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김태형] 네가 없는 시간. 01
방학이 시작하고 벌써 한 주가 지났다. 어딜가도 사람으로 넘쳐나 소란스럽던 캠퍼스는 고즈넉한 침묵으로 둘러쌓여 있었다. 나무그늘 아래 놓인 벤치에 앉아 적막한 캠퍼스를 둘러보았다. 느리고 잔잔한 여름바람이 지나갈 때 나뭇잎이 가볍게 사부작대는 소리가 간간히 적막을 깼다. 소란스럽고 생기넘치던 학기 중과는 사뭇다른 분위기가 싫지 않아, 나무 그늘 아래서 고인 물처럼 느리게 흐르는 여름바람을 따라 일렁이는 나뭇잎들을 바라보았다. 학교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잇는 것 같은 착각이 들때 쯤,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고개를 들자 씩 웃고 있는 과대의 얼굴이 보였다.
"야, 일찍왔네?"
"으응, 너도."
내 말에 남준이가 다시 씩 웃는다. 그러더니 내 발치에 제 가방을 놓고 옆자리에 털썩 앉는다. 조용하고 단체생활 싫어하는 나와 달리 남준이는 사람을 챙기는 것에 일가견 있는 아이였다. 기업법 시간에 내 옆자리에 아무렇지 않게 앉으며 혹시 출석 불렀어? 하고 묻던 얼굴이 선명하다. 남준이는 그 날부터 유일하게 내가 학과에서 말을트고 지내는 아이가 되었다. 여럿이 몰려다니는 일이라면 질색인 내가 농활에 참가하게된 것도 전부 남준이 때문이었다. 자기가 도와줄테니 동기들과 얼굴도 좀 트고 하라며 어린아이에게 잔소리 하듯 구는 탓에 나도 모르게 참가신청서에 싸인하게 된 것이다.
"아홉시 까지 오랬는데, 다들 뭐하는 거야. 으휴."
한숨을 푹 내쉬며 남준이는 손부채질을 시작했다. 한숨과는 다르게 허공에서 팔랑팔랑 흔들리는 손이 한가로와 보였다.
"이러다 너랑 나 둘이 가는거 아닌지 모르겠네."
"설마."
"나는 둘이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데~ 흐흐"
흐흐,하고 작게 웃는 남준이의 웃음소리에 미간을 살짝 찌푸리자, 농담이야 농담~ 넌 농담을 못알아 듣냐. 하고 또 타박한다. 미안, 하고 말하려는데 남준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반짝이는 휴대폰을 가리키며 나 잠깐 전화 좀. 하고 멀어진다. 주차장 아스팔트 위에 서있는 남준이의 어깨위로 한가로운 여름의 햇살이 쏟아진다. 눈부신 햇살 사이로 응, 주차장 얼른와 하는 남준이의 목소리도 울린다.
아홉시까지 모이라고 했더니, 아홉시가 십분이나 지났는데 이제 오냐! 하는 남준이의 목소리가 크게 울릴 때 쯤 멀리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몰려왔다.
-
신입생들은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한다는 남준이의 말을 철썩같이 믿고 있었지만 막상 오늘 학교 주차장으로 모인 것은 스무명 남짓이었다. 쏟아지는 햇빛을 피해 나무그늘 아래, 간신히 이름만 아는 여자 동기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기를 당한 거라며 볼멘소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 무리에 어색하게 끼어 그녀들의 이야기에 맞장구를 쳤다. 아이들은 9박 10일짜리 지옥체험이라도 가는 듯 우울한 얼굴로 후회 섞인 불만을 토해냈지만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헐! 태형이도 가나봐!"
모여 앉아 썬크림을 나눠바르던 여자애들의 고개가, 태형이 하는 외침에 한쪽으로 돌아갔다. 당연히 나도 고개를 틀어 그 방향을 바라보았다. 여자애들의 시선이 모두 모인 곳에는 태형이가 서 있었다. 입학하자마자 큰 키에 조막만한 얼굴로 경상대 간판이 된, 상대 뿐만 아니라 S대에 다니는 모든 여자애들이 이름은 몰라도 얼굴은 안다는 김태형이 한 손에 짐가방을 들고 남준이 옆에 나란히 서 있었다.
태형이의 농활 참가가 확인되자 후회와 불만을 토로하며 지옥에 끌려가는 듯 우울하던 여자아이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천국으로 가는 듯 환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태형이 진짜 잘생겼다. 막 얼굴에서 빛이 나는 것 같지?"
"9박 10일이나 되는데 꼬셔볼까?"
"아서라, 저 잘생긴 애가 네가 눈에 차겠니? 거울을 봐도 너보다 이쁜애가 있는데"
"콱! 너 맞을래???"
"에헤이, 헛꿈 꾸지말라는 친구의 고견을 새겨 들으셔~"
깔깔대는 여자아이들의 웃음소리에 맞춰 하하, 웃으며 나는 남은 썬크림을 손등에 문질렀다. 사실 나는 태형이를 처음 보았다. 태형이가 듣는 수업은 항상 자리가 없었고, 나는 자리가 많이 남은 다른 수업들을 위주로 들었기 때문이었다. 멀리서 잠깐 보았지만 학교 설립이래 가장 잘생긴 학생이라는 소문이 농담은 아닌 것 같았다. 주차장에서 시끌시끌 무리지어 떠들고 있는 남자동기들을 슬쩍 곁눈질 하자,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위로 살짝 올라온 태형이의 뒤통수가 보였다. 여자아이들의 말처럼, 태형이는 정작 관심도 없겠지만 그래도, 그 잘생긴 아이와 9박 10일이나 함께 있을 일을 생각하니 심장이 두근 거리는 것은 사실이었다.
"여자애들! 얼른 와서 버스 타!"
남준이의 목소리가 멀리서 울렸다. 까르르 대는 여자아이들이 버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두줄로 서서 인원체크를 하고 버스 짐칸에 짐을 실었다. 맨 마지막으로 짐을 실으며 등에 맨 작은 가방을 짐칸에 넣을까 가지고 탈까 고민하고 있는데 정수리가 따가운 느낌이 들었다. 뭐지, 하고 뒤를 돌자 태형이가 서 있었다.
"늦었어 빨리 타"
"으응."
가방을 한쪽 어깨에 걸친채로 걸음을 빠르게 움직였다. 뒤에서 따라 걷는 태형이의 발소리가 들렸다. 고작 열걸음을 걸어 차에 오르는 그 순간이 참 길었다.
-
45인승 버스에 스물 세명이 타니 자리가 한참 남았다. 친구와 함께 가는 아이들은 친구와 나란히 앉고 아닌 사람은 홀로 앉았다. 나는 뒤쪽에 홀로 앉아 이어폰을 꽂았다. 노랫소리 사이로 마이크를 잡은 남준이의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목적지 까지는 다섯 시간이고, 9박 10일동안 잘 해보자는 목소리를 들으며 눈을 깜박였다. 지난 밤 짐을 챙기고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에오느라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스물스물 몰려오는 졸음 사이로, 잠깐 들었던 태형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늦었어 빨리 타.
잘생긴 애들은 목소리도 좋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까물락, 잠에 빠졌다.
*제목과 다르게, 태형이가 있는 시간을 쓰고 있네요.ㅎㅎ
프롤로그가 있습니다. 보고 오시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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