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줘.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네가 날 보고 말했다. 싫어, 니 머리 축축해. 무신경하게 읽던 책에 다시 눈을 돌리니 뾰로통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게 눈에 훤하다. 머리 말리면 안아줄 거야? 아니나 다를까 목소리가 퉁명스럽게 울린다. 짧게 고개를 끄덕이니 그 자리에서 머리를 휘휘 털어버린다. 아 물 튀잖아! 책이 젖지 않게 급하게 닫은 뒤 짜증을 내니 배시시 웃으면서 말한다. 니가 말려줘.
윙- 하고 돌아가는 드라이기 소리는 언제 들어도 시끄럽다. 긴 머리를 두피부터 살살 말리니 졸린 지 눈을 깜빡깜빡 느리게 떴다 감는다. 이럴 줄 알았다니까. 끝이 다 갈라진 머리를 말리고 있으니 예전 일이 생각났다.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
언 7년이란 시간이 지났다. 처음 J의 머리는 짧은 단발이었고, 나는 지금과 별 다를 바 없었다. 아, 다른 점은 그 땐 안경을 잘 쓰지 않았다는 정도. 눈이 안 좋은 데에 비해 난 안경을 잘 쓰지 않았다. 어쩌다 한번 운전할 때라든지, 논문을 작성할 때만 잠깐씩 쓰는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사람 얼굴을 확인 할 땐 항상 인상을 찌푸려야만 했다. 한참을 찡그린 체 바라보다 아, 너 누구구나. 할 수 있었다.
별 다를 거 없던 날이었다. 당시 만나던 여자와 저녁 약속을 잡은 상태였고 슬슬 결혼도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애초에 이성에게 많은 관심이 없었고 그저 오래 되었으니 결혼해도 되겠지 라는 안연한 생각이 다였다. 그 별 다를 거 없는 날이 문제였다.
“조교님, 이거 드세요.”
작은 음료 캔에는 포스트잇이 붙어있었고 건네준 여자는 머리를 헝클며 급하게 자리를 빠져나갔다. 일은 얼굴을 살펴볼 시간도 없이 빠르게 일어났다. ‘조교님 안경 쓰고 다니세요. 인상 찌푸리고 다니면 심술 할아버지 된대요^.^ 밑에 번호는 음료수 맛있으면 연락주세요.’ 어린애다운 발상과 어린애 같은 말투. 포스트잇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저녁 약속에 맞춰 일을 급하게 마무리하고 차에 타니 문자가 와있었다. ‘다음에 만나자. 약속이 생겼어.’ 무미건조한 문자에 짧게 긍정을 표하고 뒷머릴 헝클었다. 시간이, 비었다.
한가로운 게 싫다고 하면 정상적인 사람 취급은 안 해주겠지. 그 날에 맞춰 짜인 시간표대로 움직여야 하는 내 성격에 ‘빈 시간’은 골치 아픈 변수일 뿐이다. 차 시트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고 있다 문득 포스트잇이 생각났다. 부르면 나올까?
많아야 스물 대여섯 짜리 여자애한테 무슨 마음이 동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머니에서 포스트잇을 꺼내 번호를 찍어 통화버튼을 눌렀다. 몇 번의 신호음이 가고 달칵 소리와 함께 여보세요? 하는 얇은 목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누구세요? 하는 말도 들렸다.
“아… 저, 나 강조굔데….”
당황했는지 버벅이는 상대의 목소리가 듣기 좋아 슬며시 웃으며 우리 만날래? 하고 물었다.
*
처음 목적은 이게 아니었다. 하지만 차에 타며 식 웃는 여자의 얼굴을 보니 이상하게도 괴롭히고 싶어졌다. 어디 가는 줄 알고 탔어? 심술궂게 물으니 여자가 입을 가리며 웃었다.
집가서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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