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끝이 스칠 때.
처음엔 동경인 줄 알았다. 나보다 머리 하나 커보이는 사내가 눈을 빛내며 다가와 '싸인! 싸인 플리즈!' 라고 어눌한 영어를 외치며 자신의 유니폼을 내 밀었을 땐,
그저 동경인줄 알았다.
"Excause me."
해드폰을 낀채로 상체를 조금 들어올리자 선수 몇명이 내 앞을 지나쳐갔다. 긴장한채로 오래 숙이고 있던 목이 아파 고개를 약간 기울이자 불쑥 내밀어진 손끝이 눈에 걸린다.
"힘내 Park!"
어눌한 한국어로 힘내라며 악수를 청하는 그의 눈을 마주보자 헤실헤실 입꼬리를 V자로 만들며 나를 바라본다.
"하하..Thanks, you too."
맞 잡은 손에 찌릿- 마치 전기가 통하듯 전률이 흘렀다. 손을 맞잡아주자 이를 들어내며 웃는 그를 보자 또 한번 찌릿- 풀리는 손끝에 전률이 흘렀다.
아무렇지 않은 척 앞을 보다 들리는 소리에 신경이 쓰여 꺼져있던 노래를 켰다.
혹여나 나에게 말을 걸까 꺼놓았던 노래는 내가 깜짝놀라 헤드폰을 뺄 만큼 볼륨이 높아져 있었다.
첨벙! 하고 물소리가 들렸다. Ohhhh 하는 아쉬운 감탄사가 객석에서 흘러내려왔다. 설마. 설마 아니겠지. 고개를 들자 물속에서 얼굴만 내민 채 두리번 거리는 그가 보였다.
"Shit."
낮게 욕을 읍조리자 옆 레인의 이탈리아 선수가 눈을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았다.
순간 400m 예선경기가 떠올랐다. 만약 그가, 그가 지금 실격처리를 당한다면 나는 그처럼 심판에게 항의 할 수 있을까.
찰나의 순간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이 말했다.
괜찮아, 걱정하지 마 my park.
경기는 진행 되었고 그는 금메달을 땄다.
락커룸에 혼자 앉아 멍하니 수영복만 바라보았다.
그가 나를 보지않았다. 경기 후 항상 나를 찾던 그 얼굴도, 내 샤워가 끝날 때 까지 샤워실 앞에서 서성이던 커다란 그림자도, 머리를 말리고 있노라면 옆에붙어 재잘재잘 떠들어 대던 그 목소리도 전부 없어졌다.
당연한 것이였다. 나는 이제 그의 우상이 아니니까.
"Hahaha! Sun~ you really nice man!"(하하하! 쑨~ 너 정말 좋은 놈이구나!)
"Thank you, haha!"
갑자기 들려오는 웃음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리자 시상식을 마치고 돌아온 그가 보였다.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지났지? 깜짝 놀라 허둥지둥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Hey Sun, Park over there!" (이봐, 쑨, 박이 저기있어!)
"..."
"In my opinion,I think he is waiting for you"(내 생각엔 그가 널 기다리는것 같아.)
짐을 다 챙기고 뒤 돌아서 고개를 숙인 채 빠르게 걸어갔다. 툭 내 어깨와 그의 팔이 부딫히고 나는 또 찌릿. 전기가 흐르는 어깨끝을 손으로 부여잡으며 락커룸을 빠져 나왔다. '미안.' 이라는 한마디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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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방탄 찐팬이 올린 위버스 글인데 읽어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