끼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
"…그 새끼 아니고, 서주임님이야."
"……."
"그리고 나한테 못된 말 한 적도 없어."
"그럼 왜 우는데."
"고마워서 울었어."
"고마운데 왜 울어."
"내 편 들어주고, 나한테 잘 해주는 사람이 처음이라서. 그래서 울었어."
"…평소에 울지도 않는 애가 갑자기 우니까. 내가 얼마나 놀랐는.. 하.."
"…나 원래 눈물 많아."
"……."
"놔줘. 아파."
재욱이 손목을 놓지 않고서 가만히 그리를 내려보면, 그리가 힘을 주고선 손목을 빼려고 한다.
갑자기 심장이 아픈지 심장부근에 손을 덜덜 떨며 심장부근에 손을 올리자...
"저기요. 뭐하시는 거예요. 누군데."
"……."
"그쪽 누군데 그리씨한테 막 대하냐고."
"그쪽이 애인?"
"……."
그리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효섭이 재욱의 멱살을 잡고 있자, 놀라 효섭의 팔을 잡는다.
재욱은 그런 그리를 본다. 자신이 아닌 효섭을 잡는 그리에 재욱이 조금은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괜찮아요..! 친군데.. 얘기 좀 하느라고.. 별 거 아니에요. 정말..!"
"……"
둘은 한참 서로 바라보았고, 그리가 얼른 가자며 효섭의 등을 떠민다.
둘이 카페로 들어가면 혼자 덩그라니 남은 재욱이 헛웃음을 흘린다.
"…되게 고마웠나보다. 그리씨가 막 울 정도면.. 근데 어떡하지. 이제 앞으로 그리씨 더 울겠다."
"왜요?"
"내가 그 상사분 보다 더~ 더! 더! 잘 해줄 거니까요?"
"지금도 충분한데요..!"
"나는 충분한 건 싫어요. 과하고 싶은데."
"…아."
"그래서 울어가지고 막 막 그래쩌용??"
그래쩌용? 하며 그리의 볼을 꼬집는 효섭에 그리가 어색하게 웃으며 얼굴이 붉어진다.
"내일 모레지만.. 워크샵 잘 갔다와요. 무리해서 술 마시지 말고.. 웬만해서 술인 척 하고 물 마시고 그러구요.
걱정 되니까 카톡도 자주 자주 보내주고요."
"무슨 내일 당장이라도 제가 워크샵 가는 줄 알겠어요."
"…그래도 다행이다."
"왜요?"
"그리씨 아프면 챙겨줄 사람이 있으니까. 마음이 놓인달까?"
"챙겨주는 사람 없어도 저는 혼자 잘 해요!"
"ㅎㅎ."
"……."
"근데 아까 그 친구는.."
"……."
"친한 친구 아니죠?"
"…네."
"그쵸? 친한 친구면 그렇게 막 손목 세게 잡고 놔주지도 않고.. 막 그럴리가 없지이.. 역시.."
"……."
"미안해요. 아까는 그리씨 아파하는 거 보고 화가나서.."
"…괜찮아요. 저는..."
"…다음에 그 친구 보면 사과 해야겠네요. 아까는 정신이 없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그리는 살짝 웃어주고선 다른 생각에 빠진다. 다른 생각에 빠지면서 효섭이 무슨 말을 해도 반응이 없었고..
효섭은 그런 그리를 턱을 괸 채로 바라본다.
그리는 아까 재욱을 떠올렸다. 왜 우냐고 묻던, 걱정이 된다며 한숨을 내쉬던 게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원래의 이재욱이었으면 효섭이 멱살을 잡았을 때. 싸움이 터졌을 텐데.. 그 때 참은 것도 대단하고..
갑자기 안 그러던 짓을 하니까 더 이상하고..
"근데 그 친구 키 크더라. 나도 큰 편인데. 나랑 키 똑같은 사람 처음봐."
"아, 그쵸? 고등학교 때도 학교에서 제일 컸어요 ㅎㅎ."
"ㅎㅎㅎ 그리씨 그 친구랑 나 보려면 목 아프겠다. 내가 허리 숙이고 다닐까?"
"아니요..!"
"왜애. 그리씨 목 소듕해~"
"ㅎㅎㅎㅎ정말.."
5년 전
그 때
처음 그리가 전학 온 날.
"그리랑 같이 등교도 하고, 하교도 같이 해. 웬만해서 그리 집까지 데려다주고."
"제가요?"
"네가 인기 많잖니. 네가 잘 해줘야 애들도 잘 해줄 거고.. 봉사활동 하는 것도 시간 다 채워줄게."
"봉사 시간..?"
"뭐 그럼 전학생 챙겨주는 걸 봉사라고 생각해."
"…….'
"그리네 부모님께서 꼭 부탁한다고 돈까지...어유 내가 뭐래냐! 암튼 부탁한다..!"
아픈 그리를 위해 재욱은 그리와 함께 하교를 하게 되었고.
"어머 그리 친구니?? 집에 들어오렴! 아줌마가! 과일 깎아줄게!!"
어쩌다보니 그리의 방도 구경하게 되었다.
방을 구경하던 재욱이 그리의 어렸을 때 사진을 보며 말한다.
"넌 어렸을 때부터 하얬네."
"어렸을 때부터 아파서 밖에 잘 안 나가다보니까. 그런 것 같아."
"아파서 못 놀았어?"
"…친구가 없었어."
"그럼 이제 까매지겠네."
"어?"
"나랑 놀자."
"……."
"그래야 좀 까매져서 겨울에 널 알아볼 수 있으려나. 눈도 하얗고, 너도 하얘서 안 보일 것 같아."
"…ㅎㅎ."
"왜 웃냐?ㅋㅋㅋ"
"아냐!"
"너 웃으니까 예쁘네."
"…어???"
이 말은 진심이었다. 아니, 너랑 같이 어울리면서 진심이 아니었던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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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화
워
크
샵
!
!
!
!
!
아 마자요! 제가 이 작품에 너무 너무 어울리는 노래를 만들어봐써요 !
다음에 꼭 넣어보께요 !_! 후후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