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피던 날, 소년은 멀리 날아갔다
초겨울이였다. 소년을 처음 만난 건.
내가 그 아이를 처음 봤을 땐, 진료실이였다.
"다음 환자 분, 들어오세요-"
차트를 넘기며 의자에 앉아 다음 환자를 기다리고 있던 나는 달칵- 열리는 문 소리에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보았다.
"아... 저, 안녕하세요."
조금은 조심스러워보이는 발걸음과, 불안해보이는 눈동자는 여느 환자들과 다름 없었다.
"무슨 일로 왔어요? 변...백현군?"
차트엔 변백현, 19세라고 적혀 있었다.
"저... 요즘 속도 계속 쓰리고 소화도 잘 안되고... 구토도 몇 번 했거든요."
"아, 그래요?"
차트를 덮고 손깍지를 낀 채 턱밑에 둔 채, 계속해서 질문을 했다.
"얼마 전 부터 그랬어요?"
"한... 두 달 된 것 같은데."
두 달 동안 뭐하고 이제 병원에 왔담... 미련한 환자네, 생각하며 미소를 띄우고 말을 이어 나갔다.
"아무래도 좀 봐야 할 것 같은데. 위 내시경 한 번 해봐요."
"아, ㅈ...저! 위...내시경 찍는 데 돈 얼마 들어가요...?"
불안해보였다. 그 아이의 눈빛은.
"3만원 좀 안 될거에요, 왜요?"
내 말에 눈동자를 위로 치켜뜨고 손가락을 꾸물대며 한참을 생각하고 한숨을 푹- 쉬고 입을 떼었다.
"...언제 해요?"
.
.
.
"마취제 투입할게요. 푹- 잔다 생각하고 숫자 10부터 1까지 세봐요."
입술만 꼼지락대던 백현은 어느새 색색- 숨을 몰아쉬며 잠을 자기 시작했고 장비를 갖춘 채, 백현의 몸에 침투했다.
"...야, 이거 뭐야."
모니터를 보며 위를 보던 나는 놀라 굳어버릴 수 밖에 없었다.
"ㄱ, 김간호사. 얘..."
그 아이의 위는 암 투성이였다.
"...아, 백현군 일어났어요?"
"흐음... 생각보다 힘드네요, 어떻게 됐어요?"
"...아, 그게."
말하기 두려웠다. 항상 암 판정을 받는 환자들의 눈동자엔 절망이 담겨 있었고, 나는 정면에서 항상 그것을 보았으니까.
"...백현군."
하지만 나는, 의사니까.
"위암이야."
내 말에 네? 하며 한참동안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이내 해맑게 웃으며 개구쟁이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제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요? 선생님, 저 많이 편해지신거에요?"
"...백현군."
"......"
"...진짜야, 위...암."
그러자 점점 표정이 굳기 시작하더니 그 표정은 어느새 불안으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걱정 마. 위암이긴 한데, 치료 받으면 살 수 있어. 백현군 아직 초기라서 치료 받으면 무조건 살아."
"......"
무조건 산다는 말에도 미동 없이 책상만 바라보는 백현에 조금 이상함을 느꼈다.
"수술, 수술하면 살 수 있어. 백현군, 위암이라고해서 다 심각한 게 아니야. 게다가 백현군은 아직 젊으니까...!"
"수술... 돈 많이 들죠."
...어? 하며 백현을 바라보자, 고개를 들고 나를 쳐다보고 말하는 백현의 말은 그동안의 행동들이 어느정도 이해가 갔다.
"제가 조금 가난하거든요. 수술 안 받을래요."
"...백현군, 무슨 소리야. 수술을 안 받는다니..."
그러자 백현은 머쓱한 듯 머리를 긁적이더니 이내 미소를 지어보이기 시작했다.
"저 되게 많이 가난하거든요. 사실, 위내시경 비용도 저한테 벅차서 저 몇 일 간은 쫄쫄 굶어야해요."
"...백현군...?"
"그래도 진찰은 받으러 올게요. 궁금하기도 하고..."
그 말을 끝으로 백현은 도망치 듯, 자리에서 일어나 진료실에서 빠져나갔다.
하지만 백현은 정말로 진찰은 꼬박꼬박 받으러 왔었다. 자신이 위암환자라는 건 아는 지, 항상 해맑게 웃고 다녔다.
그리고 5번 째 진찰 날.
"...저, ㅇ 선생님. 변백현 환자... 암이 더 커졌어요."
김 간호사의 말을 듣고 다짐했다. 오늘은 진짜 오늘은 설득해야겠다.
"백현군, 진지하게 할 말이 있어."
"뭔데요?"
"...백현군, 수술 받자."
"...안 받는다고 말씀 드린 것 같은데. 저 안 받아요!"
여전히 미소를 유지하는 백현에 머리를 한 번 쓸어올리고 답답한 마음을 가라 앉힌 채, 입을 떼었다.
"백현군, 지금 수술 안 받으면 진짜 죽을 지도 몰라."
"...돈이 없으면요."
"지금 돈이 문제야? 당장 어디에서든 빌려서 치료해야해, 아니면 진짜로...!!!"
"그 큰 돈을 어디서 당장 빌려요."
"...어?"
해맑았던 표정은 어느새 무표정으로 변해 있었고, 그 무표정엔 절망이 담겨 있었다.
"...선생님이 대주실 거 아니잖아요."
"...백현군."
"아직은, 아직은 별로 안 아파요. 나 괜찮아."
.
.
.
백현은 몇 번을 설득해도 완강히 수술 의지를 거부했다.
나날이 갈 수록, 백현의 상태는 더욱 더 심각해져갔고 이젠 백현도 점점 고통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백현 자신은 모르겠지만, 이 주일에 한 번씩 진찰을 받으러 오는 백현은 점점 말라가고 있었고, 낯빛도 굉장히 좋지 않았다.
그 날은, 정말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심정으로 백현에게 다시 말했다.
"백현군... 상태 지금 진짜 안 좋아. 이젠 정말 해야 해."
내 말에 헤실거리던 미소를 유지한 채, 고개를 들고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벌써 그렇게 안 좋아졌어요?"
"진짜 장난이 아니야. 이젠 수술 받아도 살까 말까야. 백현군... 엄마 모셔야지. 응?"
엄마라는 말에, 해맑던 미소는 어느새 씁쓸한 미소로 변해 있었다.
"...엄마는 제가 없으면, 나라에서 도움을 줄 거에요."
"백현군!!"
"...저 때문에 엄마 지원 못 받고 살아요. 제가, 제가 일 할 수 있으니까... 나라에서 지원 안 해줘요."
"......"
가슴이 저려왔다.
넌, 넌 학생인데. 일을 해야만 했었구나.
"엄마는, 제가 없어야 살 수 있어요."
"...백현군... 아무리 그래도 그게 할 소리야...? 백현군 죽으면 엄마는...!!!"
"잠시동안은... 힘드실 거 저도 알아요."
"......"
"앞으로 안 올거에요, 그동안 진찰 해주셔서 감사했어요."
그리고 급히 진료실을 빠져나갔던 그 아이의 모습은, 내겐 마지막이였다.
항상 자기가 한 말은 지키는 듯 했다.
앞으로 안 온다는 말을 한 후에는 정말 이 병원에 다시는 오지 않았다.
그렇게 점점 나도 그 아이에 대한 기억이 무뎌져 갈 때 쯤, 김 간호사가 내 진료실 문을 열었다.
"...ㅇ 선생님."
"아, 네."
"...변백현 군, 오늘 죽었대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 앉는 것 같았다. 그 아이가 결국 죽었구나.
장례식장은 우리 병원 장례식장이였고, 진료가 끝나자마자, 나는 장례식장으로 달려가 그 아이의 이름을 찾았다.
'故 변 백 현'
그 이름을 보자마자 아까처럼 심장이 또 철렁- 내려 앉는 느낌에 급하게 안으로 들어서자, 몇 개 없는 꽃 사이에 활짝 웃는 그 아이의 사진이 보였다.
옆을 보자, 검은 소복을 입고 눈물 자욱이 서려있는 채로 잠이 들어있는 한 여자가 있었다.
아마 백현의 엄마인 것 같다.
조용히 옆에 있는 꽃을 들어 백현의 영정사진 옆에 조심스레 두었다.
뭐가 그리 좋은 지 헤실거리며 웃고있는 백현을 보자 점점 눈물이 차올랐다.
휴대폰도 없이 회색 후드집업만 입고 다니며, 점점 힘들어보였던 호흡을 난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는데.
난 알고 있었는데... 그 아이에게 도움이 되주질 못했다.
"...미안해."
의사라고 자부하고 다녔던 나날들이 너무나도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고작 위암초기였던, 충분히 꽃 피울 수 있던 아이를.
그 나이에 돈으로 고생했던 아이를.
수술비 하나 때문에 살리지 못했다.
그렇게 꽃 피울 수 있었던 소년은.
벚꽃이 피던 날, 멀리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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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나 왤케 못쓰는지 아는닝겐... 진짜 그냥 독방에서 썼을 때 멈출걸 아무것도 안 짜놓고 ㅅ쓴거라 순 억지다 진짜 부끄러워서 내가 고개를 못 들겠네ㅜ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