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그 불완전한 나이.
07
한참을 전원우의 뒷모습만 멍하게 바라보고 있던 나는, 김민규가 '뭐하냐.' 하는 말에 정신을 차렸다. 김민규가 언제 왔는지도 모른 채 나는 그 상태로 계속 있었던 거다. 아니야, 하고 나는 그 쪽을 바라보고 있던 시선을 거두었다. 가방을 메려고 하는데 또 다시 제가 먼저 내 가방을 낚아채고는 가자, 하며 씨익 웃었다. 그에 나도 픽 웃으며 교실을 나섰다.
독서실로 가려고 하는데, 잠깐만 자기 집에 들렀다 가잔다. 왜? 라는 내 말에 오늘은 집에 민희가 혼자 있어서 같이 점심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민희는 김민규의 동생이다. 올해 10살이 된 그 아이는 일단 김민규랑 9살 차이가 나고, 또 여자아이었기 때문에 김민규가 정말 제 동생이라면 죽고 못 살았다. 어찌나 자기 동생을 아끼는지 진짜 누가 보면 제가 낳은 딸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나도 민희를 어렸을 때부터 봐와서 그런지 동생이 없던 나에게 민희는 내 동생과도 다름없었다. 민희도 그런 나를 잘 따라주었고.
"그러고 보니까 민희 못 본지 좀 됐네…. 요새 맨날 독서실 다니고 해서."
"그래서 아까 너랑 같이 집에 간다니까 좋아하더라."
"너네 집 가는 것도 되게 오랜만이다."
옛날에는 툭 하면 너네 집 가서 놀고 그랬는데. 맨날 티비보고, 먹고. 김민규랑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금방 김민규네 집에 도착했다. 비밀번호를 띡띡 누르고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민희가 '언니!!!!' 하면서 뛰쳐나왔다.
"우리 민희. 잘 있었어?"
"응! 언니 진짜 보고 싶었어!"
"야. 김민희. 넌 오빠가 보이지도 않냐?"
"오빠는 맨날 보잖아!"
지겨워! 그 말에 김민규는 상처 받은 얼굴로 이래서 자식 새끼 키워놔봐야 소용이 없다니까…. 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 말이 웃겨서 김민규 등짝을 퍽 치며 아, 뭐래! 하니까 이내 픽 웃으면서 배고프다고, 빨리 밥이나 먹자고 했다. 김민규는 부엌으로 향하고, 나는 민희랑 쇼파에 앉아서 놀고 있는데 부엌을 이리 저리 훑어보던 김민규가 말했다.
"김여주! 먹을 게 라면밖에 없는데 괜찮아?"
"어. 당연하지."
라면은 언제 먹어도 짱이야. 그치? 내 말에 민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나랑 민희가 노는 모습을 보던 김민규는 피식 웃더니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곧 이어 맛있는 냄새가 집 안을 가득 채웠다.
"오. 나름 생긴 게 괜찮다?"
"그럼. 누가 끓인 건데."
잘 먹을게-. 하고서 나는 라면 한 젓가락을 크게 집었다. 김민규는 먼저 제 동생 앞접시에 라면을 담아주고는 곧 자신의 접시에 라면을 퍼가기 시작했다. 내가 라면 먹는 모습을 빤히 지켜보는 김민규에 왜, 하니 김민규가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며 말했다.
"어때?"
"…뭐가?"
"라면."
"맛있네."
"아. 뭐야. 그게 끝?"
"그럼 뭘 바래."
"됐다."
여자애가 무슨 리액션도 없고, 재미없어. 김민규는 툴툴대며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맛있다고 해줬음 됐지, 뭘. 어깨를 으쓱하며 라면을 먹고 있는데, 갑자기 불현듯 아까 여자애와 같이 나가던 전원우가 생각이 났다. 아, 이건 왜 생각나고 난리야…. 내가 잠시 멈칫하자 김민규가 나를 쳐다보았다.
"왜?"
"…아니야."
김민규는 약간 의심쩍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다 이내 말았다. 미쳤나봐, 진짜. 다시끔 떠오르는 전원우의 얼굴에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이쯤되면 나도 안다. 내가 전원우를 좋아…하고 있다는 걸. 바보가 아닌 이상 모를리가 없지. 다만 부정을 하고 싶을 뿐이다. 앞서 말했듯이 내가 왜 그 아이를 좋아하게 됐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었으니까.
나는 항상 좋아하는 사람이 생길 때마다 김민규에게 털어놓곤 했었다. 김민규와 나 사이에는 비밀이란 게 존재하면 안된다고 생각했으니까. 전원우를 좋아하기 전에도 좋아했던 사람이 몇 명 있긴 했었다.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고, 여태까지 살면서 한 세 명? 정도. 그 세 명을 좋아할 때도 나는 김민규에게 다 털어놓았었다. 그러면 김민규는 항상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또 이런 식으로 해라, 하면서 조언을 해주곤 했었지. 전원우 이야기도 해야될 것 같긴 하지만… 이번만큼은 왜인지 너무 부끄러워서 말을 못하겠다. 지금 당장은 말을 못하더라도 나중에는 이야기를 해야겠지.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김민규가 내게 연애상담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김민규가 인기가 없는 건 아니었다. 내 주변에서도 김민규가 좋다고 소개시켜달라는 애들도 꽤 있었고, 김민규에게 고백하는 애들도 몇 번 봤었으니까. 그런데 김민규가 여태까지 여자를 사귀는 걸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자기에게 고백했던 여자들은 마음이 없어서 그런 거라 생각한다 치더라도, 김민규가 여자를 좋아한 적이 한 번도 없었을까?
"야. 민규야."
후루룩 라면을 먹고 있던 김민규가 나를 쳐다 보았다. 왜? 우물우물 씹다가 꿀꺽 삼키며 묻는 김민규에 나는 물었다.
"넌 누구 좋아해 본 적 없어?"
그 말에 김민규는 콜록! 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사레가 걸린 건지 한 손으로는 콜록대는 입을 틀어막고, 다른 한 손으로는 제 가슴을 쳐댔다. 나는 지금 쟤가 왜 저러나 싶어서 멍하게 쳐다보고 있는데 옆에서 민희가 '으휴. 못살아!' 하면서 등을 두드려 주었다. 김민규는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부엌에서 물을 가져와 컵에 따르고는 그대로 원샷을 했다. 어우. 이제 좀 살겠네. 자리로 돌아온 김민규는 크흠!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괜찮냐?"
"어…. 근데 그건 왜?"
"아니. 나는 너한테 다 얘기하는데 너는 나한테 그런 얘기 한 적 없잖아."
"그게 갑자기 왜 궁금한건데."
아까와는 다르게 싹 굳은 표정으로 말하는 김민규에 내가 더 당황을 했다. 아니. 그걸 그렇게 정색을 하고 말할 일인가?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 물어봤어. 왜. 물어보면 안돼?"
"너 좋아하는 사람 생겼냐?"
"아니?!!!"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김민규의 질문에 나는 아니라며 빽 소리를 질렀다. 김민규는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쳐다보다가 라면이나 먹어. 하고선 다시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뭐 못 물어볼 걸 물어봤냐고…. 이해할 수 없는 김민규의 행동에 나는 괜히 섭섭해져서 몇 젓가락 먹다가 이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밥을 다 먹고 설거지를 하고, 같이 티비를 봐도 나와 김민규는 단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
"민희야. 오빠 갔다올게. 엄마 오시기 전까지 있어주려고 했는데 좀 늦으시네."
"오빠는 내가 애도 아니고. 괜찮아. 혼자 있을 수 있어."
"너 애야. 인마."
으이구. 김민규는 그런 민희가 귀엽다는 듯이 민희 머리를 막 헝클어 틀이면서 오빠 갔다 온다, 하고선 먼저 문을 나섰다. 나도 이제 가보겠다고, 오늘 즐거웠다고 얘기하자 민희는 또 놀러와야 한다며 내 손을 꼬옥 잡고선 말했다. 알았어. 언니 갈게! 내 말에 민희는 잘가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문을 나서니 김민규가 벽에 기대 서 있었다. 김민규와 나 사이에는 적막한 기류가 흐르고, 우리 둘은 아무런 말도 없이 묵묵하게 걷기 시작했다. 걸으면서 김민규를 흘깃흘깃 쳐다보는데 완전 딱딱하게 굳어서는 입을 열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내가 김민규랑 싸웠으면 지금 이 상황을 이해하기라도 하지, 내가 대체 뭘 잘못한 건가 싶은 생각에 괜한 오기가 생겨 김민규가 말을 먼저 하기 전까지 말을 하지 않기로 속으로 다짐했다. 이 어색하고도 어색한 상황에서 몇 십분을 아무런 대화도 없이 계속 걸었을까. 독서실에 거의 다 왔을 때, 그제서야 김민규가 입을 열었다.
"…아깐 미안했다."
그 말에 걸음을 멈춰 서고 김민규를 쳐다보니 김민규도 걸음을 멈추곤 나를 바라보았다. 아까보단 많이 풀린 표정으로 나를 보며 미안하다고 말하는 김민규에 괜히 서러움이 북받쳐 올랐다.
"그냥 당황해서 그랬어. 갑자기 그런 걸 물어볼 줄도 몰랐고…. 뜬금없기도 하고. 그래서."
"……."
"일단 네 질문에 답을 하자면."
"……."
"별로 여자한테 관심이 없어."
"……."
"……그래서 그런 걸 너한테 말할 수 있을리가 없었지."
내가 아무말도 안하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하자 김민규가 내게 다가와 나를 꼬옥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등을 토닥이면서 미안해. 라고 하는데 와…. 진짜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우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나는 입술을 꽈악 깨물고는 울음을 참아야만 했다. 나는 김민규의 정강이를 퍼억 차고는 말했다.
"너 진짜 짜증나!! 나한테 말 걸지마!!!"
"아, 야!! 너 진짜 이것 좀 하지마. 아프다고!!!'
"몰라!!!!!"
아프다고 끙끙대는 김민규를 버리고 나는 먼저 독서실로 들어왔다. 눈물이 고여 금방이라도 흐를 것만 같아 나는 소매로 눈을 벅벅 문질렀다. 김민규 나쁜새끼. 방에 들어와서 가방을 내려놓고 책상에 엎드리는데, 순간 아까 김민규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그런 걸 너한테 말할 수 있을리가 없었지.'
그 말을 하기 전, 무언가 뜸을 들이던 김민규. 걔가 그 말을 하기 전에 하고 싶었던 말이 뭐였을까….
"몰라. 내 알 바야?"
나는 생각하던 것을 멈추고 그냥 눈을 감았다. 그래도 금방 풀려서 다행이야.
이렇게 사소한 걸로 너와 멀어지는 건 상상하기도 싫으니까.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저를 잊어버리신 건 아닌가 모르겠네요 (쭈굴)
금요일날 온다고 해놓고선 또 약속을 지키지 못했네요...ㅠㅠ
원래 뒷부분을 더 쓰려고 했는데 지금 집이 아니라 마음놓고 쓸 수가 없네요ㅠㅠㅠ
막 더 진도를 팍! 팍! 나가고 싶은데... 하...
저를 매우 치세요...☆★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언제나 글을 읽어주시는 우리 독자님들 너무 감사드립니다ㅠㅠㅠㅠ
암호닉 : 자두님, 악마우님, 일공공사님, 지유님, 치킨님, 찐빵님.
그리고 많은 독자님들ㅠㅠㅠㅠㅠ 정말 정말 아껴요 제가.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