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해요. 여러분...ㅠㅠㅠㅠㅠ 태형이 글도 초록글에 올랐어요ㅠㅠㅠㅠㅠㅠ 진짜 너무 사랑합니다ㅠㅠㅠㅠㅠㅠ 진짜 살다보니 이런 날도... 하..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아이유 - rain drop
방탄 연애 시뮬레이션
(부제; 민윤기, 그리고 학생부)
질렀다. 마침내 질렀다. 나를 호갱이라고 욕해도 어쩔 수가 없다. 사실 진짜 호갱이 맞거든. 집에 돌아오자마자 문을 꼭 잠그고는 컴퓨터 앞에 앉았다. 창문도 잘 닫혀 있는지 확인하고, 괜히 누가 쳐들어올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가방에서 씨디를 꺼냈다. 방탄 연애 시뮬레이션. 촌스러운 굴림체로 쓰여 있는 외관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절로 웃음이 나왔다. 이걸 사려고 용돈을 얼마나 아끼고 아끼고 아꼈는지.
얼마 전, 완전 난리가 났었다. 'TOTO' 라고, 우리나라에서 게임을 제일 잘 만드는 회사가 하나 있는데, 그 회사에서 낸 신제품 때문이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인기가 많았고, 곧 입소문을 타고 점점 더 인기가 많아졌다. 그래서 이번에 리미티드 에디션으로 확장판을 냈는데, 그걸 내가 산거다. 엄마가 알면 기함을 하고 내 등짝을 때릴거다. 안봐도 비디오인 엄마의 반응에 괜히 오싹해지는 기분이었다. 아, 그래서 내가 산 게임이 뭐냐면, 바로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방탄 연애 시뮬레이션. 이름도, 외관도 촌스럽기 그지없다. 글씨체만 말했지만 색도 완전 안이쁜 분홍색이다. 진짜 센스하고는... 방탄이 앞에 붙는 이유를 두고 사람들의 추측은 다양했다. 제일 유력한 게 뭐였더라, 아, 사장 이름이 방토토랬나? 방씨의 손을 탄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라고 방탄 연애 시뮬레이션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설이 가장 유력했다.
어쨌든, 이 게임이 입소문을 탄 것은 이유가 있다. 바로 가상의 사람이 아닌 현실의 사람과 연애를 하게 해준다는 것. 그러니까 NPC를 공략하는 게 아니라 진짜 플레이어를 공략하는 거다. 각자 게임에 접속해서 마음에 드는 사람을 찍고, 그 사람을 공략하는 건데 꽤 성공률이 높다고 한다. 어짜피 차여도 게임이니까 대충 NPC였던 척 둘러대면 그만이고, 공략 성공하면 이제 현실에서 만날 방법을 모색하는 거고. 공략 상대는 본인이 선택해도 되지만, 이상형을 입력하거나 그냥 적당한 상대를 찾고 싶으면 게임 내에서 물색한 뒤 직접 정해주기도 한다. 원래는 장소도, 직업도 선택할 수 있는데 이번 리미티드, 그러니까 한정판은 특별히 학교판이다. 그러니까 학교 내에서만 공략 상대를 정할 수 있다는 것.
처음 게임이 나왔을 때는 뭐, 모솔들을 위한 게임이다. 이런 거 창피해서 어떻게 하냐. 이런 반응이 많았는데 성사율도 높아지고 점점 입소문 타니까 이걸 안 해본 사람이 오히려 바보 취급 당하는 거다. 학교에서도 맨날 이 얘기만 들어서 언젠가 해봐야지 했는데, 돈이 없어서 못 사고 있다가 이번 기회에 겨우 샀다. 그것도 한정판. 아싸! 내일 친구한테 자랑해야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씨디를 꺼냈다. 아, 근데 또 씨디도 핫핑크 색이야. 방토토라고 했나? 하여튼 취향하고는. 요즘 시대에 씨디로 게임 만드는 사람은 또 어딨어. 혀를 한 번 쯧, 차고는 컴퓨터에 넣었다. 진짜 마지막으로 문을 확인하고는 이어폰을 컴퓨터에 연결시켰다. 곧 파일 하나가 뜨더니 저절로 실행된다. 엄마, 엄마 딸 연애하러 갔다올게. 아싸, 모쏠 탈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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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STEM] 이름을 입력해주세요.
온통 깜깜한 공간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는데 갑자기 하얀 글자들이 둥둥 떠오르더니 한 문장을 만들어낸다. 가만히 바라보다가 어떡하지. 하며 잠시 고민했다. 말로 해도 되는 건가? 고민하다가 친구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말로 해도 된다고 했었지. 김탄소! 하고 패기넘치게 외치자 이번에는 기계음이 들린다. 김탄소님 반갑습니다. 높낮이가 없는 여자의 목소리를 듣는데 그냥 반갑다. 진짜 반갑다. 내가 이 게임을 얼마나 하고 싶어했는데. 혼자 헤실거리는데 다시 하얀 글자들이 두둥실 떠오른다.
[SYSTEM] '김탄소' 님, 공략상대를 정하시겠습니까?
어... 또 잠시 고민하다가 아니요! 하고 외쳤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기계음이 들린다. 랜덤으로 공략상대를 정하시겠습니까? 기계음에 또 아니요! 하고 외쳤다. 다니면서 내가 공략상대 찜하고 싶걸랑.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다음 안내를 기다리는데 그냥 게임이 재부팅됩니다. 하는 기계음만 나오고 만다. 으잉, 이게 끝? 재부팅 된다는 말이 거짓말을 아니었는지 띡.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바로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시야가 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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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문이었다. 그것도 학생들이 바글바글한. 멍때는 사이 누군가가 내 등을 내려쳤다. 뒤로 돌아보니 명찰에 서영희. 하고 단정히 박혀있는 귀여운 여자아이 하나가 서있다. 뭐하냐, 안들어가고? 그렇게 안 생겨서 말하는 건 존나 세다. 내가 쭈구리처럼 어... 응. 들어가야지. 하자 영희는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밥 못 먹었어? 쯧. 하고 혀를 찬 영희는 제 주머니를 주섬주섬 뒤지더니 내 손에 초콜렛 하나를 쥐어준다. 어, 땡큐. 내 답을 듣기도 전에 영희는 성큼 성큼 걸어 교문을 통과한다.
그런 영희를 따라 허둥지둥 교문에 들어서는데, 들어서자마자 바로 잡혔다. 너. 정확하게 내게 턱짓을 하는 남자 앞으로 다가가자 남자는 한 번 웃고는 볼펜을 든다. 명찰은 어디 팔아먹었어? 남자의 말에 가슴팍을 내려다보자 정말로 텅 비어있다. 순간 멘붕이 온 내가 어버버거리고 있자 남자는 반, 번호, 이름. 하며 적을 준비를 한다. 어... 나 몇 반이지. 잠시 고민을 하는데 작은 기계음 소리가 들린다. 2반입니다. 이런 건 좀 일찍 가르쳐주던가. 속으로 툴툴거리며 어... 2반, 하는데 이번에는 번호가 문제다. 아, 몇 번이지. 또 고민을 하는데 기계음이 들린다. 2번입니다. 헐, 왜 이렇게 앞이야? 뜬금없는 앞번호에 당황하다가 남자와 눈이 딱 마주쳤다. 남자는 씩 웃고는 볼펜으로 종이를 툭툭 친다. 도망갈 생각말고, 몇 번? 남자의 말에 2번이요... 이름은 김탄소. 하고 답하자 남자는 2학년 2반 2번 김탄소. 하며 중얼거리고는 휘갈겨 쓴다. 으, 글씨 진짜 못쓴다. 종이를 훔쳐보는데 또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할 말 더 있어? 남자의 물음에 아니요. 하고는 남자를 지나쳤다. 앞서 가는 영희를 서둘러 따라가다 뒤를 돌아보다 남자와 또 눈이 마주쳤다.
남자는 아침마다 선도를 선다. 이름은 민윤기. 선도부에 딱히 미련도, 관심도 없어보이지만 선도를 서는 이유는 선도부장이라서. 어쨌든 그 날 이후로 나는 잡힌 적은 없었다. 대신 교문을 통과하며 민윤기를 훔쳐보는 시간이 늘어났지. 일부로 명찰을 두고 올까 생각도 해봤는데 그건 너무 나한테 득 될 것이 없을 것 같아서 바로 포기했다. 영희는 아침마다 지랄을 한다며 내게 면박을 주었다. 영희년 눈에는 지랄이고, 다른 친구인 순이 눈에는 호구짓을 며칠 째 하다보니 어느새 자연스럽게 내 공략 상대는 민윤기가 되었다. 그래, 민윤기가 되었는데 문제는 걔랑 나랑 접점이 없다. 그리고 호감도가 오를 일도 없지. 차마 영희에게는 말 못할 고민가지고 끙끙거리다 책상에 엎어졌다.
[SYSTEM] ★공략 상대★
이름; 민윤기
나이; 18
특이사항; 선도부. 무관심인척 하는 유관심.
난이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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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는 도대체 어떻게 공략을 해야하는 걸까. 진심 하루의 반은 이 생각을 한다. 걍 뺑글이 안경쓰고 복도 돌아다니다가 민윤기랑 부딪힐까. 아냐, 이건 너무 식상해. 그리고 내 얼굴은 안경 쓴 게 더 나을지도. 그럼 진짜 맨날 복장 불량으로 걸릴까. 아,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아무리 게임이라지만 찝찝해. 매일 허공을 보며 고민을 하는 나를 볼 때마다 영희는 쯧. 하고 혀를 찬다. 그래, 너도 내가 한심하지. 난 내가 얼마나 한심하겠니.
민윤기를 공략할 기회는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 아침부터 비가 온다는 엄마의 말에 억지로 우산을 챙겨왔다. 그것도 엄청 크고 칙칙한 우산. 어쨌든 모의고사를 친다고 일찍 마친 날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탐구 영역을 치는 시간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엄청 굵은, 후두둑 떨어지는 비가. 금세 어두워진 바깥에 아이들은 모의고사가 끝나자마자 툴툴거리기 시작했다. 마침 또 내가 주번이라 애들이 나갈 때까지 교실 문도 못 잠그고 가지 못했다. 겨우 문을 잠그고 복도를 걷는데 우리반이 제일 늦게 마친 건지 고요하다. 천천히 복도를 내려가 신발장에서 신발을 가지고 현관으로 향했다.
그 사이에 더 많이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다가 우산을 펼쳤다. 진짜 학교에 사람 하나 안남아있는건가. 후두둑 떨어지는 빗방울을 올려다보다 우산을 썼다. 빗속으로 한발짝 내딛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누군가 뒤에서 나를 친다. 뒤로 돌아도 가슴팍 위로는 보이지를 않는다. 우산이 워낙 커서. 우산을 살짝 들어내니 보이는 건 민윤기의 얼굴. 그래, 민윤기구나.
민윤기다. 이제야 상황파악이 된 내가 멍하게 민윤기를 바라보았다. 민윤기는 나를 보고는 아, 명찰. 하며 중얼거린다. 그리고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는 내게 말한다. 미안한데 나도 좀 씌워주라. 뭐에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민윤기는 살짝 웃고는 고마워. 하며 내 손에서 우산을 뺏어든다. 그리고는 내 옆에 다가와 선다. 와, 민윤기 향기다. 민윤기다. 진짜 민윤기. 괜히 울컥하는 기분에 킁. 하며 코를 훔치고는 민윤기를 따라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너 집 어디야? 어색한 정적을 가르고 날라온 민윤기의 질문이 반가웠다. 나 대박아파트. 내 말에 민윤기가 볼을 긁고는 가는 길이네. 하며 중얼거린다. 그리고는 한참 침묵. 들리는 거라고는 우산을 때리는 빗소리 뿐이다. 정말 공략을 1도 못한 상태로 어느새 우리집 앞에 도착했다. 여기야. 내 말에 민윤기는 한 번 올려다보고는 현관에 나를 데려다준다. 바로 돌아서려는 민윤기를 붙잡았다. 돌아선 민윤기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본다. 비 많이 오는데 쓰고가. 억지로 민윤기 손에 쥐어주자 민윤기는 웃음을 터뜨린다. 고마워. 다시 우산을 쓴 민윤기가 장난스럽게 웃는다. 여자애가 우산이... 장난스러운 민윤기의 말이었지만 얼굴이 붉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럴만두 하지. 지금 나는 민윤기를 존나게 짝사랑하는 중이니까!
아, 아빠거야... 변명하듯 내가 중얼거리자 민윤기는 무심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마워. 하며 돌아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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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밤 나는 밤을 설쳤다. 민윤기의 향기는 계속해서 내 코끝을 멤돌았고, 민윤기 표정 하나하나는 자꾸만 슬로우 모션처럼 머릿 속에서 재생되었다. 무슨 의미라도 있는 걸까. 혼자서 민윤기와 나누었던 대화를 곱씹다보니 어느새 새벽이 되어있었고. 더 이상 되뇌일 것도 없어지게 되어서야 나는 겨우 잠에 들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등짝을 맞으며 일어났다. 그러니까, 늦잠 잤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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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러 교복을 입고는 학교로 달리기 시작했다. 엄마가 뭐라 말하는 소리가 들리기는 했는데, 그것도 들을 새도 없이 집에서 나왔다. 아슬아슬하게 지각을 면하고는 교문으로 들어섰다. 당당하게 교문을 들어서다가 민윤기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먼저 작게 웃는데 그런 나를 보며 민윤기도 웃는다. 손으로 오라는 손짓을 하기에 천천히 민윤기에게로 다가섰다. 반, 번호, 이름. 민윤기에게서 나오는 말은 단호했다. 왜? 내 물음에 민윤기는 명찰. 하고 짧게 답한다.
미쳤어. 휑한 내 가슴팍을 보며 울상을 지었다. 벌써 벌점 두 번 째다... 울며 겨자먹기로 민윤기에게 반, 번호, 이름을 말하는데 민윤기가 활짝 웃는다. 일찍 다니고. 이런 거 붙이고 다니지 말고. 교복에 붙어있던 머리카락을 떼어낸 민윤기가 가. 하며 다른 아이를 부른다. 허공에는 하얀 글자들이 두둥실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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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희야. 나는 존나 모르겠다.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영희를 붙잡고 구구절절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러이러해서 혼란스럽다. 내 말에 영희는 무심하게 답한다. 어장이네. 그럴 듯한 말에 솔깃해져 영희에게로 붙었다. 아, 좀 떨어져! 억척스러운 손길로 나를 밀어낸 영희가 덤덤히 입을 연다. 뭐, 쉽게 말하면 어장 당하고 있다는 거지. 떡밥 던지면 물고, 아니면 유유히 헤엄치고, 뭐 그런. 영희의 말에 책상에 엎드렸다. 그럴리가 없는데. 그럴리가...
영희와 순이는 매점이나 갔다와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만히 누워있다가 시간을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직 20분이나 남았으니까 나도 매점가야지. 혼자서 복도로 나오자마자 민윤기와 마주쳤다. 어... 내가 자리에 멈춰서 멍하게 민윤기만 바라보는데 큼. 하고 헛기침을 한 민윤기가 내 앞에 선다. 우산... 안 가져왔는데, 내일 줘도 돼? 민윤기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작게 웃은 민윤기가 나를 내려다보고는 작게 인상을 쓴다. 날도 쌀쌀한데 왜 이렇게 춥게 입고 다녀. 잔소리를 하는 것 같은 말투에 움츠러들며 답했다. 급하게 나오느라... 변명 섞인 내 말에 민윤기는 제가 입고 있던 져지를 벗어 내 어깨 위에 덮어준다. 내일 줘. 그리고는 유유히 사라진다.
영희야, 나는 이게 어장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정말로. 내가 제일 큰 물고기가 되면 되는 것 아닐까. 그럼 나한테 반할 수도 있잖아. 내가 신경쓰여서. 그러니까 영희야, 나는 어장이라는 것을 당해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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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음날도 어김없이 지각 위기였다. 간신히 지각은 모면했지만 민윤기는 모면하지 못했다. 민윤기는 내가 제 앞에 서자 말없이 미소를 짓는다. 너 벌써 세 번째야. 어쩔래. 표정과 다르게 덤덤한 민윤기의 말투에 반과 번호를 말하려고 하자 민윤기가 고개를 젓는다. 한 번 눈치를 살피고는 제 명찰을 몰래 떼서는 내 가슴팍에 달아준다. 두 번은 안 봐줘. 꽤 단호하게 말한 민윤기가 내 등을 떠민다. 그러니까, 분명히, 나는 민윤기 어장의 가장 큰 물고기가 되고 있는 게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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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 떠있는 흰글자들을 무시하고 교실에 들어서자 영희가 내 가슴팍을 보고는 호들갑을 떤다. 야, 너 어쩌면 어장 아닐 수도 있겠다! 그런 영희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짓자 영희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다. 어제는 져지, 오늘은 명찰. 한 번 잘해봐, 이 기집애! 내 등짝을 때리는 영희의 손길은 여전히 맵다. 진짜 영희 패고 싶다. 영희의 손길을 받으며 책상에 엎드렸다.
화장실을 가려다 민윤기를 만났다. 영희와 순이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둘이서 팔짱끼고 화장실로 향했다. 나만 버려두고. 가만히 민윤기를 올려다보다가 아, 하며 져지를 벗었다. 이거 고마워. 내 말에 민윤기가 웃는다. 우산 나중에 줄게. 한마디만 남긴 민윤기는 또 유유히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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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자가 끝날 시간이 되자 또 비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영희와 순이는 아주 얄밉게도 가는 방향이 달라서 미안하다며 자기들끼리 우산을 쓰고 사라졌다. 현관에 서서 멍하게 비오는 것만 보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옆에 선다. 곧바로 내 어깨를 잡은 사람이 빗속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선다. 옆을 보자 내 우산을 쓴 민윤기가 보인다. 또, 민윤기 향기다. 멍하게 민윤기만 보는데 민윤기는 나를 한 번 내려다보고는 우산 못주겠다, 오늘도. 하며 웃음을 터뜨린다.
자연스럽게 우리집 쪽으로 향하던 민윤기를 따라 걷다가 문득 묻고 싶어졌다. 미친 것 같은데, 분명히 영희가 들으면 복장이 터진다며 내 등짝을 내려칠 것 같기는 한데, 정말로 묻고 싶었다. 윤기야, 너 나 어장해? 뜬금없는 내 물음에 민윤기는 인상을 찌뿌린다. 뭔 개소리야. 무심히 말한 민윤기는 비 맞기 싫으면 딱 붙으라며 내게 으름장을 놓는다. 사실 좀 무서워서 말 안하고 싶은데, 그래도 확실하게 해두고 싶다. 그래야 공략을 포기하던 말던 하지.
"나 어장해? 진짜?"
"야."
"어장이야? 나?"
김탄소. 너는 상식적으로 마음에도 없는 애한테 그러겠냐... 푸념하듯 내뱉은 민윤기는 입을 꾹 다문다. 그러거나 말거나 절로 웃음이 새어나온다. 그럼 나 어장 아니야? 나 까대기 쳐도 돼? 내가 방방 뛰는 목소리로 묻자 한참 답이 없던 민윤기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아싸. 내가 주먹까지 쥐고 신나하자 민윤기는 나를 내려다보다가 결국 웃음을 터뜨린다. 우산 밑으로 하얀 글자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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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우리 집 앞에 도착하고, 민윤기에게 우산을 가져가라고 손에 쥐어주는데 민윤기는 한사코 거절을 한다. 아파트 입구에서 한참 옥신각신하는데 결국 나를 이긴 민윤기가 내 손에 우산을 쥐어준다. 그리고는 제 가방에서 파란 우산을 꺼낸다. 그래, 우산이 있었구나.
그래, 우산이... 야, 민윤기! 억울한 내가 소리치자 민윤기는 장난스럽게 웃고는 손을 흔든다. 내일 보자. 명찰 꼭 달고 와. 그러고는 또 유유히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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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교길 교문에서 만난 민윤기의 얼굴은 얄미웠다. 웃고 있는 얼굴을 때려주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을 정도니까. 하지만 내가 누구냐. 호구 김탄소다. 그것도 민윤기를 존나 좋아하는. 결국 내가 웃고 말자 민윤기는 지나가려는 내 앞을 가로막는다. 너 명찰. 단호한 민윤기의 말에 또 서둘러 가슴팍을 내려다보았다. 곱게 붙어있는 내 명찰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내 당당한 표정을 본 민윤기가 애써 웃음을 참고는 하고 왔네. 하고 답한다. 언제나 민윤기는 내 머리 꼭대기에 있나보다. 내가 에효. 하고 한숨을 내쉬니 민윤기가 또 제 져지를 벗어준다. 좀 춥게 입고 다니지 말라니까. 잔소리 섞인 걱정을 하는 민윤기의 목소리가 좋다.
지퍼까지 꼭 잠군 민윤기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안생겨서는 귀엽다. 같이 헤실거리며 웃다가 주머니를 뒤졌다. 있을텐데. 아, 찾았다. 딸기맛 사탕을 민윤기 손에 쥐어주자 민윤기는 또 괜히 나 딸기맛 싫어하는데. 하고 튕긴다. 싫음 말구. 다시 가져가려고 하자 민윤기가 싫어. 하며 얼른 제 입에 넣어버린다. 나중에 보러갈게. 민윤기가 작게 말하고는 내 등을 떠민다. 교실로 향하는 길, 허공에 흰 글자가 둥실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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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로 들어오자 선생님께서는 한달동안 받은 벌점 확인하라며 종이를 돌린다. 엄청 많이 쌓였다며 호들갑떠는 영희를 피해 내 벌점을 확인하는데 웬일인지 단 1점도 없다. 어... 나 분명 교문에서 많이 걸렸는데. 내가 어리둥절해 있던 말던 영희는 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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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윤기는 진짜 우리반으로 찾아왔다. 매점이나 가자면서.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입에 물고 돌다가 갑자기 벌점이 생각나 민윤기를 불렀다. 나 벌점 하나도 없던데. 내 말에 민윤기는 답지 않게 쑥스러운 표정을 짓고는 야. 그럼 내가 줬겠냐. 하고 툴툴거린다. 와, 민윤기 권력 남용? 장난스러운 내 말에 민윤기는 새침하게 고개를 돌린다. 그럼 벌점 다시 줄까? 민윤기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그건 싫어.
별 다른 말 없이 마저 걷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나를 내려다본 민윤기가 웃음을 터뜨린다. 묘하게 기분나빠져 왜. 하고 툴툴거려도 민윤기는 웃음을 멈출 생각을 안한다. 화날 것 같아. 내가 입을 댓발 내밀자 그제서야 미안. 하며 웃음을 그친다.
"내 옷 입고 있는 거 귀여워서."
"엥?"
"폼도 크고, 소매도 길고."
그게 너무 귀여워서. 설레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말한 민윤기가 빠르게 걸어간다. 귀가 빨게져보이는 건 내 착각이겠지? 그러거나 말거나 갑자기 흰 글자들이 둥실 떠오르고, 귓가에 빵빠레 소리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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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합니다. '민윤기' 공략에 성공하셨습니다!
***
그러합니다. 저는 의지의 한국인. 마침내 두 편 모두 썼어여. 으아니 방연시도 이제 세 편 밖에 안남았다니ㅠㅠㅠㅠㅠ
근데 또 새로운 시리즈 쓰고 싶다고 하면 저 팰거에여?ㅎㅎ...ㅎㅎㅎ.. 동화 시리즈 쓰고 싶은데... 뭐. 사실 안 쓸 것 같아여. 떠오르는 게 없어서. 근데 만약 쓰면 박지민은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거기서 난쟁이. 왜냐면 그게 보고 싶으니까. 껄껄.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방연시 세 편 전부 초록글 가써여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진짜 저 울고 있음..ㅠㅠㅠ 슙슙...ㅠㅠㅠㅠㅠㅠㅠㅠㅠ 늘 고마워요. 근데 이 글 최고로 으ㅣ식의 흐름이다... 미안해요. 슙슙. 이게 최선인가봐요ㅠㅠ 윤기야 미안해....
그리고 아까 독방탄이 독방에서 제 글 추천글 봤댔는데 참고로 그 글 저두 봐써여. 휴ㅠㅠㅠㅠㅠㅠ 감동... 조심해서 추천글에 추천 박고 튀는 거 저일 수도... 스크랩 저일수도... 모르는 척 뭔내용이냐고 댓글 남기는 거 저일수도...
여하튼 과분한 사랑 받는 것 같아서 행복하네요ㅠㅠㅠ 전 죽어도 될 듯.
참 레인드롭 슬픈 곡이라 걱정하시던데 걱정 안해도 됐져? 헤헤... 노래 분위기가 좋아서 쓴 거에요. 껄껄. 선도부 민뉸기 짜세!
늘 고맙고 사랑합니다아'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