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옹(Leon) 2015 : The Professional
“남은 평생 편안히 잠들 수 없을 지도 몰라.”
“그런 건 두렵지 않아요.”
“사랑 아니면
죽음이에요.
그게 전부에요.”
03: 별똥별이 떨어질 때
탄소와 같은 공간에 있는 지금, 어색함과 이유모를 설렘에 정신이 없었다. 그렇게 별 대화없이 탄소와 내가 각자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는데 탄소가 갑자기 커튼을 열어 젖혔다. 오늘 별동별 떨어진대요. 별동별, 부르기도 어색한 그 단어. 내 인생에서 아무 관련도 흥미도 없던 단어라 이름을 부르는 것마저도 생소하게 느껴졌다. 별은 나에게 있어서 너무 머니까. 반면에 탄소는 커튼을 열고 아무 말 없이 밤하늘을 턱을 괴고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 뒷모습이 왠지 모르게 예뻐 보였다. 내가 입던 검은색 후드, 진짜 잘 어울리네 따위의 생각을 하면서 멍하니 탄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추운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늘 맨다리였던 탄소의 다리에는 보랏빛의 멍이 군데군데 자리잡고 있었다. 괜한 안타까움에 시선을 옮겼다. 그렇게 한참 말이 없던 탄소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는 채로.
“아저씨 별똥별 있잖아요”
“응”
“소원을 들어준대요. 별똥별이 떨어질 때”
“...떨어지고 있어?”
“아뇨 아직... 어? 우와! 아저씨 떨어져요”
신기한 지 말꼬리를 길게 늘어뜨리며 말을 하는 탄소가 조금 귀여워 보였다. 뭐랄까, 그제야 제 나이처럼 보였다고 할까. 늘 얼굴에는 웃음기없이 우울한 표정이고 팔다리엔 멍자국이 가득하고 그나마 입고 있던 교복마저 여기저기 찢겨 있는, 사실 상황도 상황인지라 꼴이 말이 아니었기에 전혀 그 나이또래의 학생처럼 보이지 않았다. 교복을 입고 있음에도 다른 여고생들과는 묘하게 이질감이 드는 탄소가 그제야 헤실헤실 웃으며 우와라고 말 하는 모습에 조금은 기뻤다. 그 모습을 보는 남자가 나라는 사실에도 내심 흐뭇하기도 하고. 아아 민윤기 이제 그만.
“소원 빌었어요”
“잘했다”
“뭔지 안 궁금해요?”
하늘을 바라보던 탄소가 몸을 돌려 창가에 기대 날 바라보며 말했다. 거실의 불빛만 아니었다면 달빛에 물든 모습이었을텐데.
“소원? 글쎄..”
“맞춰봐요.”
“나 알 거 같은데”
“뭔데요? 말해주세요”
장난스럽게 대답하니 탄소가 흥미를 보이며 빨리 말해 달라고 성화를 부렸다. 괜히 더 놀리고 싶어 말을 하지 않고 시선을 피하니 내가 앉아 있는 소파 밑에 털썩 앉아 아까 별을 바라볼 때처럼 나를 바라보았다. 그 눈을 보니 다행히도 아까 우리 집에 처음 올 때와는 달리 밝아 보였다. 정말 아이처럼, 여고생처럼. 근데 탄소야 정말 농담이 아니고 알 거 같아. 왜냐면 넌 나랑 같은 소원인 거 같으니까.
“오늘은 짜장면 먹었으니 내일은 돼지고기 먹기”
“아이 진짜! 아니에요”
“아아 미안. 닭고기?”
“아저씨 저 돼지 아니거든요?”
“누가 돼지래? 이상하네”
내 장난에 진짜 삐진 듯 고개를 숙이고 내가 앉아 있는 소파를 툭툭 건드리는 탄소의 모습이 귀여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참 별 것도 아닌데 웃기는 왜 웃는 건지 김남준이 보면 기절하겠다. 안 그래도 탄소에 대해 알면 김남준이 기절할까봐 평생 비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내 앞의 뾰루뚱한 표정의 탄소를 보니 문득 잘해주진 못하더라고 상처주진 말아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작고 착한데 또 아프게 만들면 그건 진짜 용서 받지 못할 죄악이니까. 이미 큰 죄악을 저지른 나였지만.
“탄소야”
“왜요”
그제야 날 보고 입을 비죽이며 말하는 탄소를 보며 피식 웃곤 말했다.
“늦었다. 자야지”
“저..”
“선택해. 방 구조는 아마 너희집이랑 같을 거다”
아까 낮의 당돌함은 어디로 간건지 소심하게 아무 방이나 괜찮다며 얼굴을 붉히는 모습에 아직 어린 아이라는 걸 실감했다. 이젠 나 하나가 아닌 둘이라는 사실이 나도 그제야 실감났다. 그래 이제 고작 많아봐야 열여덟, 열아홉이다. 민윤기, 넌 애인이 아니라 보호자라는 걸 명심해야 한다.
“우선 오늘은 큰 방에서 자”
“그럼 아저씨는요?”
“우리 집 소파 좋아. 5년간 튼튼하게 잘 버텨온 녀석이라 괜찮아”
“그래도.. 그냥 제가 여기서 잘게요”
“빨리 들어가세요”
“그럼 잘자요 아저씨”
“그래”
“그리고”
“....”
“잘 부탁해요”
“...빨리 들어가”
아저씨 잘 자요. 탄소는 내 옷을 다시 한 번 여미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잘 부탁해요 라는 말에 정말 실감이 났다. 이젠 혼자가 아니라는 걸. 더 이상 텅 빈 방에서 혼자 무슨 영화를 볼지 고민 안해도 되고, 늘 짜장면 한 그릇만 시켜 주인의 눈치를 보았던 일도 이젠 없을 거고, 무엇보다 말을 안 해서 목이 잠길 일은 더 이상은 없을 거 란걸. 이것 참 고마운 일인지 귀찮은 일인지 모르겠네. 복잡한 머리를 정리하듯 소파에 털썩 누워 가만히 눈을 감았다. 내일은 좀 더 나은 하루가 되겠거니 하면서.
“으음..”
분명 자려고 한 건 아닌데 깜빡 잠이 들었나보다. 끄지 않은 티비불빛이 어두운 거실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고 창문은 살짝 열려있어 3월의 찬바람이 코끝을 스쳐지나 갔다. 무거운 몸을 일으키고 머리를 한 번 쓸어 넘기곤 창문을 닫으러 가는데 아직 새벽이라 그런지 하늘은 어두웠고 별과 달만이 반짝 빛나고 있었다. 문득 아까 전 탄소가 빌었던 소원이 생각났다. 내 소원은 뭐냐면...
어둠에 익숙해질 즈음 발소리를 죽이고 큰 방의 문고리를 열었다. 혹여나 잠에서 깰까봐 노심초사하며 소리를 죽이고 곤히 잠든 탄소에게 다가갔다. 이상하게 방 안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이 집에 살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온기에 당황스러웠다. 이래서 여자랑 사는 구나. 괜한 미친 상상에 주책이라며 피식 웃곤 오른손에 꼭 쥐고 있던 연고의 뚜껑을 열었다. 사실 이 방에 들어온 이유는 딱 하나. 김탄소의 멍든 팔다리를 더 이상은 보고 싶지 않아서 연고라도 발라 주려고. 맞아, 굳이 내가 발라줄 필요는 없지만 누군가를 내가 직접 챙겨주는 흉내라도 내보고 싶은 욕심에 위험을 무릅쓰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다행히 큰 방에는 넓은 대형 창이 붙어 있었고 밤하늘의 달빛 때문에 그다지 어둡지는 않았다. 연고를 발라주려 가까이 다가가니 달빛에 비친 탄소의 멍자국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혹여나 나 때문에 잠에서 깰까봐 숨을 헙하고 참곤 연고를 꺼내 조심스럽게 발라주었다. 잘 때 바르면 덜 아플 테니까. 이렇게 추운데 옷도 제대로 안입고 다녔을 모습에 마음이 불편했다. 이제부턴 해야 할 일이 많아졌으니 심심하진 않겠네.
**
빨리 들어가 자라며 방으로 들어가라는 아저씨의 성화에 결국 큰 방에 들어갔다. 아까 낮에 정신을 잃고 처음 눈을 뜬 곳이 이 방 침대였는데 그 때와는 전혀 다른 상황에 기분이 이상했다. 며칠 전 복도에서 처음 봤던 차가운 아저씨의 모습과 방금 전 같이 짜장면을 먹고 지금 거실에서 리모컨을 만지작거릴 아저씨의 모습이 내심 신기했다. 솔직히 아저씨가 킬러라고 했을 때 티는 내지 않았지만 많이 놀랐다. 내 주위에 그런 사람이 있을 줄도 몰랐거니와 킬러와 동거라니 조금은 두려우면서도 그 대상이 아저씨라는 사실에 안심이 되었다. 우습네. 지친 몸을 침대에 던지고 이불을 온 몸에 휘감았다. 이불에는 지금 입고 있는 검은 후드와 같은 따뜻한 냄새가 났다. 어릴 때부터 아끼던 커다란 곰인형이 있다면 이런 냄새가 날까. 아무 걱정말고 눈을 감았던 적이 있었던가. 편안해도 불편한 내가 싫었다. 이젠 좋은 일만 일어나겠지 제발 그러기를.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아저씨의 냄새가 베어있는 이불 속에서 가만히 눈을 감았다.
큰 방의 커다란 창에는 어젯밤 별빛과 같은 밝은 햇살이 방을 가득 채웠고 내가 눈을 떴을 땐 벌써 시간이 9시가 넘은 아침이었다. 우리 집에 살면서 한 번도 6시 이후에 잠을 깬 적이 없는데 깊은 잠을 잔 덕에 몸이 한결 가벼웠다. 서둘러 아저씨를 보고 싶은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맛있는 소리가 나는 부엌으로 향했다. 요리에 열중한 탓인지 아저씨는 인기척을 못 느낀 듯 여전히 야채와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깜짝 놀래켜 줄까? 아저씨를 놀래키려 살금살금 다가가는데
“일어났네”
“으아!”
“뭐야, 갑자기”
아저씨에게 웃음을 꾹 참으며 살금살금 다가가는데 갑자기 내게 말을 거는 아저씨의 목소리에 놀라 다리에 힘이 풀렸다. 아침부터 그런 내 모습이 이상했는지 인상을 찌푸리고 손질하던 당근을 들곤 내게 다가왔다. 왜 그래? 아저씨의 물음에 대답하기 민망해 허허 웃곤 세수라도 해야겠다며 화장실로 달려갔다. 등 뒤에서 아저씨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애써 무시하곤 세수를 몇 번하니 그제야 벌렁거리던 심장이 진정되었다. 그렇게 바보 같은 아침이 지났다.
“아저씨 생각보다 요리 잘하시네요”
“글쎄다.. 별로”
“진짠데!”
“그냥 니가 잘 먹는 거 같은데”
“저 은근 까다롭거든요?”
“어련하실까”
그렇게 한참을 나를 놀리며 오전 시간을 여유롭게 보내는데 아저씨가 할말이 있다며 나를 진지하게 쳐다보았다. 뭐지?
“탄소야”
“왜요”
“오늘 일 나가야해”
“...아”
“집에서 얌전히 기다려”
“알겠어요”
정말이지.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절대 나가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는 아저씨 때문에 살짝 겁이 났다. 일이라면 분명.. 어제 말해줬던 그 일이겠지. 하지만 난 우리 집에 가봐야했다. 목에 걸린 생선가시 같이 턱 박혀 자꾸만 아파왔다. 은수를.. 보러 가야해
“근데 아저씨.. 우리 집은..”
“나랑 같이가”
“네?”
“어제 경찰은 벌써 왔다갔어”
“그럼 은수는..”
“아마 시청에사 데려 갔을거다. 데려갈 사람이 없으니”
“제가 데려가면 되잖아요”
“그래서 나랑 같이 가자는 거야. 내가 올 때까지만 제발 얌전히 집에 있어. 아직 위험해”
자꾸 고집을 부리는 나 때문에 아저씨는 깊은 한숨을 쉬며 날 바라보았다. 그래 내가 지금 가봤자 달라질 건 없어 그래도.. 은수를 보기 전까진 행복해질 수 없다. 그 어린 애가 외롭고 억울하게 죽었을 텐데 마지막이라도 누나인 내가 지켜줬어야 하는데..
결국 아저씨는 그런 내가 못 미더웠는지 집을 나가기 전까지 으름장을 놓곤 계속 뒤를 돌아보며 집 밖을 나섰다. 하지만 나에겐 그럴 시간이 없었다. 너무 초조했다. 마지막 흔적이라도 먼저 보고 싶었다. 아저씨에겐 미안하지만 결국 난 현관문을 열고 말았다. 바로 옆집인데 설마 무슨 일이야 생기겠어.
독자님들 오늘 포인트 무료의 날이에요! 마음껏 글잡을 즐기시길 바래요! 앞으로도 열심히 연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암호닉은 계속 받을께요! 고마워요
암호닉
8ㅅ8 윤기꺼야 꺄르륵 물빠않석 공중전화 햇살 핑슙 복숭아 부랑이 태태 1013 꾹꾹이 팥빵
윤기융기 좀비야 윤기융털 정글곰 권지용 효인 민빠답없 흑슈가 초커 고망맨 민트 바람민 숲속 윤기야 민군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