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처음부터 이러한 관계인 것은 아니었다. 이 ‘관계’란 내가 이들에게서 겉도는 것을 말한다. 내가 EXO의 멤버 중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은 변백현이다. 변백현과 처음 만난 것은 로드캐스팅을 받은 소수 인원의 남자들만이 모여 정식 캐스팅을 치루는 날이었다. 워낙 소수의 인원이었던지라, 서로 통성명을 하며 대기시간을 보냈다.
“몇 살이세요? 저는 20살인데.”
어색해하거나 긴장 된 기색 하나 없이 내게로 와서 말을 거는 변백현은 검은 생머리에 조금은 기름을 띄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물이 빠진 스키니 핏 청바지에다가 어깨가 남아도는 커다란 박스 티를 입은 변백현. 그에게 나도 20살이라는 말을 하자 반갑다며 자신의 이름을 전해왔다. 성이 특이해서 머리에 잘 들어박히는 이름이었다.
“저는 김종대에요.”
“반말인데 말 놓자!”
장난끼 있어 보이는 얼굴로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하는 변백현을 보며 생각했다. 얘랑 같이 오디션 합격해서 같은 팀 되면 좋겠다. 심심하진 않겠네. 그리고 정확히 일주일 후, SM 비공식 오디션에 합격 통보를 받았다. 그리고 회사에 첫 출근을 해서 연습실에 들어선 순간 놀란 눈으로 나를 보던 변백현이 있었다.
김종대가 왕따라는 것에 대한 진실공방
01
w. 토쿠토쿠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내심 기대했던 SM 소속 연예인들과의 만남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끔 가다가 동방신기나 슈퍼주니어 선배님들께서 연습실에 들러서 얼굴을 아는 연습생들에게 간간히 격언을 던지고 가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들을 보며 나와 변백현은 더욱 의지를 굳게 다지고는 했다. 자신들이 원하는 무대에서 노래를 하는 그들이 부러웠으니.
“김종대! 오늘도 10시까지 달릴 꺼지?”
“응. 너도?”
“아, 내일 토요일이니까 집 가고 싶긴 하다. 그래도 너 혼자 남아있게 하는 건 좀 그러네.”
변백현은 찜찜하다는 듯 미간을 손가락을 긁적이며 나를 쳐다봤다. 연습생 생활 두 달차, 우리는 소속사 경비 아저씨께서 나가라고 윽박을 지르실 때까지 남아서 연습을 하다가 쫓겨나듯 나가고는 했다. 서로의 노래를 들어주거나 같이 연습을 하면서 노력하는 것들이 즐거웠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그럼 먼저가, 백현아.”
“에이, 아니야. 그냥 나도 10시까지 하고 갈래.”
“부모님이 걱정하신다며.”
“그냥 밥 잘 먹고 다니나 그 정도지 뭐. 막상 가면 그렇게 반가워하지도 않아.”
주섬주섬 싸놓았던 가방을 다시 푸는 변백현. 그래봤자 안에서 나오는 것은 우리의 연습 장면이 잔뜩 담겨 있는 캠코더와 생수 한 통이었다. 내가 가수를 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하시는 아버지 덕분에 집에는 잘 가지 않는 나를 위한 배려였다. 땀을 흘릴 것에 대비하여 목에 수건을 감으며 나를 보고 씨익- 웃으며 오디오를 조정하는 변백현의 뒷모습이 눈에 차들었다. 아마 우리는 오늘도 10시가 되면 경비 아저씨에게 쫓겨나 회사 근처의 찜질방에 들어가 새우잠을 청하겠지. 그래도 니가 있어서 든든하다, 변백현.
***
평소와 같이 연습을 하다가 저녁 식사를 하러 구내식당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평소와 같이 컵라면으로 배를 채우려 했으나 변백현이 비도 오는데 그냥 구내식당으로 가자며 자신의 식권을 하나 내민 탓이었다. 엘레베이터 안에서 내 어깨에 팔을 걸치고 있던 변백현은 장난스레 내 머리 위로 손바닥을 휘휘 저었다.
“우리 종대는 키 언제 크냐.”
“웃기고 있네. 신발 밑에 깔창이나 빼고 말해.”
“뭐래. 나 안 넣었어.”
“시끄러워. 너 그러고 춤추다가 잘못하면 발목 나간다.”
손으로 목이 따이는 제스쳐를 취하며 장난스레 웃자 변백현이 발끈하며 달려든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우리는 정자세를 취하고 조용히 서 있어야 했다. 지하식당으로 내려가는 엘레베이터의 문이 1층에서 열리고 기획실 사원분들이 올라타셨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변백현과 내가 소리내어 꾸벅- 인사했으나 도도하기로 소문난 기획실장님은 우리를 흘긋 보고는 말았다. 그 옆에 있던 신인기획부 팀장님만이 어색하게 웃으며 끄덕일 뿐. 엘레베이터 안에서 갑갑하게 흐르는 어색한 공기에 변백현과 나는 말없이 엘레베이터의 문 윗쪽에 있는 LED판의 숫자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겨우 두층 내려가면 되는 건데 왜이렇게 시간이 오래가는 것 같지.
“안녕히 가세요.”
LED판의 숫자가 1에서 B2로 바뀌고 엘레베이터 문이 서서히 입을 벌렸다. 사원분들이 먼저 나갈 수 있도록 몸을 피한 우리는 그 뒷모습에 또 한번 꾸벅- 인사했으나 역시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아니, 그럴 줄 알았는데. 기획실장님의 눈짓 하나에 신인기획부 팀장님이 뒤를 돌아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백현이랑 종대. 너희 밥 먹고 1층 기획실로 와.”
“네?”
얼빠진 나의 대답에 아버지 같은 미소를 지으신 팀장님은 긴장 풀라는 듯 나의 어깨를 두어번 두드렸다.
“단정히 하고. 백현이 너는 머리 좀 정리하고 와야겠다, 임마.”
돌아서는 팀장님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여전히 얼빠진 표정을 지었고, 변백현은 아직도 땀에 젖어있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헤집으며 멍하니 말했다.
“뭔가 촉이 오지 않냐, 종대야.”
“...응?”
“우리 잘 하면 노래 할 수 있어.”
“아, 무슨 말인데. 제대로 말 좀 해봐.”
“무대에서 노래 할 수 있다고, 김종대.”
***
구내식당에서 가장 싼 순두부 백반을 하나 시키고 공기밥만 하나 추가해서 나눠 먹던 우리는 밥을 먹기보다는 얘기에 열중했다. 변백현의 말에 의하면 지금 SM 신인 프로젝트에서 남자 아이돌을 구상 중이라고 했다. 3년 만의 신인 그룹, 남자 그룹으로 치면 5년만의 남자 그룹. 그런데 그게 왜?
“이 멍청아. 넌 소문 좀 들으면서 살아.”
“그런 거 신경 쓸 시간이 어디 있냐?”
“소문 들을 시간은 없고 드라마 볼 시간은 있지?”
“내가 언제 드라마를 봤다고 그래.”
“너 핸드폰에 시크릿 가든 가득 들어있는 거 다 봤어.”
할 말이 없어서 말없이 변백현이 열지 못해 낑낑대고 있는 조개를 가져와 손쉽게 입을 벌려줬다. 알맹이를 변백현의 수저 위에 올려주니 국물을 함께 떠서 잘도 먹는다.
“아무튼 요즘 그 신인그룹 멤버를 거의 다 뽑았대.”
“아, 다 먹고 말해. 더러워, 변백현.”
“근데 문제는.”
두 명이 모자란다는 거지. 그것도 메인보컬로! 변백현의 표정은 신이 나 있었다. 입 안 가득 벌건 순두부를 넣어놓고는. 얘는 설마 지금 그 두 명을 우리로 충원하려고 우리를 호출한 거라고 생각하고 있는 걸까. 말이 돼? 우리보다 훨씬 먼저 들어온 연습생이 몇 명인데.
“야, 우리 아직 들어온 지 3개월 밖에 안됐어.”
“음... 그런가.”
“게다가 우린 아직 연습생 반이고 데뷔반인 사람만 해도 몇 명인데.”
내 말에 다시 시무룩해져서는 순두부를 퍽퍽 퍼먹는 변백현의 정수리가 귀여웠다. 하여튼, 감정기복은 엄청 심하다. 근데 그렇게 되면 갑자기 왜 호출을 하신 걸까. 이번에도 조개 하나를 집어 들어 끙끙 대고 있는 변백현에게서 조개를 가져와 알맹이만 빼서 수저 위에 얹어줬다. 그래도 시무룩한 표정이 풀어지진 않는다. 많이 기대를 했나보네. 뭐, 나도 그런 좋은 소식으로 호출한 거면 좋긴 하겠다. 그럼 우리 같은 팀으로 데뷔한다는 얘기잖아. 그치?
***
밥을 먹고 난 변백현과 나는 1층의 기획실 문 앞에서 들어가기를 한참 망설였다. 서로의 모습을 몇 번이나 확인해주고서도 혹시나 티셔츠에 순두부찌개 국물이 튄 건 아닌지 까지 꼼꼼하게 살폈다. 변백현은 땀에 절었던 머리가 신경 쓰이는 건지 연신 옆머리를 쓸고 있었다.
“그만 좀 만져. 떡 지겠다.”
“머리 안 이상해?”
“원래 이상했어.”
쏘아주고는 문고리를 잡았다. 뒤에서 나에게 주먹질을 하려는 변백현이 느껴졌으나 무시하고는 문을 열었다. 변백현도 재빨리 자세를 바로 하며 내 뒤로 따라 들어왔다. 회의 중이었던 건지 부장님들도 같이 계신다. 문 근처에 뻘쭘히 서있는 우리를 보며 그 중 한 분이 우리에게 문을 닫고 가까이 오라 말씀하셨다.
“얘네야?”
실장님의 입에서 나오는 저 물음이 왜 그렇게 무서운 건지. 변백현을 힐끗 보니 입술을 흘긋- 물고 있었고 나는 그저 실장님의 눈치를 보고만 있었다. 우리 둘을 너무도 날카롭게 훑는 눈에 그마저도 결국 포기하고 바닥으로 시선을 고정시켰지만.
“둘 다 키가 좀 작네. 쟤 왼쪽은 왜 이렇게 말랐어.”
태초부터 마른 체형인 내 몸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 없었다. 연습생 생활을 하면서 혹독한 연습 패턴으로 인해 살이 더 빠져버린 탓에 지금은 내가 봐도 앙상한 모양새였다. 변백현도 그런 내 모습을 항상 걱정했었고.
“실장님, 우선 애들 좀 앉히시죠.”
신인개발팀장님께서 우리가 앉을 자리를 손수 내주셨다. 의자를 빼주시는 손길에 변백현과 나는 허겁지겁 저희들이 하겠다며 다가서서 의자를 빼 앉았다. 그런 행동 하나하나에도 실장님을 비롯한 여러 높은 분들의 시선이 닿으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너희 둘 다 92년생이라고.”
“네에...”
변백현은 그냥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마친 건지 내 작은 목소리만이 조용하게 울렸다. 종이 차트를 보던 실장님께서 고개를 들어 또다시 그 매서운 눈으로 나를 훑었다. 으, 목소리 작은 게 마음에 안 드셨나.
“얘네 보컬 트레이너 누구야?”
“정화요.”
“댄스는?”
“재완이요.”
정화누나와 재완이 형. 익숙한 이름들에 그래도 조금은 긴장이 풀리는 것 같다. 그건 변백현도 마찬가지였는지 나를 보며 살짝 웃음을 머금는다. 그래도 저 긴장한 입꼬리는 어쩔거야.
“너희 여기에 왜 온 건지는 아니?”
“...아뇨.”
변백현과 내가 동시에 작게 대답했다. 설명도 안 해줬는데 우리가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물론 점심을 먹으면서 변백현이 말해준 대로 상황이 척척- 이루어진다면 좋겠다만 그럴 일은 별로 없을 것 같고... 설마 짤리는 건 아니겠지. 그럼 진짜 아버지한테 많이 혼날 텐데.
“너희 데뷔 반에 들어가게 될 거야.”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식탁보 같이 생긴 수수한 듯 화려한 천 쪼가리를 눈으로 훑던 나와 변백현의 고개가 동시에 쳐들렸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었다. 보통 연습생 반에서 데뷔 반으로 옮겨지는 것에는 시간이 길게는 7~8년, 짧게는 적어도 1~2년이 걸린다고 들었다. 안 좋은 상황에는 그 전에 회사에서 퇴출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는데. 그런데 아직 3개월밖에 안 된 우리가 데뷔 반으로 들어간다니.
“소문 들었으면 알겠지. 우리가 기획하고 있는 그룹에 넣을 사람을 찾고 있어.”
“......”
“물론 그 빈자리가 너희 것이라는 건 아니야. 다만, 좀 더 가까이에서 지켜보겠다는 거지.”
무릎에 올리고 있던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꿈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 탓에 심장박동수가 올라가는 것 같다. 주먹에 너무 힘을 많이 주는 탓에 살에 손톱이 파고 들 때 즈음, 변백현이 테이블 밑에서 내 손 위로 자신의 손을 포개 올려 잡았다. 변백현을 바라보니 여전히 눈은 실장님과 마주한 채다.
“데뷔 반에 들어갔다고 해서 안심 하지 마. 오히려 그 자리에서 아예 매장 당하는 애들도 많아. 기고만장해져서는 눈에 뵈는 게 없어지거든.”
“......”
“그리고 무엇보다.”
“......”
“너희보다 실력이 있는 아이들은 많아.”
실장님의 진지한 말에 진심으로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연습생 반에도 우리보다 실력이 출중한 사람들은 많다. 우리보다 나이가 많든, 적든, 그 사람이 여자든, 남자든 간에 우리보다 나은 그 사람들. 그런 사람들보다 더 빠른 길을 걷게 되었다. 이에 대해서 우리가 지불해야 할 값들은 무엇인걸까. 실장님께서 검토하던 종이 차트를 옆에 서 있던 비서에게 건네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더운 날에도 단정한 자켓을 걸쳐 입은 실장님이 신인개발부 팀장님께 말했다.
“오늘부터 얘네 관리 들어가. 쟤는 살부터 좀 찌워.”
또각거리는 구두 소리를 내며 개인실로 들어가시는 실장님께 모두가 일어나 인사를 했다. 들어가십시오. 변백현과 나도 어정쩡하게 일어나 뒷모습에 대고 인사를 했다. 아직도 어안이 벙벙할 뿐이었다. 회의실 탁자 끝 즈음에 앉아있던 여자분이 문 근처에 서 있던 분에게 말했다.
“현균이 불러. 종대랑 백현이 데려가라 그래.”
***
우리의 임시 매니저가 될 것이라고 자신의 소개를 간단히 끝낸 현균이 형은 우리를 데리고 데뷔 반의 연습실로 향했다. 그 길에서 변백현은 계속해서 내게 귓속말을 전해왔다.
“연습생도 매니저가 있나봐. 대박.”
“조용히 좀 해. 다 들리면 어떡해.”
티격태격하며 복도를 걷던 사이, 처음으로 와본 지하 1층 연습실에 도착했다. 지하 2층에 내려가면 방음이 잘 안돼서 복도에서부터 온갖 음악 소리가 다 들리는데 이 곳은 조용하다. 배 안이 둥둥- 울리는 느낌이 드는 것을 보면 저 문 너머로 음악 소리가 커다랗게 나오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자, 여기가 데뷔 반 연습실이야. 이제 너희가 여기 써야 될 거야.”
“헐... 네.”
“백현이라고 했지? 너 이제 그런 헐 같은 말도 조심해. 언어교육이랑 예절교육도 받게 될 거야.”
“헐, 아. 아니. 어... 그러니까, 대박. 그런 교육도 받아요?”
“그래. 그리고 저 쪽 연습실은 들어가지마. 여자 연습생들 있는 곳이야. 들어가면 아주 지랄지랄 할 테니까 한 번 들어가보던지.”
현균이 형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문에서 여자애 하나가 나왔다. 앙칼지게 생겨서는 변백현과 나를 위 아래로 쳐다보고 간다. 현균이 형이 왜 조심하라고 한 지 알 것도 같은게, 옷을 거의 헐벗은 수준이다. 엄청 짧은 트레이닝 팬츠에 끈나시. 일부러 눈을 돌리며 흠흠- 거렸다.
“아무튼 들어가자. 너희랑 같은 신인 프로젝트 들어갈 애들이야. 너희는 아직 좀 지켜봐야 되지만 얘네는 거의 확정이라고 볼 수 있고. 들어가면 인사 깍듯이 해라. 너희랑 또래긴 한데 그래도 한참 먼저 들어온 애들이고 처음이잖아.”
현균이형의 말에 변백현과 나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그렇죠. 설마 텃세 같은 게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조금은 고민이 되기도 했다. 이 바닥은 워낙에 이런 것이 심하다고 들었으니. 걱정되는 마음에 고개를 돌려 변백현을 쳐다보자 이 새끼는 벌써부터 실실 웃고 있다. 그래, 너 있으니까 친해지는 건 쉽겠지 뭐. 문이 열리고, 우리 또래 남자아이들의 땀내음이 풍겨왔다.
빨리 종따이가 괴로워 하는 걸 보고 싶다 그나저나 분량 조절 실패;; 겁나 긴 것 같다 미안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연재 텀이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촉박한 나의 마음을 반영한거라고 봐 주렴 그럼 안녕아직까지는 겁나 훈훈하네