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해 속을 헤매던 소년들
02
준회는 아주 늦은 시간이 다 돼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타박타박 맥아리 없는 발걸음이 한없이 무거운 적요를 찢어내는 것이 반가워 언뜻 입꼬리가 씰룩거린다. 앙상하게 마른 몸과 피곤에 젖어 힘없는 눈매가 먼저 시야에 들어찼다. 허공에서 맞물리는 시선. 침대에 누워있는 날 마주한 준회는 이내 엉성한 미소를 지어보인다. 누가 봐도 잔뜩 지친 표정. 걱정 끼치는걸 싫어하는 준회는 웃어보이는 낯을 어거지로 끄집어낸다. 잿빛의 어스름.
"…저녁은?"
으응. 대충.
어물어물 얼버무리는 걸 보니 또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온 것이 분명하다. 주섬주섬 일어나 상을 차리려는데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는 말만 여러번. 눈이 마주치자 또 어색하게 웃어보인다. 난 괜찮아. 형은? 배 안고파?
"나도 괜찮아."
입이 버석하게 말라있는 탓에 목구멍 밖으로 꺼내어지는 음성의 감각이 생경했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인데도 간헐적으로 마른 기침이 왈칵 터져나왔다. 걱정스런 시선이 바늘처럼 내리꽂힌다. 날렵하게 뻗은 눈매 한가득 맺혀있는 감정들은 다감하지만 불편했다. 네가 날 불쌍하게 보지 말았으면 좋겠어.
동정이 서린 눈빛은 지긋지긋하리만큼 익숙했다. 다 쓰러져가는 집과, 몸을 파는 엄마와, 동급생들의 괴롭힘과, 속을 갉아먹어가는 병. 그 모든 것들. 의도조차 불분명한 동정을 받기엔 충분한 조건. 그 속에서 평생을 갇힌 채 쳇바퀴 돌리듯 살아가는 모습이 흉측하다.
그나마의 안도가 있다면 제 옆을 지키는 준회.
나긋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이름을 부를 때마다 텁텁한 공기 중으로 산란하게 흩어지던 온기. 사근한 음색이 고막에 내려앉는 순간을 진환은 좋아했다. 변해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사그라든다. 준회는 나를 버리지 못한다. 언젠가 나를 스쳐지나갔던 사람들처럼 나를 버리고, 짓밟고, 무너뜨릴 수 없을 것이다. 준회는 가족이었다. 하나 뿐인 동생이었다. 끊을 수가 없는 고리였다. 그 사소한 사실이 커다란 안도를 안겨주었다.
너는 무슨 일이 있대도 나를 떠나지 않을거야.
"약 다 먹었지? 병원 같이 갈까?"
부드러운 음색이 공중을 부유한다. 적의 없이 다감한 물음에 선뜻 고개를 끄덕일 수 없어 왈칵 서러움이 솟구쳤다. 아니라고, 괜찮다고 사양하며 고개를 저어보이고 싶다. 어차피 완치조차 불가능한 병이었다. 평생을 안고 가야 할 짐. 애써 모아둔 돈을 또다시 가망도 없는 병에 쏟아붓고 싶지는 않다. 약을 먹는 것을 그만둔다면 아마 곰팡이에 좀먹어가는 벽지처럼 내 병은 야금야금 목구멍에서부터 나를 한 톨도 남김없이 갉아먹을 것이다. 한낱 사라지는 먼지처럼 그렇게 없어지겠지. 그치만 어쩌면 준회에게 있어 그것이 더 편한 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준회에게 기생충처럼 붙어 숨을 쉬는 내 모습이 끔찍하다. 질펀하고 끈적한 삶의 의지. 내가 너에게 있어 한없이 성가신 존재라는 사실이 격통처럼 가슴께를 꿰뚫는다. 뻐근한 감각.
준회는 완고한 뜻을 굽히지 않는다. 병원에 같이 가자. 학교 끝나면 같이 가.
나즈막한 목소리.
목이 아프단 걸 안 것은 몇 년 전이었다.
제법 어린 나이에 학교 선생님의 추천으로 나간 대형 오디션에 덜컥 합격해버려 수많은 세간의 관심을 받았었던 때가 있었다. 작은 거인. 최연소 데뷔 확정 연습생 등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내 이름을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곱씹으며 이 진창 밖에 끝없이 펼쳐질 길고 긴 앞길을 상상하던 짜릿함. 흥분. 어디로든 나는 원하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원하는 삶을 살며 지긋지긋한 여자를 내치고 다 쓰러져 가는 집 밖으로 뛰쳐나올 수 있었다.
고막을 내리 날카롭게 찍어내리던 숨이 넘어갈 듯한 웃음소리를 기억한다. 비명을 내지르듯, 뒷골을 서늘하게, 뭉근히 짓이기던. 넌 이 집을 벗어나지 못할거야. 너를 필요로 하는 곳은 없단다. 넌 한낱 불순물이니까.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그녀의 웃음이 뜻하는 바를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후두염이라고 했다. 그것도 아주 심각한. 방치하면 암으로까지 전이될 수 있는 그런 병.
기획사에 마련된 숙소에서 나의 존재를 인정해주고, 아껴주고, 포용해주던 사람들과 함께 지낸 지 딱 두 달만이었다. 비록 그들이 내 목소리를 이용해 돈을 벌려고 하려는 목적이라도 좋았다. 내 신체의 일부가, 나의 어떠한 재능이 그들에게 있어 필요한 것이라는게 좋았다. 내 존재가, 한낱 먼지와도 같은 나의 작은 존재가 그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좋았다. 내가 어떠한 의미로써 각인된다는 것이 눈물겹게 좋았다. 그래서 한동안을 잊고 살았던 것이다.
나의 세계는 오직 창녀인 엄마와 다 쓰러져 가는 낡고 더러운 집이 전부라는 것을.
엄마는 한참을 숨이 넘어갈듯 깔깔대며 울부짖듯이 웃었다. 아마 그녀는 모종의 박탈감을 느꼈을 것이다. 자신을 닮은 목소리를 가진 아들이 세간의 관심을 받으며 자신을, 아니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자신이 꼼짝없이 갇혀버린 좁고 더러운 세계를 벗어나는 것이. 엄마는 내 푸석하고 건조한 머리통을 짓밟는 듯한 날카로운 웃음을 쏟아냈다. 뜨거운 것을 삼킨 듯 속 깊은 곳이 뜨끈하게 저렸다. 눈 앞을 장악하는 고압적이고 우울한 어둠. 그것이 내가 가야할 길이고, 내가 있어야 할 곳이고, 무엇보다도 내게 잘 어울리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즈음 엄마의 웃음이 서서히 사그라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미친년. 넌 네가 뭐 대단한 가수라도 될 줄 알았니?"
넌 그냥 몸이나 대주는 더러운 창년일 뿐이야. 사내새끼 주제에 비리비리해서 모르는 남자들 아랫도리나 빨아주는. 여기가 너와 가장 어울리는 곳이야.
그녀의 말에는 틀린 것이 하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그리도 눈물겨웠다.
준회를 처음 만난 건 그로부터 1년 쯤 지난 뒤의 이야기일 거다. 인상이 좋아보이던 아저씨와 팔짱을 끼고 나타났던 엄마. 그리고 그 옆을 조심스레 따랐던 준회. 보는 이를 단숨에 매료시키기 충분했던 나즈막한 미소. 깔끔한 옷차림과, 단정한 머리칼과 윤이 나던 콧대. 서글서글하게 말려올라가는 입매와 무엇을 담아도 말갛게 빛날것만 같은 두 눈. 그 눈을 기억한다. 담담히 휘어지던 눈매를 처음 마주한 순간 덜컥 멈췄던 호흡을. 그 찰나를.
좋은 사람이구나.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좋은 사람이구나. 나와 같은 집에 살며 한없는 침전을 겪기에는 너무나도 아까운 빛이구나. 옆 방에서 간간히 들려오는 교성에 귀를 틀어막고, 엄마라는 여자가 집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수많은 남자들 눈에 띄지 않게 숨을 죽이는 법을 배우고, 다 떨어져 가는 집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것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별개의 사람이구나.
그래서 나는 준회가 나와 가족이 되는 것이 싫었다. 순연하고 말간 그 낯이 거침없이 어둠으로 난도질되고 범해질 것이 눈에 보여서 그게 그렇게 마음이 쓰였다. 나의 몫이라고만 생각했던 거대한 고독으로 네가 스며들 것이 싫었다.
그건 익사였다. 그림자라곤 없을 것만 같던 그 말간 얼굴로 와르르 무너지는 진득하고 짙푸른 암흑.
평생 너와 내가 남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
내가 아는 학교는 사회라기보단 정글에 가까웠다. 약육강식의 세계. 미성숙이 만들어내는 집단과 규율은 상상할 수 없을만치 잔인하고 엄격했다. 나는 그 속에 내던져진 한낱 힘없는 초식동물이었다.
절박한 자기방어와 굴욕적인 변명 등은 이미 내 영역이 아니었다. 나는 내게 던져지듯 주어지는 또다른 진득한 그림자들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야 하는지 몰랐다. 덤덤한 수용. 무력하고 미미한 반응.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그것이 다였다.
"김진환. 나와."
매캐한 니코틴 향이 누선을 자극한다. 늘상 비스름한 시선으로 저를 좇는 송민호였다. 김지원의 예상과는 다르게 송민호의 흥미는 금방 식지 않았다. 짐승이 그르렁거리는 것 같이 나즈막한 목소리는 시도때도 없이 전신을 울렸다. 그 서늘한 목소리가 목덜미에라도 스치면 온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나는 한치의 반항도 없이 송민호를 따라 복도로 나갔고, 송민호는 나를 데리고 옥상으로, 혹은 체육창고로, 혹은 아무도 없는 교실로 데려가 나를 괴롭히곤 했다. 물리적 폭행도 있었고, 그게 심심하면 담배를 맨살에 지지기도 했다. 뺨을 때리는 건 물론이고 다른 반 무리들과 합세해 물을 뿌리고 침을 뱉는 일도 다반사였다. 차라리 폭행에 가까운 잔혹한 언사들도 함께였다. 반항해봤자 이길 수 없는 상대다. 본능적인 두려움이 컸다. 아무런 의미도 없이 퇴색되는 시간들. 그 낯설고 팽팽한 기류.
"네 그 좆같은 표정 때문에 존나게 화가 나. 너는 왜 그렇게…"
뒷말은 텁텁한 연기 속으로 삼켜낸다. 사납게 찢어진 눈으로 한참 나를 응시하던 송민호는 이내 허탈하게 웃어보였다. 익숙하고 무뎌져 권태롭기까지 한 송민호의 낯익은 음색과 첨예한 시선. 나는 도저히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를 알 수가 없다. 송민호는 한참을 더 타들어가는 담배 끄트머리를 잡은 채 그 자리에 앉아있었다.
극명한 위치. 나는 정글의 가장 밑에 있었고, 한 치의 교만도 없는 최상위 수컷의 이빨과 발톱에 망가져진 채로 진창에 내던져져 있었다. 앞으로 내가 겪을 모든 집단에서도 나는 이 위치일까. 이렇게 물어뜯기고 피범벅이 된 채 늘어져야만 하는걸까. 당연시 생각하고 있던 모든 것들에 문득 환멸이 일었다. 지긋지긋했다. 구질구질한 삶이 불쌍했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이상하리만치 캄캄한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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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상 2편이 조금 짧습니다! 부족한 글을 봐주시는 모든 분들께 너무 감사드려요ㅠ_ㅠ♡ 커플링은 준환이 맞지만 뿌총 위주로 돌아갈 것 같네요@'o'@!!! 다음 편에서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