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잖니, 아가.
너 언제 오려 그래.
아가야, 이리온. 달콤한 사탕이 여깄단다. 유혹에 이끌린 아이가 잘 걷지도 못하면서 뒤뚱뒤뚱 걸어간다. 풀썩 , 하고 넘어져도 할머니는 웃고만 있는다.
아이는 어쩌면 그 할머니가 엄마였길 바랬을지도 모르겠다. 엄마였더라면 으앙- 하고 울음을 터트렸을지도 모르겠다. 울고싶어서. 그냥 울고싶었다.
유혹에 휩싸여 가는것은 자신임에도 불구하고, 그 멈춰야 하는 걸음을 걸어가는 것은 자신임에도 울고싶었다. 엄마였으면 좋겠어요, 할머니가.
그렇게 말하고 싶었는데.
아이는 그렇게 말할 수 없었다.
할머니가 웃는 모습은 더 이상 어머니의 웃음이 아닌, 악마의 웃음이였으니.
.
.
.
" 흐억! "
또, 또 그 꿈이다. 아침부터 기분 잡치게 진짜. 땀범벅인 몸에 기분이 더욱 좋지 않았다.
알람도 채 울리지않은 새벽이였다. 덜덜 떨리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내 손이 남의 손 마냥 차가워 흠칫 떨었다.
얼굴에 찬 기운이 닿는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포근한 여름이불이 다리를 간지럽혔다.
침대헤드에 걸터앉아 시간을 확인했다. 5시 32분. 침대에서 눈만 뜨면 보이는 창밖으로 보니 해가 이미 떴다.
여름해라 그런가, 너무 빨리 뜬다.
나는 아직 시작조차 못했는데, 기다려주지않겠다는 듯 너무 빨리 시작해버린다.
찝찝한 몸을 씻고 나오니 부엌에서 달그닥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잠시 넋을 놓았던것같다.
수건을 머리에 덮고 멍하니 있는데 익숙한 알람소리가 작게나마 들려왔다. 아, 6시로구나.
알람부터 끄려고 대충 발을 닦고 2층으로 올라가려는데, 부엌에서 말을 붙여온다.
" 아, 윤기가 씻고있었구나. 일찍 일어났네? "
"응, 꿈때문에. "
" ... 배고프겠다, 빨리 할게 기다려. "
꿈때문이라는 말에 말을 돌려버리는 형을 보며 나도 대꾸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2층으로 올라가 시끄럽게도 울리는 알람을 끄고 침대에 걸터앉아 머리를 수건으로 비볐다.
물기가 토독,톡 하고 이불에 떨어지는걸 바라보다가, 대충 손으로 닦아버리고 책상에 어지럽혀져있는 책들을 담았다.
그냥, 빨리 졸업이나해서 대학이나 가고싶다.
" 윤기야, 전학은 생각해봤어? "
" ...응. "
" 아직도, 마음이 안가?"
그 말을 끝으로 목이 매여오는걸 참고 밥을 한숟갈 더 퍼 꾸역꾸역 넘겼다.
어린이 입맛인 나를 위해 준비한 소세지를 씹는데, 기분이 더러웠다.
" 응. "
이 모든 일상이 갑갑했다.
겨울이 지나 우연히 봄
00. 봄이 지나 여름이
" 오빠능 왜 나 앙깨워줬는데에!!!"
" 시끄러, 아- "
아-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다가도 입을 벌리라는 신호를 주면 얌전히 또 입을 벌려 오물오물 받아먹는다. 선풍기 바람에 날리는 긴 생머리가 간지러운지 얼굴을 매만지며 머리칼을 정리한다. 내가 일찍 일어나라고 했지- 어제 빨리 자라고 했잖아. 호석이형이 타박해도 인상을 찌푸리고 밥만 먹을 뿐이다.
꿀꺽, 다 삼킨 후에야 호석이형을 째려보며 앙칼지게 말한다.
" 융기오빠가 밥머그때 말하능거 아니라고해쏘. "
" 너는 오빠가 윤기밖에 없냐?!"
발끈한 호석이를 보며 메롱- 하더니 나를 보며 싱글생글 웃는다. 아- 오빠 빨리죠. 입을 벌리는 아기새마냥 귀여워서, 밥을 한번 더 먹여주고 머리를 쓰다듬는다. 습관이다.
얌전히 쓰다듬을 받다, 책가방을 매고 벌떡 일어난다.
다 먹은거야??
응.
그럼 아가한테 인사하고와야지.
오빠능 인사해쏘?
응, 아까 너 잘 때 했어.
" 정꾸가, 누나 갔다오께- "
"형아뉴나 쟈가따와- "
앙증맞은 손으로 열심히 흔드는 정국이를 보며 호석이형은 웃음을 그치지 못한다. 내가 이 맛에 살아 진짜. 정국이 너무 귀엽지않냐.
아직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기를 안고 호석이형은 우리에게 인사를 한다. 슬이 잘 챙겨와야해, 윤기야.
응. 다녀오겠습니다. 아직 초등학생인 슬이의 손을 꼭 잡고 집을 나섰다. 오빠, 오늘 햇님이 화났나봐. 응. 화났나보다.
슬이를 데려다준후 시끌벅적한 학교에 도착했다. 항상 적응이 되질 않는다. 나도 저렇게 웃고 놀았었는데. 이질감이들어. 너무나도 생소하다.
무엇이 그리도 즐거웠는지. 음악실은 얼마나 또 예뻤는지.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게 얼마나 행복했는지.
여름은 여름인데, 난 아직도 겨울이네.
윤기야, 윤기야. 나랑 살자.
그래. 제발 나랑 살자.
귓가에 울리는 아이의 목소리는 낭랑한데도 나는 처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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