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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형, 내일 수능이잖아요. " " 수능인데, 왜. " " 아니 그냥, 잘 보라고요. " " 공부한 적도 없는데, 시험지나 잘 보고 와야지. " 에이, 형. 제 장난스런 말투에 싱겁다는 듯 웃음을 터뜨린 동생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얼른 집에 가서 자자, 피곤하다. 동생을 먼저 내보내고, 어느새 차가운 공기가 내려앉은 연습실의 불을 껐다. 19살, 고등학교 3학년. 흔히들 수능을 떠올리기 쉬운 나이. 그러나 19살의 저에게는, 고3이라는 단어보다 연습생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렸고, 독서실에서 하루를 보내기 보다는 연습실에서 하루를 보내는 것이 더 익숙했다. 쌀쌀해진 날씨에 제 어머니가 대구에 올라오기 전 사주셨던 회색 목도리에 볼을 묻었다. 문득 그렇게 걷다, 뒤를 돌아 불 꺼진 연습실을 바라보았다. 내 목표는, 대학이 아닌 데뷔다. 숙소로 돌아오니 수능생을 위한 배려라며 동생들이 모든 것을 양보해준 덕에 일찍 잠자리에 누웠다. … 수능 볼 때는 도시락을 싸가야한다는데. 제 부모님은 대구에 있었고, 저만 혼자 서울로 와 연습생 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저에게는 도시락을 싸간다는 것이 큰 사치였다. 그냥 김밥이나 사가야겠다. 어차피 공부와 멀어진지는 오래됐으니까. 남들이 마지막 공부를 위해 밤을 새워가거나 컨디션을 조절하며 떨린 가슴을 안고 잠자리에 들 때, 저는 편안히 누울 수 있었다. 허나 꼴에 수험생이라고, 그 편안함이 오래가지는 못하더라. 잠을 자야하는데, 몇 시간이 지나도 잠이 오지 않았다. " 아, 형 깬다고. " " 맞아, 너 좀 조용히 해. " " 네가 제일 시끄럽거든? " " 야, 계란말이 타잖아. " 그렇게 몇 시간을 뒤척였을까, 밖에서 어수선한 소리가 들려왔다. 투닥거리는 동생들의 말소리와 쨍쨍거리며 나는 식기들 소리, 그리고 음식을 조리하는 소리까지. 아마 저를 위한 도시락을 만드는 중인듯 싶었다. 제가 도시락을 싸가는 것은 사치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것만은 아니었나보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한참 동안 이어지는 소리를 들으며, 저는 차마 밖으로 나가지는 못했다. 서프라이즈라며 준비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아, 화장실. 제가 어떻게 조절하지 못하는 생리 현상이 찾아와 곤혹스럽기도 했지만, 어쨌든 나가지 않았다. 중간에 문을 슬쩍 열어보며 자는 척을 하는 저를 확인하는 동생들 탓에, 부러 자는 척 몸을 더욱 웅크렸다. 아마도 제가 제일 맏이였기 때문일까. 연습생들 사이에선 제가 첫 수능생이었기에 동생들 또한 어지간히 떨린 모양이었다. 저보다 더 난리를 치며 도시락을 준비하는 것을 몰래 엿듣고 있다보면, 문을 열고 나가 제가 깨어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저를 위해 준비하는 동생들이 기특했기에 그러진 못했지만. 마침내 동생들 중 한 명이 저를 깨우려 방 안으로 들어오고, 그제야 일어난 척을 하며 화장실로 향했다. 저마다 얼굴에 웃음기를 머금고 있는 것을 보아하니 다들 서프라이즈가 성공했다고 생각했나보다. 모른 척을 하며 동생들에게서 도시락을 받아들었다. " 나 간다. " " 잘 치고 와요. " " 잘 쳐봤자 좋을 것도 없는데, 뭐. " " 그래도 잘 치면 좋잖아요. " " 아무튼, 도시락 잘 먹을게. " 다행히 수능장이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의 옆 쪽에 있었던 덕에 느긋한 마음으로 출발했다. 수능장으로 향하는 가로수길을 걸으며 괜히 저를 자극해오는 가슴께의 떨림에 인상을 찌푸렸다. 제 볼을 쳐오는 매서운 바람을 피하려 얼굴을 최대한 목도리에 묻고, 걸음을 빨리 했다. 하지만 아무리 걸음을 빨리 해도, 이상하게 시간은 점점 더 느리게 가는 것 같더라. 17살 때부터 작업실을 밥 먹듯이 들락거려 공부엔 일말의 관심도 없었는데 말이다. 학교 앞에 도착하자 몰려있던 인파 사이에서 앳된 얼굴을 한 학생들이 제게 초콜릿 같은 간식들을 건네왔다. 정없이 하나만 주나. 기분이 전보다는 좋아졌음에도 툴툴거리며 하나를 더 받아왔다. 저는 단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었음에도. 수능에서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어떻게 찍어라, 이런 것들을 떠올리며 오전시간을 보냈다. 마킹은 거의 다 3번, 주관식은 모두 0으로 써냈다. 그리고 점심시간, 동생들이 꼭 점심시간이 되어서 열어보라 신신당부를 했던 탓에 한 번도 개봉하지 않았던 도시락을 가방에서 꺼냈다. 연습생이 돈이 어디 있겠나. 모두 숙소 냉장고에 있던 재료들로 만든 반찬들이었음에도 저는 참 맛있게 그것을 먹었더란다. 도시락을 깨끗하게 비우고 정리를 하려던 찰나,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에이포 용지들이 눈에 띄었다. 편지지를 살 돈이 없어 숙소에 굴러다니던 에이포 용지에 쓴 동생들의 편지. 목구멍이 살짝 메였다. 어떻게 시간이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수능이 끝나고, 넓은 운동장을 걸으며 저와 같이 수능을 치고 나오는 다른 학생들을 쳐다보았다. 수고했다며 저를 껴안아주는 부모님과 함께 학교를 나가는 아이들, 수능이 끝났으니 놀러가자며 저들끼리 모여 웃고 떠드는 아이들. 그들이 모두 제 앞에 와 떠드는 마냥 모든 것이 생생히 와닿았다. 아침에 마주했던 가로수길을 또다시 마주했다. 아침엔 흰색이었던 가로수길이, 어느새 다채로운 색상으로 물들어있었다. 그 가운데에서 혼자 무채색을 띈 채 걷고 있는 제 모습. 분명 같은 길이었지만 숙소로 돌아가는 길은 더욱 멀어보였다. 하염없이 걸으며, 수만가지 생각을 했다. 드디어 12년의 학교 생활이 끝나는구나. 나도 부모님하고 밥 먹고 싶다. 놀러가서 좋겠네, 난 연습하러 가야하는데. 대충 이런 생각들을. " 어, 형 왔다. " " 형, 수능 잘 쳤어요? " " 잘 봤을리가. 시험지만 잘 보고 왔다. " 수능을 치고 온 날도 전날과 다를 바가 없었다. 수능을 쳤다는 사실이 더해졌을 뿐, 제 생활은 똑같았다. 남들이 친구들과 놀러갈 때, 저는 연습실에서 연습을 했다. 남들이 가족들과 집에서 따뜻한 저녁식사를 할 때, 저는 숙소에서 동생들과 옹기종기 모여 저녁을 먹었다. 잠자리에 누워도, 제가 수능을 친 것이 맞는지 모를만큼 과거의 날들과 비슷하게 흘러갔기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 학창시절이 어땠냐 물어본다면 저는 할 말이 없었다. 제가 서 있는 길의 주위에 있는 것들을 살펴볼 수 없을 만큼 숨가삐 달려왔다. 수학여행 혹은 소풍, 제가 겪어본 것이 없었기에 기억 또한 남지 않았다. 18살 이후의 기억들은 더욱 그랬다. 18살의 저는 고등학교 2학년이 아닌 연습생 1년차였고, 19살의 저는 고등학교 3학년이 아닌 연습생 2년차였다. 어쩌면 제가 수능장으로 향하며 느꼈던 오묘한 간질거림은 수능으로 인한 떨림이 아닌 설렘이었으리라. 제가 남들과 같은 학창시절의 추억을 가져보는 것은 수능 하나 밖에 없었으니까. 문득 모든 것이 다 제게서 떠나간 것 같아 형용할 수 없이 허무한 기분이 들었다. 그 공허함은 전날 제가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제 잠을 설치게 만들었다. 수능을 물 흐르듯 흘려보내고, 멍하니 맞이한 스무살. 스무살이 되는 첫날인 1월 1일에는 가족들과 함께 부산에 갔었다. 바다 밖에 보이지 않는 곳, 마치 유배를 당한 기분이 들었다. 수능을 치면, 스무살이 되면 모든 것이 다 영화처럼 변할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아니더라. 모두들 기대에 부풀어 떠들어대는 수능, 스무살. 그 어느 것도 제게는 특별하지 않았다. 수능을 친 후에도, 스무살이 된 후에도 저는 변하지 않았다. 무서울 만큼 항상 똑같은 날들이 반복되었다. 하루가 흐르고, 한 달이 흐르고, 1년이 흘러도 저의 나날들은 변하지 않았다. 그 나날들에 유배라도 보내진 듯, 저는 쳇바퀴 속에서 열심히 달릴 뿐이었다. 수능을 쳐도, 스무살이 돼도 달라지는 것은 없더라. 그 순간들이 지나고 보면 다른 날들과 같이 별 거 아니더라. 그 순간의 떨림, 설렘, 기대, 그 모든 것도 아주 잠깐뿐이더라. 저에게 수능은, 스무살은, 그렇게 허무하게 지나갔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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