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bye Summer
해가 뉘엿뉘엿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걸음은 오늘따라 더디게 느껴졌다. 쉴새없이 쏟아지던 과제, 선배들의 눈치. 오늘 하루도 힘들었다고 생각했다. 뭐, 이 나이때가 다 그렇지 라는 어른들의 말은 하나도. 정말 하나도.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걸 알아도 나는 힘든걸. 오늘따라 맥주가 너무도 마시고 싶었다. 집으로 가던 발걸음을 돌려 편의점으로 향했다. 어서오세요. 알바생의 목소리, 시원한 에어컨 바람. 기분좋게 웃으며 맥주 두어캔을 들고 걸어와 카운터 위에 올려두자 알바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술도 못하면서, 혼자 이거 다 마시려고?"
"..네?"
놀라서 고개를 들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너가 왜.. 끝맺지 못한 문장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웃고있는 눈꼬리 시원한 입매 그리고 여전히 낮은 목소리까지. 2년 전과 똑같았다. 어버버거리는 사이 맥주캔을 계산한 너는 내게 여전히 웃음으로 말을 이었다. 3600원 입니다. 어,어.. 고개를 끄덕이며 돈을 꺼내 계산을 하고 캔을 향해 손을 뻗자 너는 내게 말해왔다. 나랑, 한 잔 할래?
얼떨결에 너와 같이 벤치에 앉아 맥주를 조금씩 들이켰다. 알바는? 하고 묻는 내 물음에 넌 내 타임 끝났어 라면서 옷을 벗었고 때마침 너와 비슷한 남자가 들어와 인사했지. 아무튼, 한참을 말없이 하늘을 올려다봤을까 너가 먼저 입을 열어 내게 물었다. 잘지냈어? 니 물음에 아무말 못하고 캔을 만지작거렸다. 잘지낸걸까. 음, 잘지냈나. 허탈한 웃음이 퍼지자 조금은 진지하게 나를 바라보며 너는 다시 한번 물었다
"무슨일, 있어?"
"...."
"칠봉이"
"그냥 힘드네"
졸업도 얼마 안남았는데, 취업은 걱정이고. 이리저리. 그냥. 뚝뚝 끊기는 내말을 듣던 너는 가만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바람에 날리는 머리를 정리해주고 그렇게 가만히 내 머릴 쓰다듬다 시선을 돌린 넌 말을 이었다. 너, 기억나? 옛날에 니가 나한테 했던 말. 고개를 저으며 기억안난다 대답하자 또 피실 웃음을 터뜨린 너는 별 하나를 가리켰다. 저 별처럼 밝은 사람이 될거라고 그랬잖아. 내가 그랬나. 생각도 나지 않을만큼 어렸을 적 얘기 같아서 힘없이 웃었다.
"그게, 언제적 얘긴데"
"난 아직도 기억해"
"...."
"니가 나한테 했던 모든 말. 너의 꿈도"
"...."
"언론정보학과, 어렵게 간거잖아 너"
너의 말에 잊고있던 기억이 하나 둘 떠올랐다. 그러게 여기 나 되게 어렵게 왔는데. 부모님 반대를 꺾으려고 그렇게 노력해서, 어렵게 왔는데. 난 그 반대를 이겨낼때랑 다르게 너무 약해져버렸어. 아주 작은 일에도 무너지고 싶을만큼. 너무도 약해졌어. 한숨이 흘러나왔다. 코끝이 시큰거리는게 자꾸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맥주는 어느새 반이나 비워져 가볍게 손에서 흔들렸고 한참을 또 말없이 앉아있던 우리 둘 사이로 바람이 스쳐갔다.
"봉이야"
"...."
"아직, 시간은 많아"
너는 아직 늦지 않았어, 뭐든지 할 수 있을거야 넌. 그 한마디에 참고있던 눈물이 터졌다. 언제나처럼 따스하게 나를 안아주는 너의 손에 더 아이처럼 울어버렸다. 그동안 어디에도 기대지 못하고 비틀거리던 시간이. 니가 안아주었다고 다 괜찮아지는 것만 같았다. 멀리 떠나려는 생각도 했는데, 뭐가 이렇게 허전한가 했는데. 내 옆에 니가 없어서였나봐 승철아. 내 말에 너는 피실 웃으며 내 등을 토닥였다. 나도, 허전하더라 우리 못난이 없으니까.
"승철아"
"응"
"....나는"
"...."
"그니까 나는"
겁이 났다, 이 말을 하고도 니가 내 옆에 있을까. 이 말을 하고도 니가 과연 날 안아줄까. 어쩌면 5년전부터 정해진 답을 나는 겁이 난다는 이유만으로 피하고 돌아왔는지 몰라. 말을 잇지 못하고 그저 입술을 잘근잘근 씹자 너는 날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말을 잇는다. 칠봉이. 응? 고갤 갸웃하고 너와 눈을 맞추면 너는 손을 들어 내 눈물을 닦아주고는 웃어보였다. 전처럼, 따뜻하게.
"나도 할말 있는데"
"...."
"생각해보니까, 그때 왜 안했는지 모르겠다"
"...뭘"
"좋아해"
입을 다물었다. 너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이 내 마음을 울리고 지나갔다. 장난인가 싶어서 너를 살짝 밀어내도 너는 나를 꽉 끌어안고 한번 더 말했다. 좋아해, 칠봉이. 몽글몽글한 기분에 눈물이 다시금 떨어졌다. 그래도, 웃음은 자꾸만 입가를 간지럽혔다. 울면서 웃어보이는 내 모습에 너는 피실 웃으며 내 머리를 헝클였고 다시금 귓가에 속삭였다. 너무 늦어버려서, 고민도 많이 했어. 미안해, 친구인줄만 알았는데. 아니였어 나한테 너는.
"최승철"
"응,봉이야"
"나도, 좋아해"
내 말에 너는 또 한 번 웃으며 내 눈가에 입을 맞추고 이마에 입을 맞추고 입에 입을 맞췄다.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너의 어깨를 툭 치자 너는 아 아프다. 하면서도 웃음을 터뜨렸고 나만 괜히 부끄러운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헛기침을 하며 남아있는 맥주를 한번에 입에 털어넣고 미간을 찌푸리자 손가락으로 이마를 꾹꾹 누른 너는 다시금 고개를 돌려 입을 맞췄다. 아까보단 조금 길게.
"사귀자고 하지도 않았는데 이러기야?"
"푸흐, 사귈까?"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 당연하지"
"너답다 진짜"
환하게 웃는 너의 미소에 나도 같이 환하게 웃었다. 좋아한다는 말을 계속해서 내게 해주면서 나의 손을 꽉 마주잡는 너를 나도 많이 좋아했다. 아니 좋아한다.
여름은 끝나가지만, 가을이 찾아올테고. 아픔은 이어지지만, 너가 내 옆에 있을테니까.
이번 여름도, 아니, 곧 찾아올 내 가을도 안녕.
이성픽은 처음..이라...어색..할지도..모르지만...예쁘게..봐주세요...(하트) 내 님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