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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면 1화
유람

 

 

 

 때는 입학식이었다. 학교 정문에는 차량들이 끝없이 줄지어 있었다. 학교 건물 앞 횡단보도는 입학식을 치르기 위한 학생들, 그리고 그 학생들의 보호자 명목으로 입학식을 관망하기 위해 모인 학부모들로 붐볐다. 나는 강당의 옥상에 올라서서 그 광경을 낱낱이 지켜보고 있었다. 떼를 지어 모인 학생 무리가 강당으로 발을 들이기를 몇 차례, 정문은 전보다 붐비지 않았다. 다만 몇몇 차량들이 주차 문제로 가벼운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그중에는 언성을 높여가며 열심히 다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인적은 조금 줄어들었지만, 실랑이의 정도나 횟수는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주차장의 좋은 자리를 차지해 조금이라도 차를 쉽게 빼기 위함이었다. 몇몇 경비원들이 그 상황을 어떻게든 풀어보려 했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나는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지 않고 내뱉었다. 이런 입학식엔 푸른 하늘도, 곱게 핀 들꽃과 벚꽃은 사치 같아 보였다. 그들은 곧 목에 핏대를 세우며 서로를 삿대질하기에 이르렀다. 주변인들의 말은 이미 귓등으로도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자신의 몸으로 닿는 손들을 매섭게 내치는 것이 현장의 살벌함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그때였다. 경호원으로 보이는 건장한 남성 여럿이 학교 정문을 장악했다. 그리곤 경비원에게 다가가 조용히 대화를 시도했다. 그러자 경비원은 사형선고라도 받은 표정으로 실랑이를 벌이는 그들을 힘으로 밀어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깨끗해진 정문으로 검은 차량 하나가 미끄러져 들어왔다. 한눈에 봐도 나 비싸요, 하고 광고를 하는 그 차는 보기에도 아주 매끄러운 움직임으로 주차장으로 핸들을 돌렸다. 어디 부잣집 자제분이라도 타고 계시나 보네. 나는 코를 훌쩍이며 계단을 내려왔다. 더 이상 보고 있을 만한 인내가 없었다. 춥기도 추웠거니와, 한 편의 지루한 드라마를 관람한 느낌에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강당 내에는 학생 몇 백 명을 수용하고 있는 터라 바깥보단 따듯했다. 나는 서늘해진 교복을 감싸며 줄의 맨 끝으로 가 섰다.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노을이라도 되는 듯 붉게 빛났다. 나는 잠시 눈을 찌푸렸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요란한 웃음소리가 웅웅거리며 귓속을 장악했다. 잠시 현기증이 나는가 싶더니 눈앞이 캄캄해졌다. 눈만 끔뻑이며 아른한 정신이 돌아올 때까지 가만히 서있었다. 마침내 흐릿한 시야가 선명하게 상을 잡았을 때, 날 빤히 주시하는 처진 눈의 남자애를 발견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저릿한 전신이 온전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하릴없이 그 애를 바라보면서. 그 애도 왠지 내 시선을 피하지 않고 나와 눈을 마주쳐왔다. 그러다 단상에 선 남자가 마이크를 쥐어들었을 때, 남자애는 홱 앞으로 돌아섰다. 나에게 무엇이라도 화가 난 듯한 움직임이라 나는 약간 당황스러워졌다. 입학 설명을 듣는 내내 그 남자애에게 혹시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이냐고 묻고 싶어 그 애의 뒷통수만 바라보았다. 어쩐지 무의식적으로 그 애에게 시선이 간 것도 있었다. 어쨌든 난 입학 설명을 모두 듣지 못했고, 정갈한 다갈색의 머릿통만 뚫어져라 쳐다봤었다. 그게 변백현과의 첫 만남이었다. 그저 처진 눈의 매서운 아이. 그것은 변백현의 첫인상이었다. 나에게 화난 것이라도 있는 듯이 무섭게 바라보았던 것 빼고는, 아주 일상적이고 평범한 보통의 만남이었다.

 

 

 

 


 다시 그 애, 변백현과 접촉이 있었던 때는 그 학교에서 고등학교 2학년을 보내고 있던 시기였다. 나는 입학식 때 그 애 머릿통을 바라보느라 교가나 교직원 소개를 자세히 듣지 못했지만, 내가 단상 위로 올라서야 할 때는 용케 순서를 알아챘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전교 1등을 도맡아 왔던 성적 우수자였다. 나는 단상 위에서 이사장을 비롯한 여러 내빈, 그리고 아이들로부터 무미건조한 박수를 받았다.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이사장과 손을 맞잡았고, 아이들은 또다시 건조한 박수로 분위기를 맞췄다. 전교 1등으로 학교에 입학하는 것. 나는 가만히 있어도 아이들의 부러움과 시기를 받았다. 직접 드러내진 않았지만, 지나칠 때마다 나에 대해 알게 모르게 수군대는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때 나는 조금 지친 상태였다. 엄마와 된통 다투고 난 뒤이기도 했고, 전혀 공부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까워지는 시험일에도 나는 그저 무기력하기만 했다. 그 날도 박찬열과 함께 독서실에서 시간만 때워먹고 나오던 길이었다. 밤하늘은 전보다 어둑했고, 가는 길 또한 누가 칼이라도 들고 뛰쳐나올 것처럼 으슥했다. 나는 우울의 극치를 달리며, 신나서 떠드는 박찬열의 말에 건성으로 맞장구를 쳤다. 그 전의 대화 내용이 어떠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갑자기 박찬열의 수다에서 변백현의 이름이 툭 튀어나왔다.

 

 

-야, 근데 변백현 말이야.
-....어.
-내가 우연히 매점 가다가 들은 얘긴데, 훔쳐들은 건 아니고.
-왜, 뭔데.
-그냥..변백현 1학년 땐 계속 전교 1등 하다가 갑자기 전교 2등으로 내려갔잖아. 것도 3등 4등 한 것도 아니고 항상 전교 2등만.
-...맞아. 갑자기.
-어어, 맞아. 아무튼, 기분 나빠하지 마라.
-뭔데 그래. 궁금하게.
-애들도 솔직히 왜 그런지 궁금하잖아. 그래서 몇 명이 물어봤나봐.
-어.
-그러니까 변백현이, 너 불쌍하다고. 너 집안 사정 별로 안 좋은 거 아니까, 그래서 그러는 거래.

 

 

 울컥 치미는 것은 수치였다. 지독한 공황이 올 때처럼, 온 몸에 쥐처럼 퍼진 수치가 전율을 일으켰다. 박찬열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내 간이라도 보는 듯, 힐끗힐끗 나를 살피기만 했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입학식 때의 매서운 눈길과 더불어 지금의 변백현이, 지금의 나에게 너무나도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불쌍해서, 라. 굳이 음성이 아닌 문장으로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빈정대고 있었다.  나에게 무언가 단단히 화가 난 듯한 눈동자, 그리고 지금의 상황. 무엇이 내 죄일까. 생애 가장 억울한 순간이 있다면, 바로 지금일 것이었다. 서늘한 밤공기가 아니었다면, 한껏 달아오른 몸으로 당장에 변백현의 집으로 향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나마 태풍의 전초전과 같은 매서운 바람 덕에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다. 졸업도 전에 빨간 선이 그이냐, 마냐의 문제로 나는 한참을 서서 고민했다. 어찌어찌 달아오른 몸은 식혀졌다 해도, 좀처럼 화는 삭혀지지 않았다. 옆에서 똥마려운 개처럼 안절부절 못하는 박찬열이 있었기에 그래도 집까지는 조용히 걸어 갈 수 있었다.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것인가에 대해 한참을 고민하며.

 

 

 그날 밤, 나는 이불을 뒤척거리며 잠이 들지 못했다. 창문이란 창문은 모두 열어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미친 듯이 달아올라 한가을에 열대야와 같은 밤을 보내야 했다. 다행히 희미한 달빛을 보다 까무룩 잠이 들었지만, 패턴이 깨진 아침은 결코 편안하지 못했다. 몸도 몸이지만, 무엇보다 목이 아팠고 오한이 났다. 견딜 수 없는 추위에 온몸을 꽁꽁 싸매고 식은땀을 흘렸다. 모든 것이 변백현의 탓이었다. 도대체 왜 변백현 하나 때문에 자신이 감기에 걸려야 하고, 온몸이 부서지는 듯한 근육통을 느껴야 하는지. 하루가 길었다. 아침을 먹는 시간도 길었고, 학교로 향하는 시간도 길었다. 아마 변백현을 대면하기 전까진 모든 시간이 길 것이었다. 나는 책상에 가방을 올려놓자마자 변백현의 교실로 향했다. 매일 맞는 아침이지만 항상 익숙지 않은 탓에 아이들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중에서 멀쩡하게 창밖을 주시하는 변백현에게 다가갔다. 변백현은 인기척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내 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관심 없다는 듯 무심하게 창밖을 향하는 시선에 조금 욱했지만, 꽤 단조로운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변백현.”

 

 

 그는 느릿하게 괸 턱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홍채를 찾아볼 수 없는 검은 눈 때문인지, 그의 눈은 텅 비어 보였다. 나는 입모양으로 왜, 하고 응답하는 변백현에게 조금 허탈함을 느꼈다. 너 나한테 할 말 없어?

 


“할 말? 없는 것 같은데.”
“네가 제일 잘 알 텐데. 어제, 기억 안 나?”
“모르겠는데. 그렇게 모호하게 말하면 어쩌자는 거야.”

 

 

 그는 설핏 웃으며 자조했다. 명백한 비웃음. 날 놀리는 건가. 누군가에게 아픈 구석을 노골적으로 설명한다는 것은 아마 굉장한 일일 터였다. 나는 그 굉장한 일을 앞두고 심호흡을 깊게 한 뒤, 말을 따박따박 쏘아붙이기 시작했다.

 

 

“너 애들 앞에서 내 집안 사정 안 좋다고, 그래서 일부러 2등 해주는 거라 그랬다며. 도대체 내가 집안 사정이 안 좋은 건 어떻게 안 거고, 왜 그딴 말을 한 거야?”

 

 

 그는 굉장히 흥미로운 것을 보았다는 듯, ‘관람자’의 표정을 지었다. 더 이상 더러워질 데가 없을 것 같던 기분이 하수구에 처박히는 느낌을 받았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너랑 내가 무슨 사이길래 내가 왜 네 양보를 받아야 해?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말해줬음 좋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난 모르겠어. 그러니까, 잘못한 게 있으면 말- “
“넌 잘못한 거 없어.”
“그럼 왜, 나한테 왜 그런 건데?”
“내가 뭘 했는데?”

 

 

 그는 내 취약점을 알고 있었다. 다시 내 사정을 읊음으로써 수치를 느끼게 하려는 고도의 계략. 아무리 변백현이 순수한 의도로 그 물음을 던졌다고 하더라도, 아마 나는 변백현이 원망스러울 것이다. 작정하고 내뱉은 거라면 더더욱. 변백현은 씩씩대는 나를 보며 고개를 비틀고 나를 올려다봤다. 그저 그는 이 상황이 즐거워보였다. 내가 수치를 느끼는 이런 참혹한 상황이.

 

 

“넌 이게 즐거워? 남을 나락으로 빠뜨리는 말을 하고 듣는 게, 넌 즐거워? 내가 뭐 네 앞에서 울기라도 해야 만족할 거야? 그저 왜 그랬는지, 난 그게 듣고 싶은 거잖아. 왜 너는..”

 

 

 변백현의 표정이 일순 굳는 것 같았지만 나는 모른 척 말을 이었다. 아이들의 시선이 모두 나에게 집중되어 옴을 느꼈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나는 말을 다 뱉고 난 뒤에 조금 허망해졌다. 결국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열만 내고 말았다. 나는 여전히 어떤 말도 해줄 생각이 없어 보이는 변백현을 두고 뒤를 돌았다.

 

 

“잠깐만.”

 


 하지만 거센 악력에 팔목이 잡히고 말았다. 아이들의 이목은 변백현에게로 돌려졌고, 나는 나를 바라보는 몇몇 시선과 눈을 마주했다. 그저 관망하기 위한 자세와 각도. 나는 온 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여기서 이래봤자 내 말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고, 나는 자신을 위해 전교 2등을 해주었더니 질투 나서 열폭하는 전교 1등밖에 되지 않을 것이었다. 나는 변백현이 어떠한 말을 해도 다 들어주리라, 하는 마음으로 꽉 잡힌 팔목을 가만히 놔두며 기다렸다. 숨죽인 교실은 전부 변백현의 다음 말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잠시 동안 지독하게 흐르는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변백-”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변백현은 빠르게 덧붙였다.

 


“근데 우리,”

 

되게, 

연인같다.

 

 나는 평생 쓰지 않기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비속어를, 누군가의 면전에다 대고 뱉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내가 그렇게 덤덤하게 욕을 뱉을 수 있는 지도 처음 알았다.

 

 나는 벙글거리는 낯에 쏘아 붙였다.

 

 씨발 변백현, 개새끼야, 라고.

 

 

 

 

 

 

 

 

 

---------------------------------------

플롯이 하나 정도 더 쓸 것밖에 없어서..ㅎ..ㅎ

다음편 나오는 텀은 좀 될 것 같지만...

처음뵙겠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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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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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우오앙 너무 재밌네용 ㅎㅎㅎ 백현이가 왜그러는지 너무 궁금해요 ㅎㅎ 신알신하고 갑니당~~
10년 전
비회원도 댓글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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