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김태형] 페어플레이 4 | 인스티즈](http://file2.instiz.net/data/cached_img/upload/2015082922/2ec402bf433827d7adf015fff4a6be5b.jpg)
페어플레이
부제 : 헤어진 남자친구와 한 집에서 산다는 것은
#4
W. 뽀베
" 왜 안 먹어. "
" 잘 먹고 있는데? "
" 깨작거리잖아. 신경 쓰이게. "
" 맛있게 먹고 있으니까 걱정 마. "
김태형 탓에 복잡하게 얽힌 감정선들이 신경 쓰여 밥이 코로 넘어가는지, 입으로 넘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덕분에 젓가락을 든 채 음식을 깨작거리며 조금씩 집어먹고 있자 앞에 앉아있던 김석진이 짜증 섞인 목소리를 냈다. 아차, 김석진은 자신이 만든 음식을 맛없게 먹는 걸 제일 싫어하는데. 자본주의 미소를 지으며 김석진에게 변명을 한 후 크게 한 입을 먹었다. 그제야 내게서 시선을 뗀 김석진이 제 시선의 타깃을 김태형으로 바꾸었다.
" 처남. "
" 네. "
" 쟤 원래 저렇게 먹어? "
" 아, 아뇨. 아까 전에 속이 좀 안 좋다고 했었습니다. "
" 정말? 아프다면서, 먹어도 돼? "
" 응, 상관 없어. 이제 괜찮으니까. "
재빨리 대답을 한 김태형 덕에 위기를 모면했다. 속이 안 좋다는 말을 듣자 김석진은 구겨져 있던 인상을 피더니 걱정스런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 말에 밝은 목소리로 긍정적인 답을 내놓았다. 아직 마음이 다 놓이지 않았는지 김석진은 몇번 더 나를 흘끗흘끗 쳐다보다 겨우 시선을 접었다. 하마터면 식은 땀이 날 뻔 했다. 그런 나와는 달리 덤덤하게 밥을 먹고 있는 김태형을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왜 나 혼자서만 이런 구질구질한 역할을 해야하는지 모르겠다. 순간적으로 나오려던 한숨을 참고 대신 입 안에 가득한 음식을 우물우물 씹었다. 맛이 있는지, 없는지 신경을 쓸 틈이 없었다. 그런 내가 아직 걱정이 되었는지 김석진은 제 젓가락으로 반찬들을 집어 내 밥 위에 올려주었다.
" 너 혹시, 막 입덧 이런 건 아니지? "
" ... 에? "
" 아니... 그런거면, 응? 안되지. "
" 그런 거 아닙니다, 형님. "
" 혹시 모르니까 산부인과 한 번, "
" 진짜 아냐. 얘랑 나랑 무슨... "
" 아니, 너네 둘이 그러는 건 상관 없어. 없는데, 속도 위반은 안된다. 알았어? "
" 할 생각도 없네요. "
그러던 김석진이 아픈 강아지처럼 낑낑대며 내 눈치를 살피더니 나온 말은 생각보다 충격적이었다. 순간 귓가에 들려오는 말에 귀가 잘못된 줄 알았다. 김석진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가긴 했지만 맹세코 그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었다. 굳이 정조를 지키는 것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보수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더욱 경악스러웠다. 김태형도 마찬가지였는지 어느새 빨개진 귀 끝이 김태형이 당황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말도 안되는 소리에 겨우 넘겼던 밥이 다시 올라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김석진은 제가 말을 하고도 민망했는지 큼큼거리며 물을 들이켰다. 분위기가 굉장히 묘해졌다. 그야말로 묘한 기류가 도는 식탁에서 나는 불편하게 밥그릇 안에 남은 밥들을 입 안으로 쑤셔넣었다. 안 그래도 김태형의 뚜렷하지 못한 태도 탓에 정신이 없을 지경인데, 이런 말까지 들으니 더욱 정신이 없었다. 말없이 그저 밥만 우걱우걱 먹던 김태형이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어지간히 당황을 한 모양이었다. 나 또한 만만치 않게 그랬고.
" 야, 난 그냥 걱정돼서. 어? "
" 그래도 무슨.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가 없어. "
" 혹시 모르지, 그건. 사람 일은 모르는거다? "
" 연애나 시작하고 그런 말을 해. "
" 나 연애 중인데? "
어? 아까 전 김석진의 발언에 이어 또다시 내 청력에 대한 의심을 하게 된 순간이었다. 얼이 빠진 목소리로 되묻자 김석진이 당당하게 말을 꺼냈다.
" 나 연애 중이라고. 사귄 지는 반년쯤 됐어. "
" 왜 말 안 했어? "
" 연락을 안 했으니까. "
" 아, 그럼 연락을 했어야지! "
" 내가 굳이 너한테 먼저 연락을 할 필요는 없잖아. "
" 그럼 오늘 집에는 왜 찾아왔는데. "
내 마지막 말에 김석진이 말문이 막힌 듯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굳이 연락을 할 필요가 없다니, 변명도 그런 변명이 있을 수가 없다. 어이가 없어 방황하는 젓가락을 허공에 든 채로 입을 벌리고 김석진의 얼굴을 멀뚱히 쳐다보았다. 끝내 입을 열지 않을 것 같은 모습에 입맛을 쩝 다시고 젓가락을 내렸다. 눈이 높아 여자를 사귀더라도 금방 헤어지곤 했던 김석진인데, 반년이 넘게 사귀었다면 이번에는 무언가 다른 것이 있을 게 뻔했다. 의심스런 눈초리로 김석진을 흘깃 노려보았다.
" 아, 왜 그렇게 보는데! "
" 오빠 원래 반년을 못 넘기잖아. "
" 이번엔 좀 달라. 결혼 전제야. "
" 정말이야? 진짜? "
" 언제까지고 연애만 하다 죽을 수는 없잖아. 이젠 나이도 있고. "
" 뭐, 잘 생각했어. 애인은, 예뻐? "
" 그럼. 참하지, 아주. "
" 어후, 팔불출 납셨어. 엄마, 아빠도 아셔? "
" 연애한다는 건 아셔. 곧 상견례 할 수도 있고. "
밥 한 숟갈을 입에 크게 넣은 김석진이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어떻게 그러면서도 나한테는 연락을 한 번도 안 할 수가 있어. 스케줄과 연애 때문에 바빴다 쳐도, 반년은 좀 심했다. 뿌루퉁한 표정을 짓고 젓가락으로 밥을 부러 깨작거렸다. 그것을 못마땅하게 본 김석진이 내 젓가락을 뺏어들더니 손수 음식을 먹여주기 시작했다. 누가 보면 애틋한 사이의 남매인줄 알겠다. 사실은 전혀 반대이지만. 참새처럼 김석진이 주는 음식을 넙죽넙죽 받아먹었다.
때마침 화장실에서 나온 김태형이 살짝 붉은 끼가 남아있는 얼굴을 한 채 자리로 돌아왔다. 밥을 먹는 기계처럼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손이 평소 김태형의 모습과 참 달랐기에 되려 나까지 딱딱하게 굳었다. 이어진 침묵에, 작은 공간 안에서는 젓가락을 움직이는 소리와 젓가락이 그릇에 부딪혀 나는 소리, 음식을 씹는 소리 등 짤막한 소음만이 들려왔다.
" 처남. "
" 예? "
" 음식은 입에 맞아? "
" 아, 네. 맛있습니다. "
" 그럼 다행이고. 넌 뭐, 물어볼 것도 없지. "
아까 전 김석진의 직격타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김태형은 김석진의 목소리에 놀란 눈치로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감흥 없이 이어지는 둘의 대화를 듣다 뜬금없이 튀어나온 내 얘기에 김석진을 노려보았다. 내가 뭐, 왜. 날선 말투로 김석진을 찔렀다. 그러자 어렸을 때부터 지겹도록 들었던 돼지라는 말로 나를 놀려오는 김석진에 질려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었다. 어떻게 어른이 돼도 하나도 변하는 게 없냐고.
잠자코 듣기만 하던 김태형도 눈을 빛내며 김석진과 함께 나를 놀리기에 참여했다. 밤마다 치킨 타령을 한다며 내 치부까지 김석진에게 드러내는 김태형에 식탁 밑으로 김태형의 발을 꾹 밟았다. 아! 김태형의 입에서 필터링이 되지 않은 비명이 툭 튀어나왔다. 김석진이 왜 그러냐는 듯 김태형을 쳐다보고, 나를 흘끗 곁눈질로 쳐다본 김태형이 이내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형님, 탄소가 저를 너무 좋아합니다. 이건 또 무슨 신종 개소리야.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문장에 다시 한 번 김태형의 발을 밟았다.
" 나 좀 그만 좋아해, 김탄소. "
" 입 좀 다물고 먹을래? "
" 뭐야, 뭔데. "
" 얘가 이상한 소리해. "
" 뭐래, 너 나 안 좋아해? "
" ... 갑자기 그게 왜 나와. "
" 아니, 안 좋아하냐고. "
" 조, 좋아하지! 왜! "
막무가내로 물어옴에 당황해 두서없이 말을 내뱉었다. 조용히 밥을 먹던 김석진은 궁금한 표정으로 김태형과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제발 좀 닥쳐줬으면 좋겠다. 이 순간 절실히 드는 생각이었다. 아니 그냥, 나도 좋아한다고. 내 말에 김태형이 느긋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입을 바보같이 벌린 채 김태형을 쳐다보다 어느덧 깨끗하게 비워진 밥공기를 들고 일어났다. 맛있게 먹었다며 변명 아닌 변명을 하고, 재빨리 부엌에서 빠져나왔다.
김태형과 신경전을 벌였던 거실로 돌아와 입술을 잘근 물어뜯다 문득 소파 위에 처량히 던져져 있는 핸드폰을 발견했다. 아, 윤기 오빠. 잊고 있던 인물이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다. 핸드폰을 들어 화면을 키자 부재중 통화가 몇 통이 와 있는 것이 보였다. 발신인은 다 민윤기. 차마 전화를 걸지는 못하고, 미안한 마음에 다시금 문자를 보냈다.
[ 미안해 오빠 ]
[ 김태형이 갑자기 폰 뺏어감 ]
[ 난 또. 걱정했잖아 ]
[ 미안미안 8ㅅ8 ]
[ 작업은? ]
[ 거의 다 끝냈어 ]
[ 있다가 시간 되면 만날까 ]
[ 글쎄 잘 모르겠다 ]
[ 상황 보고 연락할게! ]
[ 그래 ]
짧게 문자를 끝내고, 언제 식사를 다 끝냈는지 식기를 덜그럭거리며 치우고 있는 둘의 모습에 느릿느릿 부엌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싱크대에 쌓인 그릇의 양이 제법 많았다. 설거지는 내가 할게. 부지런히 식탁을 치우는 모습을 보다 담담히 목소리를 냈다. 잠깐 나에게 집중됐던 시선이 다시 각자의 시선으로 돌아갔다. 어느새 말끔히 치워진 식탁에 덩그러니 놓인 물컵을 들어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 근데 오빠. "
" 왜. "
" 언제 갈거야? "
" 나 가면 뭐, 둘이 뜨밤이라도 보내게? "
" 무슨... 오늘은 스케줄 없어? "
" 딱히. 너희 집에서 자고 갈 생각도 있어. "
" 그건 진짜 사양할게. "
" 장난이지, 기집애야. 밑반찬도 얼마 안 남았던데, 만들어주고 가려고. "
" 오, 그건 엄마도 안 해주는건데. "
" 엄마가 그렇지, 뭐. 네가 쏙 빼닮았잖아. "
험담인지 칭찬인지 모를 말들을 듣다 설거지를 하려 싱크대 쪽으로 몸을 틀었다. 아, 맞다. 내가 몸을 틀자 기다렸다는 듯 김석진이 목소리를 내어 내 발목을 잡았다. 고개만 살짝 돌려 어깨 너머의 김석진을 쳐다보자 김석진이 예쁘게 눈꼬리를 늘어트렸다. 저러면 좀 불안한데. 왜 저러나 싶어 말없이 쳐다보기만 하자 김석진은 애교가 있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 나 아까 전에 오다가 생각났는데, 내가 까먹고 안 사온 게 있더라고. "
" ... 저렇게 많이 사왔는데? "
" 진짜로. 그래서 그런데, 네가 좀 사와주면 안될까? 처남도 같이 보낼게. "
" 이젠 막 쫓아내시겠다? "
" 무슨. 아무튼 빨리 사와. "
" 그럼 설거지는. "
" 갔다와서 해. "
끝에는 명령하는 어조로 말투를 바꾼 김석진이 메모지를 꺼내 펜으로 사올 것을 슥슥 적어냈다. 아씨, 진짜 귀찮은데. 소화도 시킬 겸 좋지 않냐며 나를 설득한 김석진이 소파에 나른하게 늘어져있는 김태형을 불렀다. 덕분에 군기가 잡힌 김태형이 벌떡 일어났다. 김석진이 나에게 했던 말들을 그대로 김태형에게 읊자 김태형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귀찮게, 진짜. 투덜대며 안방으로 들어가 지갑을 들고 나왔다. 가자, 현관 앞에 서 있는 김태형을 지나쳐 신발을 신으려 하자 김태형이 내 팔을 잡아채 나를 멈춰세웠다.
그렇게 입고 갈거야?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는 김태형에 고개를 숙여 내 모습을 훑어보았다. 짧은 반바지에 박스티를 입은 것이, 썩 이상한 모습은 아닌데. 곰곰히 생각을 하다 다리를 내려보았다. 짧은 반바지, 이게 문제였다. 박스티에 가려져 보일랑말랑 하는 것이 퍽 신경이 쓰인 모양이었다. 아. 짧게 감탄사를 내뱉고 안방으로 돌아가 스키니진을 꿰어입고 나오자 그제야 신발을 신는 김태형이다. 같이 신발을 신고 먼저 현관문을 연 김태형을 따라 문을 닫고 나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둘이 같이 어디를 간다는 게,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 기분 참 묘해. "
" ...? "
" 하루만 다시 사귄다는 게. "
" ... ... "
" 2주만인가, 거의. "
" ... 잘 모르겠네. "
" 윤기 형하고는 무슨 사이야. "
" 딱히, 알 필요는 없지 않나. "
" 어쨌든 오늘 하루는 남자친구인 신세인데, 너무 쌀쌀맞게 구네. "
" 아까 전에 먼저 그런 태도로 나온 게 누군데. "
" 화났어? "
" 아니. "
1층입니다. 낭랑하게 퍼진 음성에 누가 봐도 화가 난 표정으로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앞서 뚜벅뚜벅 걸어갔다. 쉽게 나를 따라잡은 김태형은 심기가 불편한 표정을 지은 채 내 옆에서 같이 걷고 있었다. 김태형은 자꾸만 나를 헷갈리게 했다. 내 옆에서 작게 숨소리를 내는 것 조차 신경에 거슬렸다. 김태형은, 그리고 나는. 애매모호해진 감정과 입장이 난처했다. 헤어진 사람치고는 너무나도 다정했던 말들과 표정들, 또는 헤어진 사람처럼 날이 선 말투와 냉랭했던 얼굴. 김태형의 상반된 모습이 머릿속을 둥둥 맴돌았다. 김태형도, 나도, 어느 누군가는 태도를 확실히 해야했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해야할 사람은, 나에 더 가까웠다.
심각한 생각을 하느라 덩달아 얼굴도 잔뜩 굳어져버렸다. 근처 마트를 향해 빠르게 걷던 중,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자리에 멈춰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김태형이 없다. 몸까지 완전히 돌려 뒤를 보자 엄마와 손을 잡고 아장아장 걷던 아이에게 무릎을 굽힌 채 안녕,하며 말을 걸고있는 김태형의 모습이 보였다. 김태형이 사라진 줄 알고 철렁,하고 내려앉았던 심장이 다행히 제자리를 되찾았다. 한숨을 삼켜내고 사랑스럽게 아이를 보고있는 김태형을 향해 다가갔다.
" 죄송해요, 놀라셨죠. "
" 아, 아니에요. 남편 분이 아이를 좋아하시나 봐요. "
" ... 아아, 네, 뭐. 그렇죠. "
아이의 엄마에게 사과를 하자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함에 오히려 내가 더 말을 더듬거렸다. 그나저나, 남편이라니. 신혼 부부라고 오해를 한 것 같았다. 전에 이런 말을 들었다면 바로 대답을 했겠지. 잠시 뜸을 들였다 겨우 튀어나온 대답은 어딘가 씁쓸한 맛이 났다. 아이 엄마의 시선을 따라 김태형을 내려다보았다. 내가 한 대화를 듣기는 한 건지, 헤벌쭉 웃으며 아이만을 올곧이 보고있는 김태형이다. 언젠가 김태형이 내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우리가 나중에 결혼을 한다면, 나를 닮은 아들하고 자신을 닮은 딸을 낳자고. 축구단을 만들고 싶다는 얘기도 했었던 것 같다. 단편으로 떠오른 추억은 내 마음을 불편하게 달싹였다.
아이의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은 채 아이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김태형을 한참 동안 멍하니 보기만 하다 동그란 뒷통수를 톡 건드렸다. 거들떠보지도 않는 김태형에 몇 번 더 건드리자 귀찮은 듯 왜 그러냐며 손을 휘휘 내젓는 모습에 기가 차 허,하고 숨을 토했다. 여전히 꿀이 뚝뚝 떨어질 것만 같은 눈빛으로 아이를 보고있는 김태형에게 빨리 일어나라 재촉을 해댔다.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잔뜩 삐진 표정으로 몸을 일으킨 김태형이 걸음을 내딛다 말고 아이를 향해 인사를 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밝은 얼굴로 아이에게 손을 방방 흔든 김태형은 아이가 걸어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아이의 모습이 흐려져서야 몸을 돌렸다.
" 내가 애기 좋아하는 거 몰라서 그래? "
" 쟤도 어디 가야할 곳은 있을 거 아냐. "
" 그래도, 애기 엄마가 뭐라 그런 것도 아닌데. "
" 늦게 가면 오빠가 뭐라고 해. "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을 손에서 뺏긴 어린 아이처럼, 김태형은 울상을 지었다. 조금만 더 김태형을 자극했다가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이럴 땐 영락없는 어린 아이와 닮아있었다. 아이와의 시간을 방해받은 것이 그토록 울분이 터졌는지, 김태형은 마트로 향하는 내내 계속 말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걱정이 된다거나 그러진 않았다. 어쨌든 김태형이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는 오히려 더 편했으니까.
마트에 들어오자 김태형은 다시 밝은 모습을 되찾았다. 텐션이 업 되어 카트를 꺼내온 김태형이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주머니에서 김석진이 사올 거리를 써 놓은 메모지를 꺼내 눈으로 훑었다. 내가 가는 곳으로 카트를 밀며 따라온 김태형이 묵묵히 살 것만 담는 나에게 불만을 호소했다.
" 정말 사오라고 한 것만 사가게? "
" 당연한 거 아냐? "
" 센스가 없어, 사람이. "
" 뭐래. "
" 나 저거 먹고 싶단말야. "
" 네 돈으로 사, 그럼. "
" 지갑 안 들고 왔는데? "
" 그럼 그냥 닥쳐. "
" 아, 사줘! "
결론은 이거였다. 돈까스를 먹고싶다는 것. 시식을 하는 아주머니가 굽고 있는 돈까스를 애처롭게 바라보던 김태형이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나에게 애원했다. 사달라며 징징거리는 김태형을 애써 무시하고 사야할 것들만 정직하게 카트에 담았다. 카트를 다 채운 내가 가자며 김태형의 팔을 잡아당기자 김태형은 돈까스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는지 풀이 죽은 모습으로 내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는 시식을 하는 곳으로 가 아주머니에게 나를 째려보며 무어라 말을 하는 김태형에 결국 두손두발을 다 들고 카트를 밀었다.
" 어이구, 새댁. 남편이 먹고 싶다는데 좀 사주지. "
" 남편 아닌, "
" 그쵸, 이모. 너무하다니까, 정말. "
" 내가 이거 하나 더 붙여줄테니까, 사가서 남편한테 해줘, 응? "
" 이모도 그러시잖아. 빨리 카트에 담아. "
" 아, 진짜. "
김태형을 눈으로 흘긴 뒤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아주머니에게서 돈까스를 받아들었다. 이모, 이모거리며 친근하게 아주머니를 부르던 김태형이 마침내 카트에 돈까스를 담는 나를 보며 환히 웃음을 지었다. 새댁,하며 편한 얼굴로 내 손을 꼭 붙드신 아주머니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신혼 생활 열심히 하라며 응원을 해주셨다. 정말 그런 거 아닌데. 아까 전부터 다들 김태형과 내 사이를 오해하는 탓에 아주 죽을 맛이다. 이미 잔뜩 신이 난 김태형은 아주머니께 공손히 인사를 하고 먼저 카트를 끌고갔다. 마저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가벼운 발걸음의 김태형을 따라갔다.
김태형과 짐을 나눠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김태형은 마주치는 아이들에게 연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수줍게 같이 손을 흔들거나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뛰어가는 아이들을 보는 김태형의 얼굴은 흐뭇한 미소가 가득 물들어있었다. 그렇게 좋을까. 물끄러미 김태형을 올려다보다 고개를 숙였다. 김태형만 신이 난 길을 따라 걸어 집에 도착했다. 콧노래를 흥얼거리기까지 하며 식탁에 짐을 내려놓는 김태형과는 달리 내 얼굴에는 수심이 가득했다.
김석진은 왜 이렇게 늦게 왔냐며 툴툴거리기만 할 뿐, 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제가 필요한 것들을 꺼내 간 김석진의 다음 차례로, 김태형이 돈까스를 꺼내들더니 보물이라도 다루듯 소중히 제 품에 품고 가 냉동실에 넣어놓았다. 남은 것들을 치우는 것은 내 몫이었다. 장바구니와 남은 식료품들을 치운 뒤 싱크대 앞으로 향했다. 여전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고무장갑을 끼고, 물을 틀어 그릇을 닦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냥, 그러는 게 제일 편할 것 같았다.
" 정말 갈거야? "
" 아까 전엔 왜 안 가냐고 그러더니. 이제 가려니까 아쉽냐? "
"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 "
" 기집애, 말 서운하게 하기는. 아무튼, 연락 좀 하고. "
" 오빠가 할 소리는 아니지. 잘 가던지. "
현관문에 삐딱하게 기대 서 처음 왔던 때와는 다르게 가벼운 몸으로 돌아가는 김석진을 바라보았다. 경쾌한 소리가 나며 엘리베이터가 왔다는 것을 알렸다.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며 작별 인사를 하는 김석진에게 같이 손을 흔들어주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는 것을 끝까지 보다 집 안으로 들어왔다. 형님 가셨어? 소파에 앉아있다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며 묻는 김태형에게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말 밑반찬만 가득 만들고 떠나간 김석진 덕에 꽉꽉 채워진 냉장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 너 전화 와. "
" 누군데. "
" ... 민윤기. "
" 아아, 전화 줘. "
" 싫어. "
김태형의 말에 냉장고 문을 닫으며 터덜터덜 걸어갔다. 김태형의 손 안에 들려있는 핸드폰을 보고 손을 내밀자 도리질을 치며 싫다는 것을 온 몸으로 표현했다.
" 뭐하는거야. 내놔. "
" 오늘은 내가 네 남자친구잖아. "
" 그게 뭐. "
" 그러니까 이 정도는 내가 할 수 있는거지. 전화 받지마. "
" 내가 윤기 오빠랑 뭘한다고. "
" 그냥, 싫어. "
" 그런 게 어딨어. 빨리 줘. "
" 싫다니까. "
그 놈의 남자친구 타령. 고집을 피우며 끝내 핸드폰을 내놓지 않는 김태형이다. 나 좀 꺼내달라는 듯 웅웅대며 진동을 울리던 핸드폰이 잠잠해졌다 다시 울려대기 시작했다. 손을 뻗어 김태형에게서 핸드폰을 뺏으려 하자 소파에서 일어난 김태형이 제 손을 더 높이 뻗고는 나를 밀어냈다. 밀려난 내가 신경질을 내며 김태형에게 달려들었다. 그렇게 투닥거리다, 중심을 잃은 김태형이 소파 위로 넘어졌다. 김태형에게 가까이 몸을 붙이고 핸드폰을 뺏으려 안간힘을 쓰던 나까지 덤으로 같이 쓰러졌고.
자세가 참으로 묘해졌다. 김태형의 위로 쓰러진 탓에 김태형은 소파에 널부러져 있고, 나는 그 위에서 김태형의 어깨를 꽉 잡은 채 가슴팍에 기대있었다. 멀뚱히 김태형을 바라보다 뒤늦게 놀라 일어나려하는 내 어깨를 제 손으로 누른 김태형이 나를 그대로 끌어안았다. 이게 무슨, 내가 말을 하기도 전에 김태형이 내 입을 막았다.
" 잠깐만 이러고 있자. "
" ... ... "
" 안아본 지 너무 오래됐어. "
" ... ... "
" 오늘은 그래도 되는 거잖아. "
처연한 목소리로 말은 이은 김태형이 동그랗게 떠진 눈으로 자신을 보고있는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그 눈에 얼핏 물기가 묻어있는 것 같아 그저 입을 다물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김태형은 오늘도, 태도를 확실하게 정하지 못한 채 그렇게 나를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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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뽀베입니다! 느에....일주일만에 와서 죄송해여ㅠㅠㅠㅠㅠㅠㅠㅠ 아니 제가...쓰차에 걸려가지구요....나새끼....하... 여러분은 절대 저처럼 더럽게 살지 마세여... 오늘은 둘이서 분위기가 참 묘하져? 다음편에서는 윤기와 더 묘하게 될 겁니다 여러분! 늦게 와서 많이 미안하니까 조각글들도 몇 개 놓고 갈게요 8ㅅ8 그럼 5편에서 만납시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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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 침침, 은하수, 카누, 눈부신, 민윤기, 호독, 윤기야 나랑 살자, 비비빅, 춘심이, 슙디, 민빠답없, 인사이드아웃, 시레, 재연, 양요섭, 라 현, 울컥 암호닉은 항상 받고 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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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흑백 이번 시즌은 왤케 조용하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