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어봐, 한번."
김한빈이 해 온 과제물을 건네주는 것에, 받아서 한 줄씩 읽어내려가는데, 보는내내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 내가 도맡았다간 이런 결과물이 절대 안나왔을텐데. 깔끔하게 딱 떨어지는 맺음말까지 고칠게 전혀 없었다. 만족하며 고개를 끄덕이는데, 옆에서 나와 같이 읽던 구준회가 틱틱대는 말투로 김한빈한테 말했다.
"이거 어디서 베껴온거아냐? 복붙하고 막."
"쟤가 너냐."
김한빈의 대답대신 내가 답하자, 내게 작은 목소리로 '너 기다리게 한거 티내는 중이잖아.' 라며 날 툭친다. 괜찮다고 대충 눈칫밥을 먹인 뒤, 김한빈으로 시선을 돌렸다.
"괜찮은데? 고칠 것 하나도 없어!"
"그래? 다행이네. 그럼 이대로 내고 올게."
내고 오겠다며 종이를 다시 가져가는 것에, 아 잠시만. 하고 동혁이가 종이를 가져갔다. 그러고보니, 동동이는 못봤네. 동혁이가 한참 글을 읽더니 갑자기 인상을 썼다. 뭐, 잘못된 부분이라도 있는건가. 곧 동혁이가 고개를 들어 한빈이에게 물었다.
"너 뭐 귀신 볼 줄 알아?"
"... 어?"
얘는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하며 구준회랑 이상하다는듯 김동혁을 보는데 헛웃음을 치며 고개를 젓는다.
"아 아니, 그냥. 글 쓴거 보는데, 되게 그런 것들 잘 아는 사람 같아서."
"아... 그냥 서치해서 찾아본거지 뭐."
"그런거지? 난 또."
그 말을 하는 김동혁의 표정이 무언가 의심을 품고 있는듯 보였다. 내가 볼 때엔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는데. 너무 잘써서 그런건가 싶은 생각에 별 생각않으려했다. 김한빈은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을 한 뒤, 김동혁이 들고 있던 종이를 다시 가져갔다. 종이를 들어보이며, 교무실에 가보겠다는 김한빈을 김동혁은 여전히 수상하다는듯 바라볼 뿐이었다.
"여기 한빈 오빠 없어요?"
김한빈이 나간지 얼마 안되어서 어디선가 들은듯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학 온 지 얼마 안 된 김한빈에게 오빠라 부르며 친근히 대하는 사람. 누군지 짐작이 감에,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바라보았다. 뭐 예상대로 신기였다. 급한듯한 표정으로 문에서 서성이며 이리저리 찾는 것에 그 쪽으로 다가갔다. 내가 다가가니 너가 왜? 라는 표정을 짓고 날 본다. 참 그 표정 고쳐주고 싶네, 정말.
"한빈이 찾아?"
"그런데요."
"한빈이 지금 없는데."
"없다고요?"
없다는 말에 발을 동동거리며 어쩔 줄 몰라한다. 복도 쪽도 바라보고 다시 교실도 바라봤다가 이제는 짜증난다는듯 자기 머리를 헝클어놓는다. 급한 일인거냐 묻는 것에, 신경 쓰지말라며 홱 몸을 돌려 걸어가버린다. 그 행동에 한 마디 해주려던걸, 걔가 돌아봄과 동시에 말았다. 신기는 다시 내 쪽으로 돌아오더니 이번엔 팔짱을 끼곤 다시 날 흘겨보며 말했다. 언니, 나 뭐 좀 물어봐도 돼요?
"뭔데."
"아니 그냥 묻는 건데요. 한빈 오빠 잘알아요?"
그런건 왜 물어보는건지 이해할 수는 없다만, 오늘 아침에도 이런 비슷한걸 물었던게 생각나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났다. 내가 웃으니 왜 웃냐며 흘겨보던 눈이 점점 더 앙칼져간다.
"너 진짜 관심있구나?"
"... 네?"
"김한빈한테, 관심 있는거 아니냐고."
"아니 지금 내가 그런걸 물어본게 아니잖아요?"
"아침부터 지금까지. 너 계속 김한빈이랑 무슨 사이냐고, 잘 아냐고 묻고 있잖아. 견제하는 것 마냥."
"허, 아니거든요? 나는 단지, 그 오빠 정체를 .....!"
"무슨 얘기해?"
신기랑 나 사이로 무슨 일이냐는듯 들어오는 김한빈에, 한참 말하던 신기가 입을 두 손으로 막았다. 아뿔싸, 하는 표정을 지으면서.
"아, .. 내고 왔어?"
"응. 선생님 안계시길래 자리 위에 놓고만 왔어. 그나저나, 뭐 하고 있어 여기서 둘 다?"
"너 찾더라고. 쟤."
여전히 놀란듯 자기 입을 막고 있는 신기를 턱 끝으로 가리키며 말하니, 김한빈 고개가 그 쪽으로 돌아간다. 두 눈을 크게 뜨고 김한빈을 보다, 천천히 두 손을 아래로 내리던 신기는 내 눈치를 살살 보며 입을 열었다.
"... 찾았어요, 악귀. 1학년 교실."
"악귀?"
악귀? 내가 지금 잘못 들은건가 싶었다. 아귀도 아니고 악귀라니. 그런건 만화나, 영화 속에서나 나오는거잖아. 그 말에 난 분명 확신했었다. 집 가서 다시 생각하면 난 땅을 치고 웃을거라고. 그리고 오빠한테 또 말해주겠지, 우리 학교에 또라이 있다고. 김한빈도 웃지 않을까, 하고 고개를 돌리는데 웃음기는 커녕, 진지하면서도 차가운 표정으로 신기 말을 듣고 있었다.
"... 1학년 어디."
"앞 반. 3반 쪽인거 같아요."
내가 아는 김한빈은 정말 정상적이고, 모자란 애가 아니다. 그렇다고해서 신기가 있는 애도 아니고, 어디가 미쳐버린 애도 아니었다. 뭐, 사실은 모르는거지만, 그냥 지금까지 본 것만으로도 그렇지 않다는걸 확신할 수 있었 ... 아. 그러고보니까.
"너 뭐 귀신 볼 줄 알아?"
"... 어?"
아까 의심하던 김동혁 말이 생각난다. 너무 자세하게 잘 써서 그런 소리를 한거겠거니 했는데. 이거 뭐 지금 상황에서는 ...
"직접 본거야?"
"아니, 느낌으로요."
"확실치 않잖아."
"알 수 있어요, 난. 저번에도 두 눈으로 직접 봤잖아요."
"... 일단 알겠으니까 돌아가봐. 확인은 내가 할테니까."
"만약 확인되면."
"..."
"돕는거, 허락해줘요."
그 말을 하고 돌아서는 신기를 한참동안 보다, 김한빈으로 고개를 돌렸다. 머리가 복잡한듯 이마에 손바닥을 대곤 눈을 감다, 천천히 떼며 날 슬쩍 바라보곤 교실 문으로 다가갔다. 그러다 얘기를 쭉 듣고 있었던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는듯 발걸음을 멈추고 그대로 입을 뗐다.
"... 그냥 지금 들은거 신경쓰지마."
그 말만 남기고 그대로 가버리려는 김한빈의 뒤에 대고 그대로 물었다. 들은건 신경 안쓴다치고, 그런 것에 관련은 되어 있는듯 하니까.
"쟤 신기 있다며."
"....."
"귀신 본다며."
내 말에 문을 열려던 김한빈의 손이 멈추고 그대로 뒤를 돌아 날 바라보았다. 날 바라보고 있는 것에도 아랑곳않고 하려던 말을 이었다.
"자세한거, 물어보지 않을게. 그냥 이것만 물어볼게."
"..... 김동혁 말처럼. 너도 그런거, ... 볼 수 있는거야?"
물음에 제발 그렇다고 답하지 않기를, 그냥 그런 애 비위맞춰주는거라고 해주길. 그 짧은 침묵 속에서 난 김한빈에게 암묵적으로 외쳤다. 지금의 가벼운 의심이 그저 가벼운 것으로 끝나버렸음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물음과 동시에 울리는 종소리가 희미하게 들릴만큼, 곧 답할 김한빈에 난 내 모든걸 집중하고 있었다. 그 때, 단체로 우르르 뛰어가는 남학생들이 좁은 벽과 내 사이를 치고 지나가려는 것을, 김한빈이 내 뒷목을 팔로 끌어당기며 자기 품으로 안았다. 김한빈의 품에 안기자마자, 뛰어가는 발소리도, 종소리도, 빨리 안들어가냐며 호통치는 선생님의 목소리도 들리지가 않았다. 다치잖아. 가슴에 안겨 더욱이 울리는 김한빈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그의 품에서 떨어졌다. 김한빈에게 눈을 맞추다 너무도 조용한 주변에 주위를 돌아보았다. 모든게, 멈춰있었다.
"... 뭐야, 이거."
대답과 동시에, 멈춰있던 테잎을 다시 재생시키는 것처럼 멈춰있던 그 모든게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뛰어가던 발소리도, 종소리도, 호통치는 선생님의 목소리도. 다시 들리기 시작했다. 그 때였다, 김한빈에게 집중하고 있던 내 모든 것들이 정적을 깨듯 반응하기 시작한게. 떨리면서도,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다시 김한빈의 눈빛을 바라보는데, 아까 그 애에게 보였던 그 차가운 눈빛이 아닌, 평소의 김한빈의 눈빛도 아닌, 뭔가 오묘하면서도 안에가 뻥 뚫려있을 것만 같은 눈빛을 보았다. 그 눈빛으로 날 잠시 바라보던 김한빈은 곧 뒷문을 열고 반으로 들어가버렸다. 닫혀진 문에, 난 마치 무언가에 맞은 듯 멍해지고 정신이 없었다. 뭘 본거지, 난. 그 짧은 순간에 난 방금, 뭘 본걸까.
"○○빌딩으로 가주세요."
아침 일찍부터 택시를 잡았다. ○○빌딩으로 가달라는 말과 함께 택시는 출발했다. 평소 같으면 천천히 걸어가면서 주위 경치도 둘러볼텐데, 오늘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진환아, 오늘 일보고 오면 엄마랑 저녁이나 먹으러 가자.'
진환이 엄마랑 밥먹어야 하니까.
진환. 그 이름이 참 좋았다. 몇 백년 전 내 이름을 사랑스럽게 불러주며 따르던 그녀 때문에. 언제나 날 보면 진환 선비님! 하며 환한 웃음으로 날 맞아줬었다. 그래서 난 그 이름이 참 좋았다. 그래서 이 아이가 태어남과 동시에 그 부모에게 진환이라 이름을 지을 수 있도록 했다. 그 아기는 내가 될테고, 그 아기는 날 위해 존재하게 될테니까. 아이는 진환이어야 했다.
보통 일정한 시간이 지나고나면 웬만한 망령들은 승천할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여태껏 이 지상에 남아있었다. 용케도. 날 찾으러 오는 사신들도 없었고, 내 존재를 알고 있는 망령들도 없었다. 그야말로 무(無)의 존재인거다. 언제는 아직도 내가 승천하지 않은 이유가 궁금해 무당을 찾아갔었다. 그 무당은 날 보며 인상부터 썼었다. 원인이 미쳐버려서 란다. 생전에 내가 너무 미쳐버려서. 그 상태로 죽어버려서 란다. 미친놈은 개도 안건들인다고, 그래서 사신들도 외면하는거라고.
"다 왔습니다."
예전 생각에 한숨짓고 있을 무렵, 도착했다는 말에 계산한 뒤, 택시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보이는 큰 빌딩하나. 그 높이를 가늠할 수 가 없다. 그저 저 꼭대기를 쭉 올려다볼 뿐. 그 빌딩을 올려다보다, 빌딩 옆에 샛길로 발을 들였다. 건물과 철창 사이의 좁은 샛길로 성큼성큼 걸어가다, 눈 앞에 서서히 보이는 것에 마른 입술을 물었다. [月梅井] 월매정. 그 간판을 손으로 닦으며 선명해진 그 글씨에 무릎을 꿇었다.
"... 나 왔어."
이젠 없어진 영주각. 그리고 그 영주각에서 딱 하나 남은 월매정. 무릎을 꿇은 채로 이젠 철쇄로 뚜껑이 닫혀버린 우물의 모습에 고개를 숙일 뿐이었다. 한참을 그러고있다, 풀린듯한 눈을 하곤 바람 빠진 웃음으로 판넬을 바라보다 챙겨온 가방 속에서 방 안에 있던 앨범을 꺼내며 한장씩 넘겨보이며 우물에 말했다.
"... 어딨어, 월매야."
"..... 나 너 찾고 있는데. 어딨어, 너."
"이 많은 여자들 중에서, 왜 너가 없어?"
"... 왜, 어? .. 왜!!!!!"
진환이 소리침과 동시에 혼령 하나가 툭 튀어나오듯 진환의 몸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 튕겨져 나온 혼령은, 200년 전 월매를 사랑하던, 선비 진환이었다. 선비 진환은 자신이 튕겨져 나온 것도 모른 채로 우물을 바라보며 계속 소리치고 있었다. 그리고 무릎 꿇고 있던 또 다른 진환은 눈을 뜨며 주위를 두리번 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보이는 선비 진환에 천천히 입을 떼었다. 꽤나 지친듯한 표정이었다.
"... 여긴 또 어디에요."
".... 뭐야. 튕겨져 나왔 ..."
진환의 말에 몸 밖으로 튕겨져 나왔다는걸 알아챈 선비가, 막무가내로 다시 진환에게 다가가자 진환이 일어나 조금씩 뒷걸음 치기 시작했다.
"말해요, 어딘지. 말하라고!!!"
"넌 나한테 몸만 주면 돼, 알려고 하지 마."
"21년을 그렇게 살아왔어, 21년을!!!"
언성을 높히자, 선비의 눈썹 한 쪽이 움찔거린다. 상당히 심기에 거슬렸다는 표시였다. 감고 있던 눈을 서서히 다시 뜨던 선비는 다시 천천히, 진환 앞으로 다가섰다. 두 얼굴이 가까이 맞닿았다.
"늘 말했지. 넌 나한테 안된다고."
"...!!!!!"
선비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진환에 몸으로 다시 선비는 빙의해 들어갔다. 발악하려던 진환은 온데간데 없고, 차가운 표정의 진환만 다시 남았다. 빙의해 들어간 진환은 우물 앞으로 돌아와 떨어진 앨범을 들어올려 가방에 챙겼다. 그리고 아까까지 매만지던 판넬에 다시 손을 대었다. 마치 연인의 손을 다루듯 조심스럽고 또 조심스러웠다. 진환은 '월매정'에 웃어보이며 입을 떼었다.
"... 다음에 또 올게. 그 땐, 알려줘. ... 너 어딨는지."
진환이 월매정을 벗어나 다시 샛길로 돌아가고, 월매정 앞엔 아까 앨범에서 떨어진 이름과 진환의 사진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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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252 입니다!
거의 한 3일 만에 왔나요? ㅠㅠ 아마 앞으로 이틀에 한 번, 삼일에 한 번, 그런 식으로 오지 않을까 싶어요 ㅠㅠ 아무래도 빨리빨리 다음편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그런지 속상하네요 흑.
그나저나 개학한 독자님들은 어찌, 다시 생활에 적응 잘하고 계신가요? 오늘 하루도 수고 많았고, 내일도 화이팅 하시길 바래요♡
오늘도 사신 봐주신 모든 독자님들 감사드리고, 12편 초록글도 감사드립니다♡
다음 편에서 만나요, 안녕!
암호닉! (암호닉은 댓글로 달아주세용)
주네띠네 님♡ 구닝 님♡ 초록프글 님♡ 핫초코 님♡ 뀰지난 님♡ 바람빈 님♡ 비비빅 님♡ 부끄럼 님♡ 0324 님♡ 마그마 님♡ 까까 님♡ 깜냥 님♡ 준회윙크 님♡ 환생 님♡ 김밥빈 님♡ 바나나킥 님♡ 바뱌 님♡ 괴물 님♡ 뿌요를 개로피자 님♡ 감귤 님♡ 하이린 님♡ 시작 님♡ 이원 님♡ 아침 님♡ 한비나겨론하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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