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10대는 오로지 너의 것이다 : 제 4장, 거짓말쟁이
그 날 이후, 나의 기분은 저 하늘 위를 둥둥 걸어다니는 것 마냥 들떠있었다. 누군가 나를 치고 가도 괜찮아, 누군가 옆에서 전정국 얘기를 해도 괜찮아, 누군가 수행평가 참여를 하지 않아도 괜찮아, 다 괜찮았다. 이 세상 모든 만물들이 아름답고 성스럽게 느껴졌다. 전정국의 그 두 마디가 나에게 이런 큰 파급력을 미칠 줄이야. 매일 시도 때도 없이 귓가에 맴도는 전정국의 음성과 머릿속에 그려지는 전정국의 미소 때문에 내 심장과 광대는 남아나지 않았다. 매일 밤마다 전정국 생각을 하다 이불킥을 하는 것은 물론이요, 실실 웃다가 너무 좋아 비명을 질렀다가 가족들이 다 깬 적도 있다. 전정국이 나의 모든 걸 지배해버린 것 같았다.
나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해서 부모님께 혼나기도 했고, 친구들에게는 혹시 정신병이라도 앓고 있냐는 물음도 받았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전정국이 없어도 이렇게 좋아 죽겠는데 전정국이 옆에 있을 때는? 좋아 죽겠는 게 아니라 좋아 죽는다. 매일 들어 익숙해질만한 그 목소리를 들어도 귀가 녹아버릴 것만 같았고 전정국의 웃음을 볼 때는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대서 아플 정도였다. 전정국과 눈을 마주치고 이야기를 나눌 때면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훤하게 뚤려버린 구멍이 점점 메꿔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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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시험이 끝나고서 오랜만에 가지는 동아리 시간이었다. 기분 좋게 음악실에 들어가 피아노의자에 앉으려고 했는데 피아노 조율을 해야해서 오늘은 키보드로 연습해야할 것 같다고 하셨다. 미안하지만 밴드부에 가서 키보드를 빌려야할 것 같다는 선생님께 환한 미소로 답해드리며 벌떡 일어났다. 전정국은 밴드부니까, 빌리러 가면 얼굴 한 번 더 볼 수 있는 거니까. 가벼운 발걸음으로 복도를 걸었다. 저절로 나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신나게.
하지만 늘 좋은 시간들은 오래 가지 못하더라. 구름 위를 거니는 것만 같던 내 기분은 교실 문을 조심스레 여는 순간 와장창, 무너져내렸다. 제일 처음에 보이는 게 전정국의 모습이길 바라며 노크도 하고 큼큼, 목소리도 다듬었다. 하지만 나는 제일 처음 보이는 게 전정국이 아니길 바랐어야했다. 내가 전정국을 보지 못하길 바랐어야했다. 내가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본 것은 전정국의 웃는 얼굴이었지만, 전정국 옆에는 함께 웃고 있는 어떤 여자아이도 있었다. 나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이였다.
누군가 내 뒷통수를 아주 쎄게 후려치고 간 것마냥 얼얼하다.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어졌다. 다시금 뼈저리게 느껴졌다. 전정국은 내게 있어 대단한 존재라는 사실이, 하지만 나는 전정국에게 대단한 존재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 전정국이 아무리 아는 여자가 아주머니, 언니, 나밖에 없다고는 해도 우리는 그저 친구라는 사실이. 내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와 깊숙히 파고들어왔다. 아, 전정국은 나에게만 웃어주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아주 대단한 착각을 하고 있었나보다. 전정국에게 뭐라도 되는 줄 아는 그런 착각. 내 일생에 전정국과 내가 친구라는 사실이 이렇게 마음 저릴 줄은 몰랐다.
막 눈을 비집고 나오려는 눈물들을 꾹꾹 참아내고서 키보드 담당인 지민이에게 키보드를 전달 받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말도 하지 않고 있자 내 기분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는지 어깨를 톡톡 쳐주는 지민이의 다정함에 하마터면 울어버릴 뻔 했다. 조금이라도 더 있다가는 울어버릴 것만 같아서 잠겨가는 목에 억지로 힘을 줘서 고맙다는 말만 남기고 교실을 나와버렸다. 내가 교실을 나올 때까지도 전정국은 그 여자애와 이야기 꽃을 피우느라 바빴다. 나를 보지도 못하고 신나게 이야기를 하는 전정국의 얼굴을 보자니 눈물이 왈칵 쏟아져나왔다. 나쁜 새끼, 어떻게 내가 들어온 것도 모르고 저럴까. 속이 쓰렸다.
'으...'
다시 음악실로 가는 도중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아버렸다. 주저앉음과 동시에 눈에 간신히 매달려 있던 눈물들도 후두둑, 떨어져버렸다. 혹시라도 큰 소리가 나서 누가 나올까봐 키보드도 조심스럽게 내려두고 손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닦아도, 닦아도, 눈물은 멈출 생각은 하지도 않는 것 같다. 폭포수마냥 후두둑 떨어지는 눈물을 멈추지도 못하고 줄줄 흘려보내고만 있자 옆에 누가 쪼그려 앉았다. 순간 너무 놀라 입만 뻐끔대며 뒤로 나자빠지자 지민이가 앞에서 작은 미소를 머금고 있다. 당황스러움에 눈가를 슥슥 비비고서 서둘러 키보드를 챙겨 일어났다. 음악실로 발걸음을 떼려는 순간,
"울지 마."
얘는 왜 쓸데없이 다정해서 사람 눈물을 더 뽑아낼까. 키보드를 들고서 눈물만 더 축내고 있으니 터벅터벅 걸어와 내 등을 쓸어준다. 마치 끅끅대는 어린 아이를 달래기라도 하듯이. '눈 그렇게 비비면 나중에 따갑다~' 장난스러운 지민이의 말투에 더 고마워졌다. 전정국은 내가 울 때 구경이나 했었는데, 이런 와중에도 전정국 생각을 하는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조금씩 그쳐가는 눈물에 눈을 꾹꾹 누르고서 작게 말했다. '고마워.' 꽤나 많은 의미가 들어있는 말이었다, 적어도 나에게는. 내 울음을 그칠 수 있게 도와줘서, 전정국 대신 나를 위로해줘서, 눈치 챘으면서도 모르는 척 해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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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민이의 위로를 받아 눈물이 조금씩 그쳐갔지만 음악실에 들어온 후부터는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주륵주륵 흘렀다. 피아노를 치다가 눈물을 뚝뚝 흘리는 모습을 보신 음악선생님께서 어디 아프냐고, 많이 아프면 어서 조퇴하고 병원에 가보라고 하셨지만 아무 말도 않고 입만 꾸욱 다물고 있자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많이 아프면 꼭 말하라고 당부하시곤 다른 아이에게 가셨다. 학교에서는 창피해서 울지 않던 나인데,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눈물을 흘리는 내가 참 신기했다. 전정국 하나 때문에 내가 이렇게까지 될 수 있는 거구나.
동아리 시간이 끝난 후에는 조용히 짐만 챙겨서 학교를 나왔다. 전정국에게는 오늘 하교는 같이 못하겠다는 문자만 남기고서. 하교를 하는 도중에도 나오는 눈물은 어찌할 수가 없었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그 누구도 보지 못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버스에서도, 길을 걸으면서도 눈물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고 손이 축축해질 때까지 눈물만 흘려댔다. 전정국 나쁜놈, 나도 모르는 애랑 얘기하는 게 그렇게 좋았나, 매정한 놈, 정 없는 놈, 눈치 없는 놈. 걸으면서 속으로 전정국을 욕하다가도 그 욕은 방향을 바꿔 나에게로 쏟아졌다.
한심해, 멍청해, 등신같아, 왜 혼자 좋아하고 착각을 해서 이러고 있어. 내가 나를 욕하면서도 서러워서 눈물이 더 많이 났다. 내가 좋아하고 싶어서 좋아한 게 아닌데, 내가 기대하고 싶어서 기대한 게 아닌데, 내가 착각하고 싶어서 착각한 게 아닌데, 내가, 내가... 이 학교를 1지망으로 쓰는 게 아니었다고, 전정국을 반가워하지도 말았어야 했다고, 전정국을 다시 좋아하면 안 됐었다고, 좋아해도 이렇게 많이 좋아하면 안 됐었다고. 후회를 해보지만 이미 때는 늦어버렸다.
"흐으, 으..."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던져놓고 방문을 잠그고서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집에 오자 더 나오는 눈물에 벌써부터 베갯잇이 축축히 젖어들었다. 아, 눈가가 쓰라리다. 내 희미한 기억으론 그렇게 한참이나 울다가 잠들어버렸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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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내가 늦게 일어나서 학교를 늦고는 했지만 오늘은 그 어느 때보다 일찍 일어났다. 전정국에게는 먼저 가겠다고 문자를 보내놓고서는 부랴부랴 집을 나왔다. 전정국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정국을 보면 어제 그 모습이 생각나서, 전정국 앞에서 목 놓아 울어버릴까봐. 일찍 나오니 사람도 적고 한적해서 여유롭게 학교에 도착했고 내가 교실의 첫학생이었다. 아무도 없는 교실이 어색해 가방을 걸고서 문제집을 꺼내들었다. 사실 엎드려있고 싶었지만 그러면 또 다시 어제 그 장면이 생각날까봐 뭐라도 해야할 것 같아서, 그래서 문제를 풀었다. 오랜만에 술술 풀리는 문제에 꽤나 기분이 좋아졌고 찌뿌둥한 몸에 기지개를 폈다. 다시 문제를 풀고 있었는데 애들이 한명씩 들어오면서 나를 보며 놀라더라. 내가 일찍 온 게 그렇게 신기한가. 멋쩍은 웃음 지어보이고는 다시 문제집에 시선을 고정했다. 전정국이 들어왔기 때문에.
3교시까지 전정국과 그 어떤 이야기도 나누지 않았다. 쉬는 시간마다 엎드려서 자는 척을 하거나 친구들에게 잽싸게 달려가서 억지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어쩌다 시야에 전정국이 조금이라도 들어오면 눈 앞이 흐릿해졌다. 그럴 때마다 손바닥으로 눈을 꾹꾹 눌러대느라 바빴다. 울어버리면 안 되니까. 그렇게 전정국만 의식하고 피하다가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늘 전정국과 먹었지만 이번은 달랐다. 급하게 친구들을 이끌고 급식을 받았다. 친구들이 내 눈치만 보는데 그게 또 미안했다. 하지만 나 먼저 살고 보자, 나중에 맛있는 거 사줄게.
그렇게 혼자 생각하며 밥을 먹다 무심코 고개를 돌렸을 때 눈에 보인 것은 나를 더 먹먹하게 하기 충분했다. 얼마 안 되는 거리에서 어제 그 여자아이와 웃으며 밥을 먹고 있는 전정국은 나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한동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휙 돌려 내 쪽을 보려는 전정국에 놀라 고개를 숙이고 밥을 억지로 쑤셔넣었다. 반찬은 먹지 않고 밥만 쑤셔넣다가 꿀꺽 삼켜버렸다. 이 먹먹함도 밥이랑 함께 넘어가버리면 참 좋을 텐데. 아무리 밥을 삼켜도 먹먹함은 그대로였다.
"나 빨리 가서 문제 마저 풀어야 돼. 먼저 올라갈게!"
그렇게 밥만 쑤셔넣다가 급하게 일어나 친구들에게는 먼저 올라가겠다면서 도망치듯이 나와버렸다. 먹먹함은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계단을 오르면서도 둘이 다정하게 마주보고 앉아 밥을 먹는 모습이 떠올랐다. 마치 남자친구, 여자친구처럼 풋풋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 둘의 모습이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고 꼴에 질투를 하는 내가 불쌍했다. 난 그저 친구일 뿐인데, 질투를 한다고 나랑 전정국이 친구인 사실은 달라질 것이 없는데. 나는 그저 친구일 뿐인데. 친구, 그냥 친구, 저스트 프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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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일주일은 있어야 오는 망할작가가 하루만에 와버려서 당황하셨나요? 네, 보고서 작성하다가 엄한 길로 빠져들었습니다! 저는 이제 몰라요 망했어요^ㅁ^ 비가 오는 줄 알았는데 우박이네요. 완전 식겁했습니다. 엄청 무섭게 쏟아져요, 막 천둥번개도 치구요. 저는 집이라서 다행이라지만 혹 밖에 계신 분들은 우쯔케요ㅜㅜ 빨리 그치기만을 바라요8ㅅ8 그리구 이번 폭발 사고로 인해서 비에 좋지 않은 물질들이 섞여있을 수도 있으니 밖에 계셨던 분들은 들어오자마자 샤워하시구, 옷은 곧바로 빠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리구 오늘은 지민이 첫 출연!!!!!!! 지민이가 앞으로는 꽤 나올 것 같아요, 이건 그냥 제 예감임다. 절대로 스포가 아니어요. 또한 3장 읽어주시고 댓글 달아주신 모든 분 정말 감사드려요! 다음 장도 어서 오도록 하겠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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