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에 좀 모자란 놈이 하나 있는데."
김명수가 화두를 올렸다. 좀처럼 남 얘기를 하지 않는 놈의 입에서 튀어나온 모자란 놈 얘기에 이성열이 모자란 놈? 하며 호응을 해주자 김명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 모자란 놈. 그 모자란 놈이라는 주제가 꽤나 흥미로웠던지 폴라포를 물고 양 손으론 열심히 액정을 두드리던 이호원도 저의 눈만 올려 부정확한 발음으로 물었다. 므즈른 늠? 김명수가 다시 한 번 더 끄덕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호원 옆에 앉아있던 김성규는 풀리지 않는 수학문제 때문에 괜히 죄없는 제 샤프 끝에 화풀이 중이었다. 이성열은 이야기의 시작만 툭 던져놓고 더이상 이야기를 잇지 않는 김명수를 보며 채근했다. 아, 그래서. 그 다음은 뭔데!
"그냥."
"…그으냐앙?"
좀. 신경 쓰여서.
라고 말하며 김명수는 저 혼자 생각에 잠긴 듯 허공을 쳐다봤다. 이성열이 아니, 말 하려면 끝까지 하던가! 하며 성질을 냈으나 받아주는 이가 하나 없었다. 이성열은 괜히 혼자 씩씩거리다가 이호원 손에 들려있던 핸드폰을 뺐었다. 한참 97콤보를 달리고 있던 이호원의 표정이 싹 굳었다. 야, 이성열 이 개새끼야!!! 하는 이호원의 말에 이성열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점수를 확인했다. 와, 이호원 존나 못한다. 이 형님이 해주랴? 하고 물으며 이성열은 마치 제 것처럼 자연스럽게 게임 스타트를 누르곤 게임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이성열을 보며 이호원은 어쩌면 요새 머리가 자주 지끈거리는 것이 저 이성열이가 매 쉬는 시간, 점심시간마다 주는 스트레스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온 몸을 움찔거리며 게임을 하고 있는 이성열에게 병신, 하는 한 마디를 남기고 이호원은 어느새 다 녹아 포도주스가 되어버린 폴라포를 쭉 들이 키다 아직도 허공을 보고 있던 김명수를 발견했다. 이호원은 궁금했다. 평소에 이런 말 하나 없던 김명수가 뜬금없이 그런 말을 꺼낸 것은 분명 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일 거다. 이호원은 저의 뒤 책상에 걸터앉아있는 김명수의 무릎을 잡고 흔들었다. 야, 명수야. 김명수.
"어?"
"계속 얘기 해 봐."
"…뭘?"
이호원이 제 의자를 두 팔로 안으며 말했다. 아까 네가 꺼냈던 얘기. 좀 해보라고.
"별 거 아니야."
"별 거 아니긴."
언제 핸드폰 게임이 끝났나 이호원의 책상 위에 핸드폰을 가볍게 던지며 이성열이 김명수 쪽으로 몸을 틀었다. 이호원이 너 지금 내 핸드폰 던진 거냐?!! 하는 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는 듯 이성열은 김명수만 쳐다보고 있었다. 김명수는 진짜 별 거 아닌데. 하며 말하기를 꺼려하는 눈치였으나 이성열의 정강이를 팔꿈치로 찍은 이호원이 그런 김명수의 무릎을 살살 찔렀다. 그냥 말해라. 응? 김명수가 저를 올려다보던 이호원과 눈을 마주했다. 그렇게 정적을 지키던 김명수는 큼큼 헛기침을 하며 제 목을 가다듬었다. 그러더니 곧 알았어. 하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우리 반에 모자란 놈이 하나 있는데.
***
교실 구석자리의 주인공 등이 덜덜 떨렸다. 그 모습을 보고 주변에 있던 사내놈들이 웃기 시작했다. 야, 이 새끼 떠냐? 부터 시작해서 욕짓거리를 내뱉고 개중에 한 놈은 그의 짝 책상 위에 걸터앉아 안 그래도 수그려있던 그의 머리를 찍어 누르고 있었다. 김명수는 이게 무슨 시간 낭비인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서도 놈들 무리에 서서 놈들이 하는 짓을 지켜보았다. 자기네들이 말을 못하게끔 압박하고 있으면서 놈들은 그에게 질문을 하고 대답을 못하면 더 세게 찍어 눌렀다. 짓눌린 그의 목에서 앓는 소리와 함께 코 먹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럼 놈들은 또 더럽다고 그의 머리를 내려쳤다. 그의 몸이 발작을 하듯 떨려왔다. 허나 그런 것을 보고 멈출 놈들이 아니었다. 오히려 즐기는 듯한 놈들의 목소리는 볼륨을 키워나갔고, 덩달아 그의 웅크러진 몸에서 흐느낌 같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어?"
"왜? 왜?"
"야. 이 말더듬이 새끼 또 운다."
"헐. 그러게."
으. 으으. 흐. 으어어엉. 흐! 흐으. 흑! 끅! 하는 소리가 순식간에 반을 가득 메웠다. 놈들이 그런 그를 둘러싸고 웃기 시작했다. 김명수는 그 모습을 보곤 괜히 기분이 더러워져 그쪽에 고정되어있던 시선을 돌려 제 반을 훑어봤다. 그리고 김명수는 더 더러운 기분에 휩싸여야 했다. 뒤에서 같은 반 정신지체아 울고 있는데 다가오는 이 하나 없이 조용하다. 마치 아무 것도 안 들린다는 듯 펜대만 움직이는 놈들을 보다 김명수는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는 여전히 울고 있었고, 그 앞에 있던 놈은 그의 턱을 잡고 이리저리 돌려댔다. 그는 마치 어린애처럼 서럽게 울고 있었다. 그러나 김명수가 알기론 그는 어린애가 맞았다. 물론 겉은 저의 또래이지만. 정신지체아인 그의 정신연령은 대략 8살. 지금 그의 앞에서 그를 비웃고 조롱하는 놈들보다 10살이나 더 어린 것이다. 김명수는 그런 한심한 짓거리를 보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간은 어느새 점심시간에 가까워지는데 이 괴롭힘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의 울음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 터진 울음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갔다. 결국 한 놈이 존나 시끄럽네, 씨발. 하며 그의 머리를 내려 칠 때가 되서야 그의 울음소리는 사그라지기 시작했다. 그때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놈들은 저마다 손을 들어 올려 그의 뒤통수를 한 대 씩 깠다. 기약 없던 괴롭힘의 끝에도 그의 몸은 떨리고 있었고 아까의 충격 때문인지 그의 눈에서 눈물은 단 한 방울도 흐르지 않았다. 그는 저의 손등으로 눈가를 슥슥 닦아낸 뒤 제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가슴팍의 명찰이 반짝였다.
남우현. 2학년 3반 7번. 키도 작고 몸도 왜소하지만 저와 같은 나이인 18살. 그러나 정신연령은 8살인 지적장애인. 말더듬이. 코를 훌쩍거리며 가방을 챙기던 남우현을 지켜보고 있던 김명수는 이호원과 김성규를 양 쪽에 끼고 앞문에서 소리치던 이성열때문에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남우현. 하고 김명수는 잠시 생각했다.
솔직히 여기까지라면 평소와 같았다. 김명수는 금방 불쌍한 남우현에 대한 관심을 접고 일상으로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명수는 그 날 우연히 다시 한 번 남우현을 마주쳤고, 그 선명한 기억은 김명수를 그대로 사로잡아 버렸다. 김명수는 넷 중 유일하게 담배를 폈다. 김성규와 이호원은 담배를 질색하는 편이었고 이성열은 생긴 건 놀기 좋아하게 생겨서 의외로 보수적이었다. 그 틈에서 김명수는 홀로 나와 학교 외진 곳에서 담배를 피웠다. 그날도 점심 식사를 끝내곤 담배를 태우러 평소 자주 가던 학교 뒤편 쓰레기 소각장으로 가던 중이었다. 그런 명수의 옆으로 불독이라는 별명을 가진 학생주임이 휙 지나갔다. 한 손엔 출석부, 다른 손엔 빠따 하나를 들고. 설마설마 하는 생각에 학생 주임 뒤를 따라갔다. 여기 아니면 필 곳도 없는데. 제발 아무도 없길, 하는 김명수의 바람은 허공을 울리는 학생주임의 욕설로 인해 끊겼다. 하는 수 없이 김명수는 왔던 곳을 되돌아 가야했다. 그나저나 어디로 가야하나.
학생주임이 담배 피운 놈을 현장에서 발견한 이상 오늘 하루 학교 안쪽은 모두 적색경보 발령이다. 사람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구관은 물론이거니와 산책로라고 만들어놓은 뒤뜰도 뒤질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김명수는 담배를 포기 할 마음은 없었다. 김명수는 골초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담배를 건너뛰는 것은 허전했다. 그래도 불독에게 걸리는 것보단 나을라나. 하는 생각에 교실로 올라가려던 순간 머리 위로 떠오르는 장소가 하나 있었다. 그러려면 교문을 나가야 하는데, 이것도 걸리면 문제다. 허나 등잔 밑이 어둡다고. 오늘은 왠지 불독이 평소 서있던 교문 대신에 하루 종일 학교만 돌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 생각에 미친 명수는 바로 건물을 나와 교문으로 향했다.
교문 앞 슈퍼 옆으로 난 골목길. 주변에 대문 몇개를 제외하고는 조용한. 김명수는 제 등을 벽에 붙이곤 마이 안쪽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곤 손으로 바람이 오는 방향을 가린 뒤 불을 붙였다. 담배 끝에서 불빛이 일렁이다 꺼졌다. 희뿌연 연기가 하늘 위로 날아 올라가고 있었다. 김명수는 눈을 살짝 감았다. 머리위로 햇볕이 노곤노곤했다. 김명수가 저의 안으로 들어간 담배 연기를 천천히 내뱉었다. 아, 나른하다.
"왕!! 왕왕!!"
감았던 눈을 떴다. 김명수는 소리가 난 곳을 찾기 위해 고개를 움직였다. 그리고 김명수가 있던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대문 앞에 짧은 꼬리를 흔들고 있는 작은 강아지 한 마리를 보였다. 태어난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 작은 몸체에 복슬복슬한 털이 귀여웠다. 희뿌연 연기 사이로 보이는 강아지를 구경하다 김명수는 강아지 앞에 쭈그려 앉아있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그는 저와 같은 학교의 교복을 입고 있었는데 자세 때문인지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김명수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떴다. 누구지. 분명 지금은 하교하기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커다란 가방을 메고 한가하게 강아지랑 노닥거릴 만큼 여유로울 놈은 김명수가 알기론 별로 없었다. 저희 학교가 주변에서 꽤 유명한 인문계 고등학교라 그런 학생들은 애초에 잘라버리기 때문에. 한 둘 있다 하더라도 그 놈들은 머리색부터 다르다. 그때 그가 저의 손을 들어 저를 보며 짖고 있던 강아지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강아지가 그의 손에 제 머리를 맡기곤 작게 끄응 하는 소리를 냈다.
김명수는 계속 그 광경을 지켜보다 흥미를 잃었다. 손목에 채워진 시계를 확인해 보니 수업까지 약 10분 정도가 남았다. 김명수는 대충 벽에 담배를 비벼 끄곤 자리를 뜰 준비를 했다. 그러다 우연히 그 곳으로 시선이 다시 가게 되었다. 그는 여전히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고, 강아지는 그런 그의 손길을 받고 있었다. 그는 아직도 쭈그려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김명수가 다리 안 아프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쯤 그 작은 강아지가 저의 앞발을 들어 그의 무릎에 제 발을 척하고 가져다댔다. 그가 놀란 듯 흠칫하자 왕! 왕! 하는 소리를 냈다. 그는 그런 강아지를 보고 당황한 듯 어색하게 손을 허공에 뒀다. 강아지가 다시 한 번 짖었다. 왕! 허공에 뜬 그의 손이 떨렸다. 그리고 그는 결심한 듯 그 작은 강아지의 몸통을 들어 올려 제 품에 안았다.
그리고 웃었다.
그가, 아니 남우현이.
저의 품에 안겨있는 이 작은 강아지가 사랑스럽다는 듯 쓰다듬으며 웃었다. 찡그린 얼굴로 눈물만 뽑아내던 눈은 그믐달처럼 휘어져 있었고, 웃음 때문에 생긴 팔자주름은 깊게 패여 있었는데도 흉하지 않았다. 남우현의 웃음소리가 적막한 골목길을 잔잔하게 채웠다. 김명수가 그런 남우현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남우현은 싱그럽게 웃었다. 불과 몇 시간 전에 괴롭힘은 잊은 것처럼. 그때 남우현의 품에 안겨있던 강아지가 제 몸을 비틀었다. 남우현이 눈을 크게 떴다. 강아지는 남우현의 팔을 작은 발로 툭툭 쳤다. 남우현의 표정이 바뀌었다. 이번엔 좀 아쉬운 듯 한 표정. 남우현은 하는 수 없이 저의 품에 안겨있던 강아지를 내려놓았다. 강아지가 남우현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남우현이 다시 웃었다. 그러다 남우현은 이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천천히 저의 몸을 일으켜 세우다 표정을 구겼다. 저의 손으로 무릎을 탁탁 치는 것이 아마 다리가 저린 모양이었다. 남우현은 저의 가방 팔걸이를 양손으로 잡고 계속 뒤를 돌아보았다. 힘차게 손을 흔들기도 하면서.
김명수의 안에서 무언가 작게 일렁였다.
***
"……."
"……."
"그게 다냐?"
하는 이호원의 말에 김명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성열이 옆에서 투덜거렸다. 진짜 별 거 아니구만. 그러더니 이성열은 김명수의 얘기를 간단히 요약하며 물었다. 그러니까 너네 반에 말더듬이 장애인이 있는데 우는 모습만 보다가 웃는 거 보니까 꼴리기라도 했냐? 이호원이 이성열의 허벅지를 짝 소리 나게 내려쳤다. 야! 막줄 에러다! 꼴리긴 뭘 꼴려, 김명수가 게이 새끼도 아니….
"어."
"어, …어?!!"
존나 꼴렸어. 그 자리에서 하고 싶을 만큼. 하고 말하는 김명수의 말에 이호원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반면에 이성열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김명수의 어깨를 퍽퍽 쳤다. 얌마. 아무리 그래도 장애인은 건들면 안 되지. 하는 이성열의 말에 김명수가 코웃음을 쳤다. 이호원이 야, 야. 기, 김명수. 하며 명수의 이름을 부르던 순간 공부만 하고 있는 줄 알았던 김성규가 몸을 틀었다. 김성규는 김명수와 눈을 마주치며 물었다. 네가 지금 말하는 그 장애인 이름이
"남우현이냐?"
그 말에 이호원과 이성열이 시선이 김성규에게 집중됐다. 김명수가 덤덤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 그 말을 듣고 김성규는 다시 몸을 앞 쪽으로 틀었다. 이호원이 멍한 눈으로 제 옆의 김성규를 쳐다봤다. 뭔가 익숙한 이름.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
아,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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