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트/현성] 여름안에서 06 |
문득 눈이 떠졌다. 시끄럽지도 누가 건드리지도, 그렇다고 알람이 울린 것도 아닌데 눈이 떠진 이유는 부산의 아침 햇살 때문이었다. 어젯 밤 성규때문에 평소 잘 하지도 않던 남걱정에 고민까지 하느라 테라스에 있는 의자에 앉아 그대로 자버린 모양이다. 우현이 기지개를 켜며 푹신한 등받이를 뒤로 한채 일어섰을 때 우현의 몸에서 무언가 툭하고 떨어져나갔다. "이게 뭐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집어든 것은 낯선 담요였다. 검은색 바탕에 가운데에 하얗게 고양이가 새겨진 이런 귀여운 담요를 우현이 가지고 왔을 리도 없고 그렇다고 호텔에서 비치한 물품이라기엔 너무 유치했다. 어차피 담요를 덮어주었을 사람은 정해져있었다. 어제 우현이 속상한 마음에 날 싫어하냐고 그래서 말을 잘 안하는 거냐고 조금은 화내듯이 말해버린 성규. 성규밖에 없었다. 우현은 담요를 집어들고 그대로 성규가 자고있을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며 잠깐 확인한 시계는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는데 의외로 아침잠이 없어보이던 성규가 깨어있을까하고 생각하며 들어간 방에 성규는 곤히 자고있었다. 성규도 어제 밤 늦게까지 잠을 설친 모양이다. 침대 옆에 자리한 스탠드에는 맥주며 먹다 남긴 소시지같은 것들이 쟁반위에 널부러져있었다. 우현은 더웠던건지 얇은 이불을 차고 자고있는 성규를 보고 다시 이불을 끌어올려 덮어준뒤 한숨을 쉬곤 스탠드에 있는 쟁반을 들고 다시 거실로 나왔다. 이제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하다. 성규에게는 자기가 싫은거냐며 쏘아붙여서 마주치면 어색한 상황인데 성규는 다리가 다쳤다. 최악이다 최악. 이라고 생각하며 우현은 쟁반을 식탁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놓았다. 사실 우현은 성규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말해도 아직은 성규를 자신의 방에서 쫓아낼 생각이 없었다. 일단은 자신이 와서 생활하라고 한데다가 제 실수때문에 다친 성규를 내보내는 것은 너무 무책임하게 느껴져서 싫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 우현은 소파에 앉은 채 고개를 뒤로 젖히고 눈을 감은 채 깊은 생각에 빠졌다. 괜히 그런 말을 해서 성규와 자신의 사이가 어색해져버린것같다. 아니 아직은 우현만 어색하다고 느끼는 걸지도 모른다. 성규는 자고있으니까. "우현씨 일어났어요?" 갑자기 우현의 바로 위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우현이 놀라 고개를 들고 몸을 똑바로 세웠다.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눈을 감고 깊은 생각에 빠져있던터라 우현은 누군가 자신에게 오고있다는 기척을 느끼지 못한것이다. 놀란 가슴을 추스리며 본 성규는 어제와 뭔가 조금 달라져있었다. 그게 뭔지 알듯 말듯한 느낌에 우현은 대답을 해야한다는 생각도 잊은 채 성규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유심히 훑어보았다. 그런 우현의 시선이 부담스러울 법도 하건만 성규는 그 시선을 꿋꿋이 받아내며 우현과 대각선에 위치한 소파에 앉았다. 아직도 다리는 조금 불편해보인다. "왜요, 저한테 뭐 묻었어요?" 그래, 알았다. 성규에게는 어제 보이지않던 자신감이 생겨있었다. 더불어 여유로움까지도. 우현이 그런 성규의 달라진 모습에 놀랍기도하고 새롭기도 한 마음에 빤히 성규를 보았다. 아니, 아무것도 안묻었어요. 하고 대답하면서. "근데 우현씨. 제가 우현씨보다 더 어린거 알아요?" 성규의 뜬금없는 말에 우현은 자신은 의식하지 못햇지만 조금은 바보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우현의 표정이 재미있다는 듯 성규는 풋, 하고 웃더니 우현에게 한번도 보여준적없던 눈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럼 저한테 반말해도 된다는 것도 알겠네요?" 성규의 말에 우현은 또 한번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하룻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어제 알던 김성규가 맞는 지 헷갈릴 정도다. 어제까지는 뭘해도 소심소심열매를 먹은건지 쭈뼛대고 목소리는 개미보다 작아서 몇번을 되물어야했고 웬만해서 말을 먼저 꺼내는 일도 없던 김성규가 아닌 것같았다. 그러니까 우현은 이렇게 바뀐 성규가 어쩐지 반갑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알았으면 성규야- 해봐요" 이건 또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 그러니까 우현이 하룻밤사이 변한 성규에 놀라고있을때 성규는 우현에게 뭐라고 계속 물어왔고 우현은 그게 무슨 말인지 생각지도 않은 채 고개를 끄덕거리기만 했다. 그 결과 지금 성규는 우현에게 반말을 하라고 시키고 있는 중이다. 평소 직업도 직업이지만 회사에서는 어린 편이기 때문에 반말을 쓰는 일이 극히 드문 우현에게는 그게 참 어려운일이다. 이제와서 내가 왜 해야하냐고 반박하기엔 이미 고개를 끄덕여버렸기때문에 늦었다는 걸 안 우현은 일단 반말을 시도해보기로했다. 어젯밤 자신이 성규에게 했던 말 때문에 고민하던건 다 잊어버리고. "성..성규야" 말을 마친 우현이 크게 쉼호흡을 했다. 정말 간만에 쓰는 반말이다. 우현은 밀려오는 쪽팔림과 어색함에 자신의 귀가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고 식히려 애를 썼다. 성규는 그런 우현의 모습을 즐기는 듯 했다. 빙글빙글 웃음만 짓고있으니. "왜요 우현형?" 우현이 얼어붙었다. |
잠시 연재 중단이라고 했는데 잠깐 시간이 나서 올려요.
시간이 많이 없어서 짧은건 이해해주세요ㅜㅜ
또 언제가 될지 모르겟지만 다시 찾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