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백현x박찬열
복숭아
눈에 밟히는 애가 있다. 젖살이 안 빠진 건지 통통한 분홍빛 볼에, 입술은 빨갛고 두툼하다. 눈은 또 쌍꺼풀 짙게 져서 사슴 새끼 같다. 그 애가 웃는 모양새를 보면 괜히 가슴께가 간질거리는 게 미친 거라고 생각했다. 안 지 오래된 친구니까, 친구라서, 여자가 고파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런 증세가 내게 일어날 리 없으니까. 그런데, 눈을 감으면 걔가 웃었고, 눈을 떠도 웃었다. 책에는 글씨 대신 얼굴이 그려져 있지 않나, 심지어는 환청으로 목소리까지 들리는 거 같았다. 나뭇가지 하나를 부러뜨려 나뭇잎을 한 장씩 떼어 보았다. 좋아한다, 아니다, 좋아한다, 아니다, 좋아한다……. 한참을 고민하다 나온 결론은 그거였다. 나는, 그 아이를 좋아한다. 그 사실을 자각한 이후로 나는 일부러 그 아이를 피해 다녔다. 몇 년 지기 단짝 친구가 저를 좋아하는 게이라는 사실 만큼은 알려 주고 싶지 않았다.
“변백현, 왜 나 피해?”
쉬는 시간 종이 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기 무섭게 조르르 달려와서는 으름장이라도 놓을 태세로 노려본다. 안 피했어. 내가 생각해도 참 헛소리다 싶어 웃음이 나왔다. 지랄 마, 병신 새끼야. 피했잖아. 마주치기 싫었는데 참 어지간히도 종알댄다. 신경 안 쓰겠다 다짐하고 다짐한 게 전인데 벌써부터 그런 생각이 눈 녹듯 사라지기나 하고, 이것도 병이라면 병인가 보다. 주둥이 내밀고 나 빡쳤어요 광고하는 모양새가 참……. 씨발, 누구 말마따나 나도 변태 다 됐나 보다.
“피했으면 뭐. 어쩌자고, 박찬열.”
돌직구를 던졌다. 하루에도 저 비글 같은 새끼 때문에 심장이 들렸다 놓이는 게 한두 번이 아닌데, 차라리 얼굴 안 보고 혼자 앓는 게 나을 거 같다. 박찬열은 저 등치에 ‘변백현 존나 싫어’를 외치며 지 교실로 뛰쳐나갔다. 개새끼가 교실을 뛰어나가듯 내 머릿속에서도 뛰고 있는 모양인지 머리가 욱씬욱씬하다. 어차피 자습일 테니 잠이라도 자야겠다, 고개를 책상에 박았다.
박찬열은 지금쯤 뭐 할까. 떠드려나? 아니 잠잘 것 같기도 한데. 씨발, 내가 그랬다고 처우는 거 아냐? 박찬열, 박찬열, 박찬열, 머릿속이 빼곡히 가득 찼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나 싶어 시계를 보니 고작 15분 조금 더 지났다. 도대체 수업은 언제 끝나는데? 카톡이라도 보내 봐야겠다. 먼저 밀어낸 건 나인데, 오히려 내가 밀린 느낌이다.
야뭐해 오전 11:7
자냐?잠탱이새끼씨발;; 오전 11:7
한동안 괜찮다 싶던 증상이 또 도지기 시작했다. 책상을 보니 박찬열이 울었고, 칠판을 보니 박찬열이 또 울었다. 옆자리 여자애를 보니 박찬열이 변백현은 개새끼라며 욕을 했다. 이건, 이건 가히 중증이라 표할 수 있는 단계다.
그런데 박찬열 주둥이 내민 모습 정말,
“씨발……. 가지가지 하네.”
꼴렸었다. 다 좋은데 허리 아래가 뻐근함을 넘어서 빠질 거 같은 게 문제다.
선생님에게 배 아프다고 구라치고 나왔다. 사실 완전히 구라는 아니다. 아프긴 아프니까. 단지, 선생님과 내가 생각하는 아픔이 조금 다를 뿐이다. 복도를 질주하다시피 달려가 화장실 문을 밀어 당겼다. 그런데 화장실 바닥에 뭐 버렸나? 물컹물컹한 게 밟히는데……. 그런데 비명 소리가 나…… 잠깐, 무슨 소리가 나? 밑을 바라보았다.
“씨발!!!!!”
“개새끼야 왜 밟는데!!!!!!”
나는 처참할 정도로 아프게 박찬열 손바닥을 밟고 있었다. 얘가, 아니 그러니까 박찬열이 도대체 왜 여기 있는데? 그것도 수업 중에 화장실 바닥에 앉아서.
“씨발, 멍 때리지 말고 발 치우라고!!!!!”
그제야 발을 떼어냈다. 당황함에 눈을 데굴거리다 얼굴을 보니 눈이 발갛다. 울었네, 저 울보 새끼. 뭐 때문인지는 몰라도 왜 멀쩡한 애를 울리나 싶고, 기분이 좋지 않았다.
“나 안 울었어.”
“누가 뭐래?”
딱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꼴이다. 그럼 니 눈에 방울방울 맺힌 건 눈물이 아니라 땀이냐? 병신. 그런데 입술 꾹 깨무는 꼴이 개새끼마냥 귀엽다. 살다가 남자한테 귀엽다는 말을 쓰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다.
“눈 빨갛다.”
“어.”
“토끼 새끼같이.”
“씨발아.”
한참 적막이 맴돌았다. 부풀대로 부푼 아랫도리는 그것대로 문제고 눈앞에 있는 박찬열은 존재 자체만으로 문제였다. 머쓱하고 어색한 건 박찬열도 마찬가지인 건지 정신 나간 년처럼 화장실 바닥 타일 개수나 세고 앉아있었다. 결국에는 박찬열은 지금 내가 무지하게 보기 싫을 거란 결론이 나왔고 나는 화장실을 나가려 몸을 돌렸다. 그 때, 박찬열은 입을 열었다. 뒤돌아 서 있어서 어떤 표정인지 보이지는 않았지만 목소리만으로도 가뜩이나 낮고 음산한 목소리가 더 스산하게 들렸다.
“너, 여자 좋아해?”
여자 좋아하는데 니가 더 좋아 같은 삼류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의 대사 같은 말은 내뱉을 수 없었다.
“난 남자 좋아하거든. 근데 좋아하는 티가 많이 났나 봐. 요즘 나 계속 피한다?”
“너 나 좋아해?”
설마 싶어 농담으로 내뱉은 말이었는데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는다. 고개를 돌려 확인한 박찬열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주둥이를 꾹 깨물고 있었다. 무언가 단단히 꼬였다는 느낌만이 들 뿐이었다. 야, 야. 무릎을 구부려 박찬열이랑 눈높이를 맞추었다. 저 씨발년은 바닥에 앉아 있는 주제에 나랑 키 차이도 얼마 안 난다. 어깨를 툭툭 치니 손을 붙잡고는 내던진다.
“씨발, 건들지 마!”
“안 건들일게, 씨발년아.”
혼자서 한참을 엉엉 울더니 갑자기 지 혼자 뚝 그친다. 장하다, 내 새끼 하면서 엉덩이라도 두드려 줘야 하나 싶었다. 큼큼,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박찬열.”
“왜.”
“좋아해.”
박찬열은 얼굴이 시뻘겋게 변해서는 나한테 꼭 안긴다. 사실 내가 안긴 꼴이지만. 박찬열 얼굴을 보고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예쁘다. 아니, 세상 모든 말을 갖다 붙여도 형용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찬열이는 복숭아야. 부농부농 피치피치 해.
백찬도 복숭아야. 부농부농 달달해.
근데 내 글이 안 달달한 게 함정 '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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