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시고 가시... 오늘도 포장이죠?"
"네."
"허브티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계세요."
허브티를 포장해 드리면 감사하다 하고 싱긋 웃으면서 나가곤 했었다.
항상 알바 퇴근시간인 7시 바로 이전에 와서는 허브티를 사갔다.
겨울이여도 인기 없는 허브티를 이 찌는듯한 무더위 여름에 사가는건 그 남자뿐이었다.
사실 난 카페에서 파는 허브티나, 티백으로 우려 먹는 허브티랑 다를게 없다고 생각하는데..
근데, 왜 오늘은 안오지?
한달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해가 지나 비가 오나 허브티를 사가시길래 얼굴도 다 외웠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친근감이 생긴건가, 그 남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민석아, 오늘 왠 일이야? 7시 넘어서도 집에 안가고?너무 일만 하는거 아냐?ㅋㅋㅋㅋ"
"아.. 이제 막 갈려구요. 그럼 저 퇴근할게요!"
"밖에 비 오니깐 조심해서 가~"
비?
알바복을 갈아입고 짐을 챙겨서 밖으로 나오니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비가 쏟아붓고 있었다.
집에는 지하철을 타고 가야되는데 지하철역이 가까운 것도 아니고.
가는 길에도 주위에도 편의점처럼 우산 파는 곳이라고는 없고.
택시를 탈 돈도 없고.
그냥 뛰어야겠다
머리를 손으로 가리고 비를 뚫고 지하철역으로 뛰어갔다.
가렸던 손이 무색하게 머리는 이미 샤워를 한 듯 다 젖었고, 옷 상의도 거진 다 젖었다.
아씨.. 새 옷인데
집에 가면 빨랫감이 또 늘겠다.
그런데, 그 때 머리를 계속 적시던 비의 감촉이 멈추고 누군가가 내 어깨를 감쌌다.
어..?
올려다 보니 그 허브티 남자다.
"미안해요, 늦었죠? 오늘 업무가 늦게 끝나서.."
"..어.. 저.. 그.."
내가 기다렸단 걸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늦었다고 사과를 한다.
맞긴 맞으니깐 아니라고는 못하고 멍하니 올려다 봤다.
"집이 멀어요?"
"그.. 지하철.."
"지하철 타야 돼요? 지하철역이면 여기서 더 걸어야 할텐데.. 그러면 우리집은 여기 근처니깐 우리 집에 들렸다 가요."
"..네?"
"어차피 지금 이 상태로 지하철역 가면 사람들이 다 쳐다보고 민폐예요, 그거. 집에 들려서 씻고 옷 갈아입고 우산 빌려줄테니깐 그 때 가요."
"저.. 그게.."
"자 빨리 가요. 감기 걸리면 안되잖아요?"
거절하기도 전에 어깨를 감싼 손에 더 힘을 주어 자신에게 밀착시키며 비를 피하게 하더니 앞으로 걸어간다.
어 어 하면서 따라가니 얼마 안걸어 한 주택 집이 보였다.
근데 이렇게 붙어있으면 옷 안 젖으실려나..
"여기예요."
"우와.."
남자 혼자 살기엔 많이 커보이는 집이다.
1층도 아니고 2층이라니
매일 허브티를 사갈 때 부터 돈이 많다는 건 알았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신발 벗고 빨리 들어와요."
"ㄴ..네? ..네.."
신발을 벗고 쭈뼛쭈뼛거리며 들어가니 외적으로 봤던 것보다 안이 더 화려하다
"왜 그렇게 계속 두리번거려요, 빨리 샤워하고 나와요. 감기걸릴라."
두리번 두리번 거리며 집을 둘러보고 있으니깐 빨리 샤워를 하라며 날 화장실에 집어넣었다.
화장실도 완전 크네..
남의 집에서 샤워를 하기 좀 불편하다는 생각도 잠시, 젖은 옷을 벗어내고 미지근한 물로 몸을 씻었다.
따뜻하면서도 시원한 물에 몸이 풀리는 느낌을 받으며 바디워시로 샤워볼에 거품을 내어 몸을 구석구석 닦았다.
뭔가 그 남자 얼굴이랑 어울리는 라벤더 향이다.
몸도 다 헹구고 머리까지 감고 옷을 입으려 하는데 옷이 다 젖어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속옷과 옷을 달라고 해야하는데..
문을 아주 조금만 열고 고개를 내밀어 사방을 살폈는데 그 남자가 안 보인다.
수건을 밑에 두르고 밖에 나갈려고 발을 내미니 발에 걸리는 것이 있다.
내려다보니깐 가지런히 개여있는 옷과 속옷이다.
다시 습기가 가득 찬 화장실로 들어가서 속옷을 입고 조금 기장이 긴 듯한 티셔츠와 반바지를 입었다.
흰 수건으로 머리를 탈탈 털고 머리에 걸고 나왔더니 마찬가지로 그 남자가 안 보인다.
"어디 가셨지.."
거실에도, 부엌에도, 현관쪽에도 없다.
2층으로 올라가서 방을 몇 개 열다가 살짝 열린 문 틈 사이로 불빛이 새어나오는 방을 발견하고 조용히 가서 노크를 했다.
똑똑-
몇 초가 지나도 아무 반응이 없다
똑똑똑-
없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보니 기다리다 잠이 든건지 침대에 옆으로 누워서 잠이 들어있었다.
책상 위엔 닫혀있는 노트북 1대와 화면이 엄청 큰 컴퓨터 한대.
여러 서류들도 쌓여있고 펜들도 나뒹굴고 있었다.
책상위에 [무역학개론]이라고 적혀있는 두꺼운 책을 집어드니 표지에 'LUHAN' 이라고 적혀있다.
루한..? 이름인가
외국에서 쓰는 예명인건지 실제 자기 이름인건지 모르겠다.
책을 내려놓고 의자에 젖은 수건을 걸어놓은 다음 침대에 가까이 가서 앞에 쪼그려 앉았다.
깨워야 하나, 깨우기엔 너무 새근새근 자고 있어서 깨우지를 못하겠다.
갈색 톤의 윤기 있는 머리
진한 쌍커풀
까맣고 긴 속눈썹
눈을 감아도 풍부한 애굣살
예쁘고 높은 코
얇고 색깔이 고운 입술
진짜 잘생겼구나.
항상 허브티를 사갈 때마다 잘생겼다고 여자 알바생들도 꺄꺄 대었으니 알고는 있었지만 가까이서 보니 더 잘생겨 보인다.
괜히 심장이 두근두근 뛰고 얼굴과 귀가 달아오른다.
입술 진짜 예쁘네
색깔도 모양도 굵기도 진짜 예쁘다.
한번만 만져본다고 깨진 않겠지?
손을 뻗어서 루한 씨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살짝 건들였는데 말랑말랑한 입술의 감촉이 느껴진다.
입 맞추고 싶다
아 안되는데
지금도 혹시 깰까봐 숨을 엄청 조심스럽게 쉬어가며 입술을 만진건데 입술이 닿으면 깰지도 모른다.
입을 맞추고 싶은 욕구를 누르며 계속 입술을 톡톡 건들이니 루한 씨 표정이 살짝 일그러진다.
헐 깼나?
황급히 손을 떼니 다행히도 다시 평온한 얼굴을 유지하며 잠을 청한다.
몰래 한번만, 딱 3초만 입을 맞춰보면 안될려나?
깨실지도 모르는데, 안된다.
아, 한 번 정도면 안 깨실 것 같은데.
그래도 안되겠지?
내면의 자아들끼리 싸우며 갈등을 하고 있는데 루한 씨가 입술을 오물거린다.
아,
한 번 정도면 괜찮겠지
숨을 죽이고 조용히 다가갔다.
세상 모르고 잠이 들어있는 루한 씨의 감은 눈이 심장을 더 요동치게 한다.
한 번만 할게요, 루한 씨.
미안해요 진짜.
눈을 감고 아주 조심스럽게 루한 씨의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개었다.
숨도 못 쉬고 입술에 내 입술을 포갠 채 마음속으로 3초를 세었다.
그리고 떼려는 찰나, 큰 손이 내 뒷통수를 눌러 입술을 떼지 못하게 한다.
너무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맞춘 채 루한 씨를 바라보니 루한 씨가 감고 있던 눈을 살며시 뜨고 날 바라본다.
그리고는 싱긋 웃는데, 다시 볼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끼며 어떻게 해야할지 눈만 굴리고 있으니 입술을 떼고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다.
"민석 씨, 맞죠?"
어? 내 이름을 어떻게 안거지?
쪼그려 앉았던 다리가 힘이 풀려 바닥에 주저 앉은 채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눈을 크게 뜨고 고개를 들어 루한 씨를 봤다.
"할 말이 있어요."
할 말?
감히 나에게 입을 맞추다니 이 요망한 것?
망측한 알바생 같으니?
불안과 설레임이 반반 섞여서 심장이 더 크게 뛴다.
루한 씨는 몸을 돌려 자기 전에 읽는 책인지 침대 바로 옆에 있는 책을 하나 집어들어 나에게 내밀었다.
뭐지? 하는 듯한 표정으로 루한 씨를 보고 있으니 루한 씨가 턱으로 책을 가리키며 가져가라고 하는 것 같다.
책을 받고 제목을 보니 하얀 표지에 하늘색글씨로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이라고 적혀 있다.
어느 한 부분에 책갈피가 꽂혀있길래 책갈피를 잡고 그 부분을 열었다.
보통 책이라면 흰 종이에 검은색 글씨가 가득가득 채워져 있어야 할텐데 그 부분은 다르다.
흰 종이에 검은색 글씨로 가운데에 딱 한줄이 쓰여져 있다.
'파도가 바다의 일이라면, 너를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일이었다.'
이게 뭐지?
왜 나한테 이걸 보여주는거지?
하고 싶다던 말이 설마 이건가?
루한 씨가 날 생각한다고?
진짜?
귀의 온도가 급상승하는 것을 느끼며 눈알을 도륵도륵 굴리고 있으니 루한 씨가 날 불렀다.
"민석 씨."
"ㄴ..네?"
떨리는 목소리로 고개를 들어 루한 씨를 바라보니 날 지긋이 쳐다본다.
루한 씨의 하얀 피부가 달아올라 있다.
"얼굴이 많이 빨개졌네요."
"아.."
안 말해도 아는데, 왜 말해요 괜히 부끄럽게.
부끄러워서 책을 내려다 놓고 두 손으로 볼을 감쌌다.
아 부끄러워 어떡해
"민석 씨."
얼굴 진짜 못 쳐다 보겠다
"민석 씨?"
아 못 보겠는데 왜 계속 불러요
"빠오즈."
빠... 뭐요?
무슨 말인지 몰라서 여전히 두 손으로 볼을 감싼 채 올려다 보니 루한 씨가 웃는다.
"빠오즈.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예요."
갑자기 그건 왜 말하는 거지.
근데 빠오즈가 중국어인가? 배웠던 기억이 있는데 왜 막상 뜻이 안 떠오르지
빠오즈.. 빠오즈가 뭐더라...
"민석 씨는 꼭 만두 같아요."
아 그래 만두! 빠오즈는 만두였지.
어..?
빠오즈가 제일 좋다고
만두가 제일 좋다고
내가 만두 같다고
내가 빠오즈 같다고
내가... 제일 좋다고?
"말 한마디 없네."
다시 고개를 숙이고 눈만 굴리고 있으니 루한 씨가 시무룩한 목소리로 말한다.
부끄러워 죽겠는데 무슨 말을 하겠어요.
"대답 좀 해봐요. 민석 씨?"
"... 네?
"난 허브티보다 만두가 더 좋아요."
"ㅇ.. 어.. 그.."
무슨 말을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심장은 진짜 100m 계주한 것 처럼 뛰고, 아 숨고싶다.
"아직 이름도 모르는 나랑, 연애할래요?"
살려주세요 하느님
심장마비로 곧 당신 곁에 갈 것 같아요 정말로.
"싫어요?"
"아니요!!!"
싫다는 루한 씨의 물음에 다급해져서 갑자기 큰 소리로 아니라고 외쳤다.
큰 소리에 놀란건지 루한 씨 눈이 사슴처럼 커졌다.
"저.. 근데 이름 아는데.."
"네?"
아이고 민석아 그걸 왜 지금 말해
뇌를 걸치지 않고 생각한 그대로 입 밖으로 족족 나오게 하는 혀가 원망스럽다.
"루한 씨.. 아니예요? 책상 위에 책.. 이름.."
말할 거면 똑바로 말할거지
또 어벙어벙하게 단어만 내뱉고 있는 내가 너무 부끄럽다.
"아.."
당황한건지 작게 감탄사를 내뱉는다.
이게 아닌데
"아, 태클건게 아니라요! 그니깐.. 그.. 어.. 이름이..."
"다시 말할까요?"
'ㄴ..네?"
"나랑 연애해요, 김민석 씨."
슈밍아 미안해 오늘 사료 못 줄 것 같아
여기서 심장마비로 죽을 것 같아
| 작가의 글 |
안녕하세요! 휘슬입니닿ㅎㅎㅎ 첫작이라서 그런지 똥망한것 같은 글이지만.. 그래도 20p나 내고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알신 해주시면 감사해요 헤헤 혹시 번외로 방앗간이 지어질지도 모르니깐요..(의심미) |
이 시리즈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공지사항
없음
모든 시리즈
아직 시리즈가 없어요
최신 글
위/아래글
현재글 [EXO/루민] 허브티보다는 만두 (부제 : 첫키스) 9
12년 전공지사항
없음

인스티즈앱
멜론뮤직어워드 EXO 무대 댓글반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