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인 찾기 01
김종인 X 도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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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첫사랑은, 마치 첫 부임받은 젊은 여선생이 이야기해주는 간질한 핑크색 사랑 이야기처럼 잊지 못한다고들 이야기하며 들을 때는 픽 코웃음 치면서도 상대의 얼굴에 스멀스멀 피어 오르는 웃음을 보며 마음 한 켠에 담아두었던 ' 첫사랑 ' 을 살짝 꺼내어보기도 한다. 철없는 다섯살 어린 소년의 첫사랑은 뭐든지 해내는 고운 엄마였고, 열여덟 갓 소년의 티를 벗기 시작하는 나이의 첫사랑은 여리여리한 교생 선생님이었다.
기억하기에 스물 세 살 도경수의 첫사랑은 그 여름, 더욱 더웠던 인도에서의 그, 김종인이었다.
" 알았어, 응. 엄마 나 이제 곧 휴대폰 꺼야돼. 응, 알았어- 편지 보낼게요. 형은? "
한쪽 귀에 휴대폰을 끼워놓고 경수의 작은 입술이 휴대폰에 닿을 듯 말듯 움직였다. 바쁘게 가방에서 여권을 챙기며 게이트로 향하다가 멈춰서서 휴대폰을 바로잡은 얼굴이 환해졌다. 응, 응 형아. 나 다녀올게. 아쉽다 형 입대하는 거 못봐서. 어쩌다가 그렇게 겹쳤네. 응, 휴가 나오면 연락해. 응? 아니아니, 형이 와야지. 쉴 새 없이 이야기를 하는 경수의 얼굴에 말갛게 웃음이 번졌다. 이제 정말로 가야 할 시간이었다. 전화를 끊고 셔츠 앞주머니에 꽂은 경수가 제법 큰 캐리어를 끌고 다시 발을 움직였다. 여권을 확인하는 동안 경수의 시선이 공항을 훑었다.
[ … 또한, 비행기가 뜨고 내릴 때에는 안전 운항에 영향을 주는 전자기기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휴대용 전화기의 전원을 꺼두시는 것을… ]
- 너 꼭 내 선물 사와! 코끼리로!
" 알았어, 백현아 나 전화 끊어야 돼. "
- 힝…. 보고싶을거야.
" 거짓말. 하루에 하나씩 엽서 보내. 야 나 진짜 끊는다! "
기내를 돌며 이륙 직전까지 휴대폰을 붙잡고 있던 경수를 발견하고 다가온 승무원이 경수가 급하게 전화를 끊자마자 싱긋 웃었다. 하하, 어색하게 웃어준 경수가 휴대폰의 전원을 끄고 나름대로 계획한 일정표와 가이드북을 펼쳤다. 해외는 물론 국내도 혼자 다녀본 적 없던 제가 처음 홀로 여행하기로 마음 먹은 곳 치고 인도는 꽤나 스케일이 크다며 경수는 내심 뿌듯해 하던 중이였다. 고등학교 졸업 직후부터 뼈 빠지게 아르바이트로 고생한 덕에 부모님께는 손을 빌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것 자체로도 경수에게는 엄청난 의미가 있는 셈이었다.
갠지스 강의 일출을 보고 싶어서 인도 여행을 결심했다. 열여덟 살 때부터의 꿈이었다. 수행평가로 세계 곳곳의 일출명소를 찾던 도중 처음 본 갠지스 강의 일출 사진. 입을 헤, 벌리고 모니터만 쳐다보고 있던 경수를 툭 치며 승수가 말했었다. 여기 나중에 형이랑 가자. 형이 돈 벌어서 데리고 갈게.
아쉬운 점이 딱 하나 있다면 그 때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혼자 와 버린 것이지만 아무래도 좋은 경수였다. 아, 승수가 머리를 밀고 입대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 점도.
10시간도 넘는 비행시간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선잠이 들기도 하고, 기내에서 제공하는 서비스를 이것저것 집어먹기도 하고 지도를 펼쳐 갈 곳을 애꿎게 몇번 더 덧칠 해보기도 하고,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짧지만 대화도 나누었지만 남은 비행시간을 묻자 7시간이라고 대답하는 승무원에게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어보이는 경수였다. 비행시간이 더욱 길게만 느껴졌다.
" 인도는 처음이세요? "
" 두번째요. "
" 아… 여행? "
" 공부요. "
도무지 제 옆자리에 앉은 승객은 자신과 이야기할 마음이 없어보였던 터였다. 낯을 가리는 성격임에도 나름 호의를 베푼다고 생글생글 웃으며 묻기까지 했는데, 경수를 쳐다봐주지도 않는다. 차분하게 내린 생머리가 고개를 숙이자 코 끝까지 내려온다. 톡 치면 아- 할 것 같은 얼굴로 멍하니 옆자리의 남자를 쳐다보던 경수가 시선을 거두고 시트에 몸을 더 묻었다. 더 길게 대답해주면 어디가 덧나나, 같이 심심한 입장끼리. 흘긋 남자가 보는 책을 보니 죄다 영어다. 심심할 틈 없어서 좋으시겠네요- 속으로 툴툴거린 경수가 고개를 푹 숙였다.
" 처음이에요? "
" 네? "
" 인도요. "
" 아, 네! "
여전히 시선은 책에 둔 채였다. 사라락, 다음 페이지로 넘기는 손가락에 깔끔하고 세련된 디자인의 반지가 끼워져있었다. 반쯤 시트에 누워있던 몸을 일으켜 허리를 세운 경수가 물을 한모금 마셨다. 대화가 길어질 것 같았다.
" 혼자서 여행 가는 거에요? "
" 어어… 네. "
아차, 경수 자신도 모르게 맹하게 대답했다. 멍청하게 보였음 어쩌지… 생각하는 동안 남자의 시선이 드디어 경수에게 닿았다. 웃으며 말했다. 물, 마셔도 돼요? 눈 앞에서 찰랑거리는 물병을 보며 경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잘생긴 얼굴이네, 생각했다.
" 비행기 혼자 처음 타보죠? "
" 어…. "
" 아니면 비행기를 처음 타보나. "
" ……. "
" 기분 나빴어요? 그랬음 사과하구. "
" 아니에요. 처음 타는 거 맞아요. "
전혀 그렇게 안보이더니 사람이 대꾸할 틈도 안주고 대화를 이어나가는 스타일이었다. 매너 좋게 웃어보이는 얼굴에 대고 그래요, 나 비행기 처음 타봐요. 이런 사람 처음 봅니까? 화 낼 수도 없는 노릇이라 우물우물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경수가 대답했다. 화 내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아까 그 책… 다 읽고 계시던 거에요? 어느새 표지를 보이고 있는 책을 가리키며 말했다. ' A Simple Plan ' 검정색으로 단단히 박힌 글자가 경수의 시선에 들어왔다. 뒤이어 하하, 하고 낮게 웃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 당연히 읽죠. 내가 뭐 폼으로 줄줄 읽는 척 하는 줄 알았어요? 그 쪽한테 잘 보일 것도 아니구."
" 그… 되게 집중하시길래. 영어 잘하시나봐요. "
" 전공이니까요. "
" 아아……. "
" 김종인이에요. "
" ……. "
" 앞으로 6시간에 플러스 알파로 더 볼 것 같은데, 계속 그 쪽이라고 부르게 할 거에요? "
" 도, 도경수에요. "
..!
짧아요.하트.프롤로그라고 봐주세요..
2편은 더 길게 쓸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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