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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형을 다시 만난 것은 내 술 취한 고백이 있던 날로부터 나흘이 지난 후였다. 나는 내가 그에게 무슨 말을 지껄였는지 모두 기억했고, 그동안 그에게서는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다. 그걸 견디고 있는 시간은 거의, 죽음이었다. 눈을 뜨고 있을 때는 태형이 살 찌운 감정의 무게가 나를 압사했고 눈을 감고 있을 때는 그가 내게서 멀어지는 악몽을 꿨다. 그렇게 그는 언제나 그런 사람이듯 손 한 번 까딱이는 일 없이 나를 난도질해놓고 때 아닌 새벽에 불쑥 내 자취방 문을 두드렸다. 그가 아무렇지 않게 달고 온 검은 봉지 안에는 소주병 몇 개가 경쾌한 소리를 내며 짤랑였다. 우리는 서로 한참을 보고 있다가 말없이 평상 위에 올라 앉아 투명한 청색 병을 하나, 둘 깠다. 변변찮은 소주잔 하나가 없어 종이컵 두 개를 내밀었다. 그래도 그는 좋다고 술을 따랐다. 종이컵 안에 콸콸콸 따라 부은 소주는 곧 각자의 입 안에 사이 좋게 맞물렸다. 그가 크, 소리를 내며 종이컵을 내려놓았다.

 

 

"밤이 좋다."

"……."

"너도 좋구."

"……."

"이렇게 같이 술 마시는 것도 좋구."

 

 

 나는 별 다른 대답없이 그의 컵에 술을 따라 주었다. 태형은 술을 자주 마시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오늘 그는 굳이 소주를 사 가지고 왔다. 그는 술을 잘 마시는 편이 아니었다. 그런데도 오늘 그는 3분의 2를 채운 술을 홀짝이는 기세도 없이 단숨에 들이켰다. 나는 그를 좋아한다. 태형이나 나나 애당초 애주와는 거리가 멀어서, 껌뻑 취해 아무 말이나 늘어 놓았을 게 뻔하지만 어쨌든 결론은 그거였다. 그거였을 거다. 좋아한다는 말. 그런데도 오늘 그는….

 

 

"너는 애가, 취향이 왜 그러냐."

 

 

 내가 따라준 술을 느긋하게 비운 태형이 문득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너는 애가, 취향이 왜 그러냐. 머릿속을 맴돌던 두서없는 방황은 고작 그 열한 단어로 싹둑 잘라졌다.

 

 

"지난 애들만 봐도 그래."

"……."

"어쩜 하나같이 다…."

"……."

"너는 참 내가 걱정이 많다."

"……."

"그럴 거면 차라리 혼자 살던가."

 

 

 태형은 한참을 끌끌거리며 웃다가 내 종이컵에 자신의 종이컵을 툭 부딪혔다. 그의 딴에는 아마 건배나 마찬가지였을 외로운 행위였다. 짠, 태형의 입에서 흘러나온 투박한 효과음 또한 그랬다. 외로움. 그 때 나는 갑자기 가슴을 치고 올라오는 이 먹먹한 울음기의 이유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얌전히 태형의 대답을 기다렸다. 감히 묻지도 못했으면서. 태형의 혀가 자신의 아랫입술을 싹 훑고 지나갔다. 평소엔 제발 눈치 좀 키우라고 핀잔을 줘도 웃고 말던 사람인데 꼭 이럴 때만 느낌이 동한 건지 태형은 한참 동안이나 말을 아꼈다. 얇은 눈꺼풀 아래에 자리잡은 새까만 눈동자가 자꾸만 갈피를 못 잡고 서성였다. 모르긴 몰라도 필히 내게 어떤 말을 하려는 것 같았다. 꽤 오랜 시간을 기다린 끝에 그는 내 생각보다 초연하게 말을 이었다.

 

 

"좋은 사람 만나야지."

"……."

"좋은 사람 만나야지, 지민아."

"…응."

"네가 한 말 기억하고 있어."

 

 

 술기운이 묻은 태형의 목소리가 생동감 있게 귀에 박혔다. 나의 바람처럼 어두운 밤공기에 파묻히거나, 평상을 비춘 흰 전등 빛에 절멸하는 일 따윈 없었다. 나는 차라리 그랬음 했다. 그의 목소리가 제발 지금만큼은 그 숨을 거두었으면 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가 어떤 말을 내뱉을 지 아니까. 그가 어떤 말을 내뱉기 위해 나흘 간의 준비를 마쳤는지 아니까.

 

 

"나는 말이야."

"……."

"네가 너한테 잘해주는, 정말 너만 보고 사는 그런 사람 만나서 누구보다 사랑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특히 네가 제일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

"……."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고 너만 신경쓸 수 있는 사람…. 그냥 뭐든 네가 우선인 사람…. 네 옆은 정말 그랬으면 해."

"……."

"그래서 너에게 난 아니야."

"……."

"……."

"……."

"너는 참. 취향이 왜 이렇게 나쁘냐."

 

 

 우리는 오랜 침묵을 거듭했고 나는 얼마가 남았건, 남은 양 그대로를 식도에다 냅다 들이 부었다. 그렇게 마시면 탈이 나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태형은 나를 말리지 않았다. 대신 입가에 헐거운 미소를 매달고 조용히 내 취향을 타박했다. 두 무릎을 모아 양 팔 가득 끌어 안았다. 아닌데. 이런 대답을 원한 게 아닌데. 이런 결말을 맺고 싶었던 게 아닌데. 지금 이 순간 나를 기다리는 것은, 또 다시 그를 사랑할 것만 같은 공포였다.

 

 

 

 

 

 

언젠가 네가

얄궂은 내 남자 취향을 걱정 했었지.

 

내 옛 남자들을 들먹이며

그딴 연애 아닌 연애에 아파할 바에야

혼자 떵떵거리며 살라고.

 

그도 아님 정말 건실한,

온통 세상이 너 하나인

그런 사람을 만나

누구보다 사랑 받아야 한다고.

 

그러니, 너도. 내겐 아니라고.

정말 취향이 나쁘다고 설풋 웃은 네가.

 

<개인의 취향, 연홍>

 

 

 

 

 

[방탄소년단/뷔민] 언젠가 네가 내 얄궂은 남자 취향을 걱정했었지. | 인스티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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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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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108.141
으앙 작가님 사랑합니다. 이렇게 차분한 글에 끌리는 건 운명인가봐요ㅠ 절절하구... 으으 좋은 글 읽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0;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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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163.41
잔잔하기도 하고 먹먹하기도 하고... 짧은데도 여운이 남는 것 같아요. 태형이도 지민이도 쓰게 웃는 결말이 돼 버렸네요.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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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맴찢 ㅠㅠㅠㅠㅠㅠ좋은글 감사합니다 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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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좋아요...제목보자마자 이거다 하고들어왔는데 잔잔하니 좋ㄴ요ㅠ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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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아 가슴이 너무 먹먹하다ㅠㅠ... 재밌게 잘 보고 갑니다ㅠㅠㅠㅠ....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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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
오래전부터 댓글 남기고 싶었는데, 회원이 되고 난 후에야 이렇게 댓글을 남깁니다. 몇 개월 전, 우연히 이 글을 보고 '시'란 시는 밤을 꼬박 새워 찾았던 기억이 드네요! 태형이와 지민이로 좋은 글 써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항상 응원할게요.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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