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트/현성]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서.
w.밍기밍기
* * *
우현은 최근들어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기타를 치다가 말고, 노래를 부르다가 말고 누군가를 찾는 듯 두리번대는 행동을 하는 것.
그런 행동은 저가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멀찍이 떨어져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남자의 시선이 신경쓰이기 시작했을 때부터였다.
저가 자각하기 전부터 찾아왔는지 아닌지는 모를 일이였지만 그 남자는 노래를 부르고 있으면 항상 중간쯤에 나타나 멀리 자리를 잡고 우현의 노래를 듣다가 홀연히 사라져버
리곤했다. 사실 누군가 자신의 노래를 듣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였다. 근데 이상하게 그 남자는 뇌리 속에 박혀서 사라지지가 않았다.
어렸을 때 부터 노래가 좋았던 우현은 길거리에서도 곧잘 노래를 불러 사람들을 주목시켰다.
그렇게 노래만 바라보고 자라다가 무작정 가수가 되기 위해 올라온 서울은 우현의 꿈 따위에 관대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현실의 벽에 부딪힌 꿈은 냉대 속에서 꽁꽁 얼어만갔다. 빽도 뭣도 없는 놈이 깡다구만 세다며 문전박대하던 기획사들에 등을 돌려야 했던 날들은 손가락으로 셀 수도 없이 늘
어만 갔고, 그제야 우현은 자신의 처지에 순응하고 말았다. 우현을 받아주는 곳은 기껏해야 클럽 밤무대 정도. 그렇다고 노래를 포기한 건 아니였다. 노래를 부르고 사람들이
자신의 노래에 귀 기울여주면 장소가 어디든 굳이 신경은 안썼다. 발길이 닿는 곳이면 길거리여도 기타를 치면서 즉석 공연을 펼쳤다.
그렇게 정처없이 돌아다니다가 홍대 근처의 클럽으로 일자리를 옮긴 뒤로는 홍대 놀이터 쪽에서 자주 길거리 공연을 하는 편이였다.
그러는 날이 많아질수록 일부러 우현을 보러 찾아오는 여고생들도 많아졌고 매니아층 사이에선 꽤 유명세를 탔다.
그러니까 이상한 일이 아니였다.
누군가가 길을 가다말고 멈춰서서 자신의 노래를 듣는 것도, 매일 홍대 놀이터에 사람이 몰려드는 것도.
그 남자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하나 일 뿐인데 왜이리 제 시선이 그를 쫓고 있는지는 늘 명확한 답을 내리던 우현도 알 수 없는 노릇이였다.
하얗고 핏기없이 말쑥한 얼굴에 묘하게 사람을 홀리는 눈이 올곧이 저를 향하는데 그 모습이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어서 눈에 잘 띄는 이유도 있었다.
노래를 부르면서도 남자에게 늘 시선을 고정했다. 남자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피하지않고 똑같이 시선을 맞춰온다.
오늘도 기타를 치다가 말고, 노래를 부르다 말고 고개를 든 우현과 남자의 시선이 마주치고 있었다.
* * *
- 오늘은 안 나와도 돼.
“ 왜요. 짜르기라도 하시게? ”
-새끼 말 하는 뽄새 하고는. 오늘 사정 있어서 하루 문 닫을거야.
“ 아, 지금 가고 있었는데. 빨리 말해주면 덧나냐. ”
아무튼 오늘 나오지마. 막 인상을 쓰고 소리를 지르려던 우현이 그 말을 끝으로 허무하게 끊긴 호원의 전화에 욕을 중얼거리며 기타 끈을 꾹 잡아쥐었다.
마음 같아선 휴대폰이라도 집어던지고 싶었지만 그 전에 휴대폰 약정이 얼마나 남았는지 계산하고 있는 제 모습이 질려 그냥 주머니에 쑤셔넣듯이 집어넣곤
클럽을 향하던 발걸음을 돌렸다. 밤이 내려앉은 홍대거리는 젊음의 열기로 들끓었다. 어둠을 밀어내듯 반짝이는 간판 조명들을 앞에는 짧은 치마에 진한 화장을 한 여자들이
서서 남자들을 잡아끌고 있었다.
이대로 집에 돌아가서 그동안 못 잔 잠이나 실컷 자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막 홍대 놀이터를 지나치려던 우현의 발걸음이 뚝 멎었다.
생각 없이 놀이터를 향하던 시선 끝에 벤치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있는 갈색 머리칼의 뒤통수가 보였다.
언제부터 앉아있던 건지 바깥공기에 점칠되서 바람이 불 때마다 몸을 웅크리는 게 겨울잠 자는 여우 새끼같아서 의미 없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우현이 가볍게 기지개를 켰다. 파도처럼 밀려오던 잠은 이미 달아나버린 후였다.
언제나 멀리 떨어져있던 자리가 아니라 자신이 노래 부르던 그 자리에 앉아 있는 배경이 꽤 신선해서 이번엔 우현쪽에서 멀찍이 남자를 바라보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숙여지는 고개를 쳐다보다가 우현은 이걸 깨워야하나 잠시 고민했다.
누가 안 깨우면 이러고 밤까지 샐 기세여서 할 수 없이 우현이 남자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쥐고 살살 흔들었다.
우현이 흔드는대로 인형처럼 흔들리던 남자가 낮게 신음을 뱉으며 작은 목소리로 뭐라뭐라 웅얼거렸다.
네? 뭐라고요?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에 우현이 흔들던 손을 내리고 푹 숙여진 남자의 얼굴에 귀를 가끼이 가져다댔다. 미약하지만 살짝 끊겨들리는 소리는 무슨 말을 하는 게
분명했다.
안해….오늘 일… 다 끝났어. 웅얼거리며 내뱉은 소리를 집중해서 듣자 드디어 말소리가 들렸다. 무슨일이 다 끝난건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안한다는 말을 반복하는 남자에 우
현이 한숨을 내쉬었다.
게다가 남자는 술을 마신 게 아니라 아예 술에 몸을 담갔다 나온 듯이 지독한 알코올 향을 풍기고 있었다. 옆에 있는 사람까지 어지럽게 만드는 향에 우현이 고개를 내저었다.
도대체 얼마나 마신거야.
결국 깨우는 걸 포기하고 옆에 앉자 정신없는 와중에도 제 옆에 누가 앉는 느낌은 든건지 이젠 고개까지 흔들며 짜증을 부린다. 안 한다고 했잖아.
그 모습에 허, 헛웃음을 터뜨린 우현이 고개를 저었다. 생각보다 더 재밌는 사람이였다. 그 와중에도 눈은 절대 뜨지않는 남자가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몇 번 그러다가 깨어날줄 알았는데 다시 조용해진 남자의 모습을 가만가만 쳐다보던 우현이 기타를 꺼내들었다.
늦은 밤의 놀이터는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던 낮과는 다른 모습이였다. 밤문화를 즐기러 빠져나간 사람들이 대부분이였고 몇몇 커플들이 가끔씩 지나다녔다.
밤이 되면 항상 클럽으로 향했던 우현이였기에 지금 이 벤치에 앉아있는 게 어색했다. 잠시동안 기타 튜닝을 하던 우현의 손이 드디어 기타줄에 안착했다.
이 남자는 맨날 저가 간 후에 이렇게 벤치에 앉아있는 것일까. 시덥잖은 호기심이 들었다. 푹 꺾인 고개가 안쓰러워서 남자의 동글한 머리통을 감싸 제 어깨에 기대게했다.
어깨에 기대자마자 머리를 부비면서 파고드는 몸짓이 귀여워 웃음이 나왔다. 자꾸 파고들어 불편해진 자세에 남자의 머리를 손으로 고정시키자 그제야 얌전해진 머리통을
내려다봤다. 참 동글동글하다. 머리통을 감싸던 손을 다시 내리고 기타를 잡았다. 괜히 긴장되는 기분에 헛기침을 몇번 한 우현이 기타줄을 퉁겼다.
-밤이되고 피곤해도 잠이 안오면 생각나는 걸 계속 말해봐요.
“…….”
-내가 괴로워도 그만둘수는 없어요. 사랑에 빠진 것도 아닌데 내가 왜이러죠. 누굴 탓 할 수도 없잖아요. 사랑에 빠졌다고는 하지마요.
노래가 시작 할 때부터 눈을 감고 부르던 우현이 한참이 지나서야 노래를 끝내고 눈을 떴다. 야. 시발. 눈을 뜨자마자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욕짓거리에 우현이 고개를 돌렸다.
흔들어 깨울 때는 죽어도 안 일어나더니 언제부터 깨있던건지 게슴츠레 눈을 뜨고 우현과 시선을 맞춰온다. 머리는 여전히 우현의 어깨에 기댄 채로.
“언제 일어났어요?”
“…기타소리 들릴 때.”
“일어나셨으면 이제 집에 가요. 여기서 자면 입 돌아가요.”
우현의 말에 코를 찡긋거린 남자가 부시시한 머리를 긁적이며 우현에게 기댔던 머리를 일으켰다. 여전히 술기운이 남아있는듯 몽롱한 눈빛에 우현이 혀를 찼다.
그렇게 마셔대니까 이런데서 잠이나 들잖아요. 건강 생각해서라도 술 조금만 마셔요. 우현은 남자에게 충고를 하면서도 웃기다고 생각했다.
남자의 이름도 모르는데 저가 이렇게 충고 할 입장인가 싶어서. 남자는 전혀 개의치않는듯 우현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평소에 우현이 봐오던 모습과는 전혀 딴판이였다. 단정한 옷차림은 품이 큰 하얀 와이셔츠와 달라붙는 스키니진으로 바뀌어있었고 수수하던 눈은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아이라인이 그려져있었다.
맨날 볼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들었던 눈이 섹시하게 풀어져 멍한듯 보이면서도 정확히 우현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 시선을 받아주고 있던 우현이 자리에서 먼저 일어섰다.
일어서는 우현을 따라 좇는 시선에 우현이 짧게 한숨을 쉬었다가 남자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래도 여전히 멍하다.
“손 잡아요. 어디 살아요? 택시 잡아줄테니까 일어나봐요.”
“싫어어.”
들려오는 황당한 대답에 우현이 기가차 픽 바람빠지는 소리를 냈다. 그냥 모르는 사람인데, 자신은 이 남자를 두고 가던 말던 전혀 문제될 게 없는 일인데 왜자꾸 신경이 쓰이
는지 모르겠다.
일단 눈에 띄었으니까 버리고 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참을 손을 내밀어도 잡지 않는 남자에 우현이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다시 자기 옆에 앉는 우현이를 보던 남자가 우현을 향해 물었다. 담배. 담배없어? 길고 하얀손으로 담배 피우는 시늉을 하면서 우현을 쳐다보는 남자에 우현이 고개를 저었다.
“저 담배 안 핍니다.”
“아우, 되게 재미없게 산다. 너.”
“술에, 담배에. 몸에 안좋으니까 하지마세요.”
흐흥. 너 그러니까 꼭 잔소리쟁이같아. 여자들이나 흘릴 법한 웃음을 흘리며 자신에게 친근하게 굴어오는 남자는 전혀 거리낌이 없어보였다.
“맨날 제 노래 들으러 찾아오셨던 거 맞죠?”
“흐음….글쎄에. 맞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
“근데 왜 그렇게 멀찍이 떨어져 있어요. 다른 사람들처럼 가까이와도 되는데.”
“내가…내가….너 팬인데.”
“네?”
“나 혼자 막 반해서 팬 되가지구….”
“…….”
뚝 끊겼다가 띄엄띄엄 이어지는 말을 경청하던 우현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더니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배를 잡고 웃어대는 우현의 모습에 남자가 눈꼬리를 올리며
성을 냈다. 내가 니 팬이라는 게 웃기냐? 엉? 남자의 말에 우현이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끅끅 거리는 소리가 새어나가자 뾰루퉁한 표정에 미간이 더 좁아진다.
여전히 술에 들떠 발갛게 달아오른 볼을 하고 우현을 째려보는 모습에 우현이 미소를 머금고 남자를 쳐다봤다.
처음부터 이상하게 눈길이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 했는데 이 정도로 골 때리게 웃긴 사람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자신의 팬이라며 말해오는 남자가 흥미롭고 또 귀엽기도했다.
“제 팬이예요? 네?”
“안할거야. 안할래. 팬 안해….”
“계속 해주면 안돼요?”
내 말에 움찔거리며 시선을 피하는 남자의 모습에 다시 웃음이 나왔다. 몽글몽글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계속 밑에만 쳐다보면서 발장난을 치고있는 남자에 우현이 먼저 말을
걸었다.
“이름.”
“……?”
“이름이 뭐예요?”
“…성규. 김성규.”
“저는 남우현.”
나도 알아. 조그맣게 중얼거리는 말에 픽 웃은 우현이 성규를 중얼거리며 반복했다. 성규. 성규. 참 이쁜 이름이다.
그동안 저를 찾아온 것은 알았지만 차마 자신의 팬이라고는 생각 못했기에 방금 그의 발언이 얼빠지게 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했다.
여고생들이 팬레터를 내밀며 팬이라고 말해오는 것과 차원이 다른 그런 기분이였다.
“앞으로는 가까이와서 들어줘요.”
“뭐얼….”
“내가 노래 부르는 거 가까이서 들어줘요.”
그의 습관인듯 다시 코를 찡긋거리더니 갑자기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집에 갈래!”
넘어지려 하는 걸 허리를 감싸안아 부축했다. 택시 잡아줄게요. 하는 우현의 목소리에 고개를 빠르게 도리도리 저은 성규가 우현의 손을 쳐냈다.
“됐어. 바로 옆이야. 너느은 갈 길이나 가.”
“정말 그 상태로 제대로 갈 수 있겠어요?”
“으응. 갈 거야.”
앙칼지게 다 풀어진 발음을 제 딴에는 또박또박 말해오며 뒤돌아서 멀어지는 성규의 모습이 걱정되서 우현은 성규를 따라갈까 하다가 관뒀다.
멀어지는 성규를 보던 우현이 다시 벤치에 앉았다. 저래서 제대로 집에나 찾아가려나….
눈 앞에 떨어지는 나뭇잎을 보던 우현이 시선을 돌려 다시 성규의 뒷모습을 쫒았다. 어느새 성규의 모습은 점이 되어 있었다.
지금이 몇 시인지는 모르겠지만 처음보다 꽤나 지난듯했다. 모처럼의 휴식을 그대로 날려버렸지만 짜증은 나지않았다. 오히려 지나치다 그를 발견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한번 자신을 향해 팬이라고 말해오던 성규를 떠올리며 우현이 눈을 감았다.
그렇게 한참동안이나.
* * *
“미친놈. 남우현 너 실성했냐?”
“내가 뭐.”
“무대에서 노래 부르면서 실실 쳐웃지를 않나, 지금도 너 실성한 놈팽이처럼 쳐웃고있어.”
“내가 그랬나.”
혀를 끌끌차는 호원의 말에도 우현은 올라간 입꼬리를 내릴 생각이 없었다. 알면 알수록 성규는 참 재밌는 사람이였다.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어제 밤의 일 때문에 저한테 안 찾아오면 어떡하나, 술에 취해서 기억은 하려나. 온갖 잡생각을 하며 슬슬 몰려드는 사람들 속에서 우현이 노
래를 시작했다.
제 걱정이 무색하게 중간쯤에 나타난 성규의 모습에 우현이 밝게 미소 지었다. 역시 기억을 못하는건가 했는데 귀가 새빨개져서는 저에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니 기억하고 있구
나 싶었다.
술이 그렇게 잔뜩 취했으면서도 가까이와서 제 노래를 들어달라는 나의 부탁을 잊지는 않았는지 전보다 훨씬 가까이 다가와서 서있는 모습에 계속 웃으면서 성규를 바라보았
다.
예전 같았으면 아무렇지도않게 저를 똑바로 쳐다봤을 그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며 내 시선을 요리조리 피하는 것이 꽤 볼만했다.
어제의 모습은 우현의 환상이였던건지 그는 하얀 후드티에 청바지를 입은 우현이 익숙한 모습으로 돌아와있었다. 우현은 성규가 시선을 피하든 어쩌든 노래 부르는 내내 성규
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노래가 끝나고나서 황급히 자리를 뜨려고하는 성규를 우현이 붙잡았다.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는 발갛게 익은 귀에 성규가 꽤 사랑스러워서 우현은 부러 성규를 더 뚫어져라 쳐
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어제 일 기억 못하면 어쩌나 했는데 기억 하는 거 같아서 다행이다.”
“…저 얼른 빨리 들어가봐야 하는데 손 좀 놔주시면 안될까요?”
“어? 오늘은 존댓말이네요.”
어제와는 다르게 공손하게 존댓말을 쓰면서 말해오는 성규에 우현이 놀리듯 짖궃게 물어왔다. 우현의 말에 당황해서 어버버거리던 성규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어제는
그러니까….
우현의 말 한마디에 쩔쩔 매는 반응이 재밌어서 계속 장난을 치던 우현이 장난을 멈추고 성규의 손을 그제야 놓아주었다.
“이쪽에서 일해요?”
“네?”
“아니면 이쪽에서 사신다고 하셨으니까 그래서 맨날 오시는건가?”
“아…. 바로 저기있는 카페에서 알바생으로 일해요.”
우현이 성규가 손가락으로 가르킨 카페를 의외라는 듯 쳐다봤다. 바로 옆에 있던 카페라 지나가면서 수백번도 더 본 카페지만 안으로 들어간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성규가 그 곳에서 알바하는 줄은 꿈에도 상상 못했다. 그래서 자신의 노래가 끝나면 바로 어디론가 가버리고 그랬구나.
“그럼 성규씨 지금 땡땡이 치고 나온거예요?”
내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나오자 코를 찡긋 거리며 나를 멍하니 올려다보는 게 꼭 놀란 햄스터 같았다. 코를 찡긋거리는 거는 술을 먹으나 안 먹으나 하는 습관인 듯 보였다.
“제 이름 알아요?”
“다른 건 다 기억 하면서 이름 말해준 거는 기억 못해요? 제가 성규씨 이름 물어봤었어요.”
“어제는 죄송했습니다. 제가 술에 너무 많이 취해서 그랬어요.”
꾸벅 고개를 숙이는 성규를 쳐다보다가 카페로 시선을 돌렸다. 카페 안은 손님들로 인해 한창 북적북적 거리고 있었다. 이러다가 성규가 혼나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됐다.
“사과는 나중에 성규씨 알바 쉬는 날 밥 사주는 걸로 대신해요. 지금 카페 되게 바빠 보이는데 괜히 사장님한테 걸리지 말고 얼른 가봐요.”
“네? 아…. 네.”
밥 사달라는 말이 그렇게 당황스러웠는지 버벅 거리던 성규가 이내 등을 돌리고 걸어가려는 걸 우현이 다시 한번 더 불러세웠다.
“아 맞다. 성규씨.”
“……?”
“앞으로도 계속. 알바를 그만두더라도 제 노래 들으러 찾아와주세요.”
저 성규씨랑 개인적으로 친해지고 싶어요.
마지막 제 말에 얼굴까지 붉히며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생각나 우현은 기분이 좋았다. 성규는 감정표현이 참 솔직한 사람이였다.
클럽에서 노래를 부를때도 떠나지 않는 잡생각에 결국 호원에게 욕까지 들어 먹었다.
“도대체 그 짧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길래 남우현이 이 지경이 되냐.”
“호원아. …아니다. 사장님.”
“아 씨발. 방금 소름 돋았어. 너 어제 일 때문에 나한테 시위 하는거지?”
“언제는 알바 주제에 사장님 대접 안해준다고 지랄했으면서.”
“니가 언제부터 내 말을 들어쳐먹었다고. 제발 하던대로 해라. 어?”
“나 아무래도 좋아하는 사람 생긴 것 같아.”
소름이 돋은 걸 노골적으로 표현하며 팔을 벅벅 문지르던 호원이 우현의 말에 행동을 멈추고 못들을 걸 들었다는듯 되물었다. 뭐? 남우현이 어쨌다고?
“나 그 사람 좋아하는 거 같아.”
“누군데? 이쁘냐?”
“어. 완전.”
“어떤 사람이길래 남우현을 이렇게 닭털로 만들어놨냐. 평생 음악이랑 살 거라 그래서 고잔인줄 알았더니 그건 또 아닌가보네.”
“말 좀 이쁘게해라 좀.“
“야. 너 혹시 그 사람이야? 예전부터 계속 노래 부르는데 신경 쓰이는 사람 있다고 그랬잖아. 결국 작업 걸었어?”
“응. 사람이 좀 팔색조 매력이 있더라. 밤에는 막 술하고 담배하고 섹시한 날라리 같은데 낮에는 또 순수하고.”
“아무튼 잘해봐. 좋아하면 놓치지 말아라.”
호원과 앉아있던 우현이 입구에서부터 서로 엉켜서 들어오는 남자 둘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야. 저기 만취한 손님 들어왔다. 뭔 클럽에 들어오기도 전에 저렇게 취해서….
갑자기 말을 하다 멈춘 우현에 호원이 우현의 시선을 따라 입구로 눈을 돌렸다. 저기 남자한테 안겨있는 사람 김성규아냐? 왠일이래. 우리 클럽을 다 오고.
“…이호원. 니가 어떻게 저 사람을 알아?”
“너야말로 남일에 관심없는 애가 어떻게 김성규를 알고있냐.”
어제 밤과 같은 비슷한 모습으로 푹 파인 브이넥을 입고 야한 눈화장을 한 성규가 눈웃음을 치며 남자에게 안겨들었다. 우현이 그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다.
“쓸데없는 소리하지 말고 김성규랑 무슨사인데.“
“무슨 사이는 아니지만 김성규 꽤 유명하잖아. 남자 후리고 다니는걸로.”
“뭐?”
“남자새끼들이 김성규 뒷구멍에 환장을 한대. 근데 그냥은 안 자주고 큰 돈으로 구슬리면 바로 넘어가서 자준다더라. 근데 우리 클럽은 한 번도 온적이 없는데.”
호원이 하는 말들을 듣고 있던 우현이 왠지 모를 배신감에 주먹을 꽉 쥐었다. 제가 아는 성규는 호원이 하는 말들과 전혀 거리가 먼 사람이였다.
솔직히 따지자면 저는 성규랑 말을 한지 하루밖에 안됬고 그 기간 가지고 그를 판단 하는 것도 웃겼지만 그래도 저를 향해 팬이라고 말하고 수줍게 웃고 그랬던 성규는
거짓이 아닌 것 같아 더 화가 났다. 그제서야 어젯밤에 저한테 안 한다고 중얼거리던 성규가 떠올랐다. 그게 그 뜻이였나…. 당장이라도 성규를 끌고 오고 싶은데 저가 그럴 자
격이 있는 가 싶었다.
“씨발 진짜. 야. 이호원.”
“왜 갑자기 화를 내고 그러냐?”
“나 오늘 무대 한번 더 못 오른다. 한번만 봐줘.”
“뭐? 갑자기 뭔…”
호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규에게로 발걸음을 옮긴 우현이 저가 다가오는줄도 모르고 남자를 향해 웃고있는 성규의 손목을 잡아 일으켰다.
갑자기 일으켜진 몸에 성규가 당황하며 우현을 쳐다봤다가 사색이 되어서는 입만 뻥긋 거렸다.
그런 성규를 쳐다보던 우현이 그대로 성규를 끌고 클럽 밖으로 나갔다. 끌려오는내내 아무 말도 안하고 그대로 질질 끌려가던 성규가 잡힌 손목이 아팠는지 이리저리 비틀어댔
다.
힘을 더 꽉주어 잡으며 성규를 벽으로 몰아붙였다. 벽에 부딪힌 등이 아팠는지 작게 신음을 낸다.
“…이게 뭐예요.”
“…….”
“왜 그러고 있어. 진짜 이게 김성규예요?”
“우현씨….”
“남들이! 성규씨를 어떤식으로 생각하는지 알기나 해요?”
그만해요. 힘없이 가냘픈 목소리로 말한 성규가 이내 눈물을 떨어트렸다. 우현이 성규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에 한숨을 내쉬었다. 절대 울릴 생각은 아니였는데.
“그러면 어떡해요. 이렇게라도 해야 인간다운 생활이 가능한데.”
“…….”
“카페에서 알바 하는 거? 그런 걸로는 도저히 돈벌이가 안되서…밑바닥까지 기어들어가면서 낮에는 카페일. 밤에는 그런일 하면서 살았어요.”
“…성규씨.”
“이미 마음은 진창을 구르면서도 살고 싶어서 발악하는 게 웃기기도 하겠죠. 근데 나 자살 생각 안해본 거 아니예요.”
“…….”
“근데 그거 참아낼 수 있었던 거 우현씨는 몰랐겠지만 우현씨 때문이였어요. 우현씨 노래 들으면 그냥 제 처지도 생각 안나고 무작정 좋았어요. …그래서 우현씨는 평생 몰랐으면 했던건데.”
이젠 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하는 성규에 우현이 성규를 조심스럽게 안았다. 토닥토닥 등을 두드리자 어깨의 들썩임이 더 심해진다.
병신같이 그저 내 감정만 앞세우면서 화내기 급급 했던 게 생각나 성규에게 죽도록 미안해졌다.
“성규씨.”
“흐…흐으.”
“내가 다 미안해요. 제가 죽일놈이예요. 성규씨 생각 하나도 안하고 밀어붙인 거 미안해요. 그냥 나는 성규씨가 말도 안되게 좋아졌는데 성규씨가 다른 남자 앞에서 그러고 있
으니까 질투가 나서 그랬어요.”
“…….”
“근데 앞으론 그러지 말아요. 그런 거 하지말고 그냥 제 옆에 있어주면 안돼요?”
좋아해요. 성규씨. 앞으로 성규씨만 보면서 노래하고 싶어요. 우현의 다정한 말에 성규가 엉엉 울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울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그러겠다고 말하는 성규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우현은 성규를 더 꽉 껴안았다.
“제 평생 팬이 되어주세요. 성규씨.”
네 그럴게요.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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