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그리고 그 뒤로 처음 내가 바라던 것과는 전혀 반대로.
"어머! 김서방, 안녕하세요!"
"아, 여사님. 어디 가세요?"
"네! 저희 아들이랑 장보러가요, 호호! 야, 남우현. 인사 해야지."
"…아, 안녕하세요."
우리 김여사랑 옆집 아저씨는 친해졌다. 그것도 엄청. 내가 보기엔 그렇다. 우리 김여사는 아저씨가 무심하게 나에게 건넨 크리스피 이후로 아저씨와 폭풍 친목을 다졌다. 방금 한 반찬 셔틀은 기본이고, 장마철 부침개도 우리 가족들보다 옆집이 더 먼저 맛봤을 거다. 아무튼 그럴 때마다 나는 정말 고역이었다. 기, 김여사. 아, 안 가면 안 돼? 라고 물어봤다가 등짝 한 대 맞고 접시에 뜨끈뜨끈한 부침개 두어 장을 올려놓고 옆집 초인종을 누르면, 누구세요. 하는 아저씨의 목소리에 긴장을 했다. 저, 저 옆집 인데… 요까지 말하기 전에 문을 벌컥 열어 놀란 것도 여러 번. 아저씨랑 눈 마주치고 쫀 것도 여러 번. 그래서 빨리 집에 가려고 하는 순간 아영이가 튀어나와서 강제로 같이 먹게 된 것도 여러 번. 그때마다 진짜 빨리 나가고 싶었지만, 나한테 오늘 유치원에서여! 하며 얘기를 시작하는 아영이 덕분에 강제 착석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를 쳐다보는 아저씨의 눈빛이 무, 무섭긴 하지만 어쩔 수 없지. 그렇게 끝까지 다 먹고 가면 아영이는 더 놀고 가면 안 되냐며 내 발목을 잡고, 나는 그럼 안 되는데에…. 하다가 왜요. 더 놀다 가시죠, 우현군. 하는 아저씨의 말에 발목을 잡혔다.
"우현군은 짐 들어주러 같이 가는 건가요?"
"그럼요! 아들 놈 이럴 때 쓰지 언제 쓰겠어요! 호호!"
…김여사, 내가 무슨 물건이야? 하는 생각을 하다 머쓱해져서 머리를 긁었다. 그런 나와 김여사를 보던 아저씨는 하하, 하며 웃었다. 그 웃음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화끈해졌다. 아이 진짜 김여사! 주책이야! 난 김여사의 팔을 빠르게 쳤다. 가자는 신호였는데 김여사가 왜 자꾸 팔을 쳐! 라고 해서 놀랐다. 눈을 크게 뜨고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데, 김여사가 그럼 김서방도 수고해요! 하며 넉살좋게 웃었다. 아, 끝났다. 하고 생각할 무렵 저기, 여사님. 하는 아저씨의 말에 김여사가 멈춰 섰다. 네? 하고 묻는 우리 김여사에게 아저씨가 물었다. 어려운 부탁 좀 드려도 되겠습니까?
"뭔데요?"
"…아, 그게."
아저씨가 아영이가 다니는 유치원에서 얼마 전에 방학식을 했습니다. 근데, 아영이를 마땅히 맡길 곳이 없어서… 까지 말한 순간, 김여사가 에이, 그게 뭘 어려운 부탁이에요! 하며 웃었다. 기, 김여사…?
"우리 우현이 안 그래도 할 일 없어서 맨날 탱자탱자 놀기만 하는데 잘됐네! 걱정하지 마요, 김서방!"
"정말 그래도 됩니까?"
"그럼!"
김여사?
"애가 요리도 꽤 하거든!"
"아, 여사님 덕분에 걱정 덜었네요. 하하."
"이게 무슨 큰 부탁이라고. 그럼 김서방 잘 갔다 와요~"
네, 여사님.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하며 돌아서는 아저씨의 모습을 김여사는 마치 자식 뒷모습 보듯 보고 있었다. 김여사, 어쩌려고 그래! 하며 소리 작은 아우성을 하니, 김여사는 뭐가? 하며 내 엉덩이를 팡팡 쳤다. 마트나 가자, 하는 김여사의 태평한 반응에 입을 우물거리면서 나도 김여사 뒤를 따라갔다. 김여사는 내 말엔 대답도 안 해주고 오늘 점심, 저녁 뭐 하지? 하며 식재료를 골랐다. 그럼 나는 카트에 담아서 열심히 끌고. 김여사! 어떻게 할 거냐니깐?! 하고 소리를 질렀더니 뭘 어떡해, 너 아영이랑 친하잖아! 하며 김여사가 우유 좀 사자, 하며 유제품이 있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난 그 뒤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나빠, 진짜.
그리고 지금.
"아영이 아이스크림 먹을래?"
"네에!"
여긴 우리 집이다. 그리고 내 옆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건 아영이. 지금 보고 있는 건 뽀로로. 나는 여기가 과연 우리 집인가, 아영이 집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아까는 내가 아영이를 좋아하긴 하지만 헝. 이건 아니잖아. 하는 생각에 시무룩해 있는데, 나무어빠. 하고 나를 부르는 아영이를 보면 그런 생각은 개뿔 다 날아가 버렸다. 아영이랑 같이 팥빙수 하나씩 잡고 떠먹다가, 우리 집엔 장난감도 없는 것 같아서 아영이한테 아영아, 너네 집 가자! 라고 했더니 아영이가 그래여. 하며 내 손목을 잡고 밖으로 질질 끈다. 그래서 잠시만, 잠시만! 신발 좀! 하고 신발을 대충 끼워 신고 김여사한테 김여사 다녀오께!! 하며 문 밖으로 나와 바로 옆집으로 들어갔다. 최근에 이 집에 자주 들어오긴 했어도 그건 보통 부엌 앞 식탁까지만 이었지 이 집 안을 자세히 본 적은 없는데, 내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자 아영이가 나무어빠! 한다.
"응?"
"저랑 엄마아빠 놀이해여!"
엄마아빠 놀이? 하니까 아영이가 응. 응! 하며 웃는다. 그래그래, 라고 하니 아영이가 자길 가르킨다 그러더니 나는 아빠고, 나무어빠는 애기해여! 했다.
"응?"
"나 아빠, 나무어빠는 애기."
"내가 애기라고?"
"넴."
보통 여자애들은 엄마역할 하려고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다 문득 떠올랐다. 난 아영이네 엄마를 한 번도 본적이 없다는 거. 항상 아저씨랑 아영이만 있는 모습만 봤지, 아영이네 엄마랑 아저씨랑 아영이랑 이렇게 셋이 있는 모습을 본적이 없다는 거. 왠지 아영이한테 미안한 마음이 들 때 쯤 아영이가 덤덤하게 말했다.
"저는 엄마가 뭘 해주는지 몰라여."
"……."
"엄마 아영이 어렸을 때 천국 여행 가따고 했는데 아직도 안와여."
아빠가 그랬는데. 하는 아영이의 말을 듣는 순간 숨이 턱 막혔다. 그래, 그랬구나. 아저씨 부인은 지금 안 계시는구나. 나도 모르게 말을 계속 안하고 있었나 보다. 아영이가 나무어빠 왜 가마니 있어여, 빨리 엄마아빠 놀이해여. 하는 아영이의 말에 어? 어! 어! 그래. 하며 웃었다. 새삼 아영이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아무리 김여사한테 싫다고 하지만 나한테 김여사가 없는 우리 집은 상상도 할 수가 없다. 매일매일 잔소리를 해도 김여사는 다 내 생각을 해서 하는 잔소리들이니까. 근데 그런 김여사가 없다면 나는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 갑자기 다가온 아영이 얼굴에 으억!! 하는 소리를 냈다. 뭐, 뭐야!! 하고 소리치니 아영이가 왜 그래여. 하며 팔짱을 낀다. 그러더니
"애기는 턱받이 해야해여."
"터, 턱받… 이?"
"넴."
한다. 이리 와봐여! 하는 아영이의 기에 눌려 얼굴을 바짝 대니, 흰색에 분홍 땡땡이가 잔뜩 박힌 스카프를 내 목에 맸다. 그리곤 더 숙여봐여! 하더니 내 앞머리도 하나로 모아서 묶는데, 이게 뭐야! 하고 소리치니 아, 가만히 좀 이써여! 하면서 내 이마를 콩콩 때린다. 아, 알았어어. 하면서 아영이한테 머리를 맡기니 아영이가 흐히, 하며 웃었다. 그래도 이렇게 좋아하는 거 보니까 뭔가 좋긴 하다, 하며 나도 같이 웃었는데. 나는 너무 늦게 깨달았다. 미운 5살이라고. 아영이의 체력이 얼마나 굉장한지.
"아영아…."
"효니 너! 숙제 해써, 안 해써! 그리구 아빠한테 아영이가 머야!! 아영이가!!"
"해써여… 엉엉!!"
왜 우러!! 숙제한 거나 가져와바!! 이게 뭐야! 아저씨가 평소에 이러셔? 하고 물어봤더니 아니란다. 그냥 하고싶었다며 계속 나를 들들 볶는 아영이를 보고 나는 확신했다. 진짜 무서운 아저씨였어. 아영이가 쌓인 게 얼마나 많았으면…! 하고 새삼 안쓰러운 생각이 들어서 아까 아영이가 자기 공책이라며 가져다준 에디가 그려져 있던 공책을 내밀며 여기써여. 하고 대답하니 아영이가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공책을 받아들었다. 그럼, 어디 한 번 보까. 하는데 이거 뭐 긴장감이 장난이 아니야. 헝헝. 아영이는 공책을 한 장 한 장 넘겨보더니 우혀니!! 하며 내 이름을 불렀다. 왜여, 아빠. 하고 대답하니 아영이가 그 쪼그만 손을 들어 내 머리에 올려놓았다. 그러더니 앞뒤로 슥슥 쓸면서 밝게 웃었다.
"잘해써!!"
나는 이 칭찬에 좋아해야 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고마워여! 하고 대답하니 아영이가 꺄르르 웃는다. 아영이 웃는 거 보니까 기분 좋네.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이 네버엔딩 엄마아빠 놀이에 점점 겁이 나 시계를 봤다. 어? 벌써 6시 반이다. 나는 또 말을 시작할 것 같은 아영이에게 아영아 너 배 안고파? 하고 물었다. 그러니 아영이가 몰라여! 하고 대답하는데 어디선가 꼬르륵 하는 소리가 났다. 잉? 뭐지? 하는 생각에 내 배를 보다 앞을 보니 아영이가 굉장히 당황했지만 나는 모르는 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김치볶음밥 해줄게! 좋아해? 하고 물으니 아영이가 좋아해여! 하며 같이 일어났다. 난 부엌으로 걸어갔다. 으아, 드디어 끝이구나! 하는 생각에 기뻤지만 티는 안냈다.
아영이에게 물어봐서 김치랑 냉장고 구석에 있던 피자치즈도 꺼내서 그럴싸한 김치볶음밥을 만들고 같이 식탁에 앉았다. 잘먹게씀니다! 하는 아영이를 보니 왠지 내 딸 키우는 것도 같다. 으헝. 너무 귀여워. 아빠미소라는 게 이런 걸까? 입이 계속 벌어진다. 흐흐.
"나무어빠."
"응?"
"그르케 웃지마여."
바보가타. …으, 응. 그 뒤로 약간의 침묵이 흐르고 다시 아영이가 오늘 재미써써여! 이런 얘기를 할 때 쯤, 철컥 하고 문소리가 들려왔다. 한 숟가락 크게 푸던 아영이가 아빠다!! 하며 식탁 의자에서 뛰어내려 후다닥 나가는 모습을 얼빠진 표정으로 쳐다보다 입에 김치볶음밥을 넣었다. 그렇게 좋은가, 하고 생각할 무렵 들어오신 아영이 아버님, 그니까 아저씨한테 아,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하니 아저씨께서 나를 빤히 쳐다보다 네, 우현군. 잘 놀았어요? 하며 웃으신다. 그러니 아영이가 옆에서 재미써써!! 하며 아저씨 다리를 꼭 껴안았다. 아, 네. 뭐 여러 가지 하고 놀았어요. 하고 대답하니 아저씨께서 입을 손으로 가리시며 웃는다. 그러니 눈이 가늘게 휘어지는데 놀랐다. 저렇게도 웃으시는구나.
"진짜, 큭. 재미있게 노셨나 봐요."
"네…? 네."
난 영문을 몰라 눈을 깜빡였다. 오늘 기분 좋으신 일 있으신가. 그러다 저녁 먹는 중이었나요? 하며 고개를 살짝 갸웃거리셔서 아저씨도 같이 드실래요? 하고 물으니 아저씨가 그럴까요? 하며 식탁으로 가신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아영이가 내 바지를 잡고 끌어서 나도 같이 식탁으로 갔다.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은 다음, 설거지는 아저씨가 하신다고 하셔서 그동안에 아영이가 읽어달라는 라푼젤을 빠른 속도로 읽어준 다음 아영이에게 인사를 했다. 아영아, 나 이제 갈게! 하고 말하니 아영이가 흐잉, 흐잉, 하는 소리를 냈다. 그러자 아저씨가 아영이 머리를 몇 번 쓰다듬고는 우현군, 저도 같이 나가죠. 하며 다가오셨다. 네? 네. 하고 신발을 신으니 아저씨도 옆에서 슬리퍼를 신으신다. 쓰레기 버려야 하거든요. 하는 아저씨의 말을 듣고 난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셨구나.
문을 열고 나와 우리 집으로 들어가려는데 우현군,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 하면서 뒤를 돌아보니 아저씨가 날 보고 웃고 계셨다. 왜, 왜 저렇게 웃으시지.
"귀엽네요."
"…네?!!"
"머리."
귀엽다고. 하며 방향을 틀어 계단을 내려가시는 아저씨 뒷모습을 쳐다봤다. 아니 왜, 왜 저런 말을 하다가 나는 문득 떠올렸다.
아영이가 묶어준 앞머리.
아영이가 매준 턱받이.
머릿속에 바위가 쿵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팔다리가 덜덜 떨렸다. 헐, 헐, 뭐, 뭐야. 헐. 나는 왠지 눈에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쪽팔림에 얼굴이 점점 익어갔다. 서둘러 우리 집 문을 열고 아악!! 아악!! 하며 소리를 지르자 김여사가 정색을 했다.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그 머리는 또 뭐고!! 네가 애야?!! 그런 김여사의 말을 듣고 나는 또 도망치듯이 방 안으로 들어갔다. 뭐야, 진짜 쪽팔려!! 흐엉! 흐어어엉!! 근데 왜 계속 생각나는 거야.
귀엽네요. 귀엽다고.
뭔데!!! 왜, 왜 계속 생각나는데!!!!
그르게여 왜 계속 생각나는 걸까여 흫ㅎ흫흐
벽이에여!! 그 그리고 아까 독방에서 독자분 한 분 만났는데 있어여? 으하핳ㅎ
반가워여ㅠㅠㅠㅠㅠㅠㅠㅠ 저 그런거 처음 봐여ㅠㅠㅠㅠ 으ㅠㅠㅠㅠㅠ
고마워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대 스릉스릉
그리고 아래 암호닉분들!!! 고마워여!!! 납치하께여!!! 없으면 말해줘여!!! 서운해하지말고!!! 바로넣을준비되어이써!!! -괴도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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