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만의 시간
2부
13.
자꾸 졸졸 쫓아오면서 그럼 공부는 안 할 거냐고. 왜 독서실 안 가? 하면서 잔소리를 한다. 얘가, 얘가. 변백현 닮아가나. 왜 이렇게 끈질기지? 물이 가득 담긴 페트병을 품에 끌어안고 김종인을 멀뚱히 쳐다봤다. 눈이 마주치자 또 묻는다.
“왜 안가?”
내가 공부를 안할까봐 그러는 건지, 아님 저랑 같이 독서실을 안 간다고 해서 그러는 건지 모르겠다. 아니, 뭐 어차피 공부는 혼자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언제부터 나랑 독서실을 같이 다녔다고 이러는 거야, 나 참. 쓸데없는 부분에서 끈질기네…. 뭐, 그만큼 내가 좋다는 뜻이겠지? 그런 걸 거야 분명히.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지. 아, 그나저나 사실대로 말하긴 좀 그런데. 무슨 말을 하면서 둘러댈까 고민 해봐도 순식간에 떠오를 리가 없다. 종인이가 대답하라는 듯 나를 쳐다본다. 아, 난감해.
“아, 음….”
“……?”
“비밀이야.”
그러고서 어색하게 웃었다. 아니, 뭐 그럼 어떡해. 둘러댈 말은 없고, 사실대로 말하긴 좀 그렇고. 그냥 은근슬쩍 넘길 수밖에 없잖아. 그랬더니 종인이가 대답이 마음에 안 드는지 표정이 영 안 좋다. 그래도 계속 그 얼굴에 대고 방긋방긋 웃었다. 내가 계속 웃으면 결국은 따라 웃을 걸 알아서.
“오늘만 그냥 넘어가주라.”
“…….”
“응? 내일은 꼭 같이 가자.”
어라? 근데도 안 웃네. 하는 수 없이 그냥 넘어가달라고 솔직하게 말을 했다. 그 말에도 대답을 않고 말없이 나를 바라보기만 하던 김종인이 결국엔 작게 한숨을 내쉰다. 그러면서 나를 또 불러.
“경수야.”
“어, 왜?”
얼른 대답을 하면서 그 아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랬더니 종인이가 글쎄,
“앞으론 비밀 만들고 그러지마.”
“……?”
“비밀 있는 거, 별로야.”
지가 말해놓고 부끄러웠는지 뒤도 안돌아보고 긴 다리를 휘저으며 먼저 걸어 가버린다. 그 아이의 보폭에 맞춰 멍하니 시선을 옮겼다. 보이는 건 분명 뒷모습뿐인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일 뿐인데. 왜 분홍색으로 보이지? 그것 참 이상하다.
一
요즘 김종인이 참 귀엽다. 차가운 도시 남자. 차도남 김종인은 어디로 간 거지? 다정다정 열매를 먹고, 수줍수줍 열매도 먹고, 귀염귀염 열매도 먹었나봐. 아, 진짜 귀엽다. 사실은 엄마가 이른 아침부터 깨운 바람에 기분이 안 좋을 뻔했는데 종인이 덕분에 하산하면서도 자꾸 실실 웃게 되고. 웃음이 입가를 떠나지 않았다. 연애하면 원래 세상이 행복한 것 같고 그런 건지, 아니면 나만 그런 건지 모르겠다. 여하튼 아침 일찍부터 임무를 완수하고 왔다. 엄마한테 칭찬도 받고, 용돈도 받고. 아, 살맛난다. 오늘 되게 기분 좋단 말이지.
방에서 옷을 갈아입으려고 옷장 문을 여는데, 아침에 각자의 집으로 들어가면서 아쉬운 표정으로 날 돌아보던 그 얼굴이 떠오른다. 독서실 같이 가고 싶은데. 같이 있고 싶은데. 말을 하진 않았지만 눈빛으로 그렇게 전해져왔다. 둘이 같이 있으면 공부가 안 될 거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같이 있고 싶은 게 내 마음이니까. 니 마음이 내 마음이고 내 마음이 니 마음 아니겠어? 그나저나 공부는 공부대로 해야 되는데. 오늘 나머지 임무를 완수하고, 내일은 가뿐하게 공부를 시작하겠어.
“어디 가?”
옷을 갈아입고 거실로 나가니, 식탁에 앉아있던 엄마가 묻는다. 그래서 대답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부하러 가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아드님.”
아, 엄마한테 독서실 간다고 말 하려고 했는데 가방을 깜빡했다. 지금 행색을 보니 집 앞 슈퍼 나가는 모양새다. 이런. 아, 깜빡했다 하면서 이제 와서 방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도 좀 웃길 것 같은 거다. 그래서 그냥 당당하게 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더니 엄마가 너 요즘 공부는 아예 안 하는 것 같다고 잔소리, 잔소리, 잔소리….
누가 내 가슴에 대고 화살을 쏘는 것 같다. 푹푹 찔리는 게 아주 그냥 얄짤 없어요. 어머니. 엄마의 잔소리도 잔소리지만 나도 내가 공부 안한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어서 민망해졌다. 어색하게 웃으며 현관으로 슬금슬금 걸어갔다.
“엄마, 나 빨리 갔다 올게!”
얼른 신발을 꿰어 신으며 엄마의 잔소리와 따가운 시선으로부터 도망쳤다.
一
“야, 얘기 좀 하자.”
운 좋게도 집 앞에서 딱 마주쳤다. 나는 오래 기다려야 얼굴이라도 볼 줄 알았는데. 피시방에 다녀 온 걸로 추정되는 변백현이 집 앞에 있는 날 보고 조금 놀랐는지 흠칫, 뒤로 물러섰다. 그래서 기회를 틈타 녀석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며 얘기 좀 하자고 말을 꺼냈다. 그랬더니, 언제 놀랐냐는 듯 놀란 표정을 지운 변백현이 나를 무시하고 현관으로 다가가 비밀번호를 척척 누른다. 따라 들어가면 될까 싶어서 한 발짝 떨어진 곳에 서있었다. 삑 하는 기계음이 들리고 문이 열렸다. 그와 동시에, 변백현이 나를 못 본 척 집으로 들어가 버리려는 게 보여서 얼른 열린 문을 잡았다.
“얘기 좀 하자니까?”
“…….”
“백현아.”
그렇게 쳐다봐서 놓을 거였음 여기까지 안 왔지.
“어?”
“…….”
“금방 끝나. 진짜야.”
간절한 눈빛으로 백현이를 바라보았다. 변백현도 나를 본다. 표정을 읽을 수가 없다. 항상 가볍고, 또 밝게 웃는 그런 모습만 봐왔는데. 요 며칠 냉랭하게 굴긴 했으나, 복도에서 같이 쫓겨났을 때도 이렇게 진지한 표정이 아니어서 쉽게 생각했었다. 물론, 교무실에서 교실로 돌아가는 길에 혼쭐이 나긴 했지만. 그런데 또 그런 진지한 표정을 하고서 나를 보니까 왜 이렇게 낯선 건지. 어색한 침묵만 계속해서 흘렀다.
“놔라.”
결국, 변백현이 침묵을 깬다. 쉽게 풀리지 않을 거라는 건 알고 있었다. 아침부터 기분이 좋았던 게 금방 가라앉았다. 나를 보는 백현의 표정에 단호함이 서려있어서 하는 수 없이 잡고 있는 문을 놓았다. 내 손이 떨어지자마자 녀석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닫힌 문을 멍하니 보는데 한숨이 푹 나왔다.
녀석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했던 게 내내 마음에 걸렸었다. 생각지도 못한 말을 던지고 가버린 덕에 고민도 많이 했고, 내 생각의 깊이에 대해서도 반성을 했다. 어려운 문제이니만큼 쉽게 결론이 난 건 아니었다. 그 고민을 하는 동안 내내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그러면서 겨우 답을 알았다. 그래서 찾아왔다. 그때 하지 못한 대답을 하려고. 그런데 역시 쉽지가 않다. 만나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될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하고 돌아갈 거였다면 애초에 찾아오지도 않았을 거다. 닫힌 문을 바라보다가 그 앞에 쭈그려 앉았다.
一
그야말로 기약 없는 기다림이었다. 카톡도 해보고, 문자도 해보고 연락할 수 있는 건 거의 다 했다. 초인종을 누르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그것만 빼고. 그랬는데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무시당한 거지 뭐. 누누이 얘기하는 거지만 백현이가 차라리 날 때리면서 화를 냈으면 좋겠다. 그러면 일단 한 대 맞아주고 내 말을 들어보라고 말하면서 설득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아, 복잡하다. 변백현, 넌 나한테 너무 복잡해. 머리를 헝클이면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계속 쪼그려 앉아있었더니 다리도 아프고 그래. 일어났다 앉았다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르겠다. 백현이는 나올 생각도 않는데 심심하기도 하고, 또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종인이한테 전화를 걸었다.
一응.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웃음 지었다. 여보세요도 아니고, 응이라니. 응. 그 한마디가 왜 이렇게 좋은 건지 몰라.
“그냥, 뭐하나 싶어서.”
一니가 싫어하는 수학 공부하지.
그러면서 웃는다. 그래서 나도 따라 웃었다.
一넌 어딘데?
“나는 지금 숙제하러.”
一…숙제?
“응, 숙제.”
미처 풀지 못한 숙제를 하러 온 게 맞는데, 얘가 도통 나를 안 만나준다. 어떻게 해야 집에서 나올까? 응?
一백현이 만나러 갔어?
고민하고 있는데, 종인이가 갑자기 던지는 말에 깜짝 놀랐다. 난 그저 숙제라고 했을 뿐인데 귀신같이 어떻게 알아차려서는 정곡을 딱 찌르는데 나도 모르게 움찔하고 말았다고.
“어떻게 알았어?!”
전에 보니까 되게 눈치 없던데 어떻게 알았대. 진짜, 신기하다. 놀란 나머지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크게 나왔다. 쩌렁쩌렁 울리는 내 목소리에, 나도 놀랬다.
一왠지 그럴 것 같아서.
“너 눈치 없잖아.”
一뭐라고?
“너 되게 눈치 없는데 어떻게 알았지…와, 진짜 신기하다.”
진심으로 감탄했더니 종인이가 말이 없다. 눈치 없다 그래서 삐졌나?
“왜 말이 없어.”
一…….
“눈치 없다 그래서 삐졌어?”
一아니야, 그런 거.
“그러면.”
一나 진짜 안 삐졌거든.
귀엽긴. 귀여우니까 봐 준다, 내가.
一백현이랑은 만났어?
“…아니.”
一집이야?
“응. 변백현 집.”
마치, 내 눈 앞에 종인이가 있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말 안하려고 했는데. 종인이가 알아채고 나니까 나도 모르게 다 털어놓게 된다. 어떻게든 알게 될 일이니까 지금 알아도 상관없겠지 뭐. 게다가, 비밀은 만들지 말자고 했으니까.
一그 쪽으로 갈까?
“뭐라고?”
一지금 간다. 나?
방금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김종인과 나를 마주한 변백을. 최악의 삼자대면이다. 나 혼자도 안 만나주는데, 너까지 합세하면 더더욱 만나줄 리가 없잖아. 고개를 내저었다. 아, 이거 영상통화 아닌데.
“됐어. 좀 있다 갈 거야.”
一얼마나.
“응?”
一얼마나 오래 기다렸는데….
걱정하고 있는 것 같은 목소리다. 아니지, 걱정하는 목소리다. 비록 바닥에 퍼질러 앉아 추레한 행색으로 전화를 받고 있지만 그런 것 따윈 아무래도 좋다고. 그냥, 들리는 네 목소리가 좋아.
“별로 오래 안 기다렸어.”
걱정하게 만드는 건 싫다. 그래서 거짓말을 했다. 분명, 내가 여기 올 땐 해가 중천에 떠있었는데 지금은 해가 져서 깜깜하지만. 선의의 거짓말인데 뭐 어때. 수화기 너머로 작은 한숨소리가 들려왔다.
一경수야.
“응.”
一집 앞에서 만나.
“어?”
一나중에, 얼굴 보자고.
솔직히 말하면 조금 지쳐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백현이가 나를 외면할 만큼의 잘못은 하지 않은 것 같아서 기다리는 동안 힘이 쭉 빠졌다. 그런데, 김종인의 목소리를 들으니 모든 걸 보상받은 기분이다. 아, 좋다.
“…어.”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리고서 몇 마디를 더 나누다가 전화를 끊었다. 전화는 끊겼는데 아직도 귓가에 그 애의 목소리가 울린다. 따뜻한 핸드폰을 꼭 붙잡으며 조금 전의 대화를 곱씹었다. 시련은 극복하라고 있는 거라고 했다. 너와 함께라면 무엇이든지 괜찮을 것 같았다. 이런저런 생각이 머릿속을 돌아다닌다. 그러는 중에, 끼익 하고 문이 열렸다. 그리고 조금 열린 문틈사이로 백현이 얼굴을 빼꼼히 내밀었다.
“…아직도 안 갔냐.”
그 얼굴을 보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엉덩이를 손으로 툭툭 털며 백현을 향해 웃었다.
“난 의지의 한국인이거든.”
一
말없이 변백현의 뒤를 따랐다. 나를 데려간 곳은 집 근처 놀이터였다. 오는 길에 근처 편의점에 들러 음료수도 사서 내게 내밀었다.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닌데, 아무도 없는 놀이터에 둘만 앉아 있으려니 뭔가 민망했다. 우리가 이렇게 어색했었나? 백현이랑 이렇게 둘이 진지하게 앉아 있는 것도 괜히 어색한 것이. 대화를 하러 와 놓고서 말을 못 꺼내는 난 뭔지…. 애꿎은 모래만 발로 툭툭 차올렸다.
“할 말이 뭔데.”
백현이가 먼저 말을 꺼냈다. 말을 꺼내기가 이렇게 어려웠던가. 친구 앞에서 내 진심을 털어놓으려니 긴장이 된다. 그래서 침을 꼴깍 삼켰다. 후, 하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러고서 옆에 앉은 녀석에게 말했다.
“나 한 대 칠래?”
백현이 고개를 돌려 나를 본다.
“한대 치면 좀 풀릴까? 어?”
대답은 않은 채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신다. 대답할 가치도 없다 이건가. 아, 진짜 어렵다. 세상에 쉬운 건 없다지만 진심을 말하는 게 제일 어려운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어렵게 진심을 내보였을 때 상대방이 내 진심을 알아주는 것도 굉장히 힘든 일이고. 생각도 오래 했고, 그만큼 많은 걸 배웠다.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먼 미래까지 걱정해준 녀석이 고맙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제는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아무렇지 않게 웃고 떠들며 장난치던 사이로.
“야, 백현아….”
“…….”
“있잖아, 나는….”
솔직하게 모든 걸 털어놓기로 했다. 얼굴을 보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 괜히 시선을 바닥으로 내리 깔았다.
“난 그저 김종인이 좋을 뿐이야.”
“…….”
“다른 건 잘 모르겠어.”
“…….”
“그때, 니 말 듣고 생각 많이 해봤는데,”
“…….”
“다가오지 않은 일들을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나를 바라보는 변백현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때 일은 그때 생각할래.”
“…….”
“솔직히, 겁이 안 난다고 하면 거짓말이야….”
“…….”
“그치만 그렇다고 해서 미리 겁먹고 피하는 건 싫어.”
그래서 나도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똑바로 두 눈을 마주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난 부딪혀 볼래.”
“…….”
“그만큼, 그 애가 좋아.”
드디어, 말을 끝마쳤다. 준비한 건 아닌데 꼭 미리 외워온 것처럼 쉴 새 없이 내뱉었다. 내 모든 걸 보여준 것 같은 기분이다. 고작 말이었을 뿐인데도.
내가 입을 닫자 침묵이 흐른다. 백현이 나를 보다가 다시 음료수를 마신다. 대답 없는 녀석을 보니 괜히 목이 타서 나도 손에 쥐고 있던 음료수를 입으로 가져다댔다. 백현이 큼, 하고 목을 가다듬는다. 그러면서 갑자기 박수를 짝짝 치는 게 아닌가. 이게 지금 뭐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서 음료수를 마시다말고 녀석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이야, 열렬한 사랑고백 납셨네.”
한참을 대답 없이 듣기만 하더니, 한다는 말이 저거라니. 힘이 쭉 빠졌다. 난 진짜, 진심을 다해서 말을 꺼낸 건데. 장난으로 받아치는 그 모습에 울컥 화가 날 뻔했다.
“…야.”
“왜.”
“나 지금 진지하거든?”
“…알아. 나도 지금 존나 진지하다.”
말은 가볍게 하면서 표정은 또 비장한 표정이라 녀석이 장난치는 게 아닌걸 알았다. 어색하기 싫어서 괜히 가볍게 말을 던진 건가 싶기도 하고. 아, 그나저나 진심을 말한다고 하긴 했는데 너무 진지했나 싶은 거다. 갑자기 밀려오는 민망함에 머리를 부여잡고 고개를 무릎으로 박았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속 시원하게 말이나 하자.”
머리위로 백현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무것도 모르고 잘되라고 내가 얼마나…. 근데 그게 김종인? 어이가 내 뺨을 후려친다. 진짜…그 배신감은 진짜 말도 못해.”
쉬운 길 두고 어려운 길 걷겠다고 하는 것도 마음에 안 들고…. 솔직히 까놓고 니들 부모님한테 사귄다고 얘기는 할 수 있냐? 길거리에서 손도 못 잡고 다닐 것들이….
아니, 근데. 생각하면 할수록 니들이 너무 불쌍한 거야. 나까지 이러면 니넨 더 힘들 거 아냐, 시발…. 아 눈물 나는 우정이다. 눈물 나는 우정에 박수를 보내드려요. 야, 너도 알다시피 내가 좀 오지랖이 넓어. 알잖아?
게다가 왜 나만 빼고 다 알고 있냐…. 박찬열, 오세훈이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데, 존나 섭섭했음 진짜. 난 뭐 친구도 아니냐?
김종인이나 너나, 그러는 거 아니야. 나쁜 새끼들.
그렇게 때리라고 말해도 죽어라 무시하던 변백현이 말로 날 때렸다. 찰싹찰싹 아주 세게. 봇물 터지듯이 터져 나오는 녀석의 말을 끝까지 듣고 나서야 다시 고개를 들어 백현이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미안하다.”
진심으로 다시 사과를 했다. 변백현이 피식 웃는다.
“사실은. 아직도, 너희를 이해할 순 없어.”
그 말에 숨이 턱 막혔다. 곧 이어지는 말이 아니었다면, 진짜 이 자리에서 울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내가 했던 진심이 무용지물이 되었을까봐….
“근데,”
“…….”
“노력은 해볼게.”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나도 옆에 앉은 변백현을 향해 마주보고 웃었다. 아, 이제야 좀 살 것 같았다.
***
근데, 힘이 빠지는 건 왜일까요..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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