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의 웨딩
부제 : 정략결혼
눈을 뜨자마자 든 생각은 '좆됐다.' 였다. 그리고 피실피실 웃음도 나왔다. 그 상태로 일어나서 교복을 입었다. 아무런 정신도 없었다. 왠지 입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교복을 꾸역꾸역 입고, 거실로 나갔다. 티비를 보던 엄마가 고개를 돌렸다. 이건 뭔 지랄인가. 눈빛이 딱 그렇게 말했다. 진짜로. 아끼는 인형을 걸 수도 있다.
"뭐해?"
"......"
"잠이나 더 자. 왜 아침부터 난리야."
"... 아."
나 졸업했지. 딱 그 생각이 들었다. 그제서야 웃음이 나왔다. 지금은 오전 9시 30분. 지각이 아니지. 미친년처럼 자지러졌다. 미친... 내가 봐도 딱 미친년 같았다. 다음 달이면 대학교에 가는 지지배가 왜 갑자기 난리법석이냐고, 엄마는 어이가 없어 했다. 그런데 엄마... 생각을 해봐.
"오늘 저녁에 사돈 어른댁 만나러 가니까 그런 줄 알어."
"싫다고 했잖아."
"너 싫다고 집안 망신 시킬래? 벌써 이게 몇 번째 파혼이냐고 할아버지가 역정을 내시잖니!"
"집안 망신이건 뭐건! 난 싫다고."
"그럼 가서 할아버지랑 쇼부 보렴. 난 모른다."
엄마는 새침하게 말하고는 안방으로 쏙 들어갔다. 그래. 할아버지... 할아버지... 나는 불량한 표정으로 다시 내 방으로 기어 들어갔다. 잔뜩 흐트러진 이불 위로 몸을 던졌다. 팡팡. 이불을 세게 내리쳤다. 빡쳐... 빡친다... 머릿속에 드는 생각은 온통 그것 뿐. 나는 시방 지금 존나게 위험한 짐승이여.
"말도 안 돼."
한 달 후 개강. 한 달 후 대학교 1학년이 되는, 스무살의 나는.
"이게 진짜 좆된 거지..."
결혼해야 할 상대가 있단다. 그것도 일곱 살이나 많은.
"오세훈 보고 싶다."
그리고 나는 아직 그 사실을 남자친구에게 말하지 못 한 상태였고.
"굿모닝."
"어, 굿모닝."
"기분이 왜 이렇게 저기압이실까. 내가 뭐 잘못함?"
"니니. 너 잘못한 거 없음. 그냥 내가 오늘 기분이 좀 안 좋다."
세훈이는 삐딱하게 서 있던 자세를 고치고는 내 양 볼을 꼬집었다. 아파, 새끼야...
"왜? 치킨을 못 먹음?"
"득츠..."
"아니면! 집에 라면이 없나?"
"그스끄..."
그리곤 팔뚝을 꼬집히고서야 내 볼을 잡던 손을 놓았다. 개새끼... 존나 세게 꼬집었어. 나는 오세훈이 사온 버블티를 쪽쪽 빨아 마셨다. 피치에 타피오카펄. 별난 조합이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조합이었다. 오세훈은 볼에 바람을 불어 넣고는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뭘 봐."
"너."
"말싸움 할 기력도 없다."
"기분이 왜 안 좋은데."
"......"
"말해봐."
'결혼해.' 이 한 마디가 입가에서 간질간질 거렸다. 세상 어느 여자가 자기 남자친구한테, 나 다른 남자랑 결혼해. 라는 말을 쉽게 할 수 있을까. 아니, '쉽게' 가 중요한 게 아니지. 일단 이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존나 이상하다는 거야.
"그 날인가?"
"개새끼."
꼭 이렇게 매를 벌어요. 등짝을 내리치곤 얼얼해진 손바닥을 버블티 컵에 대어서 식혔다. 오세훈은 불에 닿은 오징어마냥 몸을 구겼다. 아프다며 미간을 찡그리는 저 얼굴은... 잘생겼지. 나는 결론적으로 오세훈의 잘생김에 감탄을 했다. 이게 뭐 하는 짓이람. 스스로 생각해도 나는 참 미친년이었다. 정략결혼 이야기를 들은 게 크리스마스였다. 오세훈의 고백을 받은 게 그 전날 이었고. 결혼 얘기를 안 들었으면 안 사귀었으려나. 그건 아닐 것 같은데. 나쁜년이라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얘랑 썸만 2년을 탔는데. 고 2 때 정말 사귀기 직전까지 갔다가 오세훈의 엄청난 성적 하락 때문에 결국 못 사귀었고. 고 3 때는 서로 공부하자며 '남사친, 여사친' 흉내 내면서 마음 감추느라 못 사귀었고. 결국 수능 끝나고 불같이 썸 타다가 고백한 게 크리스마스 이브. 대학도 같은 대학. 이제 행복한 길만 남았다며 서로 축하했는데.
"세훈아."
"왜 갑자기 그렇게 다정하게 부르냐."
"하... 새끼. 다정하게 불러줘도."
"뭔데."
"......"
"아, 궁금하다고여... 아까부터 자꾸 뜸만 들이고. 뭔데, 진짜?"
"야."
세훈아. 있잖아. 그러니까 말이야...
"나."
"어, 너."
"결혼해."
세훈이는 말 그대로 고개를 '갸웃' 했다.
"난 아직 결혼하자는 말 한 적 없는데?"
"......"
"이게 요즘 신종 청혼인가?"
"그게..."
"어쨌든 심쿵하네. 그래도 아직 결혼은 이르다. 나 군대도 안 갔잖아."
"그게..."
오세훈이 해맑게 웃으며 버블티를 쪽쪽 빨았다. 그래. 나는 나쁜년이다. 나쁜년이다.
"그 결혼."
존나 맛있게도 예쁘게도 먹네. 미안해지게.
"너랑 하는 거 아니야."
* 글잡은 처음이라 떨리네요 ㅎㅎㅎㅎㅎ
진짜 진짜 클리셰의 끝판왕입니다. 할리퀸, 정략결혼, 삼각관계, 나쁜 남자 등등...
재밌게 봐주시와용!
(다음편부터는 분량 빵빵하게 올게여 8ㅅ8)
* 제목 수정했습니다. 유사한 제목의 글이 글잡에 있어서요... 8ㅅ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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