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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인격 공(자신의 정체성을 모름, 두 인격이 아예 다름)x 정신과 의사 수



W. 꼬비




 어떤새끼가 차를 이따위로 세워놨어? 아침부터 저기압인 명수는 차고 앞을 막아선 차를 보고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이른 새벽부터 출근해야하는 오늘 같은 날, 이런 경우는 정말 난감했다. 다들 잘 시간에 차 주인에게 전화해서 빼달라고 하기도 또 거기에 화를 내기도, 오히려 왜 이른시간부터 잠을 깨우냐는 말을 듣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걸 핑계로 출근하기 싫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출근은 해야지 하며 예의 없는 차주인의 번호를 따라 눌렀다. 여보세요. 죄송합니다만 차 좀 빼주시겠어요? 출근을 해야해서요.

예의 없는 주차실력과는 다르게 점잖은 저음의 남자는 앞집에서 뛰어나왔다. 급하게 가디건을 걸치며 차키를 들고 연신 죄송하다고 하며 차를 빼주는 그를 향해 명수는 아, 예. 그럼 들어가세요. 하고 서둘러 병원으로 향했다. 시내 대학병원에서 정신과 전문의로 일하는 명수는 앞집사람따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하루를 꼬박 시달린 명수는 퇴근 후 집에 돌아오자마자 얼굴을 구겼다. 씨발. 육성으로 욕이 터져나왔다. 하나하나 알려줘야해? 또 입구를 막고 있는 그 싸가지 없는 차를 한참 노려보다 다시 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봐요! 차 이따위로 댈거에요? 잠시만요. 수화기에선 그 네 글자가 들리고 통화 종료음이 울렸다.

"에? 야! 뭐야, 끊었어?"
"안녕하세요."
"어우씨! 아, 왜 불쑥불쑥 나타나고 그래요!"

죄송합니다아- 말끝을 길게 늘어뜨린 남자는 명수에게 반가운 투로 말했다. 엊그제 이사 와서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는데 아침에 너무 급히 가시길래... 일부러 한번 더 막았어요. 열이 오를대로 오른 명수를 두고 장난끼 있는 눈웃음을 지으며 남자는 친해지고 싶어서요 라는 말을 덧붙였다. 저는 남우현이라고 합니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명수는 언제 화를 냈냐는 듯, 그러나 조금은 뚱한 얼굴로 김명수에요 했다. 주차를 마치고 차에서 내린 명수에게 우현이 다가와 관심을 표명했다.

"무슨 일 하시길래 그 시간에 출근을 하세요?"
"의사요."
"어려보이는데, 인턴? 레지?"
"전문의거든요."

명수의 상한 기분은 업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그래서 자꾸만 투덜대는 명수의 말투에 우현은 웃음이 났다. 몇 살이신데요? 자꾸만 자기에 대해 묻는 우현을 명수는 이 남자가 나한테 왜 이러나 뚫어져라 쳐다봤다. 지금 호구조사하세요? 아뇨, 궁금하니까요. 서른둘 입니다. 그러는 그쪽은 무슨 일 하세요? 몇 살인데요? 우현은 여전히 젊은 의사를 귀엽게 쳐다보며 말했다.

"저는 백순데요?"
"웃기지마요. 저 집이 좀 비싸다고 무슨 백수가 저런 집에 살아요?"

우현이 사는 집은 언덕 제일 위에 있어 전망이 좋고 동네에서 꽤나 큰 평수에 속해 값이 꽤 높기로 유명했다. 집에 오래있지 않는 특성상 잘 수만 있으면 된다고 가장 싼 빌라에 사는 명수는 의사인 저보다 좋은 집에 사는 백수를 찔러대고 싶었다. 뭐, 돈이 많은가 보죠. 시큰둥한 대답에 흥미를 잃은 명수는 이만 들어갈게요, 안녕히 가세요. 하고 돌아섰다.



다음날 명수는 점심을 막 먹고 진료시간에 맞춰 진료실에 앉아 있었다. 환자 차트가 뜨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환자는 앞집 차 주인 우현이였다. 정신과의사였어요? 하는 우현의 어리숙한 말투에서 당황스러움이 묻어났다. 우현은 명수 맞은편에 자리잡고 한참 뜸을 들였다. 실어증이네요. 원래 환자의 말을 들어줘야 하는 직업이지만서도 너무 오래 시간을 끈다 싶었다. 저 다중인격인거 같아요. 머뭇거렸지만 단호한 그 말투에 명수는 그의 말을 더 들으려고 그의 눈을 바라봤다. 신뢰를 주기위한 행동이였다.

"가끔 짧으면 몇시간에서 길면 몇일씩까지 기억이 없는데 그 사이에 저를 만났던 사람들이 있어요."
"우현씨가 말하는 다중인격이라는건 해리성 정체장애라고 해요. 병원에 가끔 그렇다고 주장해서 오시는 분들이 많은데 이게 흔해보여도 국내 3~4%밖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요. 정신과 말고 신경외과 쪽에서는 검사 받아본 적 없어요?"
"네, 아직."
"그렇게 먼저 단정하지말고 기억을 저장하는 부분에 있어서 문제가 있을 수 도 있으니까 꼭 MRI찍어보시구요. 모든 병의 원인은 스트레스가 크니까 스트레스 받는 일 줄이시구요. 무슨 문제있으면 또 차고 앞에 차 세워놔요."

명수의 말장난에도 나중에 봐요 하고 힘없이 문을 나서는 우현이 보이지 않고 나서도 명수는 한참 문을 쳐다보고 있었다. 몇번이나 만났다고 늘 붙임성 있고 밝았던 모습과 다른 우현의 모습이 괜시리 마음에 걸렸다. 그리고 차트로 눈을 돌렸다. 뭐야 동갑이야? 완전 노안인데?

다음날도 출근하는 아침. 길에서 집에 들어가는 우현을 본 명수는 반가운 마음에 먼저 우현씨! 하고 인사를 건냈다. 우현은 후드모자를 눌러쓰고 알수없는 눈빛으로 명수를 훑고 집으로 들어갔다. 뭐야, 저 반응은? 나한테 삐진거지? 거 사람 참 보기보다 쪼잔하네. 하며 차에 올랐다. 그리고 몇일 우현을 보지 못한게 내심 명수는 서운해졌다. 장난스레 제 차고를 막지도 않았고 이른시간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는 명수와 만날만한 접점이 없었다. 



병원 오프 날이면 늦게까지 자다 일어나는 명수는 오후 두시가 좀 넘어서야 허기진 배를 껴안고 잠에서 깨어났다. 워낙 집에서 밥 먹는 횟수가 적다보니 천장을 몇 번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하다 지갑을 꺼냈다. 라면이나 사러가야지. 1층 문을 열자마자 반대편에서 걸어오는 쪼잔이를 보고 신나 인사를 할 뻔한 명수는 꽤 뒤끝이 있었다. 제 자존심을 굽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갈꺼야. 쪼잔이. 뚱한 표정으로 바닥만보며 걷는 명수를 잡은 건 반가움이 가득한 우현의 목소리였다. 명수씨! 네, 네? 다짐과는 다르게 튀어나간 대답에 명수는 그래도 내심 기분이 좋았다.

"이 시간에 집에 있네요?"
"오늘 오프라서요."
"아아- 근데 어디가요?"
"요 아래 슈퍼에요. 라면 좀 사러."
"밥 안먹었어요? 점심 지났는데?"
"이제 일어났거든요."

어쩐지 누군지 못 알아볼 뻔했네. 엄청 부었네요, 명수씨. 헤집어진 머리를 가리려 쓴 후드에 가려진 명수를 우현이 놀렸다. 밥 안먹었으면 들어와요. 밥 혼자먹는거 외롭잖아.

명수는 아무리 좋은 집이라도 남자 혼자 사는 집이라면 단조롭고 홀애비 냄새를 기대했다. 그러나 현관부터 거실, 주방까지 화려한 색의 벽지에 큰 주방을 보고 다물어지지 않는 입을 애써 다물고 아무렇지 않은 척 눈으로 스캔했다. 뭐해요? 앉아요. 쭈뼛쭈뼛 거실 소파에 앉았다. 한쪽 벽을 가득 매운 피규어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명수를 바라보다 주방으로 향했다. 서른두살이나 먹고 그렇게 귀여워도 되나? 그리고 피규어에 정신이 팔린 명수에게 소리쳤다. 명수씨! 한식, 콜? 네...

명수는 이 좋은 집에 돈도 많고 요리도 잘 하는 비현실적인 남우현, 대체 정체가 뭔지 알 수없는 백수가 차린 밥상에 또 한 번 넋을 놓았다. 안먹어요? 명수가 숟가락 들기만을 기다리던 우현이 말했다. 명수가 음식을 입에 넣기 무섭게 우현은 맛있냐고 대답을 닦달했다. 백수라더니 요리사였어요? 우현은 우쭐한 표정으로 아닌데요? 했다. 형이 요리사에요. 곁눈질로 좀 배웠죠, 뭐. 우현은 어딘가 모를 씁쓸한 웃음을 머금고 국을 떴다. 뭔지 모를 어색함에 명수는 밥을 깨작거리다가 말했다. 우리 동갑이던데. 알아요. 왜 말안했어요? 제가 말 안했던가요? 알게모르게 약을 올리는 우현을 한번 째려보다가 말했다. 말놔요, 우리. 그래요. 말놔요. 그래요. 야. 왜. 

"이씨- 쪼잔이."
"뭐? 쪼잔이?"
"약도 처방안해줬다고 삐져서 모르는 척 할땐 언제고 이렇게 말을 잘하실까."
"내가 언제요?"
"그저께요."

그런 적 없어. 명수는 투덜대던 말을 멈췄다. 내가 이상하다고 했잖아. 단호한 그 말에 명수는 이웃집 김명수가 아닌 정신과 의사 김명수로 돌아가 우현의 눈을 진지하게 바라봤다. 그날 니가 본 나는 내가 아니야.

집에서 좀 겉돌았어. 어렸을때부터 부모가 형밖에 몰라서. 그래, 요리사 형. 부모님은 날 무시하고 나는 형의 울타리에서만 컸어. 형이 아무리 나를 예뻐해주고 챙긴들 채워질 수가 없었지. 그래서 소심한 나랑 제일 친했던 친구가 고등학교 때 죽었는데. 지금은 아니라는 걸 알지만 그땐 죄책감이 들었어. 그땐 몰랐는데, 어느 순간부터 자고 일어났을때 기억이 비는 때가 생겨서, 나도 처음에는 뇌에 문제가 생겼나보다 나도 이제 죽는구나했는데 그 존재에 대해 알게됬어. 그 다른 나랑 잠깐 대화를 한 적이 있는데 그냥 서로의 존재를 알게된게 다였어. 십년 넘게, 왜? 병원에 안갔어? 다른 병원에도 가봤는데 너랑 똑같았어. 이제야 정상적이게 살고 싶어졌어. 그 다른 내가 나를 지배하는 시간이 길어지고있어. 

미안해. 입원치료 받아볼래, 우현씨?



우현이 입원한지 벌써 이틀이 지났다. 우현은 별 다른 불편함없이 지내고 있었고 우현의 다른 자아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던 우현이 평소와 다른 행동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해가 질 무렵이였다. 선생님, 남우현 환자가 좀 달라졌어요. 와서 보셔야 할거같아요. 명수가 그의 병실에 갔을 때 그는 확실히 명수가 알던 우현이 아니였다. 처음 보는 환경에 낯설어했고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우현씨? 운을 띄운 명수와 눈이 마주친 우현은 경직했다. 우현이... 그 목소리마저 우현과 달랐다. 

"저는 김명수에요."
"봤잖아, 그때."
"그래요. 그때 만났었죠, 우리. 저는 제 소개를 했는데... 당신은 남우현이 맞나요?"
"우현이 아니야... 친구야. 나는 성열이야... 이성열이야."



명수는 생각보다 충격이 컸다. 그는 전혀 다른 모습이였다. 우현을 다 알고있다고 생각 해본적은 없었지만 낯설었다. 해리성 정체장애. 정신과 공부 중 논문이나 수업들로 들어 본 적은 있었지만 처음 마주한 상황에 혼란스러웠다. 더불어 마음마저 혼란스러웠다. 이웃끼리 당연한걸까. 명수가 아는 이런 감정은 우현과 자신 사이에서 허락되선 안될것이라고 생각했다. 머리를 헤집으며 책상위로 업드린 명수는 오랫동안 일어나지 않았다.

극도의 불안증세를 보이는 우현의 다른자아, 성열이 나타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우현의 체력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명수는 우현을 퇴원시키기로 하고 감시를 핑계로 휴가를 쓰고 우현의 집에서 살다시피 하기로 했다. 

집에 돌아온 우현은 많이 지쳤던걸까 이틀을 꼬박 자고 일어났다. 걱정스러워하는 명수를 의식했는지 우현은 눈을 뜨자마자 배고프다며 주방으로 갔다. 그리고 이틀동안 명수가 먹었을 빈 컵라면 용기들을 보고 명수를 나무랬다. 그리고 옆 눈짓으로 눈치를 보며 말했다. 먹고싶은거 없어? 김치찌개.


둘은 도저히 식사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명수는 우현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고 우현은 명수가 저를 걱정한다고 생각해 밥을 한가득씩 떠먹었다. 그러다 체해요. 말은 먼저 놓자고 하곤 자꾸만 존댓말을 쓰며 명수가 말했다. 그럼 그만 좀 보던가. 그제서야 제가 우현을 넋놓고 보고있었다는 것을 깨닫고 밥그릇에 고개를 박았다. 명수의 귀가 발갛게 달아올랐다. 

밥을 다 먹고 우현과 명수는 TV 앞에 자리잡았다. 서로 대화는 없었지만 어색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우현씨. 응. 우현아. 응. 명수는 가끔 우현인지 성열인지 확인했다. 한참을 그러다 잠든 명수를 소파에 눕히고 우현이 바닥으로 내려가 앉았다. 명수를 바라보는 우현의 눈빛에 애정이 묻어났다. 그렇게 한참이나 그의 모습을 하나하나 눈에 박아넣은 우현은 명수를 침실에 들어다 놓고 몰래 콧등에 입술을 맞췄다.



명수는 해가 중천에 떠서도 일어날 줄을 몰랐다. 아침을 상을 차리고 그가 깨기만을 기다리다 치웠던 우현이 점심은 제 때 먹이고 말겠다며 명수를 깨웠다. 명수야아- 일어나야지, 학교가야지. 꼭 제 형이 저에게 그랬듯, 형이 하던 말을 따라했다. 잠에 취해 일어나기 싫어하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올리고 낑낑거리던 명수가 벌떡 일어났다. 이씨! 망했어! 그러곤 화장실로 달려갔다. 명수는 자고 일어나면 퉁퉁 붓는 얼굴이 컴플렉스였는데 그런 모습을 우현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우현은 깜짝 놀라 쫓아가다 안쪽에서 들려오는 물소리에 안심했다. 빨리나와- 밥 먹게. 그리고 그 문 너머로 명수는 발로 바닥을 차며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씨, 왜 자꾸 밥타령이야.

우현은 명수를 챙기고 싶고 건들고 싶었다. 명수도 그게 싫진 않았지만 솟아나는 소녀감성에 제 감정을 숨기려 투덜거렸다. 식탁 위 언쟁은 유치원생 꼬마아이들 수준이였지만 둘은 기분이 나쁘지도 또 싫지도 않았다.  


서른 넘은 성인 남성 둘이 집에서 할 만한 일은 거의 없었다. 명수는 바쁜 병원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오래된 영화나 만화책을 보는 거 외에 노는 법을 잘 모르는게 맞았다. 우현씨. 너네 집 완전 심심해. 심심해. 심심해. 심심해. 명수는 거실에 누워 놀아달라고 보채는 조카처럼 말했다. 뭐 하고싶은거 있어? 

결국 둘은 명수가 집에 박아둔 DVD 여러편을 들고와 골라 틀었다. 처음 튼 영화는 상영이 가능했을까 싶을 정도의 고어물이였다. 우현은 보는 내내 질겁을하며 보기 싫은 티를 냈지만 명수는 그런 우현은 안중에도 없는 듯 영화에 집중했다. 우현은 영화보기를 포기하고 명수에게 집중했다. 아주 잘생겼다고 하기에는 예쁜, 예쁘다고 하기에는 남성적인 묘한 얼굴이였다. 우현이 명수를 처음 본 날은 명수가 차를 빼 달라고 하기 한참 전이였다. 우현은 집을 보러왔었고 정장을 차려입고 빌라에서 나오는 명수를 보았었다. 사실 남자 혼자 사는 집이 이렇게 클 이유는 없었지만 우현이 이 집을 산 이유는 그 날 봤던 명수가 자꾸만 보고 싶어서였다. 남자를 자꾸만 보고 싶다는게 뭘까 생각하던 우현은 깊게 생각할 필요없이 단순하게 생각하면 된다고 이 집을 샀다.

해가 넘어가고 세번째 영화를 보고있던 중이였다. 진한 정사씬이 나오려하자 명수가 우현에게 눈을 돌렸다. 우현은 당황스러워하다 명수와 눈이 마주쳤다. TV스크린으로는 낯뜨거운 정사장면이 연출되고 있는데 우연히 마주친 둘은 서로에 집중한 듯 보였다. 꽤 오래 이어지던 정적을 깬 건 명수였다. 뭘 봐. 우현은 대답없이 명수를 바라봤다. 우현은 확신했다. 명수가 자신과 같은 느낌을 갖고 있다고 확신했다. 뭘 보냐는 명수의 입술에 대답대신 제 입술을 가져다댔다. 놀란 명수는 천천히 물러나는 우현의 눈을 바라보다 그에 이끌리듯 다가가 다시 우현에게 키스를 했다. 

서로를 탐한 우현과 명수는 탐하던 것을 갖게 되었다. 긴 키스를 중단하고 한 뼘도 안되는 거리에서 우현이 먼저 고백했다. 좋아해. 그 세 글자가 명수의 마음을 흔들었다. 명수는 바람 새는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한참 우현을 바라봤고 우현은 명수를 기다렸다. 그리고 또 한 번 진한 키스를 나눴다.



잠결에 명수는 옆에 인기척을 느끼고 힘들게 눈을 떴다. 우현아. 대답이 없었다. 분명 저를 내려다보고 있는 우현을 갈라지는 목소리로 다시 불렀다. 우현아. 우현이... 아니라고 했잖아. 그게 무슨 소리...! 좀처럼 잠을 이기기 힘든 명수가 화들짝 놀라며 잠에서 깼다. 성열씨? 그는 병원에서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눈을 마주치는 것을 피하면서도 말없이 명수를 내려다 봤다. 남우현이랑 잤어? 그리고 초조해 하다 말했다. 좋아해. 그 말을 한 성열은 도망치듯 침실에서 나갔다. 명수가 보는 성열에게는 소심한 면이 있었다. 성열의 마지막 말을 곱씹기보다 의사의 정신으로 돌아간 명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우현은 돌아왔다. 그리고 명수는 진지하게 너의 다른 자아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이성열이라는 이름. 알아?"
"이성열?"
"당신 그 다른 자아가 자신을 이성열이라고 말하고 있어."

성열은 우현이 전에 말한 죽은 친구였다. 명수는 고민에 빠졌다. 죽은 친구의 모습을 한 우현의 다른 자아. 대화를 꺼리고 도망치듯 사라지는 모습에 더 파악할 길이 없었다. 그리고 성열과 우현 중 어느 쪽이 원래 주체적 자아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휴가를 삼일쯤 남겼을 때 우현과 명수는 몸을 섞었다. 우현은 한참이나 망설였던 것에 명수가 달라들었다. 첫 관계는 조심스러움보다 조급한게 맞았다. 우현은 최대한 명수를 배려했고 행위는 호기심에 보았던 야한 동영상만큼이나 중독되었고 그보다 아름다웠다. 기절하듯 잠든 명수는 꿈을 꿨다. 빛이 가득한 곳이었다. 그곳에서 명수는 어느 곳으로 발을 떼야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양쪽에서 손이 내밀어졌고 길이 보이는 편의 손을 잡고 걷던 명수가 벼랑에서 떨어지듯 어두운 곳으로 끌려갔다. 잠에서 깬 명수는 저를 내려다 보고있는 우현에 놀랐다. 우현이 아니였다.

"왜... 내 말은 안들어줘..."
"성열씨."
"내가 좋아한다고 했잖아."

그의 말에 힘이 들어갔다. 그리고 명수를 태울 듯이 바라보았다. 성열의 눈에는 다른 남자와 몸을 섞은 명수가 우현을 무시하던 부모님의 모습과 겹쳤다. 그리고 폭발하듯 명수를 때렸다. 침대에서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 명수는 아려오는 허리와 골반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 통증이 느껴지지 않을 때 쯤 명수가 고개를 들어 성열을 보았고 성열은 겁에 질려 바닥에 쓰러진 명수를 외면했다. 

그는 이전처럼 금방 우현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성열이 계속 남아 있으려 하는 것 같았다. 명수를 때린 성열은 또 도망치듯 집에서 나갔다 해가 지고나서 돌아왔다. 묘하게 다른 눈빛을 느낀 명수가 우현이냐고 물었고 성열은 그런 명수를 강제로 안으려고 했다. 소심한 성열은 명수가 제 마음을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생각해 억눌려있던 감정과 쌓였던 화를 명수에게 풀려고 했다. 명수는 이틀동안 억지로 잠을 잤다. 눈을 뜨면 저를 가만두지 않는 성열에 깨면 다시 잠들려했고 그렇게 우현이 명수의 이름을 부를때 까지 깨지 않으려고 했다.

우현이 다시 돌아왔을 때 우현은 명수에게 다가가지 않으려 했다. 제 의지가 아니더라도 저에게 맞아 피딱지가 앉은 명수를 보면 미안하고 화가 났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무서웠다. 우현은 명수에게 병원으로 돌아가자고 보챘다. 명수는 우현에게 안겨 울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제가 우현을 안아 달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중인격 치료는 쉽지 않다. 주체적 자아와 분리된 자아의 의지의 차이 때문에 길면 10년 이상 치료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명수는 의학계에서는 인정하지 않지만 우현에게 입원보다 최면치료를 권했다. 

최면치료를 한 우현은 치료 중 했던 말들을 기억하지 못했다. 옆에서 최면과정을 지켜본 명수는 자아를 통합시키는데 쉽게 찬성하지 못했다.

남우현씨. 자신을 힘들게 한 기억으로 돌아갑니다. 무엇이 보여요? 

우현은 어둠속에 뭐든 잘하는 형과 그를 칭찬하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았다. 우현의 얼굴이 자꾸만 일그러졌다. 나는 왜 여기있는거야. 왜 태어난거야. 우현이 32년을 살아오며 저주하듯 읊조린 말이었다. 중학생이 된 우현의 앞에 하얀 남자아이가 다가와 저를 멀뚱멀뚱 바라봤다. 몇일 후 그 애는 우현에게 먼저 말을 했다. 야, 너는 나랑 친해지기 싫어? 왜 친구하자고 안해? 성열이었다. 성열은 자기에게 말을 걸지 않는 우현에게 오기가 들어 쫓아다녔다. 그렇게 가까워져 자신의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겨우 생긴 우현은 웃음을 짓기 시작했다. 이제 막 웃음을 띈 얼굴에 웃음기가 가시고 괴로움만 가득해졌다. 성열이 죽었다. 우현은 성열을 알고나서 제 말을 들어주는 성열에게 기쁨, 슬픔, 고통을 다 토로했지만 성열은 단 한번도 그런적이 없었다. 우현은 명문대를 출신인 성열의 부모님과 형이 성열에게 그 길을 따르기를 강요하고 있었다는 것을 단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마지막 전화통화에서도 밝았던 성열의 목소리는 내일 떡볶이 먹으러가자는 말이 다였다. 성열은 저에게 제 고통을 얼마나 말하고 싶었을까. 우현은 자신의 고통을 공감해주길 바라며 성열의 고통을 알아차리지 못해 자신이 성열을 죽였다는 죄책감을 가졌다. 죽고싶었다. 

명수는 혼란스러웠다. 자신을 사랑하는 자신이 사랑하는 밝은 모습의 우현과 자신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기대할 수 없는 아픔만 가지고 있는 또 다른 우현, 성열. 둘 중 어느 자아를 골라내느냐는 어렵지 않았지만 원래의 자아가 아닌 분리된 자아를 선택하는 것이 의사로서의 양심이 걸렸다. 자신이 우현이라고 주장하는 자신이 사랑하는 자아는 주체적 자아가 아니었다. 부모님의 무시에 소심해진, 친구의 죽음으로 그 죄책감으로 떳떳할 수없는 성열이 원래 우현의 자아였다. 성열이라고 주장하는 그는 성열이라는 이름으로, 그 가면 뒤에 숨으려는 우현의 아픔들이었다.

명수는 자신이 사랑하는 우현을 선택했다. 이기적인 선택이라면 그럴수도 있었지만 더 이상 아픔속에 사는 우현을 자신이 볼 수 없었다. 



우현아. 니가 진짜가 아니라는걸 알지만, 그렇다고 네가 가짜는 아니야. 너는 밝아지고 싶었던거야. 그래서 내가 내 멋대로 너의 아픔들을 지우려고 해.

성열아, 우현아. 내가 니가 아닌 우현이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너를 행복하게하기 위함이야.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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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급하게 끝낸거 같다;;;;;;
뚜기야 수고가 많아ㅜㅜ 이제 자야지....5시.....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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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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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대박 ㅎ헐 진짜 와 어떡해ㅠ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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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댓글 감사해요ㅠㅠ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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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2
아이고 아니예요ㅠㅠㅠㅠㅠ진짜 너무 글 어엉엉 더 없나요 슬픔 눙물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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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원래 단편으로 쓰는거라 더는 없어요ㅠ소재받고쓰는데 장편구성이 나와서 글이 너무급하게끝낸건아닌가 저도 쫌 아쉽네요ㅎ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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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3
급한느낌은 전혀 없었어요!!!제 사심 헤헿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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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3에게
ㅋㅋㅋㅋ고맙습니당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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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4
프로젝트 진행 뚜기입니다. 확인했어요~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12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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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넹 뚜기 ㅠㅠ 정말 수고가 많아요ㅠㅠ 화이팅!
12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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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욱] 아저씨! 나 좀 봐요! -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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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니] 내 최애가 결혼 상대? 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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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훈] 아저씨 나 좋아해요? 번외편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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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타엑스/기현] 내 남자친구는 아이돌 #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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