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시야에 한가득 들어오는 연녹빛에 깜짝 놀라 소리치고 말았다.
“시끄럽다 동생아. 닥쳐봐라.”
분명히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나와 같은 물을 잔뜩 먹은 해조류 같은 칙칙한 색깔이었던 머리가 봄 냄새가 물씬 날 것 같은 색깔로 바뀌어 있었다.
“누나 머리에 뭐한 거야..”
망연자실한 심정으로 물어보니 담담한 표정으로 누나가 날 쳐다보았다.
“보면 모르냐 멍청아. 탈색했다.”
네 봐도 모릅니다. 아니 그전에 봐도 어찌 압니까. 누나의 말에 절망감을 느끼며 무릎사이에 고개를 파묻고 쭈그리고 앉았다.
설마 나에게 녹즙이라는 영광스러운 별명을 안겨준 이 머리가, 색깔 좀 뺀다고 해서 화사해 질 줄은 몰랐다. 미술시간에 녹색에 흰색을 섞으면 연두색이 된다는 것 정도는 알았지만, 구제불능인 이 머리색깔이 물 뺀다고 저런 예쁜 색깔이 되는 건 반칙이란 말이다.
“넌 누나 머리색만 눈에 들어오냐?”
누나의 물음에 고개를 들어 누나의 얼굴을 보니 뭔가 누나의 머리가 동글동글 해졌다.
“동글동글하네...가 아니라 응?? 동글동글?!”
아무생각 없이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하다가 문득 내 자신이 한 말에 놀라버렸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몇 시간 전 외출한다며 곤히 자고 있던 내 배를 발로 한번 밟아주고 나갔던 누나의 머리는 분명 가슴께까지의 길이었다.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야..”
“새학기 맞이.”
나의 질문 아닌 질문에 당당하게 눈가에 손으로 브이자를 만들며 대답하는 누나를 보며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그래 윤상우 뭘 바란거냐. 횟수로 3년이 다되어가는 누나의 울컥증에 익숙해질 때도 되었는데, 매번 놀라고 있으니 내 자신이지만 참 학습능력이 부족하다.
“들어가게 좀 비켜봐.”
정신적인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관 앞에 앉아있는 내가 거추장스러웠는지, 나를 말이 좋아 발로 밀어 넣었지, 다리로 반쯤 차서 치워놓고, 누나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벽에 머리를 기대고 한 번 더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는 또 왜 울컥증이 도진건지, 이번에는 스케일이 너무 컸다.
안 그래도 학교에서 소문이 좋지 않은데, 내일 학교에 저런 머리를 하고 갔다간 분명히 폭력배라는 별명이 생길 터였다.
아래학년 여학생들 기피대상 1호에서 0호로 바뀔지도 모른다.
한참을 누나의 머리가 가져올 여파에 대해 생각하다가 문득 눈에 들어오는 내 앞머리를 만져봤다.
일자로 내려오는 머리를 보면서 정말 곱슬이 아닌 것에 감사했다.
이 색깔이 곱슬이었다면 내 별명은 녹즙이 아닌 미역이 되었을 테니.
내 머리를 보고 있자니 누나의 밝은 연녹빛 머리가 눈 앞에 아른거렸다.
“나도 탈색이나 해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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