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민 빙의글]즐거운 나의 집 02
"그거 말고! 그 옆에!"
"......"
"아휴, 그거 말고. 오른쪽! 그게 더 싸잖아!"
"......"
"그래, 그게 더 좋은거야. 이번에는 제대로 하네."
"아, 진짜 좀! 조용히 해!"
귀신은 귀신인거고, 필요한 게 있어서 얼른 챙기고 가까운 마트로 향했다. 집을 정말 잘 산 게 맞는지 마트도 도보로 10분 정도 걸리는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해있었다. 내가 지갑을 챙겨 집을 나서는 것을 본 남자가 서둘러 날 따라 나왔다. 면전에다 대고 문을 닫았지만 곧 스르륵하며 빠져나오더라. 그것도 능글능글하게 웃으면서. 한숨을 쉬고는 마트로 향하는데 옆에서 끊임없이 조잘거린다. 대꾸하지 않아도 자기 혼자서 신나서 말하는데, 그게 좀 애기같아 보이고 귀여웠다. 오빠는 무슨 오빠야. 몇 십 년 전 사람이어도 외관은 나랑 비슷해보이는데.
옆에서 재잘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길을 걷다가 하마터면 신호등이 빨간불일 때 건널뻔했다. 모르고 있다가 뒤에서 잡아채는 손길에 뒤로 자빠졌다.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었지, 많았으면 진짜 창피했을 거다. 내가 씩씩거리며 일어나자 나보다 더 굳은 얼굴로 서있는 박지민이 보인다. 미쳤어? 이를 물고 씨근덕대자 흥! 하며 새침하게 고개를 돌린다. 고마운 줄도 모르네, 가스나가. 작게 중얼거리는 말에 뭐? 하고 다시 되묻자 빨간불이잖아, 치이면 어떡하려고, 하며 중얼거린다. 그런 반응에 괜히 민망해져 앞만 바라보았다. 도와줄거면 곱게 도와주지. 뭐... 고마워. 겨우 작게 중얼거리자 괜찮아, 하며 활짝 웃는다.
귀신은 둥둥 떠다닐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가보다. 내 옆에서 발을 맞추며 걷는 지민이가 신기했다. 물론 사람들을 쑥쑥 통과하는 게 더 신기했지만. 그러고 보니 신기하다. 귀신은 반투명 상태고, 둥둥 떠나니고, 어떠한 접촉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쓸 데 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에 마트에 도착했다. 동전을 넣고는 카트를 하나 뽑았다. 와! 하고 아이처럼 웃던 지민이가 공중으로 둥둥 떠 카트 속으로 들어갔다. 둥둥 못 뜬다는 말 취소. 어느새 카트에 편하게 자리잡고 앉아 구경을 하는 모습을 보자니 귀엽긴 했다.
그래, 그 때까지는 귀엽고 좋았는데. 내가 하나 살 때마다 옆에서 미친듯이 잔소리를 해대는 거다. 처음에는 무시하고 내가 필요한 것만 샀는데 자신의 말을 무시한다 싶으면 미친듯이 잔소리를 하는 거다. 자신의 말을 따라 물건을 고르면 흡족한 표정을 짓고. 아까는 귀여운 남동생 같았는데 지금은 뭐, 거의 시어머니 수준이다. 참고 참으며 장을 보다가 결국 폭발했다. 내가 소리치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소리쳤어? 소리 친거야...? 나한테...? 하면서 중얼거린다. 아, 참았어야 했는데. 내게로 쏠린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창피해 고개를 숙였다. 얼른 필요한 걸 카트에 넣고는 서둘러 계산하러 갔다.
생각보다 많네. 낑낑거리며 짐을 들고는 집으로 향하는데 아까부터 조용한 게 영 맘에 걸린다. 야. 앞서가는 동글동글한 뒤통수를 보다가 불렀는데 들은 체도 안한다. 지민아, 박지민. 풀네임으로 말하자 잠깐 멈칫하기는 하지만 계속 제 갈 일 간다. 아씨, 저게 바라는 게 있다 이거지, 지금. 자기 삐졌다고. 머뭇거리다 겨우 오빠, 하고 말하자 응, 나 불렀어? 하며 뒤돈다. 쬐꼬만 게 오빠소리는 좋다고 헤실거리는 걸 보니 귀여웠다. 같이 가, 내가 봉지를 고쳐잡으며 말하자 사뿐히 내 옆으로 다가와 선다. 무겁지? 지민이의 물음에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주고 싶은데 방법이 없네. 지민이의 말에 나 놀리는거지, 하고 묻자 고개를 젓는다. 사람이 아니니까 어쩔 수 없잖아, 조용히 말하는 옆모습을 보자니 괜히 마음이 좋지 않다.
아, 됐어. 빨리 가자. 봉지를 다시 고쳐잡고는 빠르게 걸었다. 지금 안오면 문 안 연다! 뒤를 보고 소리쳤다. 참, 쟤 사람 아니지... 허공에다 소리치는 내 모습을 본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게 보였다. 창피해, 진짜. 붉어진 볼을 감추려 고개를 숙이고는 빠르게 걸었다. 같이 가. 나한테만 들리는 지민이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곧 나한테만 보이는 지민이가 발걸음을 맞춰 걷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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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어?"
"응."
"무슨 맛인데?"
동글동글한 눈으로 날 보며 물어보는데 뭐라 말을 해줘야 될 지. 내가 상을 차려 앉으니 소파에 누워있다가 쫄레쫄레 걸어와 맞은편에 앉는다. 밥을 먹기 시작하자 한참 보다가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한다. 안 먹어봤어? 내가 묻자 먹어봤겠어, 하며 새침하게 답한다. 먹고 싶지? 내 물음에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안 줄건데~ 내가 약올리듯 말하고 한숟갈 크게 떠먹자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잔뜩 삐친 표정을 짓는다. 주둥이 안 넣지. 내 말에 반항이라도 하듯 흥, 하며 고개를 돌린다. 결국 웃음이 터졌다. 왜 이렇게 귀엽냐. 내가 웃자 원망하는 눈빛으로 날 노려본다. 그렇게 봐봤자 1도 안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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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일어났는데 언제 기어들어왔는지 내 침대에 누워있는 지민이가 보였다. 죽을래. 나는 직접적인 터치를 못하니 크게 소리내어 말하자 꾸물거리다가 내 품으로 들어온다. 분명 깬 것 같은데. 한숨을 쉬며 동글동글한 머리통을 내려다보는데 곧 눈을 뜨는 게 보인다. 날 올려다보고는 눈을 곱게 접어 웃으며 내 품에 더 깊이 들어온다.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반칙인데. 지민이만 날 만질 수 있다는게 억울하긴 하다. 나도 만질 수 있으면 꿀밤을 놓아줄텐데. 그나저나 내 품에 있는 지민이는 몽글몽글하고 따뜻하다. 귀신이라면서, 따뜻하다는 게 신기하긴 하지만.
억지로 몸을 일으켜 출근할 준비를 했다. 내가 분주히 돌아다니거나 말거나 여전히 지민이는 침대에 누워 빈둥거릴 뿐이었다. 진짜 얄밉다. 가방을 챙기다가 지민이를 한 번 노려보았다. 내 시선을 눈치채고도 지민이는 헤실거리며 웃을 뿐이다. 못말려. 나도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다시 챙기기 시작했다.
출근하자마자 집에 혼자 있을 지민이가 생각났다. 괜찮으려나, 사고만 좀 안 쳤으면 좋겠다. 겨우 사람들을 헤치고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사람들의 인사를 받으며 복도를 걸었다. 복도 가장 끝에 있는 문을 열자 반쯤 죽어가는 우리팀 사람들이 보인다. 힘든 아침이에요. 내가 조용히 말하자 저마다 고개를 숙이며 안녕하세요, 하고 말한다. 사무실 안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 가방을 놓았다. 집에서 서류를 가지고 왔는지라 가방이 좀 무거웠다. 뻐근한 어깨를 돌리며 자리에 앉자마자 노크소리가 들린다. 들어와요. 내가 말하자 조심스럽게 문을 연다. 얼마전 새로 들어온 우리팀 막내사원이 조심히 들어온다. 팀장님, 안녕하세요! 아까도 인사했으면서 또 인사하는 모습을 보니 웃음이 나온다. 여기, 서류를 내 책상 위에 두고는 총총거리며 문 밖으로 나간다.
일하는 내내 지민이 생각이 났다. 물가에 애를 놔두고 온 것 마냥 불안했다. 진짜 사고치고 있으면 안되는데. 걱정스러운 맘과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겨우 퇴근할 시간이 되고 얼른 짐을 싸서 나왔다. 퇴근시간이라고 아침보다 살아있는 팀원들에게 고생했다며 한마디하고는 나왔다. 옷을 걸칠 생각도 하지 않고 곧바로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차를 몰고 가는 내내 불안함이 커졌다. 분명 다 큰 앤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신호에 걸릴 때마다 시간을 확인하며 초조하게 핸들을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주차도 하고 서둘러 집으로 들어서자마자 한숨이 나왔다. 안도의 한숨. 소파에 앉아 티비를 낄낄거리는 모습을 보자 다리에 힘이 풀릴 것 같았다. 왔어? 곧 고개를 돌려 웃는 얼굴이 보이자 서둘러 다가갔다. 잘 있었어? 내 물음에 고개를 끄덕인다. 설마 걱정하고 그런 거 아니지? 무심하게 말하며 다시 고개를 돌려 티비를 본다. 내가 답이 없자 어라, 하며 다시 고개를 돌린다. 진짜 걱정한거야?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서는 내 앞에 선다. 나보다 큰 키에 고개를 올려 지민이를 마주보는데 싱글벙글 웃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오빠 감동이야. 활짝 웃으며 내 머리에 손을 얹는다. 그렇게 기쁜지 활짝 웃는 모습을 보다 결국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괜찮으니까 된거지, 뭐.
저녁을 먹고 과일을 깎아 티비 앞에 앉았다. 복숭아 맛있다. 아삭거리는 복숭아를 먹으며 티비를 보는데 옆에서 아삭, 하는 소리가 난다. 깜짝 놀라 돌아보자 복숭아를 먹으며 티비를 보는 지민이가 보인다. 내 시선을 눈치챘는지 나를 보며 왜? 하고 묻는다. 못 먹는 거 아니었어? 내가 어안이 벙벙해 묻자 곧 헤헤거리며 웃고는 복숭아를 삼킨다. 못 먹는다고는 안했는데.
너 사실 귀신 아니지. 팔자좋게 소파에 드러누워있는 지민이를 보다 입을 열었다. 배를 통통 두드리며 웃음을 터뜨리던 지민이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너 사람이지. 귀신인 척 하는거지. 내가 재차 묻자 지민이가 다시 웃음을 터뜨린다.
티비를 끄고는 소파에서 일어나 나를 마주보며 앉는다. 한참 빤히 보다가 눈을 곱게 접어 웃는다. 귀신 맞는데. 나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작게 말하고는 나를 본다. 얘기 하자, 얘기. 나도 궁금한 거 많아. 결국 지민이에게 졌다. 이것저것 얘기를 하다보니 많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의 삶과 죽음, 그리고 영혼. 지민이는 하나도 숨김없이 몽땅 이야기 해주었다. 내가 어떠한 말도 못하고 지민이를 빤히 바라보자 쑥쓰럽다는 듯 손을 젓는다. 그렇게 보지마~ 헤헤거리며 웃은 지민이가 날 빤히 본다. 그래도 널 만나서 다행이지. 이제 안 외로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지민이가 이제 네 얘기해줘, 하며 칭얼거린다.
***
확실하게 이 편은 망했네여..ㅎ
가까워지는 중이라고 생각합시다..
이 글은 진짜 진행이 빠를거에요. 아마 다음편이 중간쯤 이야기가 될 수도 있어욬ㅋㅋㅋ...
진짜 빠르면 7편 안에 끝나리라고 봅니다... 헤헤...
진짜 결말쓰고 싶어서 쓰는 글이라... 힘드네여... 껄껄
발랄하게 쓰고 싶었는데 발랄했는지 모르게떠여.... 껄껄
어쨌든 댓글이랑 전부 고마워요!!! 사랑해여!!!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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