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그와 연락이 닿지 않은지 한 달째. 그동안 무얼 하며 지내는지, 내 생각은 하는지,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은 무엇일까.
아침에 일어나면 혹시라도 새벽에 그가 전화하지는 않았을까, 문자라도 한통 남기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확인하기를 수십번.
오늘 아침도 핸드폰은 나와 함께 잠만 잤단 잔인한 사실만 확인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첫 수업은 9시, 영어라면 젬병인 나를 고쳐보겠다며 준수가 억지로 신청하게 만든 교양 과목이다.
하아- 정말 듣기 싫다. 내 눈엔 그저 토종 한국인인데 미국에서 살다왔다며 느끼한 버터 발음을 구사하는 믹키박 교수.
김준수, 내가 너 이 교수님 좋아서 듣는 거 다 알고 있다.
[そういつだって信じてて信じてて 그래 언제든지 믿고 있어 믿고 있어
大事な人は君だけだって君だけだって 소중한 사람은 너뿐이라고 너뿐이라고]
얼마 전에 바꾼 벨소리가 울리고, 액정에는 ‘밉둥이김준수’가 찍혀 있었다.
“왜?”
“심창민, 너 지각하지 말고 와라. 맨날 대출하게 하지 말고! 내 목소리가 이뻐ㅅ..”
“알았어. 끊는다.”
대충 씻고 배는 고팠지만 오늘도 대출을 하게 하면 징징거릴 준수를 알기에 빵 하나를 입에 물고 집을 뛰쳐나갔다.
학교 가는 버스 안은 언제나 사람들이 북적북적거린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이 싫었었다. 꼭 어디선가 이 혼란을 틈타 내 몸 이곳저곳을 더듬는 손이 있었다.
읏- 한동안 변태들을 만나지 않았는데, 평소보다 더 지저분하게 더듬는 손길이 느껴진다.
***
그를 처음 만났을 때도 나는 지금과 같이 아무런 힘을 쓰지도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었다.
그 변태의 손을 비틀고 날 바라보며 미간에 가득 인상을 찌푸린 채 무심하게 뱉은 한마디.
“부러뜨릴까?”
시원스럽게 생긴 이목구비에 대충 훑어봐도 탄탄한 근육, 검은 수트 차림의 그는 북적거리는 버스 안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날 바라보며 말하는 그는 정말 진심인 듯 보였고, 나는 그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러자 내게 ‘정말?’이라는 표정으로 빤히 쳐다보았고, 다시 한 번 세차게 고개를 흔드는 날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변태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는 아쉽다는 듯이 천천히 손을 놓아주었다.
마침 열리는 뒷문으로 도망가는 변태를 바라보는데 그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나 맨날 이 시간에 버스타니까.”
무슨 소리인지 알 수 없어 눈을 동그랗게 뜨자 피식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너도 이 시간에 타라고.”
“아....... 감..사합니다..”
***
읏- 잠시 그를 생각하느라 날 더듬는 이 손길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점점 더 노골적으로 더듬어 오는 손길을 느끼며, 내 곁에 그가 없음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 그저 눈을 질끔 감고 어서 이 시간만이 지나가기를 바라던 그 때, 어느 순간 눈을 떠보니 내 앞에 있는 검은 수트를 입은 남자.
“괜찮아요?”
한순간 그일까라고 생각했지만 헛된 희망.
친절하게 내뱉은 남자의 한 마디에 나도 모르게 정윤호에 대한 그리움과 어쩌면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른다는 절망감에 눈물이 쏟아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