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p 4
급식을 먹는 건지, 마시는 건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다. 내가 무슨 소도 아니고, 급식판에는 고기는커녕 쨍한 초록을 띄고 있는 풀때기 뿐이었다. 잔뜩 심통이 난 채로 밥만 야금야금 씹어먹다, 젓가락을 씹어 버렸다. 머리가 띵하고 울림과 동시에 이가 깨질 정도로 아팠다. 짜증이 나 신경질적으로 국그릇에 잔반을 퍽퍽 담았다. 그 바람에 음식물이 잔뜩 섞인 국물이 수정이의 얼굴과 옷가지에 튀었고, 몇 초간 정적과 동시에 갈 곳 없는 시선만 애꿎은 잔반에 두었다.
" ... "
" ... "
" ...아. "
" 아, 미안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잔반 담다가…. "
" ... "
" 진짜 미안해. "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건지 수정이가 속으로 작게 욕을 읊조리며 자리를 일어났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얼른 일어나 뒤를 따랐지만, 그새 밖으로 나간 건지 수정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손톱을 쥐어뜯으며 교실로 향했지만 수정이의 모습을 찾을 순 없었다. 혹시나 해서 화장실, 도서관, 휴게실, 계단, 교무실, 보건실, 수정이가 갈만한 거의 모든 곳을 찾아 보았지만 그 어디에서도 수정이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점심시간이 끝나고 수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수정이가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안도감이 들어 수정아, 하고 크게 소리지를 뻔 했지만 이어지는 선생님의 말씀에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 정수정, 뭐하는 거야? "
" 죄송합니다. "
" 죄송한 건 당연한 거고, 뭐하다 이제왔어? "
" ... "
" 뭐하다 왔냐니까? "
" 화장실에 있었는데요. "
" 지금까지 화장실에 있었다는 게 말이 되니? "
" 진짠데. "
" 그러시겠지. "
" ... "
" 들어가서 앉아. "
하필 자리가 앞뒤로 붙어있었던 탓에 신경이 더 쓰일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어디서 뭘 하고 온 건지, 화는 풀린 건지 알 턱도 없었고, 일단 사과부터 제대로 건네고 싶은데, 타이밍을 잡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손톱만 잘근잘근 씹고 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학교가 끝난 후에는 또 피시방 알바를 가야 한다는 사실이 머릿속을 파고 들었다. 짜증이 밀려와 머리를 망가뜨리며 작게 욕을 내뱉었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져 팔에 얼굴을 묻은 채 고개를 푹 숙이고 엎드렸다. 수업이 끝나기까지 3분 정도가 남았지만, 진전된 건 없었다. 손톱을 물어뜯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평소엔 항상 뒤를 돌아 수다를 떨었던 탓에 점수가 깎이는 게 일상이었는데,
긴 회초리로 칠판을 두어 번 탕탕 치고는, 다음 시간에 쪽지시험을 본다나 뭐라나, 학습지를 나눠 주신다고 한다. 수정이가 학습지를 뒤로 넘겨주는 타이밍에, 사과를 해야겠다. 그래, 자연스럽다. 수정이가 앞사람에게서 학습지를 받는 모습을 지켜보며 심장이 쿵쿵 뛰었다. 약 5초 후에 수정이가 내 쪽을 향해 뒤를 돌며 손을 뻗을 것이다. 난 그때 사과를 해야 한다. 저기, 수정아. 아까는 미안했어. 그 순간 수정이가 학습지를 던지듯 책상에 내려놓았다. 그 덕에 학습지들은 책상 밑으로 유유히 흩어져 내 다리를 스쳐지나 바닥을 향해 곤두박질 쳤다. 보통 이럴 땐 자기가 나서서 주워야 하는 거 아닌가, 줍기는커녕 뒤를 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는 정수정이 괘씸해지기 시작했다.
우리 둘 다 야자를 하지 않았던 탓에 석식을 먹고 함께 집으로 향하곤 했다. 석식 시간이 다가오자 마음이 초조해졌다. 수정이 아니면 같이 먹을 애 없는데, 그 순간 수업이 끝났다는 걸 알리는 종이 울렸고, 아이들은 급식실을 향해 성난 개처럼 뛰어갔다. 주위를 둘러보니 교실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심지어 정수정도. 한숨을 내뱉으며 가장 구석진 자리에 엉덩이를 붙여 앉아 책상에 엎드렸다. 엎드리자마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기 시작했다. 이제 나는 누구랑 다니지, 밥은 또 누구랑 먹고, 집은 누구랑 가고, 버스는 누구랑 앉고.
교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작게 들려, 나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 ... "
" ... "
누가 들어온 건지 궁금했지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사물함이 열리는 소리가 두어 번 들리고, 곧이어 교실문이 또 한 번 열렸다, 닫혔다.
나간 건지, 아니면 또 누가 들어온 건지 궁금해 미칠 것 같았다. 발자국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고 내 주위에서 멈춘 듯했다. 심장이 쿵쿵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머리 맡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누군가가 옆자리에 앉는 소리가 들려, 머릿속에서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누군가가 내 뒤통수를 세게 가격했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어 옆을 확인해 보니, 정수정이다.
" ㅇㅇㅇ 너 여기서 뭐하냐. "
" 어? "
" 사람이 들어오면 쳐다봐야하는 거 아님? "
" 어? "
" 뭘 어어거려, 닥치고 이거나 먹어. "
" 어? "
" ... "
" ... "
" 너 석식 안 먹었을 거 아냐, 먹었어? "
" ...아니. "
" 나도 안 먹었어. 니가 좋아하는 초코에몽 사왔음. "
" 너 화 안 났어? "
" 넌 내가 그런걸로 화낼 애로 보이냐? "
" 아니. "
" 그냥 삐진 척 했는데 이렇게 오래갈 줄 몰랐어. "
" ... "
" 아, 이거나 빨리 먹으라고, 집 가게. "
/
* Ep 5
" 나 오늘 너 알바하는 거 구경해도 돼? "
" 미쳤냐? "
" 왜? "
" 끝나면 거의 10시란 말이야, 안돼. "
" 어짜피 오늘 집에 아무도 없음. "
" ...너 맘대로 해. "
수정이와 같이 피시방에 도착해 알바 오빠와 교대를 했다. 오늘따라 사람들이 눈에 띄게 적어진듯해 기분이 좋았다. 피시방에 도착하자마자 이것저것 다 만져대는 정수정 때문에 걱정이 되었지만, 기분이 좋았다.
" 뭐야, 사람 존나 많다면서. 별로 없는데? "
" 오늘따라 없는 거야, 주말엔 진짜 피크야. "
" 여기서 알바하다 보면 잘생긴 남자애들 많이 옴? "
" 어... 아, 있긴 있어. 근데 너 원우 오빠두고 그새 관심 돌렸어? "
" 몰라, 포기각. "
" ...너가 그렇지 뭐. "
알바를 할 때면 늘 지루함을 이기지 못해 손님들이 간간이 보내주는 메시지에 대답을 하는 게 그렇게 재밌었는데, 모니터가 아닌 사람과 대화를 하다 보니 시간이 금세 지나갔다.
어느새 정리를 할 시간이 다 되어 바닥을 닦는데, 수정이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여기 오는 남자들 중에 니 취향 있냐? "
" ...아, 뭐래. 그런 거 없어. "
" 아까는 뭐, 있긴 있다며. "
" ...아, 그냥. 있어. 근데 그 사람 좀 이상해. "
" 왜? "
" ...어, 약간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고 해야 되나. "
" 뭐? "
" 몰라, 어떨 땐 막 아무 말도 안 하고, 어떨 땐 욕만 하고, 어쩔 땐 통화하면서 자기 돈 보고 만나는 거 다 안다, 뭐다 하면서, 아 그냥 이상해. "
" ...? "
" 그리고 같이 다니는 사람들은 더 이상해. "
" 왜? "
" 어... 한 명은 욕밖에 할 줄 모르는 것 같고, 한 명은 자기가 말 걸어놓고 자기가 신경질 내. 둘 다 이상해. "
" 그 잘생겼다는 사람 이름은, 알아? "
" 전정국. "
" 정전국? "
" 아니, 전정국. "
뒷정리를 끝내고 수정이와 밖으로 나왔다. 아직은 쌀쌀한 길거리를 거닐며 소소한 얘기를 나눴다. 남자에 관한 얘기, 지나가는 여자들에 대해서 얘기한다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아이의 뒷담화를 한다거나. 이런 시답지 않은 얘기들을 나누며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다보니, 어느새 버스가 도착했고, 버스에서 내려 몇 분 걷다보니, 집에 도착했다.
" 다녀왔어요. "
"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와? 사람 별로 없었어? "
" 이게 일찍 온거야? 지금, 11시 12분 이거든요? "
" 야자하는 애들이랑 비슷하게 끝나네, 와서 밥먹어. "
" 아까 컵라면 먹었어. "
침대에 쓰러지듯 기대 핸드폰을 켰다. 밝기가 최대로 설정되어 있던 탓에 눈이 찌푸려졌다.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가 익숙한 전화번호를 하나 입력했다.
" 엄마, 뭐 해? "
" 밥 먹고 누워있지. 여기는 잘 시간 한참 지났어. "
" 마취는, 다 깼나? 팔 안 아파? "
" 아프지. 그래도 너 낳을 때보단 덜 아파. "
" 뭐야 그게, 아. 엄마 그거 알아? "
" 응? "
" 나 아빠 피시방에서 알바해, 집 오면 11시야. "
" 미쳤니? "
" 나도 진짜 하기 싫어, 근데 안 하면 아빠가 용돈 안 준대잖아. 싫다고 해도 막 하래, 짜증 나. "
" 엄마 퇴원하면 알바부터 그만둬. "
/
* Ep 6
오랜만에 맞는 토요일의 아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상쾌했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폈다. 여유롭게 거실로 나가 물을 마시려는데, 냉장고에 붙어있는 포스트잇이 눈에 띄었다.
' 오늘 알바 아빠가 '
어쩐지 집에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다 했는데, 아빠가 피시방 카운터를 봐주신다고 한다. 기분이 좋아져 쿠션을 하나 들어 소파에 몸을 던지듯 누웠다. TV를 켜 채널을 수 없이 돌렸지만 마땅히 볼 만한 프로그램이 없었다. 핸드폰을 켜 페이스북에 접속을 해 보았지만, 볼 게 없었다. 자기들끼리 돌려 사귀는 건지, 몇일 전에 연애중이 떴던 여자아이가 이번엔 다른 남자와 연애중이란다. 마땅히 연락할 사람도 많지 않았기에 핸드폰을 꺼 버렸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잠이 든 건지, 다시금 눈을 떠 시간을 확인 해보니 2시가 훌쩍 넘어버린 시간에 마음이 허해졌다. 휴대폰을 켜 알림들을 확인해보는데, 부재중 전화가 세 통이나 와 있었다.
- 아빠 │ 13 : 17
- 아빠 │ 13 : 41
- 아빠 │ 14: 25
아빠에게 부재중 전화가 이렇게 많이 올 리가 없는데, 서둘러 전화번호를 입력해 아빠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통화 연결음이 거실에 울려 퍼졌다.
- 아빠, 왜 전화했어요?
- 별일은 아닌데, 오늘 친구들이랑 약속 있니?
- 아니요, 없는데.
- 그럼 피시방 올 수 있지?
- ...왜요?
- 아빠 대신 좀 나와달라구.
- 아, 왜요. 아빠가 한다며.
- 오늘 엄마 병문안 가야해, 올거지?
- ...
- 끊는다.
/
툴툴거리며 마시던 우유를 싱크대에 쏟아 버리고 화장실로 들어가 양치질을 하기 시작했다. 주말이라고 평소엔 입지도 않는 치마를 입었다. 누가 보면, 데이트 나가는 줄 알만치 화사한, 치마를 입었다.
" 저 왔어요. "
" 어, 키 받아. 아빠 간다. "
" ...네. "
" 아, ㅇㅇ야. "
" 어? "
" 너 요즘 만나는 남자애 생겼니? "
" ...아니요? "
" ...그래? "
" 왜요? "
" ...아까 어떤 남자애가 너 찾는 것 같길래. "
" 누가요? "
" 아빠도 몰라서 물어봤잖아, 키 되게 크고, 잘 생겼던데. "
" 아, 누구야... "
아까 아빠가 내게 던지듯 한 말이 신경이 쓰여 일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가 나를 찾았다니, 그런 남자가 왜 나를 찾냐, 이 말이다.
나를 찾으려 이 피시방에 올만한 주위의 남자들을 떠올려 보는데,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없다. 썸은커녕 연락하는 남자도 없는 내가, 무슨. 복잡한 마음을 추스르려 모니터 화면에 머리를 기대고 앉아 있는데, 언제 들어와 있던 건지 전정국이 카운터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급하게 얼굴을 떼고 일어나 머리를 정돈했다.
" 저기... "
" 네? "
" 컵라면, 하나요. "
그냥 저 자리에서 콜 누르면 되는데. 라면 수프를 뜯다가 고개를 드는데, 전정국이 있는 곳에 눈길이 닿았다. 그러고 보니 진짜 잘생겼다. 저렇게 생긴 사람들은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다닐 것이다. 같이 다니는 사람들만 봐도, 평소 행실이 짐작이 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정이 뚝 떨어져 고개를 한 번 세차게 흔들었다.
" 여기 컵라면 나왔습니다. "
" 저, 저기요 누나...! "
" ...? "
" 어, 그니까... "
" ... "
" 번호 좀 알려주세요. "
누가 내 머리를 세게 가격한 듯 띵해졌다. 지난번 덩치 큰 남자아이가 번호를 요구했을 때와는 다른 느낌의 충격이 느껴졌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싫다고 했다가 며칠 뒤에 뒷골목으로 끌려가 매장을 당한다거나, 번호를 줬다가 미저리처럼 사사건건 내게 붙어 다니는 건 아닐지, 별 쓸데없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다. 게다가 내가 누나, 라니. 어림잡아 고3은 되는 줄 알았는데, 누나 라니,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 나답게, 진짜 ㅇㅇㅇ 다운 대답을 해 버렸다.
" ...왜요? "
" ... "
" ... "
" ...그냥. "
" ...네? "
" 첫눈에 ㅂ..반했어요. "
" ... "
" ... "
" ...핸드폰 주세요. "
" ...? "
" 번호 달라면서요. "
" ...여기."
" ...여기요. 또 뭐 필요하신 거 있으시면 콜버튼 눌러주세요. "
아무렇지 않은 척 쟁반을 들고 카운터를 향해 걸어갔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짓고 카운터 의자에 앉았다. 표정을 숨기려 눈을 감자마자 심장박동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쿵쿵, 소리가 귓가에 전해졌다. 손님이 들고 온 군것질거리들을 계산을 하는데, 바코드를 찍는 손이 벌벌 떨렸다. 거스름돈을 전해주는 손이 덜덜 떨려 하마터면 바닥에 동전을 모두 쏟을 뻔했다. 춥지도 않은데 몸이 벌벌 떨렸다. 방금 일어난 일이 무슨 일인지 이미 나가버린 정신을 다잡아 곱씹어 보기 시작했다. 전정국이 내게 번호를 요청했다. 싸가지 없이 이유를 되물었다. 첫눈에 반했다며 번호를 요청했다. 번호를 줬다. 약 두어 시간 동안 정신이 나간 채로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알바 오빠와 교대를 한 후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 수정아.
- 왜 주말에 전화하고 지랄이야.
- 수정아.
- 왜.
- 나 번호 따였어.
- 너 어디 아파?
- 전정국 한테 번호 따였어.
- ...어?
- ...
- ...
- ...
- 내일 만나서 얘기해.
* Ep 7
" 미친 거 아니야? "
" 몰라. "
" 핸드폰 줘봐. "
" 아직 연락 안 왔어. "
" 아 뭐야, 자기가 먼저 연락 해야하는 거 아님? "
" ... "
" 걔가 뭐라고 하면서 땄어? "
" ...첫 눈에 반했대. "
/
카페에 앉아 수정이와 수다를 떨며 앉아 있다 보니 어느새 시간은 5시의 반을 향해 접어들었다. 분명 번호는 어제저녁에 따였는데, 번호를 딴 건 정작 자기면서 연락 한 통 없다. 아빠에게 전화를 하려 휴대폰을 다시 한 번 키는데, 친구가 아닌사람 에게서 카톡이 한 통 와 있었다.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아 마시는 정수정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카톡을 확인했다.
" 나, 전정국 한테 카톡 왔어. "
" 미친 뭐라고? "
" 몰라, 이거 봐봐. 답장 뭐라고 하지? "
" ...뭐라고 답장하지? "
" 뭐야 얘, 존나 싸가지 없다. "
" 아니, 뭐라고 답장해? "
" 너 알아서 해. 근데, 얘 그렇게 좋은 애로 보이진 않는데. "
" 아, 뭐라고 답장해? 아 빨리, 뭐라고 해? "
" 야 나 빙수 하나 시키고 옴. "
" 야 정수정, 아 뭐라고 하냐고...! "
카톡을 읽어버린 탓에 1이 사라진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혹시 전정국이 갑자기 카톡을 보내면 어떡하지, 하면서 카톡 방을 나갔다 들어왔다, 바보 같은 짓을 반복했다. 남자에 대해선 쑥맥이었던 탓에 어떻게 답장을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영영 이렇게 답장을 하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무슨 말이든, 아무 말이나 내뱉어야 했다. 눈 딱 감고 한 번만,
" ... "
" ... "
" 야, 답장했어? 뭐라고 보냈어? "
" ...어때? "
" ... "
" ... "
" ... "
" ... "
정수정의 표정이 알 듯 말듯 알 수 없는 표정이긴 했지만, 딱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망했다는 거다.
/
수정이와 헤어져 거리를 멍하게 걸었다. 어제 있었던 일, 오늘 있었던 일들이 자꾸만 생각나 정신을 다잡을 수가 없었다. 홀린 듯 집으로 향해 걸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TV를 보고있는 잔뜩 상기된 아빠가 눈에 띄었다. 인사를 건넬 틈도 없이 어제, 오늘 있었던 일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 한데 섞였다. 그러다 문득 어제 아빠가 내게 말했던, 어떤 남자가 피시방에서 나를 찾았다는, 그 얘기가 떠올라 궁금증을 품고 말을 건넸다.
" ...아빠. "
" 응? "
" 어제요, 나 찾았다는 남자, 그 사람 어떻게 생겼어요? "
" 그걸 어떻게 기억해, 갑자기 왜? "
" ...아니에요. "
옷을 갈아입기도 전에 화장실로 향했다. 옷을 모두 벗고 욕조로 들어가 샤워기를 켜, 얼굴을 향해 쏟아져내리는 물을 맞고만 있었다. 첫눈에 반했다며 접근을 해오는 남자는 가차 없이 차 버리겠다는 다짐을 한지 며칠 채 지나지도 않았는데. 샤워를 끝내고 화장실에서 나와 잔뜩 젖은 머리를 말렸다. 오늘은 왠지 일찍 자야 할 것만 같아 침대에 누웠다. 엎드려 누워 베개에 얼굴을 가두자마자 전정국 생각이 계속해서 나는 바람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더 이상 인연을 만들지 말고, 선을 그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마음먹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전정국에게서 다시 한 번 연락이 오기 전까진, 분명 그랬다.
+) 내용상 방탄이 형제라면과 카톡 날짜가 바뀐 점 양해 부탁드려요 !
아 그리고, 제가 몰랐던 사이에 초록글에 올랐었더라구요, 감사합니다!
귀한 포인트, 시간 내서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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