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다녀와. 한국에서 열심히 응원하고 있을게."
국가대표의 여자친구라는 포지션은 결코 녹록하지 않다. 굳이 올림픽이나 월드컵처럼 큰 대회를 꼽지 않더라도 일 년 내내 이런 저런 훈련에 끌려다니느라 바쁜 선수들이니까. 그러다보니 둘 만의 추억은 커녕 얼굴 한 번 제대로 보기도 힘든 게 현실이다. 서운하지 않느냐고? 그렇다고 말하면 거짓말이지. 우리가 무슨 로미오와 줄리엣도 아니고, 일 년에 도대체 몇 번이나 눈물바람으로 생이별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힘들 걸 알고 시작한 연애인데도 가끔은 버거워. 나보다 마음이 더 힘들고 무거울 사람이라는 걸 아니까 투정 한 번 못 부리고 이렇게 보내주는 거지.
"도착해서 전화한다. 진짜 괜찮지?"
"응. 안 괜찮을 건 또 뭐래!"
미심쩍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남자친구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 비행기 뜨겠다, 얼른 가. 급하게 손까지 흔들어 주고나니 그제서야 천천히 등을 돌린다. 우리 이제 보면 또 언제 볼 지도 모르는 데 뽀뽀도 안 해주고 가냐, 나쁜 놈아……! 도르륵, 요란하게 끌려가는 캐리어 소리가 멀어짐과 동시에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 버렸다.
[박태환]
"태환아, 비행기 뜬다."
"잠깐만요. 진짜 잠깐이면 되요. 금방 따라갈게요."
뭐야, 왜 다시 와……. 비행기 뜬다잖아! 어렴풋이 들려오는 대화에 왼손으로 얼른 눈물을 닦고 몸을 일으켰다. 오지 말라는 뜻으로 손까지 휘휘 저어 보였는데 보지 못했는지, 보려고 하지 않았는지. 끌고 가던 검은색 캐리어까지 아무렇게나 버려 두고 급하게 내 쪽으로 뛰어오는 오빠다. 아니, 잠깐만……나 방금 전까지 울었는데. 아이라인 다 번졌으면 어떡해. 혹시나 싶은 마음에 고개를 푹 숙이자 금방 커다란 인영이 앞에 와서 선다. 아으, 정말…….
"익인아."
"왜, 흐, 왜 다시 왔어. 비행기 뜬다잖아……."
"우리 제대로 인사도 못했잖아……. 오빠 좀 봐 봐."
혹시나 싶은 마음에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게 하더니 ("왜 울고 그래……. 속상하게.") 손바닥으로 뺨 위까지 흘러내린 눈물을 꼼꼼히 닦아주는 오빠다. 앞으로 몇 달간 혼자서 지내야 할 남자친구가 나보다 백 배는 더 힘들 거라고, 그러니까 오늘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울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진심으로 걱정스럽다는 듯이, 정말 얘를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듯이 바라보는 시선에 삼킬 새도 없이 울음이 터진다. 이렇게 하고 가면 나보고 진짜 오빠 없이 어떻게 버티라고……. 아, 정말 못됐어.
"시간 금방 가. 금방 올게."
"오빠, 흡, 진, 진짜, 짜증나. 흐으, 그냥 가지, 끕, 또 왜 우는, 우는 거 다 보고ㅡ."
"……미안해."
울음 섞인 목소리로 투정을 부렸더니 대뜸 펜스를 넘어와 꼭 안아 버린다. 정말 숨이 막힐 정도로, 아플만큼 꽉. 왠지 그것만으로도 조금은 안심이 됐다. 나를 폭 안아들 수 있을 만큼 너른 품, 여느 때와 같은 체온과 부드럽게 뛰고 있는 심장소리. 투정부려서 미안해, 입속말로 작게 중얼거리며 가만히 품 속을 파고 들었다. 진짜 나 오빠 없으면 어떻게 살아……? 수도 없이 반복되던 일이라 이제는 조금 담담해질 때도 됐다고 생각했는데. 이대로 하루가 끝나 버렸으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면서 딸꾹질이 나오는 입술을 꾹꾹 깨물었다. 이번엔 정말 제대로 웃으면서 보내줘야지.
"태환아, 얼른."
"……오빠, 빨리 가. 기다리신다."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오빠를 밀어냈다. 얼른 가. 나 괜찮아.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더니 여전히 안쓰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얼른 오라는 감독님의 성화에도 좀처럼 발길이 떨어지질 않는지 자꾸만 돌아보는 모습이 애틋했다. 결국은 이륙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야 비행기로 들어가는 오빠. 입모양으로 작게 '사랑해'를 속삭이는 걸 보고 손으로 조그맣게 하트를 그리면서 웃어주었다.
나도……사랑해. 얼른 다녀와, 오빠.
[기성용]
"너 우냐?"
"흡, 이런 날, 좀 울면, 흡, 어때서!"
"안 그래도 못생긴 얼굴이 더 못생겨지니까 그렇지……."
"으이씨, 오빤 왜 마지막까지 시비야?!!"
울지 마라, 내가 다 잘못했다, 앞으로 내가 더 잘해주겠다하면서 애원을 해도 모자를 판에!! 열이 받은 나머지 나올 눈물도 쑥 들어가 버렸다. 안 그래도 속상해 죽겠는데 이럴 때만이라도 진지하게 받아주면 안돼? 너 나 진짜 사랑하긴 하냐!
"못생긴 걸 왜 만나냐?! 아 짜증나. 얼른 비행기 타러 가기나 해."
"안 그래도 작은 눈이 부어서 아예 안 보이려고 하니까."
"…………………………."
됐다, 됐어. 내가 너랑 무슨 말을 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오빠에게서 등을 돌렸다. 집에 갈래. 이대로 보내고 나면 앞으로 몇 달 동안은 얼굴 한 번 제대로 볼 수 없겠지만……그래도 이러다가 싸우고 보내는 거보단 낫잖아. 넌 어쩜 그러냐? 남자친구 배웅 하다말고 집에 가겠다는 데 한 번 불러서 잡지도 않고. 오빠가 무슨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을지 궁금했지만 돌아보기에는 자존심이 상했다. 아니, 어쩌면 벌써 비행기 안으로 들어가 버렸을지도 모르지……. 바보새끼. 진짜 바보새끼. 서운한 마음에 처음보다 더 많은 눈물이 쏟아졌다. 혹시라도 어깨가 들썩일까봐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어가면서 끅끅 거렸다.
"……어디 가."
"…………."
"어디 가냐고."
지금 와서 분위기 잡으면 내가 아이고 감사합니다 하고 웃어줄 줄 알고? 웃기지 말라 그래. 좀처럼 대답하지 않는 양이 화가 났는지 내 쪽으로 다가오는 발소리가 들렸지만 돌아보지 않았다. 진짜 서운하다고, 이 식빵식빵한 기식빵아…….
"야."
"뭐ㅇ……읍!"
어깨를 툭툭 건드리는 손을 짜증스럽게 털어내리던 팔목이 억세게 잡혀 버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가늠할 수 없는 사이에 혀가 들어온다. 그야말로 입술이 뜯어져 나갈 것 같은, 전에 없이 거친 입맞춤이었다. 미쳤어? 여기 감독님도 계시고 코치님도 계시고ㅡ 우리 둘 보고 있는 눈이 몇 인데! 잡혀 있는 팔목을 흔들고 등짝을 퍽퍽 소리가 나도록 내리쳐도 좀처럼 놓아주질 않는다. 아, 정말 왜 그러냐!
"아 진짜 왜 그래!!!!!!"
"……왜, 싫었어?"
아니, 그런 건……그런 건 아니지만. 더듬거리며 말을 했더니 눈꼬리를 휘며 씩 웃는다. 역시 난 끝내주지? 라는 자뻑성의 멘트까지 날려가면서.
"넌 꼭 말로 해야 이해를 하냐?"
"……뭘."
"우는 모습까지 예뻐서 불안하다고. 그러니까 울지 말라고."
니가 언제 그렇게 이야기 했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달싹이자 손으로 이마를 탁 튕겨 버린다. 아으, 아, 아파라…….
"나 가 있는 동안 바람 피면 죽여 버린다."
"……나를?"
"멍청아, 너를 왜 죽여."
걔를 죽여야지. 그러니까 그런 거 보고 싶지 않으면 알아서 잘 해.
웃으면서 다시 한 번 입술 위에 가볍게 입을 맞추는 오빠. 그러게 처음부터 그렇게 말해줬으면 좋잖아……. 간다, 하고 손을 흔들면서 돌아보지도 않고 멀어져 가는데 자꾸만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멍청이. 너 같은 남친을 두고 내가 누구랑 어떻게 바람을 피우냐. 비행기 쪽으로 멀어져가는 뒷 모습을 계속해서 눈으로 좇았다. 피가 날 정도로 아프게 깨물렸던 아랫 입술이 얼얼하다.
[이대훈]
"왜 이렇게 담담해?"
"……응?"
손을 흔들며 걸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이제 나도 집에 가야지,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채 반을 가기도 전에 대뜸 뛰어서 돌아오길래 뭔가 잊고 간 물건이라고 있나 했지. 왜 비행기 타러 안 가? 하고 묻는 내 얼굴을 한참 동안이나 말 없이 노려보더니 대뜸 뱉는다는 말이 저거다.
"뭐가."
"나 오늘 가는데, 이대로 가면 진짜 몇 달 동안 얼굴 한 번 못 보는 건데."
나도 알아. 새삼스럽게 왜 그러느냐는 얼굴로 바라보자 대훈이의 표정이 아까보다 훨씬 더 험악해진다. 그거야 놀러가는 것도 아니고 훈련을 하러 가는 거니까. 훈련이 완전히 끝나거나 내가 먼저 찾아가는 일이 없는 이상……아마 몇 달 간은 얼굴 한 번 못 보고 지내야겠지. 분명 방해가 될 테니까 내가 별 일도 없이 대훈이를 찾아가는 일도 없을 테고. 당연히 서운하다. 남자친구랑 거의 생이별을 하는 건데 서운하지 않을리가 없잖아. 그렇다고 내가 투정을 부리고 힘들어하면 자기가 더 괴로워 할 거면서…….
"안 갈 순……없는 거잖아. 이왕 보내는 거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보내줘야지."
그러니까 얼른 가. 먼저 가기 힘들면 내가 먼저 나갈까? 해외에서 훈련이 있다는 사실은 몇 달 전부터 알고 있었고, 처음 있는 일이 아니기는 했지만 최대한 동요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진짜 좋아하면 네가 하고 싶어하는 일, 네가 할 수 있는 일 방해하고 그러면 안되는 거잖아. 혼자서 속상해 할 걸 알지만 가방이며 옷가지를 챙겨서 다시금 걸음을 떼었다.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아서 차마 돌아보지도 못하고 조그맣게 전화 꼭 해, 자신없는 말을 속삭이면서.
"하, 정말 너무한다……진짜."
순간적으로 붙잡힌 허리 깨에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면서 팔이 둘러져 왔다. 등을 타고 쿵쿵 울려대는 커다란 심장소리. 희미하게 떨리는 몸이 안쓰러워서 허리 위에 있는 손을 꾹 눌러 잡았다. 보고 싶어서……어떡해.
"혼자서도 밥 잘……챙겨 먹고."
"응……."
"밤 늦게 혼자 돌아다니지 말고……."
"……응."
"전화하면……꼬박꼬박 잘 받고."
응.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자 어깨 위로 검은 곱슬머리가 기대져 온다. 언제나 똑같은 샴푸 냄새. 조금씩 파마끼가 풀려가는 머리카락을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조심해서 잘 다녀와. 잘 하고 와. 믿어.
"아, 진짜 사랑해……."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로.
| 주저리 |
으어어... 워낙 똥손이라 제대로 썼는지 모르겠습니다ㅠㅠㅠ 태... 태환찡만 왜 이렇게 짧은 거신가ㅠㅠㅠㅠㅠ 박태환 선수 수닌데ㅠㅠㅠ?! 부족한 글이라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ㅠ.ㅠ 오늘도 국대 안에 행복하세요!!!!!!!!!!!!! 국대는 사랑입니다!!!!!!!!!!!
+ 올림픽이 끝나다니 이건 거짓말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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